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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90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12 12:00
조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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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동백꽃-대본에 없는 아찔함

DUMMY

<도림> “선배,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요.


실수하면 어떡하죠? 대사 까먹으면 어떡하죠?


앞에 공연 보니까 너무 화려하고 관객들도 다들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서······.


근데 우리 공연은······.


솔직히 앞 팀들만큼 박수받을 자신이 없어요.


실수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도림은 유정에게 걱정되는 마음을 털어놨다.


그녀는 유정과 단둘이 있을 때가 아니면 꼭 그를 ‘선배’라고 부르고 경어(註1)를 썼다.



<유정> “지금까지 열심히 연습해 왔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잘 할 수 있을 거야.”



유정은 불안해하는 도림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유정> “그나저나 배 안 고파? 아무리 그래도 뭘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샌드위치같이 간단한 거라도?”



그는 도림을 비롯한 동생들이 걱정되어 점심을 물었다.



<도림> “아니요. 차라리 배고픈 게 나아요.


괜히 뭐 먹었다가 ‘신트림’을 별명으로 얻을까 걱정이네요.”



도림은 두 친구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하듯 “안 그래?” 하고 물었고,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점심도 굶어가며 외운 대본을 행여나 틀릴까 하여 읽고 또 읽는 사이 공연 시간이 다가왔고,


네 사람은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걸음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여, 네 사람은 둥둥 떠 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도림은 신도림역 그 북새통을 사람들에게 치여 날아가는 기분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리고 어떻게 인사를 했는지도 모른 채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


*점순: (울타리를 엮고 있는 ‘나’에게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얘.


*나: (점순 쪽으로 고개를 돌아보며)어디 가는겨? (다시 고개를 돌려 울타리를 엮는다)


*점순: 으응. 나물 캐러. 얘! 너 혼자만 일하니?


*나: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점순: 너 일하기 좋니? 내가 보니께, 넌 허구헌 날 일만 허드라. 어제도 산에서 나무를 월매나 했든지, 등에 그거 짊어지고 내려오는데, 보는 내가 다 무겁더라니께.


*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점순: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입을 틀어막고 깔깔댄다.)


*나: 남이사 일을 하건 말건 니가 무슨 참견이여?


*점순: (집께를 힐끔힐끔 돌아보다가 행주치마의 속으로 감자 세 개를 쥐었던 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밀며) 느 집엔 이거 없지? 이거, 내가 준 거 동네 어르신들이 알면 큰일 날테니께, 여기서 얼른 먹어.


*나: (점순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울타리를 엮는다.)


*점순: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나: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감자를 어깨너머로 밀어 버린다.)


*점순: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나: (점순 쪽을 돌아다보고는 점순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점순: (‘나’를 한참을 쏘아본다. 이어 눈물이 어린다. 바구니를 다시 집어 들고 이를 꼭 악물고는 휘청이며 논둑으로 달아난다.)


······










‘1막 끝’이라는 피켓을 든 학생이 무대로 걸어 나와 가운데 섰다.


무대가 전용 극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커튼만으로는 ‘인터미션’을 알릴 수 없었다.



도림이 감자 세 알을 유정에게 보였을 때 객석에서는 젊은 목소리로 ‘우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옛 생각에 젖은 학부모들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기도 했다.



<학생1> “우와. 도림이 유정 선배한테 감자 준 거야? 너무 부럽다.”



누군가 이리 말하면 또 어디선가는,



<학생2> “도림이는 얼굴에 점집 좀 차리고 나왔어야지, 점순이 티가 하나도 안 나잖아.”



하는 질투 어린 말들도 들려왔다.



<학생3> “유정 선배, 감자 받아서 깨물어 먹어요. 도림이 울리지 말고.”



어디선가는 이렇게 감자를 물리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도림이 눈에 눈물을 매달고 ‘논둑’으로 달아날 때는, 큰 박수 소리가 강당 안을 가득 메웠다.



<학생1> “도림이, 진짜 우는 거야?”


<학생2> “유정 선배,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여자를 울리고 그래요.”


<학생3> “울어도 좋다. 나도 저런 거 함 해 봤음 소원이 없겠다.”


<학생4> “넌 저렇게 눈치 없이 굴면 죽을 줄 알아!”



대체로 아직 연인이 없고, ‘나’와 ‘점순’ 같은 사랑을 해 보고 싶은 학생들의 감탄과 부러움의 박수였다.


그에 대자면 살아온 날만큼 사랑에 녹이 슨 어른들은


아직 녹슬지 않은 아이들 사랑의 풋풋함에 그리움과 사랑과 애틋함을 담아 박수를 보내 주는 편이었다.



10분쯤 지나고 제2막이 시작되었다.



제2막은 ‘동백꽃’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닭싸움이 있었고,


또 ‘나’와 점순이가 동백꽃 속으로 쓰러져 파묻히는 장면도 예정되어 있었다.


다들 기대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랬기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막론하고 이를 유정과 도림이 어떻게 표현할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었다.










······


*나: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다 닭의 죽는소리를 듣고는) 이거 누구 집에서 닭을 잡는겨? (점순, ‘나’의 닭을 붙들어 그 볼기짝을 팬다. ‘나’, 두 눈이 동그래진다.)


*점순: 이놈의 씨닭! 죽어라, 죽어라.


*나: 아, 이런. (주위를 둘러본다. 이어 참지게 막대기를 들어 울타리 중턱을 친다.)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니?


······










*나: (독백)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고, 형편이 아니야. (닭이 맞을 때마다 울타리를 후려친다, 독백) 허지만 나만 밑지는 노릇이지. (도끼눈을 뜨고 큰 목소리로)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터이야?


*점순: (닭을 내팽개친다) 예이 더럽다! 더럽다!


