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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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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e88
작품등록일 :
2019.05.14 01:28
최근연재일 :
2019.06.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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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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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아그네스 건국사 - 03

DUMMY

대가뭄은 제라드가 살아가던 라인빌 지방을 넘어서 왕국 전체를 시름하게 만들었다.

갓 태어난 제라드는 알수없는 사정이지만 당시 왕국의 권력자들은 미리 전조를 드러낸 가뭄에 대비책을 세워두었었다.


문제는 막상 닥쳐온 가뭄의 수준이 왕국의 지식층이 예견했던 일반적인 가뭄의 피해 수준을 한창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가뭄은 여파만으로도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굶주린 인간들은 살기위해 사방에 있는 모든 것들을 초토화시켰다.

입에 넣을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서 씹어댔고, 농경지가 파괴되었다.


인고의 겨울을 견뎌내고서 다시 봄이 찾아들었을 때에는 겨울동안 수없이 죽어나간 사람들로 인해 황량해진 농경지를 다시 재건하기 위한 손길이 모자를수밖에 없었다.



라인빌 지방의 야크발트 자작가의 영지는 더욱 심각했다.

전장에서 공훈을 세우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야크발트 자작은 봄이되어 전해진 편지를 받고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영지의 농경지는 황폐화되었고 인구수가 급감했다.

날이 차서 전염병은 돌지 않았지만 전혀 위안이 되질 않는 소식이다.


봉건제 군주에게 영지민의 숫자는 곧 힘이다.

그것도 쓸데없이 식량만 축내고 도시의 치안과 위생상태를 악화시키는 빈민들이 아니라 농민들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야크발트 자작은 굳은 얼굴로 전선 사령관을 찾았다.

이미 소식이 전해진 것인지 왕국군 전선 사령관인 데님 후작은 자작을 붙잡지 않았다.

라인빌 지방의 다른 영주들 중에서도 복귀를 요청한 자들이 더 있었고, 어차피 전쟁의 흐름은 마무리로 접어들어가던 중이었다.


아인델 왕국과 마라두스 공국의 이번 전쟁은 서로에게 피해만을 남긴 채로 협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즉,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각 영주들과 기사들은 소강상태인 전장을 지키다 전공에 따른 보상을 받는 일만이 남은 터였다.


야크발트 자작이 돌아가면 전선에 남는 다른이들에게로 돌아갈 몫이 늘어난다.

후작으로써는 영지로 돌아가겠다는 야크발트 자작을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야크발트 자작도 지금 영지로 돌아가면 자신에게 주어질 전공 보상이 줄어들게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지에 남아있던 롭 행정관이 보낸 편지에는 자작이 도저히 더이상 전장에 머무를수 없는 사정이 적혀있었다.


자작의 아들인 라바드가 기존 행정관들을 밀어내고 수도출신의 새로운 행정관들을 여럿 임명했는데 이들 때문에 대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 아, 내가 핏줄에 눈이멀어 인사를 잘못보고 말았으니 모든게 내 탓이로다. "


이제야 갓 스무살 먹은 아들의 품성이 한량에 가깝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영주 권한대행을 하다보면 사람이 바뀌리라는 야크발트 자작의 기대는 처참히 배신당했다.


영지로 돌아온 야크발트 자작은 우선 라바드 공자가 데려왔던 행정관들을 모두 불러들인다음 전부 다 목을 쳐버렸다.

대다수 수도출신인 이들은 수많은 영지민들이 굶어죽어가는 중에도 뒷주머니를 챙기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수도출신의 평민들을 처형시키는건 야크발트 자작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작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작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대가뭄에 시름하는 라인빌 지방의 여러 다른 영지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 대부분은 수도출신 행정관들이었다.


국왕도 이정도 수준의 문제 앞에서는 휘하 귀족들의 눈치를 안볼수가 없다.


다음으로 자작은 라바드 공자를 처분했다.

영지가 이 지경인데도 제 잘못을 모르는 공자를 불러다가 가문의 혈육임을 나타내는 반지를 빼앗고서는 내쫓아버렸다.

자작가의 족보에서 라바드의 이름을 파내겠다는 명확한 의사표현이다.


세번째로 취한 조치는 자작가의 창고를 개방하는 일이었다.

농민들이 전멸해버리기전에, 자작가에 비축해두었던 곡식들을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다.

이는 뒤늦은 조치였지만 이때까지도 모진 목숨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영지민들을 목숨줄을 연장시켰다.




그렇게 대가뭄의 시련이 있은 후로도 9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제라드는 가혹하기 짝이없던 생애 첫겨울을 살아서 넘겼다.

전부 어미의 덕이었다.


잠깐 먹을것 구하러 나간 사이에 첫 아들을 잃어버린 제라드의 어미는 그 이후로 어딜가던지 제라드를 대동하고 다녔다.

밤에는 혹시나 모를 아비의 시선에서 가리기 위해 품에 제라드를 꼭 안고서 잠이들었고 한손에는 날카로운 쇠붙이를 쥔 채였다.


