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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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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e88
작품등록일 :
2019.05.14 01:28
최근연재일 :
2019.06.12 10: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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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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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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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아그네스 건국사 - 02

DUMMY

제라드의 몸을 빌어 다시 태어난 강태산이 처음 느꼈던 것은 혼란과 고통, 그리고 견뎌내기 힘든 수준의 허기였다.


철썩-


" 응애애애애애- "


막힌 숨이 터지고 둔부에서 강렬한 고통이 전달되던 순간에 우렁찬 울음을 터트렸지만 실상은 이 어찌할수없이 덮쳐드는 허기로부터의 구원을 소망했다.


구원은 곧바로 찾아들었다.

온 정신이 허기에 무너져내리던 것만 같던 때에 입안으로 들어오는 말캉말캉한 무언가를 느낀 제라드는 입속으로 들어온 것을 세차게 빨아댔다.


입속으로 퍼져나가는 액체의 양은 충분치 않았다.

그래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무언가에 미칠것만 같은 허기도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정도의 허기를 지우고나서야 생각이란 것을 떠올릴수 있었던 제라드였다.


" ---- ---- --- ? "


" -- ---- --- --- --. "


귓가를 간지럽히는 높낮이가 분명한 울림들이 일종의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되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였다.

두눈은 뜨고 있었지만 무엇도 구분이 되질 않는다.


더불어 분명한 육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의지로는 무엇하나 할수있는 것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그는 어느정도 혼란을 벗겨내고 지난 기억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 어떻게 된거지? 나는... 강태산은 죽었다. 그리고 수십여년을 귀신이 되어 가족들을 지켜보다가... 아! '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근거는 부족하지만 진실을 가리키는 일종의 직관에 힘입은.


강태산으로써 기억의 끝은 아내를 껴안고서 승천하던 시점.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맞이한 상황은 낯설었지만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냈다.


' 어찌... 그러면 하영이는? '



" 으아아아아아앙- "


다시 한번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깨달음에, 갓난 아이의 육체를 뒤집어 쓴 강태산의 통곡이 터져나왔다.


" --- --- --- --- ! "


" -- -- ---- --. "


남성으로 짐작되는 이의 호통에 이어 어미로 짐작되는 이의 달래는 음성이 느껴져도 강태산은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그는 꼬박 반나절을 내리 울고서야 실신하며 울음을 그쳤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강태산은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유는 몰라도 자신이 다시 한번 태어났음을, 그리고 곁에는 40여년의 기다림 끝에 간신히 마주했던 아내가 없음을 인정하게되는 과정은 매우 힘겨웠다.


허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강태산은 작은 소망을 품었다.

조폭 생활을 하며 남들에게 피해나 입히던 못된 자신은 이리 되었어도 험난한 인생살이동안 굳세게 살아갔던 그녀라면 분명히 천국에 도착했을 거라고.


소망이 굳건한 믿음이 되고서야 주변을 둘러볼수 있게된 그였다.



자신을 부르는 이름인 '제라드'마저 받아들였을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막 태어났을 무렵에는 보이질 않던 것들이 차차 너무도 선명히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우선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허기다.

삐쩍 곯아버린 어미의 모습을 보자면 간신히 살아갈 정도의 곡기만을 섭취하고 있음이 분명했고, 그에따라 부실한 어미의 영양상태는 제라드가 배부를 정도의 젖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생활수준.

농사일 하러나가는 어미의 등에 업혀서 둘러본 작은 시골의 농촌은 피폐하기 짝이 없었다.

이 좁은 마을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빼빼말라서는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입은 옷가지의 수준은 다떨어진 천을 간신히 기워서 옷의 형태나마 갖추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아, 하늘은 진실로 그에게 잔인했다.

대체 전전생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럿길래 자신을 이리도 힘들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원망을 감출수가 없는 제라드였다.


시대적 배경은 대충 중세쯔음으로 짐작되는 모습에다 계절은 초가을로 추정되는데도 이리 힘겨워하는 모습들을 보자면 대체 이 마을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 것인지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가 현실로 제라드를 찾아왔을때,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 그의 정신은 부서져버릴뻔했다.



환생한 제라드에게는 형제가 존재했다.

대충 2~3살 나이쯤 차이나보이는 사내아이였다.


막 태어났을때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몰랐지만 차차 시력이 발달하던 제라드는 어미 몰래 숨어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순진한 두 눈망울을 발견했다.


갓난 아이인 제라드는 묵묵히 챙기던 어미였지만 형제에게는 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이해할수 있었다.


제라드의 어미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시골 아낙에 불과했다.

중세시기 꼭두새벽부터 시작되는 힘든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꾸려가다보면 하루가 모자랄 어미다.

그런데 밤만오면 제라드의 아비는 어미를 찝쩍거리기 일쑤.


