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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자아자!

아그네스 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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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e88
작품등록일 :
2019.05.14 01:28
최근연재일 :
2019.06.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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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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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아그네스 건국사 - 01

DUMMY

으아아아아앙-



" 시발, 시발, 시발, 시발!!! "


봉분 옆에 울어재끼는 어린 아이를 옆에 두고서 쉼없이 욕설을 주워삼키는 소년이 있었다.


제라드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올해로 10살.

일견 하기에는 별로 특출난 구석 하나없는 보통의 소년이었다.


삐쩍 곯아서는 살한점 없이 해골 비스무리한 몸뚱이에 행색은 발목에도 오지못하는 남루한 천쪼가리를 걸친 보통의 농가 소년.


그러나 실상을 말하자면, 제라드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소년이었다.







제라드는 전생을 기억한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21세기 현대문물을 당연한듯이 사용하며 살아가던 삶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체제 아래에서 누구나 평등한 신분을 향유하는 삶.


사실을 따져보면 자본에 의하여 삶의 질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법적으로는 누구나 동등한 신분을 보장받는 사회였다.


전생의 제라드는 강태산이라는 이름을 갖고서 30이 되는 나이까지 되는대로 살아갔다.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

어쩌다보니 태어났지만 부모에게서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되자마자 사회로 쫓겨나 당장 먹고살기 급급했다.


그나마 생물학적 부모의 유전자가 좋았는지 성인이 된 그의 체격은 못먹고 컸어도 상당히 뛰어났고, 힘도 평범한 이들을 상회했다.


그런데 그러면 뭣하랴?

강태산이 살아가던 현대사회는 발달한 기술에 힘입어 지식이 우선인 사회였다.

한 인간의 생물학적인 힘은 그다지 소용이 없는 사회.


결국 못배우고 배경없는 사회초년생이 할수있는 일은 간단한 아르바이트나 노가다가 전부다.


그러니 강태산이라는 한 인간으로써 사회에 불만을 가질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만도 서럽기 그지없는데 하루하루 먹고사는게 너무 힘들다.

월세만 생각하면 식욕이 뚝 떨어지고 잠이 들때면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남들은 부모 지원받아 교육받고 대학나와서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살면서. 바닥에서 빌빌거리는 강태산같은 이들을 볼때면 노력하지 않으니 삶이 그 모양이라 이죽대기 일쑤였다.


외롭고 서러운 마음에 젊은 청년이었던 강태산의 눈길이 다른곳으로 향하는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노가다판의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를 불러세우던 어깨의 제안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는 것도 말이다.


조폭 똘마니가 되면서 강태산의 삶은 일변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기는 하나, 적어도 그안에는 서로를 보듬어주는 형제애가 존재했다.


요즘 조폭은 돈앞에서 의리도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 어차피 말단 똘마니에 불과한 강태산과 형제들에게는 다른 세상 얘기나 다름없었다.


하는 일은 욕먹어 마땅했지만 적어도 노가다판보다는 편했으며 모시는 형님이 나름 인정있는 양반이었다.

고생한 똘마니들을 외면하는 인정머리 없는 양반은 아니었던 것이다.


적어도 함께한 세월이 깊어지면 나이먹고 은퇴하는 똘마니들에게 먹고살길은 마련해주는 양반이었으니 스물 중반의 강태산은 이제야 살만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강태산의 삶은 갑작스레 변해버렸다.

우연한 상황이 벌어져 똘마니 신세에서 직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양지로 진출한 조폭들의 세계에서 주먹다짐은 옛말이나 다름없어졌는데 업소를 순시하던 큰 형님에게 옆동네 어깨들이 습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런 소란의 한가운데서 강태산은 의도치않게 큰 형님께 날아들던 칼을 어깨로 받아내고야 말았다.


모든 것은 우연이었지만 이를 목격한 큰 형님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그 일 뒤로 강태산의 미래에 엘리트 조폭으로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 무렵, 강태산이 갖고있던 사회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살아보니 나름 괜찮은 사회였다.


손가락질 받아도 먹고살만하고 이제는 큰 형님이 소개해주었던 여자와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자신의 처지다.

죽을때까지 조폭생활은 못하겠지만 몇년 안지나서 인망있는 큰형님이 은퇴할 때는 가게하나 마련해주겠다는 귀띔까지 받았다.


고아로 자라서 성인이 된 이후로도 남들에게는 절대 떳떳이 밝힐수 없는 직업을 갖고 있긴 했지만, 대학까지 마친 동년배 녀석들은 취직자리 구한다고 난리치는데 강태산은 마이카까지 끌고 다니며 여자친구와 사랑을 속삭였다.


