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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좋소기업 이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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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1
최근연재일 :
2021.05.16 22:5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628
추천수 :
50
글자수 :
21,943

작성
21.05.13 23:11
조회
79
추천
7
글자
9쪽

문명인의 대가리는 얼마나 단단한가

DUMMY

백산기공의 낡은 파란색 점퍼.

사뭇 회사란 큼지막한 로고가 등짝에 박힌 촌스러운 잠바가 하나씩은 꼭 있어야 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살아생전 모두가 입고 다니길 바라는 마음에 이름까지 하나하나 자수로 박았던 아버지.

손수 전직원에게 입혀주었지만 그 다음 날부터 누구 하나 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구려요. 완전”


막내로 막 들어왔던 디자인 담당 이혜원 사원이 보기만 해도 괴롭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가끔 내가 연차를 내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나러 올 때면, 파란색 점퍼는 늘 직원들의 의자에 뒤집어진 채 걸려 있었다.


“흐흐흐.. 멋만 있구만, 다들 풍류를 몰라!”


사무실과, 공장, 거래처를 활보할때마다 늘 입고 다니셨던 아버지.

그러다가 과로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 옷을 입고다니던 사람은 단 한 명, 아버지 뿐이었다.


제집안 돌보기보다 회삿일에 더 열심이던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점퍼를 입기 시작했다.


푸른색 점퍼를 입은 십수명의 사람들이, 반짝이는 햇살이 들어오는 조그만 문을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백산기공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점퍼.

싸구려 재질의 그 옷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반짝인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소리는 들리는데 공기는 막아주는 투명한 막이라는게.. 무슨 ‘쉴드’도 아니고. 그게 가능할까요?”


두꺼운 안경을 쓴 윤대리가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핸드폰을 붙들고 사는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직원 몇 명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윤대리, 뭐라고? 쉴드? 방패말이야?”


이대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저게 아무리봐도 자연적인 현상 같지는 않아서요.. 제가 보던 소설속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 그 .. 쉴드라는게 있었던.. ”


내성적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투에 사람들의 시선이 답답해지자, 이내 윤대리의 말이 서서히 음소거하듯 잦아들었다.

학창시절 게임을 종종 즐겨했던 터라 그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쉴드'는 마법의 일종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나는 상황을 조금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고 주임이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는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근데 그 전에, 일단 의견을 모아봅시다.

이 상황에 대해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다들 말씀해주세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은 내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미 회사는 파산이나 다름 없었다.

저곳이 어딘지, 저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사라진 직원을 구하고 나서 생각할 일이었다.


“일단, 혹시 모르니까 탕비실 문은 절대 닫지 않는 게 좋겠어요.”


이대리의 아이디어에 몇 명의 직원이 급히 소화기를 들고 와 열린 문 끄트머리에 붙여두었다.

바깥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최부장이 문 너머, 언덕아래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근데 저기.. 저 집 말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우리나라가 아닌거 같습니다.”


“음... ”


침음성이 절로 나왔다.

분명 대단히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녹음 사이에 보이는 산아래의 마을과 그곳을 바삐 움직이는 조그마한 사람의 형체까지.


“사장님. 저 건물 말입니다., 하프팀버(Half Timber) 같습니다.”


확신에 찬 최부장의 한마디.

몇 명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하프팀버? 그게 뭐야?”

“하프물범 같은 거 아니에요?”


김재철의 웃기지도 않은 드립에 재빨리 주먹을 든 안차장이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귀엽다구요 그거...”


쥐어박힌 뒤통수를 문지르며 변명했지만 어디에도 그의 편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김재철을 노려보던 안현우 차장이 되물었다.


“형님, 근데 그 하프팀버라는게 뭔디요”


“아니, 예전에 명예회장님이 나 보내주신 신혼여행 말이야. 그때 제일 가고 싶어 노래를 불렀던 프랑스로 보내주셨을 때.

거기서 프랑스 전통마을에 들렀었거든... 요”


안차장에게 대답하던 중 모여있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다소 당황한 그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진다.

밤낮으로 고생해온 최부장을 아꼈던 아버지의 유럽신혼여행 통큰지원.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간 미혼남녀들이 빗발치는 소개팅을 추진했지만 결혼에 골인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실 그때 핸드폰에서 숨어있던 전여친 사진을 들키는 바람에 탈탈 털린 날이긴 한데, 그래가지고 오히려 가이드의 말을 잘 들었거든요?”


