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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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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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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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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birth [진혼곡] 세 번째 아이.

DUMMY

당연히 그냥 지나갈 거라고 여긴 헬리콥터가 폐허 위에서 호버링을 시작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개중 대학생이나 됐을 법한 여인이 어떤 기대를 품은 채 소리친다.


“익명, 그분이 왔나 봐요!”


100여 명에 이르는 사람에게 비행기표를 제공한 그 멋쟁이가 아니라면 누가 있어 헬리콥터를 타고 이런 낡은 성터에 오겠는가? 여대생을 비롯한 모두가 비슷한 기대감으로 헬기를 볼 때, 단 한 사람 마이너스만 홀로 고개를 떨궜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대관절 또 무엇이 저 사랑의 전사를 절망케 한 걸까?


그는 슬쩍 눈길을 돌려 마치 여기라는 듯 크게 손을 흔들고 있는 떠난 그녀를 바라봤다.


‘역시, 저런 미녀를 쟁취하는 건 익명 같은 승자들이구나. 그래, 그게 당연한 일이겠지. 나 따위가 무슨..’


헬리콥터의 조종사가 그녀를 발견했는지 서서히 접근하며 고도를 낮추자, 나락으로 떨어진 솔로 인생의 추측은 명징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젠장, 그래도 잠시나마.. 멋진 꿈이었어.’


그렇게 자위하며 쓴웃음을 머금을 때, 헬기는 10여 미터 밖 공터에 뿌연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착륙했다. 헬기에서 내린 항공복의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뒤쪽 짐칸에서 2m는 족히 넘을 법한 검은색 상자를 꺼내서 바닥에 내린다.


“저게 뭐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이자, 항공복 중 선글라스를 낀 쪽이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헬리콥터에 올라 순식간에 이륙해 사라졌다.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멍하니 보던 마이너스는 이 해프닝의 중심에 서 있는 여인, 어쩌면 솔로 일지도 모르는 나의 그녀에게 슬쩍 물음을 던졌다.


“저기요, 혹시 이벤트 같은 걸 준비하신 건가요? 저거 관 같은데.. 설마, birthplace님 당신이 익명?”


흑관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음모론아님진짜임을 향해 빙글 돌아서며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고 긴장한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본 사랑의 전사 마이너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어린다.


"신이시여.” 아마 이런 것도 문화충격의 일종이리라.


3년 전 스칼렛 요한슨을 우연히 보고 받았던 충격보다 더 큰 벅참을 느낀 청춘은 진심 어린 탄성을 뱉었다. 여자라면 딱히 싫어할 만한 반응은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더더욱 긴장해 얼굴을 굳힌 채 잘록한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참 뜬금없는 상황이라 당황한 마이너스가 멋쩍어 할 때, 그녀는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이제 계약을 이행하려 합니다.”

“예?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조나단.. 예?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예? 아니, 갑자기.. 아니,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버퍼링이라도 온 것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던 그는 감전된 듯 몸을 떨다가 덜컥 멈췄다. 그를 본 여인의 귓가로 서의 한 구절이 맴돈다.



세 번째 아이는, 무서운 어미의 눈을 피해 육신을 버렸네.

네 번째 아이는, 무서운 어미의 눈을 피해 먹이의 탈을 써버렸네.

셋과 넷은 시선을 피했지만, 버리고 뒤집어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영원히 고통 받으리라.

다시금 저주하리라.



서라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가주의 손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본 필사본과 주워들은 단편적인 내용이 전부였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서의 내용을 신비시대의 야사 정도로 치부했다.


‘적당히 해야 믿지.’


자신이 다섯 번째임에도, 첫째 둘째 셋째를 비롯한 고금제일인의 전설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문명을 압도할 수 있는 필멸자가 존재했다고? 가주들이나 왕이라면 몰라도 인간 따위가?’


한마디로 불가능한 소리였기에 그녀는 일엽을 전설 속 허구라고 여겼다. 그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로 한 챕터가 채워진 책 또한 당연히 믿지 않았고.