이 얼마나 멋진 사회란 말인가.


비록 여자친구가 유흥업계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있긴했어도 강태산은 그런 사소한 점은 신경도 쓰질 않았다.


서로를 사랑하면 됐지, 뭐 어떠랴?

그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고, 사정이 있어서 유흥업계에 빠져들었지만 굳센 의지를 가진 여성이었다.

강태산 자신같은 녀석에게는 정말이지 아깝다 말할수 있는.

빌어먹을 그녀의 부모만 아니었더라면 자신과는 절대 인연이 있을리 없는 여자였다.


강태산은 어차피 고아 출신에 조폭 신세다.

얼굴도 마음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녀와 결혼해서 새끼치고 오순도순살면 더 바랄게 없었다.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게 되어서야, 이 세상이 그리 불공평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기뻐하고 행복해했나 보다.


행복만이 가득하던 시절의 끝은 갑자기 닥쳐왔다.

느닷없이 말이다.



강태산이 마누라의 부른 배를 보면서 그냥 조금 일찍 은퇴할까 고민할 때였다.


술취한 큰 형님을 모시고 자택으로 바래다드리던 도중 한적한 동네에서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그때 강태산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습격이란 사실을.


앞뒤로 막은 봉고차들에서 검은 정장을 빼입은 떡대들이 쏟아져나올때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챈 강태산은 술취한 큰 형님을 어깨에 매달고서 줄행랑을 쳤다.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다른 형님들한테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연락을 해뒀으니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아무리 체격좋고 힘이 좋은 강태산이라 해도 술취한 큰 형님을 업고서 십수명의 추격자를 뿌리치고 달아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였으니까.


결국 이름모를 골목의 막다른 곳에서 습격자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생애 그토록 혼신을 다해 싸우는 것도 처음이었고 흉기를 휘둘러보는 것도 처음.

결국 강태산은 지원이 올때까지 큰 형님을 지켜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다만 습격자들 중에서 전문 칼잡이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 녀석이 강태산의 복부를 몰래 쑤시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을 버텨냈는지는 그도 모른다.

한참 치고박던 중에 흥분한 와중에도 복부를 파고드는 불덩이를 느끼고서 전신에 힘이 풀리던 순간이었다.

멀리서 시끄럽게 10여대의 승합차들이 몰려오는 모습에 습격자들은 욕설만을 남긴채로 도망쳤고, 강태산은 큰 형님의 곁으로 털썩 쓰러지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많은 피가 흘렀다.

지난번 어깨에 칼을 맞을때보다 족히 두배는 더되는것만 같다.

그래도 큰 형님을 지켰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강태산은 마누라에게 뭐라 변명해야할지 고민했다.


매번 마누라가 큰 형님께 할도리는 다했으니 이만 은퇴하라고 종용했던걸 생각해보면 지금 상태로 병원에 실려가 깨어날 때 좋은 얼굴로 마주하기는 글렀다.


'마누라, 미안해. 이제는 당신 말 잘들을게요. '


- 태산아! 야, 강태산! 새끼야 눈떠 봐!!!



멀리,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도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대량의 출혈과 피로에 지친 강태산은 잠시만 쉬게해달라며 웅얼거리는 채로,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그게 지난 삶의 끝인줄을 모르고.




한번의 삶을 끝내고서 강태산이 의외라고 생각했던 점은 유령이라는게 진실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가 정신을 차린 강태산은 자신의 장례식을 목격했다.

그리고서 자신이 귀신이 되었다는 점도 깨달았다.


잃어버린 자신의 삶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이제 막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배가 부른 아내가, 그리고 아내가 출산을 앞둔 아이가 생각나 유령인 강태산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로 흘러가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유령이 된 강태산은 안심했다.

한동안 슬픔에 잠겨있던 아내는 무사히 아들을 출산한 뒤로 힘을 내서 삶을 꾸려갔고, 강태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큰 형님은 습격한 조직에 보복을 가해 조직원 전부를 병신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강태산의 복부에 칼을 쑤셨던 전문 칼잡이는 콘크리트에 담가서 동해바다에 수장해버렸다.


게다가 큰 형님은 의외로 강태산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세월이 흐르면 지난 일은 잊을법도 한데 큰형님은 조직에서 은퇴한 뒤로도 강태산의 아내와 아이를 자주 찾았다.


아들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든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해서는 자신이 큰아버지라 소개했고 아들이 좋지않은 길로 빠질때에는 엄한 훈육도 마다하지 않았다.


