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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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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1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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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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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2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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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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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종이부시 (3)

DUMMY

아윤이 다급히 달려가 이찬의 얼굴에서 고양이를 떼어 냈다.


그와옹!


고양이는 자신의 앙칼진 소리를 내뱉으며 이찬을 향해 마구 발길질했다.


“괜찮아?”


아윤이 이찬에게 걱정스런 말을 건넸고, 이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다고 말하는 이찬을 보며 아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 너 이마에···· ···.”

“응? 이마가 왜?”


자신의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대고는 한 번 슥 닦아내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약국이 있었기에 이찬은 빠르게 약국에서 약과 반창고를 사 이마에 길게 붙였다.


그르르릉 하악!


아윤이 두 손으로 공손히 고양이를 묶었고, 이찬은 그런 고양이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아윤이 이에 맞춰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놓았고, 다행히 고양이는 아까와 같이 이찬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적대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아아아악!


털을 곤두세우고 이찬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나던 고양이가 벽에 닿아 더는 물러날 곳이 없게 되었다.


“후, 도망은 안 할 것 같고, 이제 어떡하지?”

“아무래도···· ···.”


아윤이 방금까지 고양이가 담겨 있던 상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제야 눈에 들어왔지만 아윤은 천천히 상자의 안에 적혀 있던 고사성어를 읽었다.


“용호상박(龍虎相搏)···· ···.”


아윤이 그 고사성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중에 이찬은 열심히 고양이를 감화시키려는 각고의 노력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자, 착하지? 우쭈쭈.”


그와아앙!


“아얏!”


이찬은 이제야 이상한 감각과 함께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이걸 못 피한다고?


그렇다.

아무리 지금의 이찬이 관념에 있을 때보다 약해졌다고는 하나, 한낱 짐승의 할퀴기마저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는 못 피하는 것뿐 아니라 할퀴기가 날아오는 궤적 마저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저 고양이가 이찬보다 강하는 것을 방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윤아.”


아윤이 이찬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얘 키우자.”

“응? 갑자기?”

“이 녀석 보통 고양이가 아닌 것 같아.”


그러나 아윤에게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단호한 제약이 한 가지 있었다.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고양이 알레르기 있으셔서 안 되잖아.”

“내 집에서 키우면 되지.”


이찬의 빌라 옥탑은 분명 아윤의 부모님이 소개해 주셨지만 월세는 이찬이 내고 있기에 명백히 ‘거주지’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데려가자.”


어느새 이찬에게 감화된 고양이를 상자에 담아 이찬의 집에 도착한 둘은 하나 난관에 부딪혔다.


“이름을 뭘로 해야 되지?”


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깊디깊은 고민에 빠진 이찬과 아윤이 결국 타협점을 내놓았다.


“각자 이름 세 개씩 쓰고, 고양이가 위로 올라가 앉는 곳이 고양이 이름인 거다?”

“콜.”


각자의 스케치북에 세개의 이름을 쓴 이찬과 아윤이 동시에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야. 하하하학! 이름이 그게 뭐냐?”

“지는.”


내려놓은 아윤의 스케치북에는 ‘두부’, ‘우유’, ‘백설기’가 적혀 있었고, 이찬은 ‘벨라’, ‘릴리’, ‘미아’가 적혀 있었다.

이를 보곤 아윤이 치를 떨었다.


“사대주의네!”


그러자 이찬도 반박했다.


“너무 고리타분해.”

“선택은 고양이한테 맡기는 거야. 우리가 가타부타할 필요 없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이찬이 조심스레 고양이가 든 상자를 들어 아래로 기울였다.

고양이는 자연스레 상자에서 내려와 이찬의 방을 마구 거닐었고, 아윤과 이찬은 이게 뭐라고 침묵과 긴장을 한껏 머금었다.


그르릉.


몇 분을 내리 방을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드디어 스케치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밟아도 보고 가만히 있어 보기도 했지만 결코 그 위에 앉지는 않았다.


“아직 좀 어색한가?”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이찬이었다.


“그런가 본데?”


약간의 쉬는 시간 후 다시 이름 짓기 전쟁을 시작하려던 이찬의 눈이 화들짝 크게 뜨였다.


“야, 앉았다.”


마침내 고양이가 어느 글자의 위에 앉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름을 보러 달려온 아윤은 이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없는데?”


스케치북 위에는 고양이는커녕 그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찬이 가부좌를 튼 상태로 어느 위쪽을 가리켰다.

이찬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킨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헐.”


고양이가 앉아 제 몸을 가꾸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이찬이 책상에서 읽던 한 책의 표지였다.


『백호양』.

조선시대에 여진족에게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잃은 한 조선인이 여진족인 척 위장해서 그들의 정보를 캐내고 종국엔 여진족의 군대를 궤멸시키는 일종의 사극 판타지 소설.


“생각해 보면 저게 가장 잘 맞는 거 아닐까?”

“오, 방금 내 생각이랑 같았어.”

“둘 다 동의?”

“동의.”


그렇게 그 고양이의 이름은 백호양이 되었다.

이찬과 아윤은 백호양을 키우며 ‘호양’으로 부르게 되었고, 빠르게 자라나는 호양을 보며 둘은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때는 머지않은 미래, 겨울 방학식.


“으앗차!”


끝없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온 장내에 수면 속성을 부여했고, 서서히 하나둘씩 잠에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찬도 마찬가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은 이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강당에서 덧없이 쓰러져만 갔고, 이찬은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고양된 이찬의 기분과는 별개로 그의 등 뒤엔 서늘한 감각이 맺혔다.