‘그런데 더 나갔잖아?’ 그보다 더한 존재가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다 하니 어찌 믿으랴?


단일 개체로서 타 종족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 파멸자가, 저 짐승의 왕과 같은 절대자가 하나도 아닌 무려 셋이나 더 있단다. 그러니 헛웃음부터 흘렸지.


'과거는 항시 미화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들과 달리 네 번째는 직접 보기 전에도 존재를 의심치 않았다. 그 정도 권능이라면 자신들처럼 어미의 자궁을 통해서 나올 법했으니까. 탈인과 각성의 모습도 대충이나마 그려졌고.


‘그래도 나머지는 아니야.’ 세상을 뒤엎을 만한 형체를 갖추고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잠들어 있다는 첫째와 둘째, 그리고 아예 육체를 버렸다는 셋째.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자신을 어미의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준 저 혼돈마저도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서 형태를 드러냈기에, 그녀는 일엽 등에 대한 믿음을 전능자를 꿈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동일선상에 놓았다. 서의 가치는 무신론자의 서고에 꽂힌 성경 정도였고.


‘그런데 젠장, 내 앞에 나타나다니.’


그 허황된 판타지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가 냉소 어린 무신론자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살길까지 제시하면서 말이다. 빌어먹을 성경 속 구원처럼..


‘이르러 부르라, 그곳에서 들을 테니.’


그날 이후로도 일가의 추격은 계속됐지만, 때때로 들려온 목소리가 새로운 신분을 주고 길을 열어 위협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곤 여기 원죄의 땅으로 이끌어 부르게 한 것이다. 눈앞의 의외로 똑똑한 멍청이가 아니라 누구라도 상관없었으리라.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마이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이자가 세 번째?’ 그녀의 눈동자에 옅은 의아심이 어렸다.


거대한 존재를 받아들인 생명이 감내해야만 하는 형태의 뒤틀림, 시초이기에 당연히 가져야 할 압도적인 지배력, 그래도 최상급에는 미쳐야 할 존재감 같은 건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읽지 못하는 건가?’


자신의 염기에 사로잡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청년의 외관 그대로였는데, 깊고 깊게 가라앉아서 의중을 읽지 못할 눈빛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냥 지배된 것 같기도 하고.'


자그마한 의문과 더없이 커다란 긴장을 품은 채 상대를 관찰하던 그녀는 한없이 침전되던 눈빛이 무형질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과 같아.’ 착 가라앉은 동공 너머 세상을 삼킬 권능과 더 큰 권태가 보인다.


대적불가의 존재감이나 지배력을 제하면 시초들과 무서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곤 바로 의심을 지우는 순간,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이름?’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바토리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태초가 잉태한 세 번째, 어미의 눈을 피해 육체를 버린 아이, 무한의 군대 이매망량의 왕, 역사의 모든 분란과 욕망을 지켜보고 간섭한 태초의 뱀, 다섯 번째 아이에게 일곱 욕망을 알려 나눈 분열자.’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그를 지칭하는 단어는 많았다.


‘사신의 낫 위에 선 불멸자. 아니야, 타인이 붙여서 칭한 걸 나의 이름이라 할 수 있을까?’


세 번째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억지로 되살리며 머리를 쥐어짜내던 그녀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화를 떠올렸다.


‘역사에 일엽 또한 존재했고 정말로 그와 함께였다면..’


억만년의 세월 속, 수많은 이름과 모습을 가진 채 살아가던 괴물이 스스로 자신을 소개한 적이 단 한 번 있다고 했다. 마침내 무한의 군세를 뚫고 신전에 도착한 엽인에게 대신관의 탈을 쓴 그가 말하길..


‘그래, 그것 말고는 없어.’


그녀는 부드럽게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여태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과거에 내리받은 모든 연을 버리고 초라한 이름 하나만 남긴 피의 일족, 바토리라고 합니다. 명하신 대로 계약을 매듭지으려 오늘 여기에 섰으니, 감히 물음에 답해보겠습니다.”


