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오늘도 아자아자!

아그네스 건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Aree88
작품등록일 :
2019.05.14 01:28
최근연재일 :
2019.06.12 10:05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337,420
추천수 :
8,942
글자수 :
237,471

작성
19.05.14 10:00
조회
11,820
추천
323
글자
14쪽

아그네스 건국사 - 04

DUMMY

아그네스 도노반.


올해로 60줄에 들어선 노년의 기사다.

그것도 나이 서른에 후작가에서 기사 서임을 받았던 장래가 유망한 기사.

도노반이라는 성에서 알아볼수 있듯이 원래부터가 기사 집안의 자제였고, 이름난 기사였던 스승에게 어릴적부터 사사한 그의 이름은 서임받기 전부터 여러 사람들에게서 기대를 받아왔었다.


나이 서른에 기사 서임을 받고서 몇년이 지나 기사로서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못해도 기사단장까지는 문제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가 사고를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이 마흔에 큰 사고를 친 아그네스는 결국 후작령에서 쫓겨났다.

어떻게보면 굉장히 재수가 좋았던 일인지도 모른다.


서임받았던 기사작위를 회수당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내쫓겼을 뿐이니 굉장히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사 작위를 유지했다고 그 후의 일이 좋게 풀린 것도 아니었다.



유망한 기사였던 아그네스의 추락이 여타 다른 기사들 사이에 빠르게 소문이 퍼져버린 것이다.

원래 있었던 일은 감춰지고 이런저런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말이다.


그 결과 후작령에서 쫓겨난 아그네스를 받아주는 귀족은 사라져버렸다.

나름 이름난 기사였던 아그네스였지만 워낙에 얽힌 소문이 추하다보니 그를 받아주는 귀족들이 없었다.


정식으로 서임까지 받은 그의 처지는 실질적으로는 자유기사였으나 취급은 서임받지도 못했으면서 기사라 자칭하는 떠돌이 유랑기사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아그네스는 자신이 유랑기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먹고살 길이 궁해진 아그네스는 용병 등록까지 하고서 이 영지 저 영지를 떠돌아다니는 길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기사로서 이룩했던 명성은 빠르게 사라졌고 몇년동안 회자되던 소문들마저 가라앉은 뒤에는 용병이자 유랑기사인 아그네스만이 남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던 아그네스가 50줄에 이르러서 야크발트 자작과 만나, 봉신관계를 맺은건 거듭된 우연과 인연이 맺어준 특별한 일이었다.


10년전, 야크발트 자작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의 일이다.

영지내에 유입된 떠돌이 몬스터를 처리하고자 용병들을 고용했었는데 그 중에 끼어있던 아그네스를 야크발트 자작이 알아봤다.


첫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실력이 출중한 용병이 있다는 소식에 불러서 대화를 나누다가 세월에 묻힌 노기사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다.



실은 수십년전, 아그네스가 기사 서임을 받고서 아르멘 공국과의 분쟁에 파견되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전장에서 뭣모르고 설치던 귀족가의 도련님 하나를 구해준 일이 있었다.

딱 귀족가의 표본이라고 봐도 좋을 도련님이었다.


그러니까, 고집세고 현실을 모르면서 나대다가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딱 좋은.

왕국이 푸른 피의 고귀한 의무와 희생에 대하여 떠들어대며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소재.


그러한 현실도 모르면서 전장에 나섰다가 큰 충격을 받은 도련님을 젊은 시절의 아그네스는 안타까워했었던 것 같다.

대략 두달쯤 함께하면서 이리저리 챙겨주다가 전선을 떠나 본가로 돌아가는 도련님을 배웅한 다음에는 얼마안가 까맣게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그 철없던 도련님이 이렇게 장성해서 자작가의 주인이 되었을 줄이야!

