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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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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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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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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부시 (2)

DUMMY

퍽. 퍼어억!


오가는 주먹의 가운데에서 이찬과 아윤을 바라보는 붉은 광기가 넘실거리던 눈은 이내 어두운 난장판 속으로 사라졌다.

당장이라도 격을 발현해 싸울 준비를 하던 이찬은 붉은 눈과 따끔따끔한 기운이 사라지자 이내 안심했다.


“저거 뭐야?”

“그냥 깡패는 아니야.”

“얼굴 봤어?”

“아니.”


해가 쨍쨍한 오후 네 시라고는 믿기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골목에 내려앉은 탓에 이찬은 수상한 이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


“앞으로 하교는 나랑 같이해.”

“그 정도야?”

“아까 그 놈. 《관념》에서 넘어온 것 같아.”

“나도 강한데?”

“네 격은 지구에서 발현하기에는 너무 거추장스럽고 과해. 상상력 부족으로 발동 자체가 안 될 가능성이 커.”


이찬의 지적은 정확했다.

잠재된 상상력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은 극도로 작은 지구의 특성상 아윤의 어둠을 발사하고 창을 소환하는 격은 발현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찬은 아윤과 다르게 「한계 돌파」라고 하는 자신의 근력을 강화시켜 주는 격이 있기 때문에 그 미지의 ‘주민’을 상대할 수 있었다.


“알았어.”


필요 없는 분쟁을 만들기 싫어하는 이찬과 아윤은 굳이 그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고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하굣길.

불가피하게 그 골목을 다시 지나가야 하는 이찬과 아윤이 잔뜩 긴장한 채 그 앞을 건넜다.

그러나 골목은 긴장한 이찬과 아윤의 마음을 허하게 만들었다.


“다행··· ···이다.”

“휴우우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윤이 한층 풀린 마음을 다스렸다.


“가자.”


안도한 그들의 마음과는 반대로 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다음날.


“야.”


현규가 이찬에게 늘 그렇듯 실없는 소리를 하러 다가왔다.


“또 왜.”

“전학생 있잖아.”


이찬은 문제집을 풀면서 현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요즘 다 전학생 얘기네.”

“아무튼. 걔 선도 갔대.”

“왜?”

“어디 골목에서 패싸움을 했다나?”


열심히 문제를 풀던 이찬의 샤프심이 뚝 끊겼다.

동시에 현규의 말을 쉴새 없이 흘리던 한쪽 귀가 막혔다.


“골목?”

“그 구산 슈퍼 있지? 그 옆에 골목에서 고딩끼리 패싸움이 났는데, 거기 걔가 껴 있었나 봐.”


구산 슈퍼.

맞다. 분명 그곳의 근처에 골목이 하나 있었고, 그곳에서 이찬은 기괴한 《관념》의 기운을 느꼈다.


“자세히 말해봐.”

“어? 어··· ··· 그러니까.”


이찬의 관심이 심히 당황스러웠던 현규는 장황하게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 그러니까 전학생이 오던 당일에 일진들이 전학생한테 시비를 걸었고, 전학생이 시비를 걸던 일진들을 전부 때려눕히고 이 일대의 모든 일진을 규합해서··· ···.”

“결론만.”

“옆 동네에 일진이랑 어느 골목에서 패싸움을 해서 이겼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


전학생에 대한 현규의 말을 모두 들은 이찬은 무척이나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제 봤던 골목의 패싸움.

그곳에서 느낀 괴이한 기운.

전학생의 전학 시기와 패싸움이 일어난 시기.

모든 정황이 아주 의심스럽게도 전학생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이는 모두 심증뿐이었기에 확실한 물증이 기중했다.


“아무튼 고맙다!”


이찬은 다급히 문제집을 덮고 선도부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야! 말은 다 듣고··· ···.”


이미 이찬은 저 멀리 멀어진 후였다.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선도부의 앞에 도착한 이찬은 이미 몰려있던 학생들을 비집고 들어가 가장 앞 열을 차지했다.

이찬은 벌을 받는 전학생과 그 패거리들을 보았다. 교외에서 일어난 상황이라곤 하나, 분명 학교의 학생이 일으킨 일이기에 벌을 피할 순 없었다.

하나 둘, 벌을 받는 학생이 늘어났고, 약 서른 명의 학생에게 벌이 내려진 시점.


“훠이 훠이!”


선생님이 나타나 학생들을 뒤로 물렀다.


“여기가 무슨 연극장인 줄 알아. 저리가!”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고, 선생님은 누구도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쇄문했다.


“에이. 김 샜네.”


학생들이 하나둘 선도부실을 떠나갔고, 남은 것은 이찬 하나뿐이었다.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이곳에서 포기하고 교실로 돌아가겠지만, 실제로도 그랬지만 이찬만은 분명 달랐다.


「풍화」.

지구의 제한된 상상력으로 인해 지금껏 한 수련에 비해 지속 시간은 보잘것없었지만, 창문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휘오오오.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기는커녕 나가 버렸다.

물론 그 바람의 정체는 이찬이었다.

이찬은 몰래 선도부실로 잠입해 다른 선생님의 빈자리 밑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자 전학생과 선도부 선생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너 전학 온 지 일주일 아니, 닷새도 안 됐다. 그런데 벌써 사고를 쳐? 이게 말이야?”


