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삼인방 3
대통령이 문 실장과 고 수석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이 비서관은 불안한 마음에서인지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 번 나온 기사를 되돌릴 순 없겠지만, 확산되는 것은 최대한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답을 한 것은 문 실장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확신은 없어 보였다.
“막는다라...... 지금 우리 쪽에 우호적인 언론이 지상파까지 인가요?”
“네, 주요매체 중 고려, 중도, 경제지 한곳 정도를 빼곤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고려는 알아서 길거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언질은 해 놔 주세요. 경제지도 마찬가지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 수석님.”
“네 대통령님.”
“중도 이 회장이랑 시간 약속 잡으세요. 일정은 권비랑 상의하시면 될 테니 되도록 빨리, 아니 잠시 만요.”
대통령이 고 수석에게 말을 하다 시선을 이 비서관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이비.”대통령이 부르자 이 비서관이 퉁명스럽게 돌아봤다.
“지금 당장 검찰로 가서 조 검사 만나 봐요.”
“가치요? 갑자기 걘 왜?”
“저들이 칼을 뽑았으니 우리도 몽둥이 하난 준비해서 나가야지. 조 검사한테 중도 건으로 왔다고 하면 알아서 할 테니 가서 좀 도와줘요. 요즘 고려 건으로 바쁠 테니까.”
“대통령님, 혹시......”문 실장이 말했다.
“일단 뭐가 있는지부터 볼 겁니다. 함부로 휘두르진 안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비는 조 검사 만나서 얘기해 보고 바로 진행 가능하게 한 다음 고 수석님한테 먼저 연락주세요. 고 수석님은 이비 연락받으시면 그때 중도랑 약속 잡아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뭐해요? 시간 없다니깐. 얼른 가 봐요. 조 검사한텐 내가 전화 넣어 놓을 테니.”
“아, 네네. 그럼......”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이 비서관이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대통령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문 실장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폭탄은 들고 있을 때야 폭탄역할을 하지, 터트려버리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대통령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시기상 맞는 가 싶어서 그럽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으실 텐데요.”
“자꾸 검찰을 이용하시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대중들이 정권을 한 번 외면하기 시작하면 다시 되돌리기가 힘듭니다.”
문 실장의 말에 이어 고 수석이 의견을 피력했다. 아직 정권이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에 그들의 걱정은 타당해 보였다.
“하하하, 안 터트린다니까요. 속고만 사셨습니까? 걱정 마세요. 저들의 패를 보자고 하셨으니 보고 나서 결정하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사전 준비단계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도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게 폭탄이 될지 폭죽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일단 살펴보고 쓸지 안 쓸지는 그때 가서 결정합시다, 됐죠?”
대통령이 최대한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엔 그늘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대통령의 성격을 잘 알기에 조만간 큰 일이 벌어질 거란 예감이 문 실장과 고 수석의 안색을 어둡게 만들었다.
다음날 새벽, 광주고등법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조 가치 검사가 불 꺼진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제일 구석진 곳에 위치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형님!”
파바박 켜진 형광등 불빛이 사무실을 밝히자 한쪽 구석진 소파에서 쪽잠을 자던 양 성우 검사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부스스 일어났다.
“뭐, 뭐야......”
“하아함~ 저요, 저. 조 가치. 흐아~ 졸려 죽겠네.”
건너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조 검사가 연신 하품을 해댔다.
“네가 여기 웬일이냐...... 바쁘신 분이 이 새벽부터.”
덮고 있던 담요를 몸에 둘둘 말며 양 검사가 탁자위에 놓여있던 안경을 찾아 썼다.
흐아아아함~ 그러게 말입니다. 어차피 내려와 봤자 다들 잘 텐데 왜이리들 성화인지 흐함~ 그간 잘 계셨수?“
“쓸데없는 소리 말고 누가 성환데?”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두 눈을 감은 양 검사가 담요 말은 몸을 꺼떡거리며 흔들기 시작했다.
“누구긴, 다 알면서...... 뭐 먹을 거 없어요? 휴게소도 다 지나쳐 오느라 배고파 죽겠어.”
“냉장고 봐봐. 초코파이 같은 거 있을 거다......”
양 검사의 말에 조 검사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더니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꺼내들었다.
“집에 안가고 뭐해. 그렇게 해봤자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구만. 이거 뭐야? 맛있네.”
몽쉘통통을 맛있게 먹는 조 검사를 멍한 표정의 양 검사가 대꾸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세 개째 봉지를 뜯으며 조 검사가 말했다.
“졸려? 정신 차려. 이것만 먹을 테니.”