나이 50에 이른 아그네스에게도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이 절로 나올 사건이지만 더욱 그를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던 것은 어느덧 장년에 이르른 자작이 여타 귀족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장년의 자작에게는 어린시절의 철없던 모습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묵직하고 진중하며 이끄는 자의 모범적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 아그네스 경. 나 또한 경에게 묻어있는 지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소. 하나... 나는 그 소문들을 믿지 않습니다.


아그네스가 얽힌 소문을 기억하면서도 그를 믿는다 말하며 야크발트 영지에 뿌리를 내려달라고 청해왔다.


세월이 흐르며 억울함과 세상에 대한 환멸마저도 삭아버렸고 더불어 열정도 사멸한 노기사 아그네스였지만 어쩌면 그때의 그는 조금은 지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년의 베테랑 기사는 그렇게 야크발트 자작가에 몸을 의탁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야크발트 자작가를 성심을 다해 수호했다.

영지민들이 몬스터들에게 피해를 입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가 토벌했으며 자작의 후계들에게는 검에대한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세상살이 경험이 풍부한 아그네스라도 근본이 주군에 대한 충성과 임전무퇴의 정신을 세뇌에 가깝게 주입받은, 순진해빠진 기사였다는 점일까.


사람 냄새 풍기던 야크발트 자작이 어이없게 세상을 뜨고나서 새로이 자작의 지위를 꿰어찬 영주는 전대 자작의 장례식 이후로 수도로 올라가는 일이 잦았다.

더해서 수도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은 하나같이 자작가의 어두운 미래를 시사했다.


그에 걱정이 많았던 아그네스는 신임 자작에게 어떻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야할지 고민했지만 얼마 못가 그러한 고민은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웬일인지 영지로 내려온 신임 자작이 아그네스를 소환한 것이다.

그렇게 불러놓고서 자작이 늘어놓는 얘기들은 노기사를 침묵시켰다.


- 아그네스 경. 경이라... 거참, 그런 짓을 저지르고서도 창피하지도 않으셨나봅니다? 내 돌아가신 아버지께 유일하게 이해안되던 점이 무엇인지 아시오? 바로 당신이외다. 추잡하기 짝이 없는 짓을 저지른데다 이제는 늙어서 아무 쓸모없는 자를 받아주고 귀히 대하며 비싼 봉급마저 아끼질 않다니... 쯧쯧.


신임 자작이 이죽거리며 막말하는 모습에 노기사는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늙은 자신을 알아주고 울타리를 쳐준 전대 야크발트 자작에 대한 고마움에 그는 진정 최선을 다해 현 자작을 가르쳐왔다.


심지어는 자신만의 비기조차 아끼지를 않은 터였다.

아그네스는 어차피 황혼의 나이다.


따로 제자를 거둘 생각조차 없던 그였으니 스승의 가르침을 사장시킬 생각도 아니라면 누군가에게는 전해야할 터였고 아그네스는 그 대상으로 야크발트 자작가의 승계자를 점찍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그네스가 베푼 가르침 또한 절대 가벼이 볼게 아니었다.

지금 시점에서 아그네스 도노반은 추악한 소문에 얽힌 기사의 수치이며, 한물 간 유랑기사 나부랭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가 수습한 선대의 가르침들은 특별했다.


무려 거슬러 올라가면 마스터의 무맥에 닿아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300년전에 대륙의 별이라 불리웠으며, 아직까지도 이름이 잊히지 않은 위대한 무맥에.


- 게다가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나를 가르치겠다고? 그대 덕에 아르반 경의 심기가 얼마나 상했었는지 그대는 모를거요.



존중하는 체라도 하기위해 붙이던 경의 호칭마저 내던진 신임 자작은 아그네스에게 모욕주기를 주저하질 않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그네스는 저간 사정을 알아차렸다.


위대한 무맥의 특별한 가르침에다 자신이 실패한 경험을 덧붙여 완성도를 더한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신임 자작의 수준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를.


