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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89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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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동백꽃-뿌듯한 도넛

DUMMY

<도림> “오빠!”



도림은 소리를 지르고는 뭣에 놀란 것마냥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유정은, 아직은 그녀에게 ‘선배’였다. 마찬가지로 유정에게도 그녀는 ‘후배’일 뿐이었다.


그러니 ‘오빠’는 그 누구라도 들어서는, 아직은 안 되는 말이었다.



다행히 거리가 있어서인지 유정은 못 들은 듯 했다.



그가 웬만큼 가까이 다가왔을 때 도림은 다시 그를 불렀다.



<도림> “선배.”


<유정> “도림이구나? 연습 끝났는데, 안 가고 뭐 해? 약속이라도 있어?”


<도림> “선배 기다렸어요.”


<유정> “날?”


<도림> “네.”


<유정> “전화를 하지 않구?”


<도림> “혹시 그림엽서 보내 보신 적 있으세요?”


<유정> “엽서는. 편지는 고사하고 이메일도 잘 안 보내는데.


다들 까톡(까까오톡) 하지 누가 그런 자연사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물건을······.”



<도림>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감성이랄까요.


까톡으로 담아낼 수 없는 뭔가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유정> “그런 거라면 엽서를 전해 주는 사람의 손길 같은 것? 하고 싶은 말이 있었구나?”


<도림> “선배, 오늘 바빠요?”


<유정> “나야 뭐······.”



유정은 머뭇거렸다. 그다음 도림의 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니 대답하기가 꽤 곤란했다.



따지고 보면 다른 학생들처럼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니, 교문을 나서면 ‘프리’(Free)였다.


특별히 알바를 한다거나 공부에 매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시쳇말로 무언가에 ‘덕질’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어렴풋이 느끼는 도림의 ‘동병상련’과는 또 별개였다.



그녀가 그려줄 ‘엽서 속 그림’을 받기에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유정이 머뭇거리는 사이, 도림이 다시금 재촉하듯 입을 열었다.



<도림> “선배, 그러면 오늘 저랑 도넛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유정> “도······넛?”



유정은 혼란스러웠다.



요즘인지 옛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그 말,


“오빠, 오늘 라면 먹고 갈래?”와 너무나도 닮은 이 말, 어떻게 받아야 할지 난감했다.



물론 설레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사정을 앞에서 눈빛을 반짝이는 도림이 알고서 그러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중에라도 그녀가 지금의 ‘선택’이 무모했다고 자신을 탓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러고 나니 영락없이, 동명이인인 김유정 작가의 소설 ‘동백꽃’ 속의 ‘나’와 ‘점순이’를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났다.



도림은 뻣뻣이 서서 머리를 긁적이는 유정의 손을 잡고 교문 밖으로 성큼성큼 내달았다.


마치 처음부터 유정의 걱정을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리고 그 걱정은 그녀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러고는 가까운, 그러나 학교 교문에서는 퍽 먼 D 도넛 가게에 닿아서는


문을 열고 들어가 유리창으로 된 벽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정은 예까지 온 이상 아무래도 계산은 선배이면서 남자인 자신이 해야겠거니 생각하고 도넛을 주문했다.



그리고 공연 얘기로 대화를 풀었다.



<유정> “요즘 공연 연습, 많이 힘들지?”


<도림> “힘들긴요. 전 제가 무언가를 해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데요.


물론 그게 의례적인 박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도림은 말을 멈추었다.


뒤에 이어질 말이 너무 뻔했다.


그리고 그걸 유정에게, 설혹 그가 이미 알고 있더라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도림>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이미 알고 있겠지.’



그래서 그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도림> “‘그래도’가 아니고, ······”



도림은 방금 전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도림> “그래서 친구들하고 작업도 하고 선배하고 공연도 하고,


쌤하고 애들이 거기에 박수도 쳐주잖아요.


그래서 힘든 걸 잘 모르겠어요.


선배는 힘들어요?”



유정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정> “아니.”



그러고는 도림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는, 이내 탁자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도림은 ‘동백꽃’으로 화제를 삼았다.



<도림> “점순이가 ‘나’한테 감자를 주잖아요.


작가는 그걸 ‘뿌듯한 봄감자’라고 표현을 해요.


‘동백꽃’의 표현이 전반적으로 다 좋지만, 저는 이 대목이 제일 맘에 들어요.


점순이는 봄감자를 주고 뿌듯했을 거예요.


그 마음이 ‘느집엔 이거 없지?’라는 말로 나왔겠죠.


그건 감자조차도 없는 형편을 약 올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주는 거다,


내가 내 마음을 담아서 베푸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속마음이 들어있었다고 봐야 맞을 거예요.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겠어요?


내가 주는 감자를 받아먹는 ‘내 남자’의 모습을 상상했을 테니 말이에요.”



‘동백꽃’에서 점순은 울타리를 엮는 ‘나’에게, 먹으라고 품에서 봄감자를 꺼내어 준다.


