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부 2장 – 격명(搹命)
“미엘!”
난 미엘을 부르면서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미엘은 한 손의 검으로 한 그림자의 공격을 막고 있었고, 한 손의 총으로 남은 그림자를 견제하고 있었다.
무기의 사용법을 보니 싸운 경험이 많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검 하나로 맞으면서 이긴 난 한눈에 봐도 초보자라는 걸 상대방은 알 수 있겠지.
뭔가 기분이 상하는군. 그래도 남자인데 이런 초보자라는 입장을 바로 벗어날 수 없으니...
난 계속 달려가면서 한숨을 쉬고는 두 그림자 뒤에서 앉아있는 프키루를 보았다.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다리를 꼬며 깍지를 끼고 있는 그 자세를 보니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나보다. 아니면 저 그림자 둘로 미엘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가.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한 느낌만 들었다.
프키루는 미엘을 알고 있는 상황인 듯 했고, 미엘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 그림자 둘만 세워놓고 자신은 뒤에서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다고?
정상적인 판단을 한다면 미엘에게 그림자 세 개가 붙고 프키루가 나에게 붙어야 했을텐데.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가만히 있는걸까?
상대방을 알기 위해선 상대방과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엘을 향해 달려가던 방향을 바꿔 프키루에게 향했다.
내 손에 느껴지는 검의 손잡이를 말아 쥐며 프키루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는...
휘잉-
내 검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고, 나는 그대로 놀라 눈을 크게 뜨고 한 마디만 내뱉을 수 있었다.
“뭐..뭣?”이게 어떻게 된거지? 너무 놀라 그대로 멈춰서 프키루를 보고 있던 나는 그대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두 그림자를 보며 웃고 있던 프키루는 모습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 뒤에서 미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건가! 프키루!”
미엘은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총을 땅에 겨누며 말했다.
“내 피를 제물로 삼아 그대에게 힘을 부여하노라, 그 힘을 내 피와 같이 사용하여 그대의 힘을 이 세상에 현존시키게 하리라! 파멸의 탄환, 플레임 불릿!”
그렇게 외치고 총의 방아쇠를 당긴 미엘의 주위로 뜨거운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미엘의 주위에 있던 두 그림자는 그 화염에 휩싸였고, 난 도망가면서 소리쳤다.
“뜨거워! 미엘! 뜨겁다고!”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뜨거웠다. 아무리 지금 영혼으로 존재하는 세라핀 상태라지만 중력의 영향을 받고 감각도 느껴지는 상황이다 보니 화염의 열기는 나의 몸을 빠르게 덮쳐왔고, 난 그 열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영보를 쓰면서 화염을 피해 도망갔다.
그렇게 몇 초 동안 타올랐을까, 화염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수그러드는 화염을 바라보며 난 깜짝 놀랐다.
분명 엄청난 열기의 화염이 타올랐지만 그 주위엔 흔한 그을음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헉헉...”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미엘의 주위에 두 그림자의 검은 재만 쌓여있을 뿐이었다.
미엘이 비틀비틀 거리길래 재빨리 미엘의 곁으로 달려간 나는 미엘을 업었다.
“괜찮아?”
“헉...헉...괜찮아, 아직 견딜만해.”
숨이 가빠오는 모습에 나는 미엘이 걱정 되어 어찌해야할지 모른 채 가만히 서있었다.
“왜 플레임 불릿을 쓴거냐, 미엘. 그 불릿은 많은 피를 소모하기에 피가 부족한 그 상태에서 쓸 불릿이 아니었을텐데.”
조용한 키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어느정도 숨을 고른 듯, 미엘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열 받아서 그 불릿밖에 안 떠올랐단 말이야. 프키루에게 이렇게 당한 나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는 듯한 미엘의 목소리에 난 웃음을 터트렸고, 키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엘, 프키루가 노리고 있었던게 뭘까?”
웃음을 다 터트리고 난 뒤, 뒤에 업혀있는 미엘에게 물어보자 미엘은 빠르게 몸을 일으키면서 외쳤다.
“아, 맞아! 너의 몸이 위험해!”“엥?!”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나는 그대로 미엘을 업은 채 내 몸을 향해 달려갔다.