그의 생각에 자질이 뛰어난 2공자라면 대충대충 따라오기만 했어도 지금쯤이면 엑스퍼트의 경지를 달성했어야 정상인데 이제보니 아그네스의 가르침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엑스퍼트 중급인 기사단장에게 따로 배우고 있었던 모양.


아르반 경이란 작자는 자작가문의 기사단장이다.

현재 나이 마흔으로 기사로서는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사내였고... 간혹 드러내는 말에서는 야심이 커보이는, 전대 자작에게는 중용받질 못한 사내.


10년 전 자작가문으로 영입되는 아그네스를 보고서 가장 못마땅해했던 기사이기도 했다.



' 허... 영주, 미안하외다. 아무래도 영주의 마지막 부탁은 내 들어드리지 못할것 같소. '



늙은 기사는 속으로 한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20년 전 아그네스의 나이 마흔일 때였다.

그는 그 시절 위대한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릇마저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조만간 탈태하며 완벽하게 위대한 자의 모습을 갖출 예정이었다.


'그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터진 사건은 경지의 문턱에 서있던 아그네스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혔다.

완성을 앞두고 있던 토대가 흔들리고 금이가 버렸고, 그간 힘들게 쌓아올렸던 오러들은 줄줄 새버렸다.

경지의 문턱에 들어서며 한번에 다루는 기운의 양은 늘어났지만 육체가 망가지며 줄줄새는 양이 더 많아졌다.


바디체인지는 물건너 간 것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다른 이가 아그네스와 똑같은 상처를 입었다면 폭주하는 기운을 제어하지 못하고 육체가 터져나가며 한 많은 삶이 끝나버렸을 것이다.


후작가에서 큰 사고를 친 아그네스를 자유기사로 풀어준 배경에는 이 사실도 한몫했으리라.


허나 그럼에도 한때 천재라 불리웠던 아그네스는 죽지않고 살아남았다.

세월속에 보듬은 육체의 그릇은 봉합수준은 되어서 이제는 엑스퍼트 중급에 달하는 기운을 운용하고서도 멀쩡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바디체인지는 물건너 갔지만 실상 아그네스의 정신은 위대한 경지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것.


그렇다.


육체는 미완성에다 엉망이지만 아그네스는 위대한 호칭이 붙어도 모자람이 없는 검사다.



그리고 60이 되어 늙어 추레한 행색의 아그네스가 죽음을 각오한다면 마스터의 상징이라 불리우는 오러블레이드따위는 거침없이 발현할수 있다.


아그네스가 생각하기에 전대 야크발트 자작은 정확한 사실을 몰라도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죽기전 아그네스의 손을 붙들고 가문을 지켜달라는 힘겨운 부탁을 남겼으니 말이다.


당시에 대답은 못했지만 노기사는 그간 자작에게 받은 은혜 때문에라도 전대 자작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노기사에게 자작가문을 떠날 것을 종용했다.



이게 바로 나이 60의 노기사가 종자 하나없이 말한필에 의지하여 야크발트 영지를 떠나게된 사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글지글-


꿀꺽.


노기사 아그네스 도노반은 익어가는 고기에 시선이 고정된 소년의 얼굴을 살피던 중이었다.

소년의 얼굴을 살피던 노기사의 얼굴에는 어렴풋한 미소가 떠올랐다.

수염에 가려져 소년은 알아볼수 없었으나 노기사는 오래간만에 즐거운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 60에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한 환멸이 들이닥치던 시점이다.

젊은 나이에 어이없이 먼저 가버린 전대 야크발트 자작이 안쓰럽고 또 미안했으며 그 후계인 신임 자작에게 적잖이 실망한 터였다.


이대로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여생을 마치는게 좋겠다는 생각마저 은근히 품고 있던 와중이다.


' 이런게 운명이란 말인가? '



그러나 영지의 경계에서 마주친 어린 두남매는 노기사 아그네스에게 이런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자신이 자작가문에서 등지게된 이유가 바로 이 어린 꼬마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사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오래된 무맥이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실패로 깨닫고서 절치부심하며 새로이 완성해낸 무맥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말이다.