선생님의 꾸중에도 전학생은 말대꾸하지 않았다.


“여하튼, 원래 경찰서에서 담당해야 하는 건데 학교 측에서 목숨 걸고 일주일 교내 봉사로 조정해 줬으니까 앞으로 사고 치지 말아라.”


전학생은 침묵으로 일관한 후 조용히 밖을 나갔다.

전학생이 연 문에 「풍화」로 빠르게 따라붙은 이찬이 밖으로 나갔다.


학생이 모두 떠난 선도부실에는 깊은 한숨이 내려앉아

가득찼다.


***


가까스로 수업 시간 종이 치기 전에 교실로 돌아온 이찬이 숨을 헐떡였다.

「풍화」가 미친 듯이 많은 체력과 상상력의 소모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뭐야, 왜 이렇게 늦게 와?”


현규가 이찬을 질책했고 이찬은 애써 얼버무렸다.


“화장실 갔다 왔어.”

“그래서 전학생이 맞디?”

“맞더라.”

“그래. 왜 내 말을 안 믿어서는.”


현규는 아무래도 자신의 말이 못 미더워 이찬이 직접 보러 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확했지만.


“그런 거 아니야.”


그러거나 말거나 수업은 시작되었고, 이찬은 조금 전 상황을 샅샅이 되생각했다.

언뜻 본 전학생의 얼굴은 뇌리에 계속 맴돌 만큼 잘생긴 얼굴이었다.

여학생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은 또렷한 이목구비가 머리에 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그는 말을 하지 않는가.’


사실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이자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 누구도 저 전학생이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이 역시 현규에게 들은 정보 중 하나였다.


“야! 이찬!”


이찬의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깬 것은 선생님의 외침이었다.

번뜩 정신을 차린 이찬이 창문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선생님에게 돌렸다.


“네?”

“시험 끝났다고 정신을 악마한테 팔았나. 밖에 가서 세수라도 하고 와.”

“네.”


촤악!


얼굴에 양껏 물을 적신 이찬은 착잡한 심정이었다.

정말 전학생이 《관념》에서 넘어온 신의 주민인가.

맞다면 왜 이곳으로 넘어왔고, 목적은 무엇인가.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얼기설기 얽혀 자신을 가두어 놓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학교 측에서 억지로 그를 보호하며 징계를 막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정신이 복잡했다.


교실로 돌아온 이찬이 창가를 바라보며 햇빛을 마주했다.

항상 밝은 희망의 이미지를 가진 태양이 이 순간만큼은 제 밝은 빛으로 무언가를 가리려는 것만 같았다.


“요즘 일찍 가네?”


현규가 종례를 마치고 나가려는 이찬을 붙잡았다.


“어. 사정이 있어서.”

“그려, 내일 보자.”

“내일 토요일이야.”

“오. 똑똑하네.”

“뭐래. 간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아윤과 접선한 이찬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하굣길을 재촉했다.

아무리 겨울이라고는 하나, 오늘은 유독 낮이 짧아 보였다.

조금 걸으니 ‘구산 슈퍼’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나타났고, 그 옆으로는 넓은 골목이 나 있었다.


“천천히. 아니, 빠르게 지나가자.”


이찬의 안절부절못한 모습과 다르게 아윤은 별로 불편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뭐 어떡하자고. 그냥 지나가면 되지.”


당당한 발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던 아윤이 멈춰 선 것은 골목의 앞을 지날 때였다.

불길함을 직감한 이찬이 빠르게 달려가 아윤의 곁으로 붙었다.


“무슨 일이야?”


아윤이 말 없이 골목의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에 맞춰 이찬의 시선이 이전처럼 안쪽을 향했고, 그곳에 놓인 것은 작은 종이 상자였다.

이찬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자신의 몸에 가둔 채 언제든 격을 발현할 준비를 마치고 가만가만히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찬이 상자에 가까워지자 상자가 갑자기 들썩였다.


“우왓!”


이찬은 들썩이는 상자를 보자마자 격을 발현해 상자를 으스러뜨리려 했지만 이는 아윤의 난입에 의해 제지되었다.


“잠깐만.”

“어?”


당황을 감추지 못한 이찬이 반사적으로 의문을 표했다.


“들어봐.”


이찬이 상자의 안으로 신경을 기울이자 어떤 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왔다.


그르르릉.


희미하지만 분명한 소리.


“동물?”


와중에도 상자는 멈출 생각을 않고 계속해서 들썩였다.

아윤이 나서 상자를 눌러 움직임을 억제했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이찬은 아윤의 의도를 이해하고 상자의 윗부분을 아주 섬세하게 열었다.


그아옹!


상자를 열자마자 희고 검은 색이 섞인 무언가가 이찬의 시야를 덮었다.

당황한 이찬이 그대로 넘어졌고, 제 얼굴에 붙은 동물을 떼어 자신의 시야에 담았다.


“고양이?”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이찬을 향해 마구 발길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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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백룡 (2) 23.08.28 39 0 10쪽
61 백룡 (1) 23.08.27 4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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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무장 (8) 23.07.31 41 1 11쪽
50 무장 (7) 23.07.30 42 1 10쪽
49 무장 (6) 23.07.29 40 0 10쪽
48 무장 (5) 23.07.24 4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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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무장 (3) 23.07.23 3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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