배움이 모자란 이들은 이런 궁핍한 시기를 보내면서도 피임따위는 생각하질 못했다.

제라드의 아비는 그저 짐승같이 제 욕구만 풀어내고자 하는 사내였다.


이런 고단한 삶의 궤적속에서도 자식들에게 짜증을 낼 망정, 손찌검만큼은 하질 않는 어미는 진실로 부드러운 성품의 여인이다.



그 시절만해도 제라드는 다시 태어나 얻게된 가족에 대하여 갈팡질팡하는 마음이었다.

아직껏 입도 트이질 않은 그였지만 아주 가끔 보이는 어미의 미소와 서너살 위의 형이 어미 몰래 다가와 자신의 볼을 쿡쿡 찌르는 모습을 보자면 막연한 따뜻함이 느껴지곤 했다.


어쩌면 이렇게 힘든 처지라도 자신이 성장해 한손 보태기 시작하면 작은 행복이나마 느낄수 있게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생겨났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제라드가 태어나 경험한 첫해는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수확의 계절이 왔음에도 농부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사라지질 않았다.

추수를 마치고서 병사들을 대동한 징수관이 도착했을때 농부들은 모두 엎드려 빌었다.


" 나리!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것마저 걷어가시면 우리 식구들은 전부 굶어죽습니다요, 나리! "


" 시끄럽다! 이놈들이 영주님의 자비를 모르고서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


징수관의 논리는 간단했다.

가뭄이 들어 세금으로 바칠 곡식이 모자라다.

이에 관대한 영주님께서는 거둘수 있는만큼만 거두고 모자란 것은 내년에 받겠다고 하셨는데 미천한 농부들이 영주님의 자비조차 몰라보고서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영지의 실상에는 관심이 없는 초임 징수관의 개소리였다.

일전 징수관 일을 하던 롭 행정관은 이 영지의 출신이었고 마을사람들과 안면도 있었다.


롭 행정관은 권위적인 인사였지만 그나마 현실을 아는 인사였다.

가뭄이 들때면 때때로 영주께 건의해서 농부들이 한해를 넘길수 있는 조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곳에 자리한 모두에게 불행이라면, 현재 이 영지가 속한 나라는 전쟁중이고 진실로 자비로운 영주는 군사들을 이끌고서 전쟁터에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전쟁터에 나간 영주를 대신하여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라바드 공자는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가문으로 돌아와 대행의 자리를 맡은 터였다.

군주의 핏줄로 정명한 대행의 자리를 맡았지만 기존 영주의 가신들은 공자가 다루기에 버거운 꼬장꼬장한 인사들이었고 공자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기존에 영지의 행정에 빠삭하지만 꼬장꼬장한 인사들 여럿을 들어내고서 아카데미에서 안면을 익힌 수도출신 행정관들을 새로이 임명한 것이다.


초임 행정관으로써 올해의 징수관 역할을 맡게된 알프레도가 바로 이러한 절차를 거친 인사였다.

영지민들에게 진정 불행한 사실은 수도출신의 알프레도 징수관은 빠른 일처리를 통해 라바드 공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면서, 한편으로는 제 뒷주머니를 차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왕국에 10년만의 대가뭄이 닥친 시기에 욕심많은 알프레도는 영지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리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알프레도 징수관이 휩쓸어버린 마을에는 파종을 위해 남겨둔 소량의 씨앗들과 숨겨둔 소량의 곡물만이 남았다.

당장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오늘 저녁에 먹을 식량마저 사라진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닥 이성이 남은 마을 사람들은 씨앗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이것마저 없으면 그들에게는 내년이 존재하질 않는 것이기에.


그렇게 악몽같은 수확의 시기가 지나가고 날이 쌀쌀해지던 무렵, 마을에는 그나마 부지했던 식량이 모두 떨어졌다.


사정은 마을에서 가장 잘 먹고살던 촌장도 마찬가지였다.

굶주림에 눈이 돌아간 마을 사람들을 두려워한 촌장은 몰래 숨겨두었던 곡물 자루들을 꺼내어놓았다.


징수관의 눈을 피해 숨겨두었던 것들마저 모두 먹어치운 것이다.


그러나 새로이 수확의 시기까지는 많은 날들이 남아있었고, 당장 다가오는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농부들은 목구멍으로 넘길 무언가가 필요했다.


더 날씨가 추워지기전에 농부들은 산으로 들판으로 나갔다.

초근목피를 캐고 산에서는 목숨을 걸고서 사냥에 나섰다.

그래도 부족했다.


가뭄은 농지에만 영향을 끼친게 아니다.

아낙네들이 밤낮으로 돌아다닌 들판은 금새 황량해졌고 목숨을 걸고 산으로 들어간 사내들이 반절은 죽어나가며 구해온 짐승 고기는 얼마되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계절은 완연히 겨울로 접어들었다.