이러한 어미의 경계심은 제라드가 태어나고서도 다섯 번의 겨울을 더 넘긴뒤에야 가라앉았다.




그리고 제라드가 10살을 앞둔 지금.

더이상 어미는 제라드의 곁에 없다.


" 으앙, 으아, 으아아아아앙- "


욕설을 쉼없이 삼키던 제라드의 눈이 그의 곁, 강보에 둘러싸인 아이에게로 향했다.

이제 갓 젖이나 떼었을 아이가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쉼없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지난 9년간 여러 일이 있었다.

4년전에는 현명하고 자비로운 야크발트 자작이 사냥중에 낙마하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못가 세상을 떠버렸다.


자작이라는 지위는 전대 자작의 둘째 아들이던 아마로 공자가 승계했다.

아무래도 전대 야크발트 자작은 자식복이 없는 모양이었다.


현 야크발트 자작인 아마로가 수도에서 살다시피하며 도박에 빠져들어 가문의 재산을 탕진중이라는 소문이 이 시골구석에도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소문을 듣고서 혀를 차지 않는 영지민이 없었다.



작년에는 제라드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재작년의 어느날, 술에 취한 아비가 거부하는 어미를 강제로 덮쳤다.

제라드의 나이 여덟이었다.


리발이 죽었던 그날 이후로 어미는 아비를 거부했다.

심지어 그 해가 지나고나서는 움막을 구해서 따로 살기까지 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아비가 폭력을 쓰려했지만 어미는 강단이 있는 여자였다.

주먹질을 하던 아비의 옆구리를 쇠붙이로 찔러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아비는 그들에게 남이 되었었는데, 재작년의 그날 술에 완전히 꼴아버린 아비가 새벽에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서는 몰래 들어와 어미를 욕보였다.


어미는 처음에는 반항했다.

그러나 곧 번들거리는 아비의 눈과 마주한 뒤로는 반항을 포기했다.

제라드의 안위가 염려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벽, 제라드는 피곤에 지쳐 잠들어있다가 거친 짐승의 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어미를 욕보이는 아비를 보고서는 눈이 돌아갔다.


그는 지난 9년동안 형제인 리발이 죽던 날을 잊지 않았다.

아니, 잊을수가 없었다.

자신을 기억해달라던 어린 형의 유언은 제라드에게 주박이 되어버렸다.


다시 태어난 제라드는 완벽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강태산으로 보낸 30년의 세월과 영혼으로 흘려보낸 40년, 그리고 다시 태어난 이후로 경험한 8년의 세월을 모두 완벽하게 떠올리는게 가능했다.


그래서 리발이 죽던 그날의 기억은 제라드라는 이름으로 보낼 삶의 끝까지 그와 함께할 것이었다.



숨죽여 방을 나선 제라드는 부엌으로가 식칼을 손에 쥐었다.

어미의 손때가 묻은 식칼이다.

어린 제라드를 보호하기 위해 악을 쓸때마다 어미의 손에 쥐여져 있었던 식칼.


그날밤, 제라드는 어미를 지키기 위해 어미의 식칼을 손에 쥐였다.




- 제라드, 부디 네 동생을 지켜주렴.


제라드의 동생을 출산한 어미는 하루가 지날수록 쇠약해져만 갔다.

그러다 아기가 젖을뗄 무렵, 짧은 당부를 남기고서 잠든 뒤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 엄마... "


식어가는 모친의 육신을 앞에두고서 제라드는 다시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때가묻은 그의 볼에는 그가 인지하지 못한 눈물이 주룩주룩 호선을 그렸다.


리발의 주박에 매인 제라드는 새로운 세상에서 그에게 주어진 부모를 어찌 대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굶주림에 지쳐 자식을 잡아먹은 이들을 아빠, 엄마라 부를수 있는가.

짐승인가, 인간인가.


모친이 숨을 거두고나서야 제라드는 자신의 어미가 인간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3일전의 일이다.




제라드는 지난 3일간 홀로 엄마의 무덤을 만들었다.

도와주는 이들은 없었다.


제라드가 태어나던 해를 기준으로 그가 살고있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소닭보듯 하는 사이가 되었다.


특히나 제라드의 가족은 더욱이 경원시 당했다.


이해할수 있다.

10년전, 비극의 시작을 알렸던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비였으니까.



허나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참아낼수가 없었다.




" 무슨 소리냐?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가 농사지은 땅이다. "


" 아무렴! "


" 훠이~훠이. 저리 안꺼져!? "


죽은 엄마와 함께 제라드가 일궜던 농경지를 빼앗겼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욕심에 눈이 벌개져서는 억지를 부렸다.

제라드에게로 날아드는 손찌검은 예사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 땅이 제라드가 조막만한 손으로 엄마와 함께 농사짓던 땅임을.

그러나 날이 갈수록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그들의 욕심을 부채질했다.


