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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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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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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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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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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 (3)

DUMMY

붉디붉은 장미가 온 바닥에 내려앉은 듯 바닥은 벌겋다.

장미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명백히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발바닥이 장미 더미를 밟는다.


찰박.


그리고 그 소리에 홀린 듯 고꾸라져 바닥에 처박힌다.


콰아앙!


나베리우스가 되살린 강령 중 하나인 오리아스의 행성 부성주 악스의 시체가 혈해(血海)에 잠겨 사라진다.

악스를 죽여 바닥에 처박은 장본인의 창이 악스의 시체에 꽂힌다.

사자의 시체를 훼손하면 안 되는 것은 《현실》이나 《관념》이나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러나 아윤은 그런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몰려드는 강령들이 아윤을 포위하여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강령의 입을 빌린 나베리우스가 지친 아윤의 옆으로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인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윤의 코웃음을 치고는 그 강령의 머리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럴 일은 내가 죽어도, 소멸해도 없을 거야.”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모든 강령이 사방에서 아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타닷.


아윤의 눈앞에 나타난 풍백이 바람을 발현해 모든 강령을 밀어내고 가스페르가 이에 호응하여 금빛 화살을 차례차례 심장에 꽂아 넣는다.

인시터애로우의 능력이 발현해 이리저리 화살이 움직이며 모든 강령을 소멸시켜 나간다.


[괜찮나?]


어찌나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풍백의 몸 이곳저곳에는 굵직한 상처가 여러 군데 파여 있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아윤이 꾸벅 인사하자 풍백이 이를 가볍게 받고는 다시 전장으로 날아 합류했다.


“뒤로 빠져 쉬십시오. 체력을 보존하는 것도 전쟁의 일부입니다.”


아윤에게 기척없이 다가온 가스페르가 아윤에게 명령하듯 충고했다. 그러나 아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전장에 남을 의지를 표명했다.


“제가 아무리 멀리 빠져도 저 녀석들은 저를 잡으러 올 거예요. 죽더라도 여기서 죽는 게 낫죠. 게다가·······.”


말끝을 흐린 아윤의 시선 끝에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 중인 이찬이 보였다.

가스페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대신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위험하면 바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초장거리에서도 활로 인한 지원이 가능한 가스페르가 이찬의 주위에서 호위하는 것과 동시에 아윤을 예의주시했다.


츠츠츳!


의문의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아윤의 창이 자동으로 수복되었다.

마치 벨리알이 자신을 위해 배려라도 했다는 듯 새것으로 바뀐 코셰흐샤비브가 광택을 냈다.

다시 피에 젖고 지친 아윤이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그 광경을 본 가스페르가 작게 뇌까렸다.


“하여간 친구라는 것들끼리.”


인시터애로우에 내장된 고유격 「총격포화」가 화살을 적들에게 유도되게 하여 꿰뚫었다.

화살을 몇 발 쏘아대던 가스페르가 뒤로 돌아 가부좌를 튼 이찬을 애절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제발······· 이제 한계라고·······!’


***



그 시각 이찬의 내면.

‘백원(白原)’의 한복판, 이찬의 몸이 제 생각과는 반대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찬이 자신의 몸에 대고 소리를 질러보았으나 이는 돌을 향해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꼴과 같았다.


“아으으으으! 제발!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고!”


그러자 돌이 이찬의 말에 움직이기라도 하듯, 몸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


그때, 이찬의 사위가 일그러지며 순백색의 배경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찬은 어지러운 정신 속에서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백룡!”


전설적인 존재의 이름을 부르자 공간이 이지러지는 속도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윽!”


이전의 이찬이었다면 버티지도 못하고 지금쯤 쓰러져 흰 풀에 묻혀 있었겠지만, 지금의 이찬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간 격의 상승과 일전에 고적마에게서 받은 넘쳐나는 상상력으로 인해 이찬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용케도······· 버티고 있구나.]


청록의 눈이 이찬을 바라본다.


“이전만큼······· 약하진 않을 겁니다·······.”


이전에 만났을 때 보다 훨씬 증가한 그의 문장 구사력은 백룡을 깜짝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이찬은 백룡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정도 되면·······, 당신을 강림시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불과 얼마 전에도 제 몸에 강림하셨잖습니까!”


그러자 백룡이 자신의 긴 몸체를 한 번 감더니 이찬의 질문이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랬지. 그러나 그건 예외의 상황이었다.]


“예외의······· 상황?”


[나의 일부가 그곳에 있었고, 비전투 상황이었기 때문에 감시 없이 현현할 수 있었다.]


“감시·······?”


[그리하여 원래라면 현신하지 못하는 것이 맞지만·······.]


백룡이 말을 흐리고 이찬을 바라보았다.


[지금 네 상상력은 내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군.]


“그렇다면·······!”