겨울.


겨울은 진정 악마의 계절이다.

평년에도 사람들은 소량의 식량을 섭취하며 추운 겨울을 간신히 버텨내고는 했다.

그런 판국에 올해의 겨울은 유달리 추웠고 쫄쫄 굶는 채로 버티던 마을 사람들 중에는 아사인지 동사인지 구분이 안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첫눈이 내리던 날,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굶주린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늙은 촌장이 몰래 빵을 먹는 모습을 목격했고 소문이 퍼졌다.


몰려든 마을사람들이 촌장의 집앞에 집결했다.

홀로나와 둘러싸여 벌벌 떨던 촌장은 격렬히 부인했다.

정말로 빵 하나 남아있던 것을 먹어치웠다고 말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촌장이 몰래 식량을 감춰놓고 먹고 있었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지금도 어느정도의 식량이 남아 있기를.


촌장의 죽음이란 사건은 이러한 대립 가운데 의도치않게 벌어지고야 말았다.

마을 사내들 중에서도 용력이 좋고 성정이 급하기로 유명했던, 제라드의 아비가 범인이었다.


제라드의 아비가 딱히 촌장을 죽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집 입구를 틀어막고서 버티는 촌장을 위협해서 치우려 했을 뿐이었다.


- 이 노친네가? 비켜!


퍽-


비루한 노인네가 며칠을 내리굶다가 빵 한조각 삼켰다고 용력이 생겨나지는 않는 법이다.

촌장은 제라드의 아비가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농기구를 피하려다 정통으로 맞아버리고 말았다.


털썩-


첫눈이 내리는 가운데 쓰러진 촌장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붉디 붉었다.

그리고 자극적이기도 했다.


꿀꺽-


누군가의 침넘기는 소리가 유달리도 유혹적으로 들린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보다 쓰러진 고깃덩어리에 눈이 못박힌듯 고정된 마을 사람들이었다.




유달리 춥고 긴 겨울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잔인한 현실속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가지를 버려야만 했다.


제라드는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날의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생생히 떠올랐고, 그날 집안에서 떠돌던 흉흉한 공기와 애달픈 분위기가 바로 전에 겪은 것마냥 그를 덮쳐왔다.






- 제랏, 제랏!


나이어린 그의 형제는 그를 부를때면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혀짧은 목소리를 내고는 했었다.


동글동글한 눈안에 쪼끄만 제 형제가 귀여워 어쩔수가 없다는 감정을 역력히 담고서, 손닿으면 부서질것같이 조심스레 그를 대했었다.


그랬던 그의 어린 형제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말간 눈속에 공포가 가득 담겨서는 작디작은 제라드의 손을 움켜쥐고서 속삭이는 것이다.

이 조그마한 형제는 대체 무엇을, 어찌하여 알고 있었던 것일까?


- 나를 잊으면 안돼. 내가 널 지켜줄거야. 알겠지?


- 이놈!


어린 형제의 간절한 속삭임은 갑작스레 방안으로 들어선 아비에 의해서 끊겼다.

평소에도 폭력적인 성향이 짙었던 그들의 아비는 그날따라 유난히 눈알이 번들번들거렸다.


삐쩍 곯아서 앙상한 몸이지만 번들거리는 아비의 눈은 헤어나올수 없는 공포를 어린 두형제에게 선사했다.


- 제랏!



- 으아아아아아아앙!


그의 형제는 아비에게 뒷목이 붙들려서 질질 끌려나갔다.

상황을 눈치챈 제라드가 비통한 마음으로 울부짖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날로 제라드는 집안의 외동아들이 되었다.



그날밤, 오랜만에 양껏 배를 채운 아비가 코를 골아댈 때 그의 어미는 피묻은 손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제라드에게 젖을 물렸다.

젖을 물기를 거부하는 제라드에게로는 다시 태어난 뒤 처음으로 어미의 손찌검이 날아들었다.




제라드는 인간성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21세기의 삶을 기억하는 그였지만, 그역시 가방끈이 짧은 생애를 보냈다.

때문에 그가 마주한 이런 잔인하고 처참한 운명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어떻게 이 슬픔을 지워내야할지 알수가 없다.


허나 그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이 있다.


적어도 그가 보낸 지난 삶은 굶주림에 지쳐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지는 않는 사회였다.

더하여 굶주림에 자식을 잡아먹은 아비가 포만감에 배를 두들길 일도 없는 사회.


그게 바로 인간들의 사회다.

때문에 제라드는 새삼 깨달았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인간성 따위를 쉽게 포기하는 것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냥 짐승이다.

아니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짐승만도 못한 것들의 혈육인 제라드도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다.


작가의말

선호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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