이찬의 본능이 뒤를 돌아보라고 명했고, 이찬은 그 명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러분이라고··· ···.”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긴급 대피령처럼 배경에 깔렸고, 이찬의 시선 끝엔 전학생이 아니, 언젠가는 전학생이었을지도 모르는 기괴한 생명체가 이찬을 붉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찬은 이 기분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분명 있었다.


“너··· ···! 그때 골목··· ···!”


붉게 물든 전학생은 그 누가 봐도 경악을 금치 못할 테지만 어째서인지 뒤에서 감독을 서 있던 선생님들은 묵묵히 자리할 뿐이었다.

이찬은 불안정한 패닉 상태에 빨려 들어갔고, 흐려져만 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헉, 허어억··· ···!”


이찬은 공통격 「심호흡」을 발현해 안정을 되찾는 데 힘썼고, 다행히 멀쩡히 돌아온 후에는 그 빌어먹을 기이한 전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윤과 하교하는 길에도 긴장과 불안을 감출 수 없던 이찬은 평소 가던 골목이 나오는 길이 아닌 조금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뭐야? 왜 이리로 가?”

“그런 게 있어.”


머리를 박박 긁은 이찬이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아윤아.”

“응?”

“집에 먼저 들어가.”

“왜?”

“빨리. 들어가.”


이찬의 단호한 태도에 아윤은 먼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고, 이찬은 그 ‘골목’을 향해 날듯이 빠르게 달려갔다.


***


어느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던 어린 아이가 같이 있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 뭐예요?”

"음··· ···. 아무래도 치타나 매가 가장 빠르지 않을까?”

“왜요?”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생각하거든.”

“오오.”


콰과가가가각!


그때 무언가 가공할 속도로 부자를 제치며 달렸고,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여명아··· ··· 가장 빠른 동물은 인간인 거 같다.”


***


카가가각!


포장된 도로가 파이는 소리가 들리며 그 위에 있는 무언가의 정체가 드러났다.

역시나 다름 아닌 이찬이었다.

이찬은 아윤의 집에서부터 골목까지 2분간 완벽한 주파를 성공했고, 오는 동안 이찬은 역시나 불쾌하고 비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근원지는.


“골목.”


잠시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이찬이 골목의 안으로 진입했다.

적막한 골목엔 이찬의 발소리만 저벅저벅 들려왔다.

지구에선 발현될 수 없는 크기의 격이 장내를 압박했고, 믿을 수 없는 양의 상상력이 이찬을 옥죄어왔다.


‘원래 골목이 이렇게 길었던가?’


골목을 걸은 지도 어느덧 사 분째, 골목의 끝은커녕 양쪽 벽도 잘 느껴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우우웅!


가공할 바람이 이찬을 덮쳤다.


‘골목 안에서 바람이 불어?’


불길함을 느낀 이찬이 빠르게 달렸다.

마침내 골목의 끝에 도달한 이찬이 사주 경계를 도맡으며 무언가 나오기만을 고대했다.


팔랑.


종이.

편지지와 맞먹는 크기의 종이가 이찬의 머리 위로 내려 앉았다.

작은 반응에도 민감한 상태인 이찬이 머리에 종이가 닿기 직전 피했지만 안타깝게도 종이에는 아무 격도, 상상력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찬은 팔락이는 종이를 붙잡아 자신의 시야에 가져다 댔다.

종이에 적힌 문구는 이찬을 한층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이 종이를 소지한 당신을 금일 밤 열 시 이곳, ‘가월(佳月)의 밤’에 초대합니다.]


초대장을 받은 이찬은 이것이 지금껏 느낀 불길한 격과 상상력, 그리고 전학생의 비밀을 풀어 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선택권이 없나.’


어쩔 수 없이 이찬은 불안한 느낌을 다 떨쳐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찬이 남은 자리.


고오오오오.


생명체의 한 쌍의 눈이 셀 수 없이 나타나며 분주히 준비를 시작했다.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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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원행의 끝 (1) 23.09.09 27 0 10쪽
65 백룡 (5) 23.09.04 33 0 10쪽
64 백룡 (4) 23.09.03 48 0 10쪽
63 백룡 (3) 23.09.02 37 0 10쪽
62 백룡 (2) 23.08.28 37 0 10쪽
61 백룡 (1) 23.08.27 40 0 10쪽
60 바빌론 대혁명 (9) 23.08.26 28 0 9쪽
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2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56 바빌론 대혁명 (5) 23.08.13 34 0 9쪽
55 바빌론 대혁명 (4) 23.08.12 40 0 10쪽
54 바빌론 대혁명 (3) 23.08.07 34 0 11쪽
53 바빌론 대혁명 (2) 23.08.06 34 0 12쪽
52 바빌론 대혁명 (1) 23.08.05 54 0 10쪽
51 무장 (8) 23.07.31 41 1 11쪽
50 무장 (7) 23.07.30 40 1 10쪽
49 무장 (6) 23.07.29 39 0 10쪽
48 무장 (5) 23.07.24 39 0 9쪽
47 무장 (4) 23.07.24 61 0 10쪽
46 무장 (3) 23.07.23 37 0 10쪽
45 무장 (2) 23.07.22 43 0 10쪽
44 무장 (1) 23.07.17 41 1 9쪽
43 뇌봉전별 (3) 23.07.16 38 0 10쪽
42 뇌봉전별 (2) 23.07.15 42 0 10쪽
41 뇌봉전별 (1) 23.07.10 4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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