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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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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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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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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월의 밤 (1)

DUMMY

집에 돌아온 이찬은 제 무릎에 올라온 백호양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 급조한 것 같은 종이는 무언가.

왜 여기에 담긴 상상력이 지구의 허용 상상력을 아득히 초월하는가.

어두운 하늘이 비춘 달빛이 그의 무릎에 내려 앉았다.


"시간이 됐다."


이찬이 집에서 출발한 시각은 약 9시 50분.

만반의 준비 후 이찬은 백호양에게 먹이를 주고는 집을 나섰다.

팔랑이는 초대장이 누군가의 손에서 멈췄다.


***


이찬은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여 골목에 도달했다.

직전까지는 느껴지지 않던 그 격이 골목의 앞에 서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몰려온 것이다.

이찬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골목에 발을 딛자 주변의 풍경이 이전과는 백팔십 도 달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왈츠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발을 떠받치는 땅은 포장된 아스팔트가 아닌 흙바닥 위에 올려진 레드카펫으로 변했다.

레드카펫이 이어진 그 끝에는 연회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그의 착장이었다.

헐렁하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가 아닌 끌밋한 정장이 그의 몸을 장식했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인가 생각할 무렵 이찬은 연회장의 입구에 도달했다.

앞을 지키던 문지기가 이찬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이찬이 답했다.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초대장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


이찬이 주머니를 뒤져 초대장을 찾아보려 했지만 바지 주머니에도, 정장의 주머니에도 초대장이 없었다.

문득 이찬은 자신이 초대장을 집에 놔두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시계는 이미 10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지금 집을 다녀온다면 절대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이찬은 무력으로 문을 열기 위해 격을 발현했고, 문지기가 당황하며 지원을 요청할 때쯤.


"야!"


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변의 여지 없이 아윤이었다.


"너, 내가 집에 있으라고—"


아윤이 이찬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이거 안 들고 갔더라?"


아윤이 제 왼손에서 이찬이 놓고 간 초대장을 꺼내어 건넸다.

그녀는 몸에 아름다운 흰 드레스를 걸친 채 이찬을 타박했다.


"칠칠맞지 못하게."


그리고 아윤의 발밑에서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려온 것도 아윤의 꾸중과 빠르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왕!


아윤의 발 옆에는 땡그란 눈으로 이찬을 고양하는 백호양이 있었다.

이찬과 아윤에 이어 백호양도 반려동물 전용 정장을 입고 있었다.


“호양?”

“원래는 혼자 오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하도 졸라서··· ···하핫.”

“그걸 말이라고··· ···!”


이찬의 말을 도중에 끊고 난입한 것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정장 입은 문지기였다.


“인간 두 분에··· ··· 음?”


문지기의 인원 검사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다른 문지기를 불러왔다.

둘은 어느 정도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누더니 이찬에게 다가와 말했다.


“초대장 여부는 확인되었고요. 인간 두 분에 짐승 하나 맞으시죠?”

“반려동물도··· ··· 들어갈 수 있습니까?”


싱긋 미소 지은 문지기가 백호양과 눈을 맞췄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두 문지기가 커다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힘껏 당겼고, 마침내 미지의 초대장 속 장소. 그 정체가 드러났다.


“진짜 연회야?”

“어서 드시죠.”


얼떨결에 아윤과 백호양을 곁에 둔 이찬이 중앙 레드카펫을 통해 자신의 테이블을 안내 받았다.


“이곳에 계시면 됩니다.”


무대의 좌측에 조금은 동떨어진 자리를 배정받은 이찬과 아윤이 앉아 이 연회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 어디야?”

“나도 몰라.”

“모르는데 왜 왔어?”

“그러는 너도 와 놓고 왜 나한테만!”

“호양은 왜 데려온 거야!”

“아으··· ··· 말을 해 줘도.”


하지만 아윤과 이찬에겐 오래 이야기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붉은 오로라를 담은 격이 연회장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이찬은 연회장을 가로지르는 복도의 건너편 원형 테이블에 그 빌어먹을 전학생이 보였지만, 그곳에는 이찬을 제하고도 무수히 많은 격을 지닌 생명체들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평범한 연회장은 아닌 것 같아.”

“중요한 건 저 전학생이 여기에 있다는 거고, 여기서 저것과 싸울 수도 있다는 거지.”

“여기도 일종의 《관념》이야. 절대 경계가 해이해져서는 안 돼.”

“이러니까 우리 《관념》으로 왔던 첫날 생각나네. 그때 벨리알이··· ···.”


양껏 긴장한 그들의 뒤 무대로 누군가 등장했다.


“큼큼.”


목을 한번 가다듬은 그는 주머니에서 한 종이를 꺼냈다.

초대장이었다.