그 때 등 뒤에서 미엘이 확실히 기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의 몸이 걱정 된 나는 그 느낌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급하게 뛰어갔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내 몸은 미엘의 외침과는 다르게 그 곳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이상하군. 프키루가 그런 상황까지 만들어놓고 너의 몸을 가만히 둘리가 없을텐데.”
미엘의 중얼거림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자신의 허상을 만들어놓고 그 자리에 없어진 프키루가 내 몸을 그대로 놔두고 갔다고?
그럴거라면 안 오는 것이 나았다. 효율이 없는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나와 미엘은 조용히 얘기해보았지만 이 기묘한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내 어깨 위에 올라가있던 미엘의 손이 힘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그 손을 쳐다보며 난 미엘이 걱정되어 소리쳤다.
“미엘! 무슨 일이야!”
급하게 미엘을 내려서 눕힌 나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 미엘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야!”
보통은 키렌이 한마디 했겠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심각한 상황이라는건가?
그렇게 생각한 난 미엘의 입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고, 그 말을 듣기 위해 손을 땅에 짚은 순간, 미엘의 손이 갑자기 내 목을 감싸 안더니 그대로 목에 한번 경험했던 감각이 느껴졌다.
푸우욱-!
“끄아아악!”
미엘의 이빨이 내 목에 박힌 걸 느낀 난 목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고, 미엘은 날 그대로 감싸안은 채 계속 피를 마시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끝날까 생각하며 난 그대로 포기한 채 미엘에게 안긴 채로 엎드렸다.
그나저나 미엘의 품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데...둘이 같이 내 집에서 지내는데 왜 난 그 향기가 안 나고, 미엘은 나는걸까?
같이 지낸지 아직 하루밖에 안됐었나? 그건 그렇고 이 상황 참 부끄러운 상황인데? 봉인진 안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몇 분이 지났을까, 미엘은 나를 감싸안고 있던 팔을 풀더니 내 목에서 이빨을 뺐다.
미엘이 힘을 빼는 것이 느껴져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미엘을 봤다.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돌린 미엘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괜찮아.”
“피가 부족해서 위험했다. 피를 보충했으니 이제 걱정 안 해도 된다.”
미엘과 키렌의 말이 들려온 뒤에 나는 둘이 했던 말을 생각해보며 외쳤다.
“그러면 그냥 피를 달라고 했으면 됐잖아!”
미엘의 팔이 힘없이 밑으로 떨어졌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데! 그게 연기였었다니!
“하지만 이번엔 많이 마셔야했단 말이야. 플레임 불릿은 강력하지만 그만한 대가도 커.”
아니아니, 분명 그 공격은 정말 무서웠어. 응. 나도 뜨겁고 무서워서 도망쳤지만.
“그러면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을 거잖아.”
내가 미엘을 보며 말하자, 미엘은 그저 조용히 옆으로 나의 시선을 피한 채 입을 닫았다.
굳이 무엇을 캐묻고자 했던 말은 아닌지라, 난 한숨을 쉬고 일어나 내 몸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다행인건 나의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거지. 프키루가 왜 나왔는지 아직까지 이해가 안되지만.”
“그건 분명 그래. 그 자식이 조용히 갈 리가 없을텐데. 다음에 걸려봐. 가만히 안 두겠어.”
바득바득 이를 가는 미엘을 보며 난 무서움에 조용히 누나에게 전해 줄 도시락을 들고 슬금슬금 옆으로 갔다.
“어딜 가!”
그 목소리와 함께 나의 어깨를 잡은 미엘은 빠르게 손가락을 튕기며 봉인진을 해제시켰고, 나의 손을 잡아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잠깐, 미엘! 너무 빨라!”나는 몇 일전과 같은 데자뷰를 느끼며 미엘의 손에 이끌려갔다.
- 작가의말
중국에서 제일 오래 쉬는 국경절입니다.
맨날 쓴다고 말해놓고 거짓말을 친 전 그에 대한 벌로 이번 일주일동안 하루에 한편씩 글을 쓰기로 자신에게 퀘스트를 주었습니다.
아니면 더 나태해질것 같아서...ㅠ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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