숨겨진 사실을 알게된 것은 강태산의 아들이 결혼을 앞두었을 때였다.

아들 녀석과 대작하던 큰 형님이 술에 취해서는 한번도 입에 꺼내지 않았던 속마음을 털어놨던 것이다.


- 네 아빠는 미래 보육원 출신이다. 그리고 나도 미래 보육원 출신이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기억력이 뛰어났던 큰 형님은 어린 시절의 강태산을 잊지않고 있다가 강태산이 어깨에 칼을 맞던 무렵에 보육원을 찾아서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어떤 운명을 느꼈다고 했다.


- 빌어먹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사실은 나한테도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담담한 큰 형님의 독백에 죽어서 무슨 한 때문인지 귀신 신세가 되어버린 강태산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 네 아비가 살아있을 적에 조금이라도 더 잘해줄 것을, 일찍부터 손 씻게 만들어서 가게 하나 운영하게 해줄 것을 그랬다. 그랬으면 지금 이자리에는 네 아비와 네가 함께했을 것인데.


강태산의 아들은 늙은 큰 형님을 껴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유령신세인 강태산도 흐느꼈다.




세월의 흐름은 곱디곱던 아내의 얼굴에도 나타났다.

하얗게 샌 머리에 굽은 허리는 강태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런 저런 굴곡이 많았음에도 아직 고운 얼굴은 반가웠지만 아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에 자신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음이 너무나 미안했다.

그래서 강태산은 한때 아내가 자신을 잊고서 새 사람을 만나서 편안해지기를 원하기도 했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 혹해서 접근하는 남자들도 꽤나 있었고 그중에는 강태산이 보기에도 괜찮은 남자가 제법 있었기에.


그러나 아내는 단호했다.

아무리 좋은 남자의 접근도 받아들이지를 않은 것이다.

안타깝고 고마웠다.

그래서 강태산은 아들이 장성한 이후에라도 그녀가 평안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바람이 되고야 말았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강태산의 아내는 70밖에 안되는 나이로 죽음을 앞두게 된 것이다.


아들과 더불어 큰 형님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쓰러졌던 아내의 의식이 잠깐 깨어났을 무렵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두사람의 간곡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게될 두사람에게 어찌할수 없는것도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말하며 단념시켰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강태산은 유언을 마친 그녀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영체가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하던 그녀의 영체가 강태산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때에는 그의 가슴도 무너져내렸다.


- 여보...


아내는 오랜 세월이 지나 마주한 강태산을 보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연신 그의 이름만을 주워삼키기 바빴다.


- 마누라, 그간 나없이 고생했어요. 내가 일찍이 그대의 말을 들을것을, 어리석게도 그만 미련을 떠는 바람에...


근 40여 성상의 세월을 지켜본 다음에야 강태산은 아내를 껴안고서 서럽게 우는 그녀를 달래줄수가 있었다.


비록 그녀의 이승에서의 숨은 끊어졌으나 어떠하리.

이렇게 다시한번 그녀를 품에 안고서 달래줄수가 있는데 말이다.


동시에, 강태산은 느꼈다.

그동안 자신을 이 대지에 속박하고 있던 구속이 풀어지고 있음을.


' 아, 아내가 바로 내 가슴에 맺혀있었던 한이로구나. '


고아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조폭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간으로 살아가며 이래저래 얽히고 섥힌 인연이야 적지 않았지만 강태산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에 진실로 가슴에 남아있던 단 하나의 인연.


바로 아내였다.



무엇이 그리도 기쁘고 서러운지 펑펑 울어대는 그녀를 부둥켜안고서 강태산의 몸은 하늘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진실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강태산은 고개를 내려서 숨이 멎어버린 아내를 껴안고 구슬피 우는 두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들 녀석이야 걱정할 것이 없다.

단지 폭삭 늙어버린 얼굴로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큰 형님의 얼굴이 너무 안타까웠다.


- 형님, 그간 고마웠습니다. 후일 다시 뵙게되면 그때는 제가 술한잔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지상을 떠나 도착하게될 곳이 어디인지 모를 강태산의 그저 바람이었다.

간신히 형님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밤의 포근함이 가득했다.

강태산은 부둥켜안은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서 놓아주질 않았다.


이제야 함께하게된 자신의 반쪽을 놓칠수는 없다.

그렇게 강태산은 소망했다.


이승에서 못다한 인연들이 내세에서도 부디 이어지기를.

그리하여 이번 생에 못다한 자신의 고마움을 갚아줄수 있기를.




소년의 현생은 어미의 배를 나서서 탯줄을 끊던 시점부터 이어졌다.


작가의말

선호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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