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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좋소기업 이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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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1
최근연재일 :
2021.05.16 22:5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629
추천수 :
50
글자수 :
21,943

작성
21.05.16 22:56
조회
72
추천
6
글자
9쪽

김치찌개에 김치를 싸서 드셔보세요!

DUMMY

“으으으윽...”


주마등.

생사를 오가는 기로에 선 사람이 겪는 것.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매 안쪽으로 지금껏 살아온 회한 가득한 삶이 펼쳐진다.


라키움의 마탑에서 수련하던 시절.

마나의 재능에 눈을 뜨고, 제국 권력의 중심에 다다른 나날들.

노인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어린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황태자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그러진 분노가 그 자리를 채운다.

결국 쫒기듯 떠나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노년.

부귀영화를 누리던 그의 일가는 삽시간에 풍비박산 났고, 나를 배신한 놈들은 오늘도 하루하루 배를 두드리며 행복하게...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죽는다!

이대로는!


주마등의 편린을 분노로 붙잡은 노인의 의식이 그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온몸을 휘몰아치는 역류한 마나의 흐름.

필사적으로 내리누르며 다스린다.


그것만 수차례.

그의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졌다.

진기를 회복한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 * *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있던 낡은 침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종종 사용하던 것이다.

접이식으로 되어있는 철제프레임 위로 파란색 낡은 매트리스가 놓인 침대.


그곳에 누운 노인을 두고, 십여명의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싼 채 깊은 침묵을 지켰다.


“하아...”


가끔씩 들려오는 긴 한숨만이 지금 상황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이계에서 건너온 그를 좀더 살폈다.

높은 코와 움푹 들어간 눈.

성성한 백발과 긴 수염까지.

유럽인, 특히 게르만인에 가까운 외형.


중세 수도승이나 입었을 것 같은 로브를 걸쳤고, 공손히 배 위에 모은 양손에는 지팡이를 곱게 쥔 채였다.


새하얀 백목으로 만들어진 듯한 지팡이 윗부분에는 정교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 안쪽에 숨은 작은 붉은 보석이 빛났다.


방금 전 소동에서 갑작스레 피를 뿜으며 기절해버린 탓에 바닥으로 떨어진 지팡이였다.

이대리가 슬며시 손을 집어넣어 꺼내온 것이다.

아무리 아닌 척 하더니만, 결국 한번 손이라도 넣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흐흐흐...”


기절한 노인이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으으으...”


곧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


“주마등이라도 보나 본데요?”


여전히 상황파악 못한 김사원이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조금씩 평온을 되찾아가는 표정.


번쩍...!


갑자기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자글자글한 피부가 떨리자 길다란 수염 역시 마구 요동쳤다.


“흐이익!”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급히 몇걸음 물러나자 고개를 들며 몸을 일으킨 노인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αζηρθ, τμφξ?”

[여기가 어디요?]


“어.. 위.. 어 굿 피플!”

“봉쥬르..?”


애처로운 외국어실력이 총동원되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침대에 앉은 이계은 촌로 역시 그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 듯,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가 한쪽 손을 허공에 들어올렸다.

이리저리 허공을 휘젓고 이내 얼굴을 찌푸린다.


손 끝에 미약한 푸른빛이 감돌자, 또박또박 외치는 짧은 단어.


“ΨΩαβ! θιρστ! χτρμπ!”


순간 그의 손에 어른거리던 푸른 빛이 가까이 있던 몇 명의 머리로 쏘아졌다.


“으악..! 뭐야!”


놀라 제 머리를 만지는 직원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손으로 만져본다.

마치 유령처럼, 그대로 통과해버리는 손.


실처럼 뻗어진 얇은 빛이 무언가를 빨아들이듯 노인의 손으로 꿀렁대며 움직였다.

그리고 몇 초 후.


“여기가 대체 어디요? 당신들은 누구고?”


노인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잠시동안 서로를 마주 본 직원들이 폭풍같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저기 문이 대체 어디로 연결된 겁니까?”

“한명이 저기에서 사라졌는데 어디로 간거죠?”

“선생님이 방금 하신 건 뭡니까!”

“어떻게 갑자기 한국말을 하신거에요?”


“허...”


아우성치듯 몰려온 질문들.

잠시 머뭇거린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곳의 마나분포가 대단히 희박해서, 최소 시전조건 충족에 반신반의했네만, 기초적인 수준의 통역마법은 다행히 어렵지 않게 가능하더군.”


