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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하파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술을 빚으니 거물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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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하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8 23:19
최근연재일 :
2024.07.0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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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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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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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잔하시죠

DUMMY

5화.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잔하시죠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많이들 드세요.”

“하하. 뭐 그런 걸 가지고. 아무튼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해가 떨어지는 늦은 오후.

<강유도가>의 직원들은 거대한 공장용 선풍기가 여러 대 돌아가고 있는 야외 천막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상 위로는 수육과 머릿고기. 잘 익은 김치와 막걸리가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푸짐하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지난번 땡볕에서 연설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내가 회식 자리를 마련했으니 말이다.


7월이라지만 해가 지고 있어 더워 죽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풍경에 절로 취하는 분위기.

주변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 채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조장은 드넓은 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시골은 시골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정취도 나쁘지 않네.’


7월에 웬 황금 들판이냐고?

이 주변 농가는 극조생종이라고 생육기간이 매우 짧은 벼를 재배하고 있다.

한강 이북에 위치한 북부 지역이라 가능한 방법.

수확시기가 빨라 요즘은 남부 지역에서도 이런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다고 한다.

수확을 앞둔 황금 들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직원 중 한 명이 내게 막걸리를 따라준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사장님.”

“뭘요. 여러분들이 고생이죠.”

“아뇨. 하시는 모습이 아주 아버님과 판박이예요. 막걸리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게 이전 사장님이 살아오신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


<강유도가>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부모님이 사업을 시작하셨을 때부터 줄곧 여기서 근무하신 분들이 많아서 연령대가 높다.

그만큼이나 회사는 물론이고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시골 생활해 보니까 어떻습니까? 할 만 합니까?”

“제 고향이 여긴데요. 뭘.”

“사장님이 각성해서 서울로 떠났을 때는 다들 아쉬움이 컸죠.”


옆에 있던 김 씨 아저씨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박 씨, 그게 무슨 소리야? 사장님이 1위 랭커가 됐을 땐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흠흠. 아무튼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들도 하늘에서 웃고 계실 겁니다. 아무렴요. 이렇게 든든한 아들이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건 그래. 사실 나도 기존 방식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단 말이지. 전통 방식을 고수해도 부족한 판국에 입국은 무슨.”


빙그레 웃으며 김 씨 아저씨의 빈 잔에 술을 채운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잔하시죠.”


쨍그랑.


놋쇠로 된 막걸릿잔이 부딪치며 청량한 소리를 낸다.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켜고는 한 손으로 입을 닦는다.


“캬. 좋네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으니, 이번에는 안주를 집어 먹을 차례.

수육을 한 점 드는데, 호시탐탐 뒤에서 말을 걸려고 준비 중이던 아주머니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런 말을 꺼낸다.


“사장님! 한서윤과는 무슨 사이예요?”

“서윤이요?”

“실물은 처음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사장님과 아주 잘 어울려요. 흐흐.”


아주머니들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여기서 정신줄을 놓으면 단번에 그들의 밥이 되고 말 터.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선후배 사이에 불과합니다. 제가 키운 제자이기도 하고요.”


제자란 말에 김 씨 아저씨가 농담을 건넨다.


“크으. 스승과 제자의 사랑인가. 제자도 다 컸으니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네.”


하지만 박씨 아저씨는 근엄한 얼굴을 짓고는.


“스승과 제자는 무슨. 전우에 가깝지.”


전우란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60층을 공략했을 때 그게 생방송으로 나간 탓이다.

레임덕에 빠진 전임 대통령이 지지율 상승을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


“네? 생방송으로 중계할 생각이라고요?”

“그렇네. 무거운 ENG 카메라를 들라는 건 아니고 어깨나 머리에 부착할 수 있는 액션캠이면 돼.”

“저희가 민간 길드도 아니고, 그런 걸 왜요?”


신기하게도 탑 안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뿐만 아니다.

스마트폰이 되었든 우산이 되었든 사람이 직접 운반할 수 있는 크기의 물건은 무엇이 됐든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영향일까?

몇몇 헌터들은 이걸 방송으로 내보내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탑 안의 풍경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으니까.

