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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좋소기업 이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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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1
최근연재일 :
2021.05.16 22:5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625
추천수 :
50
글자수 :
21,943

작성
21.05.12 17:15
조회
108
추천
10
글자
9쪽

진짜 미안한데, 우리 망했어

DUMMY

똘망똘망한 눈빛들이 나를 쳐다본다.

​ ...죽고싶다.


"사장님.. 우리 진짜로 망한거에요?"


이혜원 대리가 확인 사살하듯이 되물었다. ​

고개를 푹 떨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자금 유동성이 제한된다느니, 현금흐름이 경색되었다느니 하는 어려운 말들로 넘겨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뭐, 한 문장으로 잘 요약하면 저 말이었다.


틀린 말 하나 없다.

이 회사는 망했다.

그것도 쫄딱.


비좁은 회의실의 낡은 탁자에 둥글게 모여앉은 십여명의 사람들.

회의실이라고 해 봐야 파티션으로 한쪽 구석을 대충 나눠놓은 공간에 불과했다.

다닥다닥 모인 전직원들의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이내 그 공기를 버티지 못한 중년 남자 두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는 그들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


영업팀의 최명석부장과 안현우 차장이다.

아버지가 직접 스카웃 해온 사람들이자 십년 넘게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소중한 핵심인력.

지금껏 백산기공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온 두 명.


평소라면 또 담배냐며 잔소리를 한바탕 했을 디자인담당 이대리가 마무말도 없었다,

그녀 옆에서 끄덕거리며 입술을 내밀고 팔짱을 꼈을 경리부의 고민영 주임도 오늘따라 그 많던 수다 한마디 없다.


차라리 나를 욕하고, 비난하길 바랐다.

왜 이렇게 시원하게 말아먹었느냐고.

왜 전환사채건, 대표 개인 연대보증이건 간에 투자금이라도 더 끌어오지 못했느냐고.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젠장.


다 알고있다는 눈빛.

사장님은 최선을 다했다는 눈빛.

근데 더 좀 잘하지 쯧쯧 하는 눈..빛?


누구야 저거.

아.. 한놈 뿐이다.


​ 기획담당 김재철.

이 회사의 막내이자 내 후배.

저 또라이는 늘 같은 눈빛이었지.


한성중공업의 최종면접까지 합격하고도 나랑 일해보겠다며 찾아온 미친놈이었다.

그렇기에 더 많이 미안하고, 또 어쩌면 이곳에 함께 오래오래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피식....

자조섞인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백산기공의 2대 사장이자, 창업주의 장남.

백성수 사장.


이렇게 말하니 사뭇 대단한 중견기업 같았다.


현실은 직원 열명 안팎의 조그만 회사.

작은 밀링머신 몇 대를 끊이지 않게 돌아가게 해 줄 특허 몇 개.

마치 구멍가게처럼,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그런 곳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몇일 전 사형선고를 내리고 떠난 한성중공업의 본사 담당자가 떠올랐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뻣뻣한 남자와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뒤따르는 젊은 남자.

백산기공의 물량 대부분을 가져가는 원청, 한성중공업의 장희석 팀장과 그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황인철 주임이었다.


뻥 뚫린 간이 회의실의 탁자위에 무심히 올려지는 서류 몇장.


"사장님. 요,요기, 보세요 직접. 저희 물류창고에다가 요청해서 제가 오늘 바로 떼온 납기일자지역확인서랑 검수납품확인서! 보이시죠?“


나보다 두어살은 어린 젊은 남자가 혀를 끌끌 차며 내려다본다.

얇은 스트라이프 줄무늬가 들어간 고가의 수제 맞춤정장. 미끈하게 뻗어내린 에르메스 넥타이를 단정히 고정하는 넥타이 핀까지.


"백산쪽 납기가 아주 개판이에요, 개판."


가볍게 입꼬리를 올린 젊은 남자가 이죽거린다.

​ 왜 이러는지도 알고, 이 갑질이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저.. 장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만은.. 검수쪽에서 계속 트집을 잡아 어쩔 수 없이 납기가 늦어졌다는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불량률도 기준치보다 훨씬 아래고요.”


