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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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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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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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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대혁명 (1)

DUMMY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마철의 공방으로 진입한 태극본성의 주민들이 가스페르를 향해 달려왔다.


“가스페르! 제발! 팬입니다!”


마치 올림포스 대전쟁을 종결시킨 후 이찬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까지.


“이, 이찬. 이분들 다 누군데 저를·······.”


양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린 이찬이 가스페르에게 꾸벅 인사했다.


“힘내십쇼. 응원합니다.”

“예? 그게 무슨.”


공방을 빠져나가 여유를 만끽하려 했던 이찬의 귀에 섬뜩하고도 공포스러운 한 문장이 들려왔다.


“어! 저기 이찬이다!”

“뭐? 누구?”

“이찬! 아니 왜 그분을 모른단 말인가?”

“아이 알지. 근데 그분이 여기 와 계신다고?”


단 두 명의 유명인(?) 덕분에 마철의 공방은 미칠 듯이 복잡해졌다.

소란스러움에 바깥을 나왔던 마철의 제자들이 수많은 인파를 통제하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중과부적이었다.

결국 우르르 몰려오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한 이찬과 가스페르가 한발짝 물러났다.

그때.


철커덕.

끼이이익.


노후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얼마 전 이찬이 있던 공방에서 누군가 나왔다.

두말할 것 없이 마철이었다.

마철의 등장에 이찬과 가스페르에게 돌진하던 무수히 많은 이들이 일순 모두 멈췄다.

심지어 가스페르와 이찬, 밀려오는 인파를 통제하던 마철의 제자까지 모두.


[뭐하는 짓입니까.]


중후하지만 더없이 날카로운 신언이 모두의 귀에 때려 박혔다.


[공방의 앞에서 여러분이 소란을 피우시는 것에는 제가 가타부타할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 마철은 마철이 아닌 야철신의 입장에서 모두에게 신언을 내리는 중이었다.


[감히, 이 신성한 공방에 무작정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소란을 피우다니. 이는 야철신의 입장에서 좌시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모두 당장 나가주십시오. 이리 말해도 나갈 의향이 없으시다면.]


그의 눈이 마치 쇠를 달궈 녹이기 위한 이글거리는 불꽃의 색으로 물들었다.


[네 발로 기어서 나가게 해 드리죠.]


마철 아니, 야철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인파들이 하나 되어 일사불란하게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두가 나간 공방에는 공방의 대문을 잠그는 소리와 마철의 한숨 소리만이 나직이 새어 나왔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방으로 들어가셔서 안정을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빠른 시일 내로 무구를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정중히 인사한 이찬과 가스페르가 마철의 제자의 안내를 받아 탁자 위에 다과가 가득한 방으로 들어왔다.


“편히 쉬십시오. 거사를 치르셔야 하니.”


마철의 제자가 정중히 포권을 하며 물러났다.


“무림인인가.”

“그럴 수도 있죠.”


털썩.


소파에 털썩 앉아 다과를 씹은 가스페르가 이찬에게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달려든 이유가 뭡니까?”


순간 이찬은 부정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러자 가스페르가 못내 피식 웃어 버렸다.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순 이찬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이유도 모르고 당황했을 때는 주변에 이게 뭐냐고 먼저 물어 보시지만, 뭔지 알지만 당황했을 때에는 아무 말없이 그저 묵묵히 있으시죠.”


이찬의 행동 패턴을 모두 분석했다는 듯 가스페르가 어디서 들고 왔는지도 모를 안경을 치켜 올렸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버릇에 이찬이 당황했다.


“제가 그래요?”

“지금도 봐요. 내게 질문하지 않습니까?”

“아·······.”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찬이 가스페르의 옆에 앉았다.

검정색 세련되고 푹신한 소파가 이찬을 자신의 품 안으로 빨아들였다.


“쿠우우울.”


소파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찬은 소파에 누워 숙면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본 가스페르가 이찬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많이 피곤했을 테지.”


이찬은 간만에 불편한 마음을 모두 내려 놓고 열 시간 이상을 내리 잤다.


번뜩하고 눈을 뜨며 일어난 이찬이 자신의 관을 짓누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벽의 한쪽 창문을 본 이찬이 기겁하며 일어났다.

태극본성을 밝혀주던 밝디 밝은 항성은 없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어두컴컴했던 탓이었다.

가스페르가 여기 없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이찬이 달렸다.


타다다닷.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려 도착한 마철의 공방의 위에는 ‘업무 중’이라는 문구가 떠 있을 뿐이었다.


똑똑.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이찬이 잠시 기다리자 누군가 온몸에 칠흑 같은 검댕을 뭍인 채 이찬을 맞이했다.


“이찬 님?”