몽쉘통통을 한 입에 우겨넣은 조 검사가 목이 메인지 음료수를 들이마셨다.
“크으, 시원하다. 형수는 잘 있지?”
“잘 있지...... 근데 왜 왔냐고.”
“중도 자료 있지? 그거 좀 보려고 왔어.”
“그게 왜 나한테 있어. 새벽부터 미친놈처럼 쳐들어오더니 이상한 소릴.”
양 검사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눈을 감고 둥글게 만 몸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
“원래 정권 바뀌면 여기저기서 투서나 민원들 잔뜩 들어오잖아. 형이 오년 전 잘나갈 때
크흐, 그러고 보니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치? 특수부 있으면서 중도 담당했잖아. 그때 자료랑......“
“꺼져. 저 책상 위 자료 보이지? 이따 아침까지 다 봐둬야 돼. 그러니 그만 가라. 시끄럽다.”
“그때 들어온 투서들이랑 조사해놨던 것들 좀 줘봐. 요즘 들어온 것들은 살펴보려면 시간이 걸리니깐.”
조 검사는 양 검사가 뭐라 하든 자신의 할 말만 했다.
“서울 가야지. 형 억울한 건 내가 잘 알잖아. 형 뺑뺑이 돌다가 작년에 여기까지 내려와서 힘들어할 때 술친구 해준 건 나밖에 없지 안우. 선배들이 안 맡는 중도 조사건 맡았다가 이렇게 됐다며 억울해했잖아. 그러니깐 이 번에.”
“됐다. 오년 전 사건들 이제 와서 뭐하려고. 가라.”
“그냥 보여만 달라니깐. 그럼 내가 위에 얘기해서......”
“시끄럽다고.”
양 검사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말을 끊자 조 검사가 입을 삐죽댔다.
“형수랑 애들 생각도 해야지.”
조 검사가 말을 꺼내놓고 아차 싶었지만 양 검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흠흠, 형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중도한테 찍혀서 이렇게 된 건데 원 위치 해야 하지 않겠수? 그러니 자료 줘봐. 오년 전이든 십년 전이든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없다. 내가 그 원수 같은 걸 왜 아직까지 가지고 있겠니. 그때 중도 장학생들이 다 가지고 갔다. 그러니 귀찮게 하지 말고 그만 가봐라. 나 진짜 자야 돼.”
중도 장학생이란 말은 중도그룹의 지원 하에 검찰에서 한 계파를 이루고 있는 집단을 말했다. 중도 그룹은 싹수있는 초임검사들부터 고위층까지 손을 안 뻗친 곳이 없었으며 중도 그룹의 눈에 들면 검찰 내에서 출세나 승진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 말은 중도 눈에 벗어나면 검사생활이 힘들어진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에이, 그때 그랬잖아. 비자금 출처를 알아내 조사하다 윗선이 조져서 끝까지 못한 걸 아직 들고 있다고. 언젠간 꼭 파해 칠거라고 형이 그랬잖아.”
“술 먹고 뭔 소린 못하니. 다 헛소리다. 그만 해.”
“자료도 다 있고 추가로 틈날 때마다 추적했다고 형이 그랬어. 조금만 더 파면 진짜 굵은 거 하나 잡아낼 수 있다고. 그거 내가 도와준다니까, 엉? 나랑 같이 하자고, 형.”
“......”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누워있던 양 검사가 담요를 걷어내고 똑바로 앉아 탁자 위에 놓인 전자 담배를 물어 연기도 나지 않는 걸 질겅질겅 씹어댔다.
“덕수 형 알지? 그때 나랑 같이 승진 탈락하고 홧김에 때려 친 형. 그 형 유학 마치고 올해 말에 한국 들어오면 같이 조그만 사무실 하나 내기로 얘기 다 끝내 놨다. 너 요즘 티비 좀 나온다고 어깨 힘 들어간 거 같은데 괜히 헛힘 쓰지 말고 올라가라. 네 말대로 형수랑 애들 생각한다면 그냥 가주는 게 나랑 네 형수 돕는 거다. 가라, 그만.”