이제야 고작 10살을 앞둔 제라드다.

수십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 전부가 엄마가 남긴 것들을 빼앗고자 달려드는 것을 막아낼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라드는 붉어진 눈으로 엄마, 플로네가 묻힌 야트막한 언덕을 찾았다.

그리고서는 말없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해가 서산너머로 사라질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엄마를 보고 싶다고 울어재끼는 여동생을 달래면서.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나서야 제라드는 몸을 일으켰다.

잠든 동생을 뒤에 업고서 천조각으로 자신의 허리에 고정시켰다.



밤은 위험하다.

이 세계는 제라드의 전생처럼 위험한 짐승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 아니다.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짐승들이 득시글거렸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알고있음에도 제라드는 결심을 굳혔다.

마을을 떠나기로.


과거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그는 최근의 뜨거운 태양을 관찰하며 10년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갓 태어나 앞도 잘 보이질 않던 신세였지만 제라드는 그 무렵의 공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메마른 대지의 냄새.


또다시 가뭄이 찾아오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10년전의 대참사에 준하는.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대가뭄이 다시 찾아오면 더이상 고향마을은 안전하질 못할것이다.


현재 마을에는 제라드의 또래 아이들이 전혀 없다.

모두 대가뭄을 살아서 넘기지 못했다.

굶어죽은 아이도 있었지만 그중에는 잡아먹힌 아이들도 여럿.


촌장이 죽은 뒤로 다음 순서로 잡아먹힌 것은 보호자없는 촌장의 손자였다.


인간이 인간을 식량을 보는 시절이오면 보호자 없이 동그라니 남은 어린애 둘이 어찌보일까?

제라드는 다가오는 겨울에 그와 그의 어린 여동생에게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쉽사리 예상했다.


그러니 떠나야한다.


다만,



빠드득-


" 언젠가,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는 날. 이곳에는 잿더미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



어차피 떠날 생각이었으니 농지에 남아있는 곡식따위 전혀 아깝지 않다.

여름이 깊어지면 전부 죽어버리고 말 작물에 불과하니.


그러나 이 땅은 엄마가 제라드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남긴 두가지 선물 중의 하나였다.

엄마가 남긴 것을 빼앗아버린 마을 사람들을 제라드는 용서할수 없었다.

아니,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다.



새벽, 해가 밝아오기전.

제라드는 허름하기 짝이없는 집에서 몇몇 물건과 식량을 챙긴 채로 마을을 등졌다.

잠든 여동생을 업고서였다.


위험하기 짝이없는 길이다.

어린애가 갓난쟁이를 데리고서 먼 길을 떠나는 것은.

어른들조차 길을 알고 있어도 홀로다니길 꺼려한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이 제라드의 발걸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같은 인간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죽을땐 죽더라도 인간으로써 죽기위해.

어린 여동생을 지켜내기 위해.


그는 망설임없이 마을을 벗어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 초원에 펼쳐진 가도를 한가로이 지나치는 무장한 인영이 있었다.



" 으음... "


거진 10여년에 달하는 봉사계약이 종료되어 길을 나선 나이트 도노반은 멀리 시야에 보이는 것을 보고서 신음을 삼켰다.


정식으로 서임된 기사는 초인이다.

신체의 모든 것이 일반인과는 비교할수없이 뛰어나다.

그리고 그것은 시력도 마찬가지.


평범한 이들은 형체조차 구분하기 힘들어할 거리에서 나이트쯤 되는 이들은 대상의 눈코입을 구별하는 존재였다.



하물며 나이트 도노반은 기사로서도 서임된지 30년에 달하는 세월을 흘려보낸 베테랑 기사다.


남들은 모르지만 경지가 엑스퍼트의 끝에 다다라 한때는 위대한 경지마저 엿보던 기사.



나이트 도노반은 자신의 시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가로이 걷던 말을 재촉했다.


다그닥- 다그닥-



" 허어... "


그렇게 도착한 그늘진 곳에서 도노반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원의 한켠, 아름드리 나무 아래로 만들어진 그늘에 인간이 있었다.

거기다 숨이 다해 쓰려져 있는 시체인줄 알았건만 아직 살아있던 것이다.


작은 소년과 등에 업힌 아기 둘 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골이 상접한 어린 소년과 달리 등에 업힌 채로 잠들어 있는 아이는 혈색이 좋았다.



" 이런게 인연이련가? "


잠시지간 정신을 잃은 두 아이를 지켜보던 나이트 도노반은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불을 피웠다.

수통을 꺼내어 쓰러진 소년의 입가에 물을 흘려보내고 짐보따리에서 꺼내든 건조식을 물에 풀어 끓였다.


구수한 냄새 때문일까?


상대적으로 혈색이 좋아보이는 갓난 아이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으아아아아앙-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그에 살며시 미소지은 나이트 도노반은 울음을 터트린 아이를 품에 안아들었다.


" 허허, 울음소리가 장군감이로고.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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