게다가 탑 안에는 각종 몬스터가 가득했던 관계로 일반 예능 프로그램은 도저히 탑 공략 영상의 조회수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살벌한 몬스터와의 피 터지는 살육전보다 더 자극적인 영상이 어딨겠나.


하지만 협회의 목적은 제한 시간 내에 최상층을 공략하여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는 일.

내부 조사와 기록을 위해 공략과는 별개의 팀원이 카메라로 촬영한 적은 있지만, 생방송으로 중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의사가 아니네. BH 지시 사항일세.”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협회는 준정부기관이나 마찬가지.

청와대에서 이런 지시를 내리면 싫어도 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원하는 장면이겠지.”


결국 우리는 몸에 액션캠을 부착한 상태로 60층 공략에 나섰다.

60층의 보스 몬스터는 거대한 샌드 골렘.

골렘 시리즈의 첫 등장이었다.

이후 머드 골렘, 우드 골렘, 스톤 골렘.

그리고 내 다리를 박살 낸 아이언 골렘까지 골렘 시리즈의 향연.

그러니까 골렘형 몬스터는 그때가 처음이었단 뜻이다.


4박 5일에 걸친 토벌이 이어진다.

나와 한서윤을 비롯한 7명의 정예가 쉬지 않고 토벌을 벌였지만, 그중 2명이 죽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이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타고 생중계.


‘이후 협회에 들어오려는 지원자 수가 크게 격감했지.’


협회가 요즘 사람이 적어 고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아무튼 샌드 골렘은 나와 한서윤의 활약으로 결국 무릎을 꿇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았던 공략.

씁쓸한 얼굴로 막걸리를 들이켠다.

만약 그때 체력 회복 효과가 좋은 막걸리가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상자가 나오진 않았을 텐데.

헌터를 은퇴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서윤을 비롯한 후배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다음 날 오전.

전태풍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우리 회사에 도착한다.

아저씨는 <강유도가>와 계약을 맺고 있는 논의 주인.

트럭 뒤에는 쌀 포대가 한가득 실려 있다.


“벌써 수확하신 거예요?”

“이게 누구야! 진혁이 아니냐? 은퇴하고 내려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회사에 출근했어?”


이곳에 내려온 지는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농번기라 바쁘셨던 모양.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을 내민다.


“오랜만입니다, 아저씨.”

“자네가 올해 몇 살이지?”

“서른셋입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아무튼 반갑네.”

“그런데 이건 뭐예요?”

“쌀이지.”

“추수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요?”


극조생종이라고 해도 보통 7월 하순이나 8월 상순. 늦으면 8월 하순쯤에나 추수한다.

현재는 7월 중순. 추수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전태풍 아저씨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뗀다.


“이상 기후로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왔거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이삭 발아가 발생해서 품질이 떨어져. 생산량도 적어지고.”


어쩐지. 추수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논에 물이 지나치게 많다 싶었다.

보통 여뭄기에는 논에 물을 2~3cm로 얕게 대거나 걸러대기를 한다.

추수 직전에는 많은 양의 물을 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이 많으면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는데 아저씨 말대로 이삭이 발아할 가능성이 크다.


“외관 품질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도정할 경우 손상된 전분에 의해 희반점이 있는 쌀이나 깨진 쌀이 크게 발생하니까 조금 빨리 수확해 봤네.”

“그러셨군요. 논에 있는 벼는 다 수확하신 거예요?”

“아니. <강유도가>에 납품할 벼만 먼저 벴지. 나머지도 금주 중에 다 베려고. 하하.”


해동이에게 커터 칼을 부탁하고는 포댓자루를 살짝 뜯는다.

너무 일찍 수확한 탓일까?

청미(덜 익어 푸른 쌀알)는 없지만, 미숙립(덜 익은 벼알)이 조금 보인다.


‘이걸로 막걸리를 만들기는 어려울 듯싶은데.’


<강유도가>는 보통 갓 도정한 햅쌀이 아닌 정부 재고미를 이용해 술을 만든다.

가격이 싸고, 공급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수기에는 햅쌀을 이용해서 만드는 한정판 막걸리를 생산해 왔다.

햅쌀 막걸리라고 해서 일반 막걸리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의 제품.