“억울하다며, 언젠간 꼭 복수할 거라고 했잖아. 형뿐이면 말도 안 해. 중도 눈에 벗어나서 능력 있어도 검사 관둔 애들이 한 둘이야?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니까.”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억울하지. 난 잘못한 게 없는데, 그냥 살펴만 보라는 말에 덜컥 받았다가 혹시나 싶어 들춰 본 내용이 하필이면 중도의 비자금 출처일줄 누가 알았겠냐. 괜한 의협심에 아니 꼴에 검사새끼라고 그냥 덮을 순 없어서 만지작거리다가 애꿎은 덕수 형까지 끌어들여 둘 다 이 꼴이 나고 말았지. 그럼 됐잖아. 세상이 그런 걸, 검사 짓 재미에 빠져 잠시 까먹은 내가 병신인거지. 그때 중도에서 돈 주고 자리 보장해준다고 했을 때 나, 망설였어. 그래서 이 꼴 난거라고. 망설이지 않고 받았음 지금쯤 차장 자리 하나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그러니 이제 와서 다시 잘난 척 하고 싶지 않다. 욕심에 망설인 내 잘못도 있고 남은 생 조용히 애들이나 잘 키우면서 살고 싶으니 그만 가주라. 부탁할게.”
“그러니까 형......”
“검사가 한국말 못 알아들어? 그만 가라고.”
“휴~” 조 검사가 답답한 듯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자 양 검사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이게 어디서, 너도 내가 이러고 있으니깐 우습냐?”
“형, 그게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빽 잘 잡았다는 소문 돌더니 서울 가서 살만 한가 보지? 화무십일홍이라고 너도 언젠간 다시 여기 구석방에 쳐 박힐 테니 괜히 쓸데없는 것들 들쑤시지 말고 고려인지 조선인지 하던 거나 잘 해라. 하긴 그 놈들이 순순히 물러설 놈들도 아니지만.”
뿌득뿌득 소리를 내며 양 검사가 전자담배를 세게 씹어댔다.
“이번엔 진짜야. 빽도 아니고 중간에서 멈추지도 않을 거라고. 고려 반 회장 소환되는 거 봤잖아. 조만간 조사 끝나면 다 잡아들인다니까. 윗선 압력도 외부의 방해도 없어. 이번엔 진짜라고.”
“헛소리 그만 해. 내가 그 얘길 여기 검찰 들어와서 귀에 인이 박히게 들은 소리가 바로 그 소리야. ‘걱정 말고 끝까지 해라’, ‘사명심을 가지고 해라’, ‘네 소신대로 해라’ 훗, 너도 겪어 봤잖아. 하다못해 동네 유지를 잡아넣으려고 해도 여기 저기 별의 별 군데에서 압력 들어오는 걸. 대통령 바뀌었으니 소환까진 할 수 있었겠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그중 하나라도 잡아넣거나 처벌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가둔다 해도 병보석이니 가석방이니 해서 한두 달 있다 다 풀려난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이 나란 끝났어. 정의니 도덕이니 그딴 건 세상에 없다고. 군림하던지 아니면 굴종하던지. 그거 두 개 뿐 선택지는 없다고.”
“내가 하면 어떻게 할래? 나 조 가치야. 십년 넘게 뺑뺑이 돌면서 이 지옥 같은 검찰에서 버틴 조 가치라고.”
“조심히 발음해라. 죄다 욕으로 들린다. 그리고 넌 앞으로 십년 정도 더 버티다가 나이 땜에 결국 쫓겨나거나 깜빵 구경이나 하겠지. 지금 하는 꼴을 보아하니 네 팔자는 그거밖에 없어. 뭐 믿고 그렇게 설치니. 그거 다 헛 거야.”
“쌈빡하게 죄 있는 것들 다 잡아넣으면 끝 아니야? 그 동안 못한 건 그거잖아. 죄 있어도 빽 있고 돈 있음 죄가 없어지는 거. 지금은 아니라니깐. 잘못이 있으면 잡아넣을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제대로 미쳤군. 시끄러우니까 그만 가라. 대통령 빽 믿고 네가 그러는가 본데 그래봤자 너도 걔들이 보기에 소용가치가 없어지면 금방 버려질......”
벌컥 문이 열리며 이 율래 비서관이 들어오자 양 검사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방 찾기가 왜 이리 어려워. 어 양 검사님, 오래간만입니다. 하하하!”
“어, 어......”
놀란 양 검사가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조 검사가 끼어들었다.
“저 형 땜에 이 새벽에 내려왔다고. 얼마나 재촉했는지 알아? 휴게소 한번 못 들리고, 쯧!”
“야야, 나도 화장실 못가서 간신히 버텼거든! 하하하, 양 검사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그때 수원지청에서 잠깐 뵙고...... 어휴 벌써 십년이 다 되어가네요. 저 화장실에 있는 동안 조 검사가 대충 말씀을 드렸죠? 대통령님이 선배님 좀 뵙고 싶어 하십니다. 뭐하세요, 얼른 가시죠. 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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