막아야했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그렇기에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하.. 진짜, 지금 그게 사과에요? 아니 뭐, 됐고 지금 저랑 농담따먹기라도 하고 싶으신가 본데, 어차피 오늘 저는 한성측의 본사 회의 결과를 전달드리러 온거니까요.

계약서상 단서조항의 위반! 잦은 납기일 미준수에 저희쪽 SCM(공급망관리)도 제대로 못따라오는 상황이고..

계약조건에 따라 이번생산로트는 싹 폐기하고, 잔금은 불량률과 납기일 지연으로 인한 손해 대금에서 상계처리 할꺼니 그런줄 아세요.”


주루룩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

무심한 표정으로 사형선고를 내린다.


번쩍거리는 몽블랑 서류가방에서 나온 얇은 한 장짜리 종이.

방금전 그가 뱉어내듯 통보한 계약해지통보서가 나를 향해 슥 밀어진다.

목에 들어온 칼날처럼,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내용 확인하시고, 인감날인하세요. 뭐, 싫으시다면 본사법무팀으로 이관될 껍니다.

개인적으로는 그편이 더 즐겁겠네요.”


“후.. 후배님. 이러지 마시고,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다시한번만 말씀을 잘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다음주 초가 우리 직원들 월급날입니다. 제발..”


아무 소용 없다는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이 방법밖에는 없으니까.

머리를 겨우 가려주는 파티션 너머, 별로 많지도 않은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울려퍼지는 소리.


“후배? 아이 씨발.

누가 후배야 후배는!”


얼굴이 붉어진 그가 욕설을 내뱉는다.

함께 데려온 황주임을 다분히 의식한 모양새.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한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중공업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미래전략팀.


그곳에서 우리는 경쟁했고, 나는 늘 이겼다.

아버지가 쓰러지며 급히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퇴사하는 그 순간까지도.


모두가 박수쳐주며 그간의 노고를 칭찬하던 마지막 날. 저 멀리 사무실 뒤편에서 죽일 듯 노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몇 년 후, 오르지 않는 매출과 이어져 온 빚에 허덕이던 나는 한성중공업의 러브콜을 거절할 힘이 없었다.

그것이 독이든 성배라는걸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결국 이럴려고 맺은 계약이었던 걸까.

벌떡 일어난 박팀장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뭐, 선배님이 맞긴 하니까.

그간 고생 많으셨네. 우리 선배."


이내 따라온 실무자에게 눈짓을 보낸다.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은 주겠다는 것이다.


단호하게 돌리는 발걸음에 넓지 않은 사무실 문을 박차고 순식간에 나가버린다.

간이 회의실 바깥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남아있던 황주임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가슴팍에 매달린 영문의 HANSUNG 뱃지가 빛에 반짝거렸다.


“하.. 대리님. 제가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괜찮아. 너 잘못도 아니고.”


한성중공업에서의 마지막 직급으로 나를 부르는 황주임.

그걸 바라보는 내 코끝도 뒤따라 찡해졌다.

그곳에서 보낸 마지막 삼년간 함께했던 부하.

나를 가장 잘 따랐던 팀의 막내가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떠듬거리며 이어지는 변명.


“대리님. 회장님 아드님이 이번에 새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한성 인프라코어.

이쪽 물량 포함해서 하청회사 열곳 이상의 물량이 싹 그쪽으로 빠진답니다.”


“아..”


... 결국 그렇게 된 거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연신 고개를 숙이는 황주임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이후 몇일동안,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보려 동분서주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백산기공의 모든 임직원이 손꼽아 기다리는 월급날 아침에 이곳으로 모든 직원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 * *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쉰 고민영 주임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안되는 직원들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는 일.

카페인이라도 좀 집어넣어야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보며 속삭이는 직원들을 헤치며 도착한 곳은 탕비실.


작은 싱크대에 오래된 연식의 냉장고, 청소도구 따위를 모아놓은 비좁은 방 한켠에는 커피포트가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쩍! 화아아아악!


강렬한 빛이 퍼지며 크지 않은 회사 전체가 광휘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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