허리를 들며 흑관을 힐끗 쳐다본 그녀는 여전히 무감정한 눈동자를 주시하며 답을 뱉었다.


“저 관 안에 네 번째 아이의 시체가 있으니, 계약대로 취하십시오. 어미가 잉태하여 해산한 단 하나의 자아이시여.”

“자아? 너는 지금 내 이름이 자아라고 하였느냐?”


그는 웃음기 띤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바토리는 보기 좋은 미소로 화답할 뿐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던 세 번째는 그 단어를 음미하며 서너 번 되뇌다가 느닷없이 대소를 터트렸다. 그러자 폐허 위 모든 사람이 일제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그 섬뜩한 배경음을 뒤로한 채 홀로 웃음을 거둔 자아가 말했다.


“네가 그냥 거론된 게 아니었구나.”


그의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이 일었지만, 이번에도 바토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세부적인 상황은커녕 전체적인 흐름도 모르면서 혀를 놀리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혀 아래 도끼가 있다는 말을 기억해야 할 때 이리라.


‘다행히도 틀리지 않았어. 이제 계약대로 보내주기만 하면, 이번 세기에서는 그냥 빠져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좌중의 박장대소는 점차 커져만 갔다. 웃음은 행복을 전파하는 바이러스라던데, 적막한 폐허를 떠들썩하게 만든 흥겨움 속에서 그녀는 한없이 긴장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배를 잡고 눈물을 흘리건만..


‘젠장, 시끄러워.’ 그녀의 입술은 바싹 말라만 갔다.


웃지 않으면 당장 죽기라도 하는지 혼신의 힘을 다해 웃는 자들의 모습이 그렇게 섬뜩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저러는 건 아니야. 명이나 집단 최면도 아닌 것 같고, 정신간섭이나 육체조종 같은 건가?’


들으면 들을수록 위화감이 커져서 귀를 틀어막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닫았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토리.”

“예.”

“네 말대로 계약을 지켰으니, 강림지에서의 생존을 보장해주마.”


그녀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생존이란 말에 안도하며 떠날 의사를 비치려던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춘 채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정말, 너무나도 개 같은 상황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뜬 채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잘못 들은 게 분명해.’ 극도로 긴장해서 환청을 들었으리라. 겁에 질려서 미친 망상을 품은 것이겠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아닐 거라고, 잘못 들은 거라 뇌까리다가 불안정한 눈으로 그를 보며 겨우 물음을 던졌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강림지라고 하셨는지요? 우매하여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묻습니다.”


세 번째는 제법 똘똘해 보이던 아이가 거의 패닉상태에 빠진 것을 보며 기괴한 미소를 그렸다.


“어찌 되묻느냐?”


그녀의 겁에 질린 행태를 비웃는 듯, 한편으로는 그냥 순수하게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나 사람들은 따라 웃었고 바토리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한시바삐 떠나려 빌다시피 말했다.


“명하신 대로 행하고 계약도 지켰습니다. 저 같은 건 이제 필요 없을 테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답 없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 바로 흩어지려 할 때, 꽉 다물고 있던 입술이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며 기억의 한 자락을 뱉었다.


“그곳에 있었음이 죄악이니..”

‘이건 또 뭐야?’

“소멸까지도 허락받아야 하리라.”


자신의 입으로 강림지에서의 법칙을 되뇌는 순간, 폐허의 모든 사람이 입 모아 외쳤다.


“너는 허락 받아야 하리라!”

‘빌어먹을, 끝이야.’


작가의말

드디어 세 번째가 등장하고 세상은 멸망했다로 끝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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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Rebirth [진혼곡] 참전 +2 18.02.07 203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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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birth [진혼곡] 세 번째 아이. +2 18.01.29 239 8 12쪽
334 Rebirth [진혼곡] 사랑의 전사 마이너스 그리고 헬기. +2 18.01.27 263 1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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