“아······· 혹시 제 검은·······.”


말끝을 흐린 이찬이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찬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그······· 이찬 님의 기도는 현재 위급한 상황이 되어 위층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저희 말로는 중환자라고 부릅니다.”

“예? 중환자요?”

“왼쪽으로 가시면 계단이 나올 겁니다. 그곳으로 올라가시면 야철신께서 검을 수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찬이 빛에 버금갈 속도로 쏘아져 계단을 올랐다.

검댕이 묻은 남자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더니 문을 닫고 다시 제 할 일을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닷.


가공할 속도로 계단을 오른 그의 눈에 결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불의 크기를 조절하고, 누군가는 물을 계속해서 찬물로 교체하고 또 누군가는 열심히 망치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성심성의껏 보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마철, 야철신이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부풀어 오른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마구 팽창했고,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은 마철이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새 망치질을 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찬이 발걸음을 옮겨 마철에게 다가가려 했다.


턱.


그러나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푸른 바다를 눈에 담은 듯 청명한 그의 눈을 본 순간 이찬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삭혔다.

푸른 눈을 가진 누군가, 가스페르가 말했다.


“지금은 믿고 맡깁시다.”


소중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생명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찬은 수술대에 오른 가족을 기다리는 힘없는 사람처럼 그것이 무사히 고쳐지기 만을 바랐다.

생명이 아님에도 어쩌면 이찬에게는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약 반 년 가량을 그것과 함께했다.


공격이 필요할 땐 검으로.

방어가 필요할 땐 방패로.

《관념》에서의 기억 대부분을 함께했던 검이 더는 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었다.


고오오오.


약 십 분 후, 그의 몸에 귀기 아닌 귀기가 어렸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 귀기에 가스페르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그때, 이찬의 입이 벌어졌다. 아니, 이찬의 모습을 한 무언가가 입을 열었다.


[도움은 없을 거라 했을 텐데.]


낯설고 어리숙한 신언.

그러나 절대 신언에 담긴 격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가스페르가 들었던 그 어떤 신언보다 둔중했다.

이 일대를 짓누르는 신언에 기도의 수리를 집도하던 모든 장인이 이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평소와는 다른 이찬의 기운 어린 청록색의 눈동자가 모두를 오시하는 눈빛을 발현했다.


[비켜라.]


단 한마디에 모든 장인이 물러섰다.

야철신의 격을 이어받은 마철마저 한 발짝 물러났다.


[네놈은 쓸 만한 격을 지니고 있군.]


이죽거린 이찬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기도에 가까이 다가갔다.

순간 그를 막으려던 마철의 손이 멈칫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 검의 진짜 주인이 지금 현신(現身)했다고.


우우우우우웅.


기도도 그 기운을 인지했는지 평소보다 긴 검명을 토해냈다.

검은 상처투성이였다.

검의 곳곳에는 검댕이 묻은 듯 검게 물들었고, 비늘은 더 이상 백룡의 것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이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있을까 싶은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하여간 용이라는 종족들은 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지.]


검에 손을 가져다 댄 이찬이 자신의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기도에 드리웠던 마기가 점점 밀려났다.

이내 공기 중으로 화한 마기가 이찬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찬은 숨을 크게 쉬어 그것들을 입으로 마셨다.

잠깐 입맛을 다시던 이찬이 말했다.


[구리군.]


그러곤 이찬이 마철에게 손을 건넸다.

마철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직감했다.

주머니를 뒤져 용의 비늘을 찾아낸 마철이 이찬에게 비늘을 건넸다.

다시 기도에 시선을 집중한 이찬이 검에 상상력을 한번 더 불어넣었고, 비늘이 이에 반응하듯 톡 하고 검의 고동에서 튀어 나왔다.

왼손에 쥔 자신의, 아니 용의 비늘을 꽂아 넣은 이찬이 접착하듯 미세한 손길로 상상력을 조절했다.

이에 호응한 기도의 검신이 부르르 떨림과 동시에 비늘이 기도에 부착되었다.

씩 하고 한쪽 입꼬리를 올린 이찬이 마철에게 말했다.


[녀석에게 전해라. 빚진 건 갚으라고.]


마철이 끄덕였다.

‘녀석’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탓이었다.

일대를 짓누르던 격이 사라지며 이찬의 눈 색이 청록색에서 짙은 검정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이 감김과 동시에 이찬의 몸이 스르르 쓰러졌다.

가스페르가 빠르게 달려가 이찬을 품에 안았다.


“미쳤군·······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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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백룡 (2) 23.08.28 37 0 10쪽
61 백룡 (1) 23.08.27 40 0 10쪽
60 바빌론 대혁명 (9) 23.08.26 28 0 9쪽
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2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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