*나: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점순: (‘나’의 등 뒤로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 하게)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배냇병신이지?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나: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점순 쪽으로 고개를 돌리나 점순은 보이지 않는다.)


······










*나: (닭1을 붙들어 장독께로 간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지? (닭1의 주둥아리 께로 고추장을 들이밀고 먹인다.)


*닭1: (거스르지 않고 곧잘 먹는다.) 꼬꼬꼬······


*나: 금시는 용을 못쓸 테니. (닭1을 홰 속에 가둔다.)


······










*나: (점순네 수탉(닭2)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1을 내려놓는다.)


*닭1, 닭2: (얼리어 싸운다.) 꼬꼬댁 꼬꼬꼬······ (닭2가 닭1을 쫀다. 닭1은 피를 흘리고 날갯죽지만 푸드득한다.)


*나: 이게 뭐야.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하네. 고추장 먹인 보람도 없이.


*닭1: (펄쩍 뛰며 발톱으로 닭2의 눈을 긁어 판다. 내려와서는 면두를 쫀다.) 꼬꼬꼬······


*닭2: (뒤로 멈칫하며 물러난다.)


*닭1: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쫀다.)


*닭2: (대가리에서 피가 흐른다.)


*나: 알았다, 알았어. 고추장만 먹이면은 되는구나.


*점순: (닭싸움을 내다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나: (자기 엉덩이를 두드리며) 잘한다! 잘해!


*닭2: (닭1을 연거푸 쫀다.)


*닭1: (찔끔도 못 하고 곯는다.)


*나: (묵묵히 서서 바라본다.)


*점순: (‘나’가 듣도록 큰 소리로 깔깔거린다.)


*나: (닭1을 붙들어 집으로 돌아온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였어. 너무 급하게. (장독으로 돌아와서 닭1의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댄다.)

닭1: (먹지 않고 거부한다.) 꼬꼬댁 꼬꼬꼬······


*나: (닭1을 눕히고 궐련 물부리를 물리고 고추장 물을 조금씩 들여 붓는다.) 조금만 참어.


*닭1: (재채기를 한다.) 킥킥.


······










닭싸움은 유정과 도림을 비롯한 팀원 모두에게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었다.


사람만이면 별 문제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는 닭을 ‘섭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이 중요한 장면을 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낸 고육책으로 도림의 두 친구가 각각 점순에게 맞는 암탉과, 서로 얼리어 싸우는 닭1, 닭2를 맡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리 체구가 작은 여학생이라 하여도 닭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큰지라,


현실감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암탉이 점순에게 맞을 때나 닭1이 고추장을 먹으며 괴로워할 때, 닭들이 얼리어 닭싸움을 벌일 때는,


‘사람 크기만한 닭들’에 대한 어이없음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정은 도림에게 눈짓을 했다.



<유정> ‘괜찮아. 원래 재미있는 장면이라서 사람들이 웃는 거야.’



그는 평생을 주눅 들어 살아왔는지라, 아무런 의도가 없더라도 저런 웃음소리에 무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은 도림에게도 똑같이 있었던 일이기에 입모양으로 격려를 해준 것이었다.



<도림> ‘그렇겠지?’



그녀 역시도 입모양으로 화답을 했다.






공연은 ‘나’가 점순의 닭을 단매로 때려죽이는 장면까지 진행이 됐다.


유정과 도림을 비롯하여 모든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장면이었다.










······


*점순: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나 : 그럼 어때?(일어서려고 땅을 짚는다.)


*점순: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나’의 복장을 떠민다. ‘나’, 다시 넘어진다.)


*나: (독백) 이 일을 어째. 분하고 무안스러운 건 둘째치고, 일을 저질렀으니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면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린다.) 어엉······.


*점순: (‘나’에게 다가가)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


*나: (독백) 이젠 살았다. (눈물을 씻는다.) 그래.


*점순: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나: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점순: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쓰러진다.)


*나: (점순이와 몸뚱이가 겹쳐서 쓰러지며, 동백꽃 속에 파묻힌다. 독백) 알싸하다. 그리고 향긋하다. 정신이 온통 아찔하다.


*점순: 너 말 마라!


*나: 그래!


······










동백꽃 사이로 쓰러진 도림은 유정을 꼭 끌어안았다.


이 일로 당황하기는 유정 쪽이었다.


연습 때는 물론 대본에도 없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꽉 조인 도림의 두 손을 풀 생각도 못 하고 이를 어쩌나 싶어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도림의 모습도 대본에는 없었지만,


그녀의 손을 풀려고 애쓰는 모습 역시 대본에는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관객석에 앉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유정은 정신이 온통 아찔하였다.


벌, 나비가 찾지 않는 동백꽃 향기가 알싸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이 일을 ‘수습’하기가 곤란하겠기 때문이었다.





=== 주석


註1. ‘존댓말’과 ‘경어’(敬語)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둘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아빠, 밥 먹었어요?”와 “아빠, 진지 잡쉈어?”를 비교해 보자면 ‘밥’과 ‘진지’, ‘먹었어요’와 ‘잡쉈어’가 어울리지 않게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먹었어요’와 같이 어미가 합쇼체, 하오체, 해요체인 것을 ‘경어’로, ‘진지’, ‘잡수다’와 같이 단어의 꼴이 바뀌는 것을 ‘존댓말’로 하여 둘을 구분한다. 다만 이것은 작가의 구분법일 뿐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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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대본에 없는 아찔함 23.05.12 12 1 12쪽
4 동백꽃-기억소멸에 대한 고백 23.05.11 13 1 10쪽
3 동백꽃-내 이름은... 23.05.11 14 1 11쪽
2 동백꽃-뿌듯한 도넛 +2 23.05.10 20 2 10쪽
1 동백꽃-첫 만남 +7 23.05.10 11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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