“여러분! 잠깐 여기를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이야기를 나누던 모두가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저는 이 ‘가월의 밤’의 사회를 맡은 스트리머 ‘트오’입니다.”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이번 ‘가월의 밤’. 초대장은 다들 받으셨겠죠? 초대장이 없으면 여기 들어올 수 없으니까요. 혹시나 초대장 없이 이곳을 들어오신 분이 있다면 이 연회장을 통째로 드리겠습니다. 계신가요?”


트오의 말에 모든 관객들의 반응이 차게 식었고, 트오는 멋쩍은 듯 유하게 웃어 넘겼다.


“하하. 역시 안 계시는군요. 그럼 슬슬 연회를 시작해 볼까요?”


사회자가 왼손을 튕기자 커튼 뒤에 숨어있던 거대한 스크린이 나타났다.


“첫 번째 희곡입니다.”


거대한 스크린에서 어떤 영상이 재생되었다.


[LIVE].


“생방송인가 봐.”

“근데··· ··· 뭔가 이상한데?”


-콰앙! 콰아아앙!

-으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제바아아아알!


“저거··· ···.”


아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멸망]입니다.”


「멸망.

그것은 한 문명의 몰락이자 파멸.

멸망을 겪는 행성은 십중팔구 행성의 명맥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일 할의 행성만이 급격한 진화를 거듭하며 《관념》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신들은 이것을 《환상》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충만한 상상력이 죽어 있던 「오디오 북」을 깨웠다.

이찬과 아윤은 멸망하는 세계를 묵묵히 지켜봤다.

지구의 인간들과 같은 문명을 이룩한 생명체들. 그들이 아무런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침략자에게, 천재지변, 자연재해에 속속들이 당하고 있었다.


“저러다 다 죽겠어··· ···!”


아윤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런 아윤의 호소에 응하기라도 한 듯.


-키에에에엑!


누군가 행성의 침략자. 괴물의 목을 따 버렸다.

피가 높게 솟구쳤지만 중력에 이끌려 땅에 후드득 쏟아졌고, 그 중 일부는 아니, 그 중 대부분은 누군가의 머리 위로 쏟아져 그 사람의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저··· ···.”


이 연회장에서 오직 이찬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


“왜 그래?”


수상쩍음을 느낀 아윤이 이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행동자야.”


행동자 특유의 서슬 푸른 기운이 가스페르에게서 조금. 아윤에게서 조금. 그리고 지금 저 검수에게서 다량 느껴졌다.


“저런 저런. 안타깝게 되었군요. 굳이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을.”


사회자의 의미심장한 문장이 이찬의 마음속 깊이 어딘가 자리잡은 분노를 건드렸다.


“저 버러지를 잡아 죽이실 분 계십니까?”


명백한 멸시가 담긴 사회자의 말에 이찬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때, 뒤에서 신언이 들려왔다.


[내가 하지.]


모두가 손들 든 그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쳤다.


“오. 좋습니다. 「설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흥. 주민을 보낼 거였으면 지원하지도 않았다.]


“역시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어깻죽지에 큰 날개를 달고 웃통을 깐 누군가가 무대 위로 올라와 사회자의 손을 맞잡았다.


“무운을 빕니다.”


잡은 손으로부터 그 괴인(怪人)의 몸이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무대 뒤 스크린. 그곳에서 손에서부터 나타난 괴인이 자신의 무기인 철퇴를 들고 그 참혹한 전쟁터에 난입했다.

동시에 이찬과 아윤을 비롯한 모두에게 동일한 시스템의 안내가 따랐다.


[현재 ‘던켈(dunkel) 드래곤’이 희곡 ‘멸망’에 참여했습니다.]

[상상력을 지원해 주시겠습니까? Y/N]


“찬아 이게 뭐··· ···.”

“아무것도 누르지 마. 가만히 있어.”


그곳에 있던 대다수의 존재들이 Y혹은 N을 눌러 상상력의 지원 여부를 결정했고, 그 수는 압도적으로 Y가 많았다.

사회자는 이찬의 탁자를 잠깐 흘기더니 진행을 이어갔다.


“역시! 저 버러지를 쳐 죽이는 것에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해 주셨군요. 그럼 던켈 님! 쇼를 시작해야겠죠?”


던켈 드래곤의 날개가 일순 하늘을 덮을 만큼 커졌다.


-으아아아!


그리고는 대략 사십의 침략자들을 처리한 행동자의 앞에 강림했다.


-뭐. 넌 뭐냐.


행동자는 당황했지만 이내 검을 잡고 자세를 고쳤다.


-당장 우리 행성에서 나—


행동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던켈 드래곤의 날개가 그를 말 그대로 다졌다.

채 죽지 못한 그의 영혼이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그제서야 이찬은 이 ‘가월의 밤’의 정체를, 그 본질을 파악했다.

이 연회는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미숙한 행동자를 섬멸하고, 파괴하고, 짓밟기 위한 신들의 계획적인 난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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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백룡 (1) 23.08.27 4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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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2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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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무장 (4) 23.07.24 61 0 10쪽
46 무장 (3) 23.07.23 3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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