집중된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고민영 주임이 실종되고, 탕비실이 웬 마을이랑 직통으로 연결된 이 급박한 순간.

가정사가 여기서 왜 나오냐고!


아무리 평소에 말이 많고 쓸데없는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양반이라지만!

영업에 꼭 필요한 스킬이겠거니 하며 놔두었더니 지금 이순간까지!


살기를 느낀 최부장이 급히 말을 이었다.


“히익.

여 ..여튼 그래서 프랑스 알자스 지방, 거기서도 제일 오래된 리크위흐 지역인가 그랬는데 거기서 보고 설명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저 뒤쪽에 반쯤 가린 건 하프팀버 초기 양식처럼 보입니다.”


“저도 그런거 같긴 한데. 무슨 저게 민속촌이거나 그.. 뭐냐, 청평인가 어디에 있는 쁘띠프랑스? 아니면 파주의 프로방스마을? 뭐 그런거 아니에요?”


이대리의 되물음에 최부장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숨을 고른 그의 표정이 사뭇 어두웠다.


“한 두채만 그런것도 아니고, 마을 전체가 같아요. 저 멀리 조그맣게 다니는 사람들의 복장도 그렇고요. 하다못해 전봇대나 포장도로 하나 없는건 말이 안되죠.

시야가 보이는 공간 전체에 현대문명의 흔적이 하나도 없어요.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탕비실 너머의 저곳은 ... 중세 유럽의 작은 마을 같.. 어?”

“으아아아악!”


설명에 열중이던 최부장이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악!... 흐읍!”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

비명을 지르던 이대리가 도중에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를 줄였다.

넘어진 최부장을 일으켜세우며 문을 향해 시선을 돌린 나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저.. 저게 뭐야!”


필사적으로 온몸을 지배하는 공포를 이겨내며 사람들을 내 뒤로 보냈다.


“오.. 오크?”


두꺼운 안경을 쓴 윤대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λμνξ? τυφ! χψπρσ πρστυτ Ωαβγω?”

[킁킁? 뭐야!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한 생명체가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 숙였다.


2미터.. 50센티는 넘어보이는 거대한 체구와 야성적으로 튀어나온 온몸의 근육들.

구겨진 흰 천옷 위로 대충 재단한 가죽 튜닉을 걸쳤다.

사람 키만한 거대한 곡괭이를 한쪽 어깨에 걸쳐맨 채 문앞에 멈춘 푸른피부의 남자.

어울리지않는 흰색 커프를 뒤집어쓴 머리 아래로 툭 튀어나온 송곳니가 보였다.


‘꾸.. 꿈일 거야, 이거 꿈일꺼라고!’


누가 그랬다. 문명인들이 타인에게 무례한 이유는 도끼로 머리가 쪼개질 염려가 없기 때문이라고.


개소리다.

도끼까지 휘두를 필요도 없어.

그 이전에 곡괭이 한방이면 이 방안에서 공포에 휩싸인 문명인들의 대가리가 한번에 쪼개질 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두꺼운 나무지팡이가 괴생명체의 관자놀이를 그대로 직격했다.


“그롸아아아악!”


아프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괴로워하던 괴물이 다가온 노인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노인.

흰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온 백의의 촌로가 지팡이를 들어 괴물을 후려쳤다!


“μξμν τυτυπφ! χψπρσ ρρμτυτπσγστ?”

[빌어먹을 노친네! 말로 하라고 했잖소!]


송곳니를 곧추세운 녹색 괴물이 금방이라도 노인을 잡아먹을 듯 포효하며 외쳤다.


“ΨΩαβγδ εζηθι ρσ τυξμφ χτ ξμυρμπφ!”

[썩을놈이, 일 끝난지가 언젠데 농땡이야?]


도망치지 않고 같이 소리치는 노인.

모두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황당함이 어렸다.


‘이..이게 지금 무슨 빌어먹을 상황이야?’

‘이.. 일단 말부터 알아들어야 되겠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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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치찌개에 김치를 싸서 드셔보세요! +2 21.05.16 72 6 9쪽
5 백산기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21.05.15 78 8 8쪽
» 문명인의 대가리는 얼마나 단단한가 21.05.13 80 7 9쪽
3 저게.. 대체 뭐랑 연결된거야? 21.05.13 89 8 8쪽
2 진짜 미안한데, 우리 망했어 21.05.12 109 10 9쪽
1 [프롤로그]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1 21.05.12 201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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