하지만 ‘나’는 다 큰 처녀, 총각이 점잖지 못하게, 혹여 불미스런 소문이 날까 하여 이를 거절하는데,


그 뒤로 점순의 괴롭힘이 시작되고, ‘나’가 볼 때만 벌어지는 닭싸움으로 이어진다.



도림은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점순 역을 맡은 자신이


그 ‘뿌듯한 봄감자’를 내어주는 소설 속 점순과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도림은 손에 든 도넛을 한입 베어 물었다.



<도림> ‘감자 대신 도넛이에요. 뿌듯한 도넛.’



유정은 앞에 놓인 쟁반 위 접시에서 도넛을 들어 깨물었다.


그리고 그것을 목 뒤로 넘기고는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도림도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띠었다.



<도림> “오빠.”



유정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도림과 눈을 맞추었다.



<도림> “이런 거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근데 오래전부터 궁금하긴 했어.”


<유정> “뭔데?”


<도림> “왜 이름이 ‘유정’이야? ”


<유정> “그게 궁금해?”


<도림> “아무래도 내가 이름에 민감하다 보니까.


지하철역도 아니고 이름이 ‘신도림’이 뭐야 대체.


그러니까 내 이미지가 꼭 ‘북새통’ 같잖아.


겨울 철새도 아니고.


옛날 어른들은 애들이 말 안 들으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말했다지?


근데 우리 엄마 아빠는 나한테는 꼭 신도림역에서 주워왔다고 말했을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내 이름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어.


근데 그건 그렇다 쳐도, 아무리 생각해도 ‘유정’은 여자 이름이야.”



<유정> “왜, 우리 공연하는 ‘동백꽃’ 작가도 유정인데. 나랑 이름 똑같은 김유정.”


<도림> “그거야 옛날 이름이잖아. 지금은 ‘유정’이라고 하면 여자한테나 그렇게 짓지, 누가.”


<유정> “이건 엄마 이름이야.”



유정은 말해놓고 잠시 머뭇거렸다.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 여태 숨기고 살아왔는데, 저도 모르게 도림에게 털어놓고 만 것이었다.



그래놓고 나니 이건 ‘남자의 여자 이름’보다 더 우스꽝스러웠다.


엄마와 아들의 이름이 같다니.



평소 같았다면 도림은 말하기 싫은 사연이 있을 줄로 생각하고 그만 넘겼을 것이다.


그녀 역시도 ‘신도림’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오늘 유정은 ‘뿌듯한 도넛’을 먹었다.



그래서 물었다.



<도림> “무슨 말이야? 엄마 이름이라니?”



유정은 무슨 무거운 저울추를 입에 달기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도림이 질문을 물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떼고 말을 했다.



<유정> “난, ······ 너와 같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어.


태어났을 때부터 내 집은 보육원이었고, 난 보육원 원장님, 사모님 밑에서 컸지.


지금은 기숙사에 살고 있지만.”



도림은 눈이 커졌다.



주위에서 뜬소문을 들을 때부터, 그리고 처음 등나무 밑에서 만났을 때부터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보육원’은 생각지도 못했다.



기실 E 고등학교 2학년 중에 몇 명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나,


처음 마음을 주었던 친구가 그 사실을 알고 마음문을 닫는 것을 보고는


유정은 사람 사귀는 일에 좀체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한발 다가서면 그 소문 역시 그 누군가에게 한발 널리 퍼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걱정을 한 다발씩 떠안게 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를 그의 의지로는 처음으로 밝히는 셈이었으니,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머뭇거림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도 그 대단한 용기를 내었지만, 이 말을 들은 도림 역시 이전의 친구와 마찬가지로 떠나간다면,


말 그대로 말 한마디에 찌그러질 그릇[容器]이 되고 말 터였다.


그나마도 상처밖에 담지 못할 그릇.



기실 동백꽃 팀 네 명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정> “언젠가 원장님한테 여쭤봤지.


내 부모님에 대해 알만한 게 없겠느냐고.


그랬더니 그때 말씀해 주시더라.


내 생일하고 엄마 이름하고.


그 밖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대.”



<도림> “그 엄마 이름이 ‘김유정’이었다는 거야?”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정> “어느 날 내가 F 보육원 문 앞에서 바구니에 누운 채로 울고 있더래.


엄마가 남긴 쪽지에 곧 온다고 하셨나 봐.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안 나타나셨고, 그래서 엄마 이름을 내게 붙여주신 거라고 하셨어.


주민등록상 생일이 실제 생일보다 몇 달 느린 것도 그래서고.”



<도림> “실은, 오빠 만나면서 그 이름을 내가 갖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야.


이름이 예쁘니까. 그것 말고는 다른 뜻은 없었어.


미안해.”



도림은 얼른 사과를 했다.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유정에게 상처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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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백꽃-대본에 없는 아찔함 23.05.12 11 1 12쪽
4 동백꽃-기억소멸에 대한 고백 23.05.11 13 1 10쪽
3 동백꽃-내 이름은... 23.05.11 14 1 11쪽
» 동백꽃-뿌듯한 도넛 +2 23.05.10 20 2 10쪽
1 동백꽃-첫 만남 +7 23.05.10 11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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