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부 2장 – 격명(搹命)
한바탕 일을 벌인 후, 우리는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교실로 돌아갔다.
본의 아니게 일어난 일이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누가 자신 반 친구들에게 쫓겨볼까? 한바탕 일을 벌이고 나니 다행스럽게도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만드는 생각들이 어느정도 사라져있는 상태였다.
“저 애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걸까?”
아리카를 다시 교무실에 데려다주고 미엘과 함께 교실로 돌아가고 있는 도중 미엘이 물었다.
주위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하루 안에 이렇게 느껴지는 상황이 올 줄이야.
“글쎄? 아마 너에 대한 관심과 나에 대한 질투가 폭팔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
물론 마지막은 제운이 나를 향해 한 방 날렸다는 것이지만, 그 덕에 정신을 차렸으니 싼 대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관심? 질투?”
이런 상황은 별로 없었던 듯 미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여학생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진 미엘에게 대한 질투, 남학생들은 느닷없이 나와 함께 등장한 미엘에 대한 관심과 미엘 옆에서 걷고 있는 나에 대한 질투.
이것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아마 이게 전부겠지.
나라고 이렇게 되고 싶어서 이런게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그 정도의 감정으로 이 난리를 쳐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직도 이해가 안 된 듯, 미엘은 중얼거렸고, 난 못 들은 척 교실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나와 미엘을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한 채 난 자리에 앉았다.
미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더니 뒤로 갔다.
갑자기 생각났지만 미엘은 왜 나를 계속 쳐다보다가 가는걸까?
드르륵-
의자를 빼는 소리가 들리더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나랑 자리 바꿔줄 수 있을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쳐다보니 미엘이 가방을 메고 내 짝꿍의 옆에 서있는 것이었다.
내 짝꿍은 나와 미엘을 쳐다보더니 당황스러웠는지 허둥대며 가방을 챙겼다.
“어? 어, 어.”
뭐냐, 저 3단 대답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원래 있던 짝꿍은 급하게 가방을 챙겨 내 뒤로 갔고, 미엘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미엘이 갑자기 왜?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내 옆에 앉겠다고 자처를 하는거지?
“별 이유 없어. 앉고 싶으니까 서로 얘기해서 바꾼다. 당연한 일이잖아?”
이봐, 학교에서 자리를 바꾼다는 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고. 선생님이 허락하실지 조차 의문이 든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의 바람을 때마침 들어오던 선생님이 한번에 해결해주셨다.
“오, 하운아. 미엘의 자리를 뒤로 잡긴 했는데 전학 온 학생이 아는 사람이 너뿐이라 어떻게 해줘야할지 고민이었는데. 네가 옆자리에 앉아서 많이 도와주렴.”
“................”
난 그저 얼굴을 찡그린 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늘의 수업시간이 전부 끝나고, 기다렸던 하교시간이 돌아왔다.
세상의 당연한 진리인 ‘시간은 그래도 흘러간다’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난 가방을 챙기고 미엘에게 말했다.
“아리카 데리고 장 보고 들어가자.”
“응.”
아리카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얌전히 있었는지, 아니면 선생님이 당혹스러워 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교무실에서 얌전히 잠들어있는 아리카를 발견하고 난 모르는 사이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젠 아주 애 아빠가 다 되어버린 것 같군.”
미엘이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시끄러. 나만 그런거 아니잖아.”
괜히 부끄러운 맘에 미엘의 말에 차갑게 대꾸했고, 난 아리카가 깨지 않게 조심히 등 뒤로 업을려고 했다.
“가방 줘. 네가 가방을 메고 아리카를 업으면 아리카가 불편해할거야.”내게 손을 내밀며 말하는 미엘을 보며 난 작게 웃음을 짓고 미엘에게 가방을 건네주었다.
미엘은 자신의 가방을 멘 채로, 한쪽 어깨에 내 가방을 얹었다.
아리카를 조심히 업고 주위를 둘러보니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이 나와 미엘을 쳐다보고 계셨다.
“너희들 그러니까 정말 부부 같잖아! 하하하!”
“하하하하!”
‘학생들 놀리는게 그렇게 재밌으십니까!’라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난 얼굴이 빨개져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교무실을 나섰다.
교무실을 나와 교문을 나서는데 미엘이 옆에서 말했다.
“장 보고 가서 뭐할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하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무슨 일 때문에 하연이가 화내는 이유부터 알아야할 것 같았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생각해보자.”
“그래.”
짧은 대화를 마친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으으음? 아빠? 엄마?”
등 뒤에서 움직임을 느낀 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잘 잤니, 아리카?”
“네. 하아아암~”
막 일어나서 그런지 하품을 한 아리카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고, 난 왠지 모르게 그 의미를 이해해 아리카를 내려주었다.
“내 가방은 내가 메고 갈게.”
미엘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은 나는 아리카가 위험할까봐 한손으로 아리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리카는 나를 보며 웃더니 나머지 한 손으로 미엘의 손을 잡았다.
“엄마 아빠랑 같이 걸으면 좋아!”
그 모습에 나랑 미엘은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지었고,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마트에 들어가 카트를 끌며 쇼핑하는 우리 세 사람을 보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미엘을 보면서 수근거렸다.
학교에선 좀 괜찮은 것 같더니 왜 갑자기 뒤통수가 따가운걸까?
민망한 마음에 급하게 장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더니 하연이가 쇼파에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어? 빨리 왔네?”
“오빠가 늦은거야.”
뭔가 냉랭한 분위기를 걷어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던진 한 마디가 단칼에 거절당했다.
도대체 하연이가 왜 저러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일단 이 분위기를 좋게 바꿔야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감자튀김 금방 만들어 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여전히 잡지에 시선을 고정시킨 하연이의 대답을 들은 뒤 난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중국에서 다시 연재되는 LS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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