‘묵은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수분함량이 낮아, 다소 텁텁한 맛이 나지. 반면 햅쌀은 수분함량이 많고, 지방산이 낮아 조금 더 깔끔한 맛이 나오고.’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지만, 미식가들의 혀까지 속일 순 없는 법이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 중에서 가장 괜찮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게 햅쌀 막걸리다.


‘이것까지 안 좋은 소리를 듣게 할 순 없어.’


나는 전태풍 아저씨에게 괜찮으면 논을 살펴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논? 거긴 왜?”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요.”

“허허. 뭐 그러던가.”

“그리고 죄송하지만, 이 쌀은 받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라고?”

“미숙립이 너무 많아요. 이런 걸로 막걸리를 만들면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되겠죠.”


전태풍 아저씨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속내를 토로했다.


“호락호락하지가 않네. 그 아비에 그 아들이야.”


전태풍 아저씨는 좋게 말하면 나이브하고, 나쁘게 말하면 일을 건성으로 하는 사람이다.

사장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이런 쌀을 납품하려 한 거겠지.

관계를 맺은 지도 오래되었으니 회사 사람들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이걸 받았을 테고.

하지만 내가 사장이 된 이상 달라져야만 한다.

아저씨의 차를 타고는 회사를 떠나 논으로 이동한다.


#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렸을까?

저 멀리 <강유도가> 양조장이 보이는 가운데, 차가 멈추어 선다.


“여길세.”


차에서 내리니 논 안으로 물이 가득 차 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콤바인을 이용해 벼를 수확했는지 모르겠다.

땅이 질퍽거려서 기계가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어떻게 수확하신 거예요?”


전태풍 아저씨가 쓴웃음을 짓는다.


“마음이 급해서 말이지. 장화 신고 들어가서 손으로 벴지.”

“물때기도 안 하고요?”

“하면 뭐해. 다음 날이면 집중호우로 물이 가득 차는데.”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상황.

실망감이 밀려온다.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저희 회사에 쌀을 납품해 오셨던 건가요?”

“아, 아닐세! 올해만 그랬어. 비가 너무 많이 왔거든. 참말일세!”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쌀 납품 농가를 바꾸는 게 좋겠어.’


시골 특유의 좋은 게 좋은 거.

우리가 남이가? 가 발동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내가 이 회사를 지켜야만 하겠지.

아저씨를 돌려보낸 뒤 혼자 들판에 남아 물로 가득 찬 논을 바라본다.


“정령 소환.”


희미한 빛과 함께 손바닥 위로 수아가 소환된다.

작은 날개를 퍼덕이는 수아는 신비로운 빛을 발산하며 등장했다.

언제 봐도 신기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뀨!”

“수아야. 혹시 저 논에 가득 찬 물을 네가 흡수할 수 있을까?”


수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뭐? 다른 친구들까지 소환하면 가능할 것 같다고?”


정령 소환은 한 번에 한 명의 정령밖에 소환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나?

수아는 괜찮으니 자기를 믿고 또다시 정령을 소환해 보란다.

심호흡하고는 천천히 입을 뗀다.


“정령 소환.”


수아를 소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몸 주위가 반짝이더니 손바닥 위로 빛무리가 뭉쳐진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장면.


이내 수아와 똑 닮은, 날개 달린 요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김새가 미미하게 다른 데 여자가 아닌 남자로 보였다.

성별은 둘째치고, 입고 있는 옷차림도 그렇지만 녀석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띠가,


‘물이 아니잖아?’


화염처럼 보이는데, 설마 물의 정령이 아니라 불의 정령이라도 되는 건가?


“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동시에 두 마리의 정령을 소환하다니.

이게 말이 돼?


작가의말

추천과 선호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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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협회에 돌아올 생각은 없어요? +1 24.07.05 368 12 12쪽
6 6화. 너도 이름을 지어달라고? 24.07.04 461 13 14쪽
» 5화.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잔하시죠 24.07.03 491 13 13쪽
4 4화. 선배답네 24.07.02 580 16 15쪽
3 3화. 얼마나 맛이 없었으면 +1 24.07.01 635 16 14쪽
2 2화. 소량 생산이더라도 품질을 높이는 게 맞아 24.07.01 659 19 16쪽
1 1화. 이제 다 끝이다 24.07.01 806 1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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