은연중에 갈등하던 아그네스는 잠시 생각을 중단하고서 짐짓 엄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 안된다. 고기는 네 몫이 아니야. "


" ... "



돌아보는 소년의 고요한 눈망울에 안쓰러워하면서도 아그네스는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그가 지금 소년에게 고기를 먹지 못하게하는 까닭은 일부러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기사 신분인 자신이 마련한 고기를 평민일게 분명한 소년이 탐내는게 못마땅해서도 아니었다.


아그네스의 나이가 지금 60이다.

세상 경험도 풍부한 노년의 베테랑은 곡기를 섭취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극심한 허기를 겪던 이들이 갑자기 육류를 먹게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안그래도 뼈마디가 앙상하여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지닌 소년이 고기를 먹으면 탈이나고 말리라.


" 할아부, 할아부! "


아그네스를 바라보는 또랑또랑한 한쌍의 눈이 추가되었다.

이제 갓 젖이나 뗏을까 싶은 아이가 아그네스를 향해 팔을 벌리며 조막만한 입을 조잘거리고 있다.


아그네스는 얼굴로 퍼져나가는 한줄기 미소를 도저히 감추질 못했다.


젊은 시절의 아그네스는 몰랐던 것들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시궁창에도 꽃은 피어난다.


모진 세상이지만 이렇게 한점 티없이 순수한 아이들의 행동을 볼때면 풍파에 삭아버린 노기사의 가슴에도 한줄기 온기가 맴돌게된다.


아그네스는 나이프를 들어서는 토끼고기를 북북 잘게 찢었다.

토끼 한마리에서 나온 고기 대부분을 전부 어린 아이가 씹어서 삼키기에도 문제없을만큼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쪼갠 다음 적잖은 양을 나무그릇에 담아 작은 아이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노기사의 시선은 옆에앉은 소년의 얼굴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 할아부! "


꺄르르.


어린 아기는 의심도 없이 소리내어 웃으며 나무그릇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노기사도 안심했다.

세상 풍파를 어느정도 겪은듯이 보이는 소년이 의심어린 눈길로 주시하면서도 아그네스의 행동을 막지는 않은 것이다.


몇시간 전에 고작해야 10살도 안되어보이는 소년이 눈을 뜨자마자 어린 동생의 앞에 나서며 식칼을 빼들던 모습을 떠올려보자면 장족의 발전이다.


오랜만에 타인과 식사하는 자리는 서로간에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음에도 지친 노기사의 메마른 가슴에 한줄기 비를 내려주었다.

포근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아그네스는 한결 편한 심정으로 결정을 내릴수 있었다.

다가온 운명을 거부하지 않기로 말이다.


" 아이야. 내 이름은 아그네스 도노반이라고 한다. 앞으로 나와 함께하겠느냐? "



배불리 먹고 잠든 아이를 중간에 두고서도 한참을 이어지던 침묵을 깨트린 것은 아그네스의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두눈이 동그래지는 소년의 아이다운 모습에 아그네스는 기꺼운 미소를 지었다.




대륙력 1361년의 늦여름.

전설이 잉태되다.


작가의말

선호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그네스 건국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아그네스 건국사 - 07 +16 19.05.16 11,105 275 16쪽
7 아그네스 건국사 - 06 +11 19.05.15 11,730 305 15쪽
6 아그네스 건국사 - 05 +12 19.05.15 11,778 319 15쪽
» 아그네스 건국사 - 04 +11 19.05.14 11,821 323 14쪽
4 아그네스 건국사 - 03 +18 19.05.14 12,238 287 14쪽
3 아그네스 건국사 - 02 +58 19.05.14 13,665 254 14쪽
2 아그네스 건국사 - 01 +19 19.05.14 15,556 253 14쪽
1 +9 19.05.14 16,884 189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