“마.. 마법이요? 진짜 마법이라는 말입니까?”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한번 보여주려는 듯 손에 푸른빛을 모으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며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해한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띈 그가 손에 서려있던 푸른빛을 흔들어 없앴다.


“내가 살던 곳에서도 마나의 흐름과 마법은 경외의 대상일세. 모두가 이렇게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살짝 자부심이 뭍어나오는 그의 말.

그 때였다.


“꼬르르르륵...”


마나연공법은 신체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역류한 마나를 다스리는데 어마어마한 진기를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방안에 누구도 없었다.


“배가 고프군. 혹시 먹을만한 게 있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어.. 잠시만요.”


김사원이 재빨리 핸드폰을 켰다.


“어디보자.. 번쩍배달, 음..

제일 빠른 걸로 시킬게요!”


우리회사의 몇 안되는 ‘식량’은 대부분 탕비실에 있었다. 조그만 냉장고와 그 위에 올려진 컵라면, 과자들..

이제 그 탕비실을 다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잠시 가슴이 쓰렸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이른시간의 첫 개시인 듯, 주인사장이 직접 가져다준 백반은 따끈했다.


김사원이 밥을 받으러 1층으로 내려간 사이 최부장이 재빨리 움직였다.

한구석에 세워져있던 접이식 테이블이 펴자, 이내 순식간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돼지고기김치찌개와 네다섯종류의 반찬, 따뜻한 밥이 차려졌다.


세계에서 제일 급한 민족의 배달음식.

노인 역시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연신 문을 쳐다보았다.


아.. 메뉴를 본 순간 깨달은 문제.


“야.. 그 외국분이신데... 백반을..”


“여기가 제일 맛집입니다.”


어깨를 으쓱한 그가 노인에게 식사를 권했다.

숟가락을 들어 찌개를 뜬 그의 눈이 빛났다.


“어디.. 매콤한 포크스튜인가? 음.. 으음???”


한숟갈 뜬 그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숨죽여 그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의 입에서도 작은 환호성이 터졌다.


"맛있죠?"

“김치! 김치도 같이 드셔보세요!”


“야! 김치찌개에 김치를 같이 먹으라고 하면 어떡해!”


“넌, 안 그래?”


“어.. 그러긴 하는데..”


한국인의 김치사랑이 드러나는 대화를 무시한 채 허겁지겁 김치찌개를 먹는 노인.

땀을 흘려가며 순식간에 찌개와 밥, 반찬을 모두 비웠다.


“내 한평생.. 이렇게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네. 죽기 전까지 계속 이거만 먹고 싶을 정도였네.

고맙네."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얼굴가득 떠올랐다.

뒤쪽에선 흐뭇한 미소를 지은 김사원이 자기는 다 안다는 듯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다소 늦은감이 있는 노인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내 이름은 마르키스 클레르송이네.

편히 마르클이라 불러주게. 직업은 전직...

뭐, 지금은 그저 시골마을의 노인이고.”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쪽이 스스로를 소개했으니 이제 우리가 소개할 차례였다.


“저는 주식회사백산기공의 사장, 백성수입니다.

이쪽은 저희 회사 직원들이고요.”


“주식회사... 라면, 길드 같은 거로구만.”


길드? 길드는 게임에나 있는거 아니야?

순간 당황한 내 앞으로 누군가 나섰다.

그 어느때보다 침착한 표정의 윤대리.

눈빛마저 살짝 반짝이는 모습이 평소와 완전히 다른사람처럼 보였다.


“네 비슷합니다.

그리고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드리자면, 선생님의 세계와 저희의 사무실 사이에 포탈이 열린 것 같습니다.”


쟤.. 원래 저렇게 말을 잘하던 친구였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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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3 S수미르
    작성일
    21.06.06 00:02
    No. 1

    와.. 은찬 작가님.
    이 글은 너무 기발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표지까지 직접 그리셨군요.

    역시 예사분이 아니셨습니다.
    끝까지 정주행 할게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청강철
    작성일
    21.12.26 17:17
    No. 2

    선생님 표지 보고 들어왔는데 여기서 끝이라니요 감질맛을 얼마나 뿌리신거에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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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찌개에 김치를 싸서 드셔보세요! +2 21.05.16 73 6 9쪽
5 백산기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21.05.15 78 8 8쪽
4 문명인의 대가리는 얼마나 단단한가 21.05.13 80 7 9쪽
3 저게.. 대체 뭐랑 연결된거야? 21.05.13 89 8 8쪽
2 진짜 미안한데, 우리 망했어 21.05.12 109 10 9쪽
1 [프롤로그]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1 21.05.12 201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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