[착각 마라. 가능성을 본 것일 뿐. 잘못되면 너는 물론, 그 바람잡이까지 같이 사멸할 것이다.]


으득.


이찬의 이가 세게 갈렸다.


[그래도, 할 테냐?]


그때, 어디선가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산들바람이 이찬의 불어왔다.


[내 의견은 묵살해도 되는 건가?]


풍백이었다.


“풍백?”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을 나를 제하고 논하다니. 서운하군.]


백룡은 풍백의 등장이 별 놀랍지 않은 듯 보였다.


“어떻게 여길·······.”


[거두절미하고, 어떻게 할 거냐.]


“뭘·······.”


[뭐긴 뭐냐. 방금 백룡께서 하셨던 제안.]


“전·······.”


이찬이 고민하자 풍백이 한심하다는 듯 이찬의 곁에 서 말한다.


[백룡!]

[그래, <태극>의 농업 신.]

[저는 됐으니·······.]


풍백이 이찬을 힐끗 일별한다.


[이 녀석에게 당신의 힘 일부를 빌려주십시오. 간청 드립니다.]


이찬이 들어지지 않는 고개를 들어 백룡을 마주본다.

그의 눈엔 좀처럼 보기 힘든 눈물이 맺혀 있었다.

희생을 완벽히 감수한 표정과 눈에 풍백은 일순간 뭉클해졌다.

이어 이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하겠습니다.”


이찬의 굳은 다짐에 백룡은 그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그게······· 내가 원하는 대답이었다.]


이찬은 자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이찬은 아윤 생각뿐이었다.


[정말 괜찮나?]

[정말 괜찮다니까요.]


***


다시 혈향이 난무하는 전장.

검붉은 피로 만들어진 벽에서 기다랗고 얇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마(魔) 그 자체를 향해 날아간다.

이어진 무시무시한 격을 담은 공룡의 이빨이 벨리알을 부술 듯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수십의 화살이 반대편에서 날아든다.

게다가 요사스러운 빗물이 벨리알을 약화하고 아군이 발사한 투사체의 위력을 증진한다.


콰아아아앙!


믿을 수 없는 폭음과 함께 토연(土煙)이 일었다.

평범한 주민 아니, 신일지라도 이 일격을 맞고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


휘이이이이이.


토연이 걷힌 자리에 서 있는 마(魔).

그의 아니, 그것의 몸에는 치명상은커녕 그 흔한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겨우······· 이따위로 나를 이기려고 한 거니?]


벨리알의 이가 으득하는 소리와 함께 갈려 나갔다.


[어? 아윤아, 대답해 봐. 이게 정녕 너희의 전력이야?]


그 말에 아윤은 두려움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저런 괴물을 아군에 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리인지 모르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 어떤 짓을 해도 저 괴물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이미 여러 번의 합공으로 안 그래도 체력과 상상력이 바닥을 드러낸 풍백은 이미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풍백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을 겪고 있는 우사는 제 몸 가누기도 힘든 듯 주변 돌과 바닥을 잡고 기었다.

가스페르는 주변을 둘러싼 괴물을 처리하느라 이쪽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노는 많은 공룡을 제어하고 조종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마저도 거의 다 했는지 몇몇 공룡이 아윤의 마기를 보고 이빨을 드러냈다.

그런데, 왜일까.

저런 거인을 적으로 돌렸음에도 후회막심은 무슨 후회하는 마음 한 점 들지 않았다.


‘너는 꼭 나갈 테니까.’


아윤이 이찬을 돌아보았다.

마치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이찬의 모습을 눈에 담겠다는 듯.


[이제 그만하고 돌아와. 내 마지막 제안이다.]


벨리알의 마지막 호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윤은 그 호의를 절대 호의로 받지 않았다.


“싫어.”


[·······역시, 소꿉친구의 정은 이길 수 없나 봐. 겨우 몇 개월 만으로는.]


벨리알은 단단히 결심한 듯 마기로 떡칠된 제 팔을 가볍게 앞으로 내밀었다.

벨리알이 아윤에게 가장 먼저 전해주었던 그의 고유격.

절정에 치달은 「무가치한 존재」가 벨리알의 손에서 발현되었다.


울컥!


아윤의 입에서 아니, 칠공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 차이.

무릎은 신을 숭배하는 듯 저절로 굽혀졌고, 눈은 보아선 안 되는 걸 본 것 인 양 숙여졌다.


“으·······으으·······!”


주변을 둘러보고자 격을 발현했지만 모두 헛고생일 뿐이었다.

주변에선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모두 죽은 것이리라.

소리를 지르려 한 아윤은 이미 성대가 압축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포기해 버렸다.

그때,


번쩍!


하얀 빛이 명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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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백룡 (2) 23.08.28 37 0 10쪽
61 백룡 (1) 23.08.27 40 0 10쪽
60 바빌론 대혁명 (9) 23.08.26 28 0 9쪽
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2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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