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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향낙하(月香落下)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companyrr
작품등록일 :
2023.05.22 13:48
최근연재일 :
2023.10.22 18:43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348
추천수 :
25
글자수 :
62,470

작성
23.05.22 13:55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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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6쪽

서(序)

DUMMY

서(序)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그런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어둠과 동화된 듯 어둠의 일부분 같았다.


‘살(殺)’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조그만 천 쪼가리를 펼치자 한가운데에 대충 휘갈겨 쓴 ‘살(殺)’이란 단어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간단한 신상정보가 쓰여 있었다. 신상정보라 해봐야 성별이 전부였다. 화연은 천 쪼가리를 가볍게 훑어보고, 곧바로 태워버렸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살수가 가져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빛이 밝았다. 크고 거대한, 둥근 무언가가 밤하늘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어둠 위에 떠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밝은 빛을 뿜어내며 어둠을 조금씩 희석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어둠을 흡수하고, 그 자리를 눈부신 빛으로 채웠다. 보름달이었다. 화연은 보름달 뜨는 밤을 유난히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좋았다.

‘살(殺)받이’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드넓은 강물 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조그만 정자 안에 ‘살받이’로 추정되는 남자가 뒷짐을 지며 달을 올려보고 있었다. 머리 중앙에 봉곳 솟은, 마치 기개 높은 선비의 모습과 닮은 뻣뻣한 갓과 부드럽고, 질 좋아 보이는 값비싼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입고 있었다.

화연은 어둠 속에 숨어 남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살(殺)을 펼치기 전, 그녀만의 의식이자 배려였다. 마지막 순간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도록 나름의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살받이’는 본인의 마지막 순간인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품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남자의 뒤를 향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단번에 목숨을 끊어야 했다. 숱하게 많은 살(殺)을 펼쳐본 그녀였지만 매번 살(殺)의 순간마다 긴장이 되었다. 경험상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


남자와의 거리가 불과 다섯 걸음 정도 남은 그때, 간들바람이 불어와 화연의 눈가를 간질였다. 그리고 그 안에 실려 온 어떤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벼락을 맞은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굳었다. 우직하면서도 달콤한. 그리고 포근하지만, 왠지 모를 끝없는 외로움과 걷잡을 수 없는 슬픔······봇물 터지듯, 그녀의 마음으로 수많은 감정이 쉼 없이 밀려 들어왔다. 향기는 마치 달과 닮아있었다. 달에서 불어온 향기 같았다.


*


화연은 이 향기를 알고 있었다. 최근에 맡아본 적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오랜만에 저잣거리에 나가 여유를 만끽했었다. 장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었다. 한참 동안 물건 구경, 사람 구경 등을 하며 재미있게 놀던 그때, 한 사내가 그녀의 옆을 잰걸음으로 지나갔었다. 후욱- 하는 짧은 바람이 일어나며 어떤 독특한 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했었다. 향기를 맡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깊은 슬픔과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었다. 동시에 종종 꿈속에 나타나는 어떤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랐었다. 왠지 모르게 향기는 그 남자와 닮아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었다. 익숙한 듯 낯선, 낯선 듯 익숙했지만, 매번 얼굴이 유독 뿌연 막이 낀 것 같이 보였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꿈속의 남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든 것들을. 향기도, 목소리도 그의 품도.

정신을 차린 화연은 고개를 돌려 향기가 지나간 자리를 빠르게 눈으로 쫓았었다. 사람들 사이로 향기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졌었다. 하지만 겨우 향기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막 골목에 들어가던 참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값비싸 보이는 비단 도포를 입고, 올곧은 모습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비록 뒷모습이었지만, 사내의 성품이 얼핏 느껴졌었다.


*


잠시 생각에 잠긴 화연은 낯선 시선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남자, ‘살받이’가 초연한 표정과 함께 잔잔한 미소를 띠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맑고 깊었다. 끝없는 우주 같았다. 화연은 멍하니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불현듯, ‘꿈속의 남자’와 눈앞의 남자가 겹쳐 보였다. 왜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두 남자’의 향기가 닮아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소름 끼치게도.

화연은 혼란스러웠다. 당황했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답답했다. 와락- 갑자기 남자가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그의 숨결이 닿았다. 주변에 은은하게 흩날리던 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화연은 불에 덴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요동쳤다. 그녀는 남자의 가슴을 강하게 밀치며 뒤로 물러났다. 예리한 단검을 그에게 겨누며.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화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실패였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만약 남자가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를 공격했다면 여러 번 명을 달리할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체를 들켰다. 그것도 대놓고. 살수로서 최악의 실수이자, 자격 미달이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실패하거나 들키지 않았던 그녀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단검을 다시 고쳐잡고, 눈앞의 남자를 암살하려 했지만, 왜인지 또다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화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대신 매서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다 서서히 어둠에 녹아들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남자는 흥미로운 표정과 함께 그녀가 사라진 어둠에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허공에 잔잔하게 떠다니던 뿌연 안개 같은 무언가가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의 깊고, 맑은 눈에 은은한 달빛이 닿으며 반짝였다.

달.jpg

이환.jpg

화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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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 14 화 - 나는 조선의 왕이자 꼭두각시로소이다(3) 23.09.04 10 1 7쪽
14 제 13 화 - 나는 조선의 왕이자 꼭두각시로소이다(2) 23.08.28 11 1 7쪽
13 제 12 화 – 나는 조선의 왕이자 꼭두각시로소이다.(1) 23.08.23 13 1 7쪽
12 제 11 화 – 흐르는 바람결에 따라 23.08.14 11 1 10쪽
11 제 10 화 – 향기를 보는 눈 23.08.07 11 1 7쪽
10 제 9 화 – 의문의 향기 23.07.31 18 1 7쪽
9 제 8 화 – 흑무회(黑霧會) (2) 23.07.24 17 1 7쪽
8 제 7 화 – 흑무회(黑霧會) (1) 23.07.16 13 1 7쪽
7 제 6 화 - 아름다운 꽃은 가시를 숨기고 있다.(4) 23.07.07 17 1 7쪽
6 제 5 화 - 아름다운 꽃은 가시를 숨기고 있다.(3) +1 23.06.30 18 2 9쪽
5 제 4 화 - 아름다운 꽃은 가시를 숨기고 있다.(2) +1 23.06.18 22 2 9쪽
4 제 3 화 - 아름다운 꽃은 가시를 숨기고 있다.(1) +2 23.06.13 28 2 7쪽
3 제 2 화 – 화연 +1 23.06.07 18 2 7쪽
2 제 1 화 - 명월루(明月樓) +2 23.05.22 42 2 7쪽
» 서(序) +2 23.05.22 61 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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