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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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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18
추천수 :
1,474
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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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2 13:00
조회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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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21쪽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10

DUMMY

“아냐, 그 아이는 분명 죽었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강현의 첫째 아이는 분명 그날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거대한 인과로 정해진 것이었으며, 그 일이 있었음에도 계속 살아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제물로서 바쳐졌지...’


이 세상의 역사는 상실의 역사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파괴해야만 한다.

모든 것이 다 타고 남은 재로서 빚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세계다.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 아이에게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은 부분이 있다면?


그때의 저주가 여태 사라지지 않고 남아, 그의 막내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만약을 생각해본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 저주엔 분명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까.

‘장자의 죽음’을 이루려는 저주가 어째선지 그 육신만큼은 철저히 지키려 든다.

마치 망가뜨리고자 하는 건 오직 그 정신뿐이고, 그 육체는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설마 육체는 죽었는데 아직 정신이 남아있다는 건가? 그것도 코르의 무의식 깊은 곳에?”


강현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것 이외의 답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아들을 정신적으로 죽이려 했던 자신의 작태에 욕지거리를 했다.

그리고 가장 역겨운 건... 그 아이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 기대를 거는 자신이었다.


“짜증나는군. 대체 난 그동안 뭘 해왔던 거냐! 이번에도 알아도 바꿀 수 없다는 거냐...! 얼마나 더 알아야 하느냐! 얼마나 더 치밀한 계획을 짜고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하느냐...”


자신이 여태 해온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전제에 당면하자 강현은 차라리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 없었다.

설령 그 앞에 절벽이 있을지라도, 눈이 가리어져 수없이 곤두박질치게 될지라도 지금은... 제 날개를 믿고 뛰어내려야할 때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 그래! 네 장단에 놀아나 주마.”


누군가의 장기말이 되어도 그 끝에 제 가족의 안전이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고, 되어줄 수 있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설령 이 길의 끝에서 코르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를 대신해 아비 역할을 해줄 존재가 곁을 지키고 있으니 괜찮을 거다.


“으득! 누군가 가장 바라고 또 원했던... 가장 지키고 싶었던 자리를 가져갔다면 최선을 다해야할 거다.”


강현은 신분증을 만들어 달라며 제 아들이 보내온 사진을 노려보며 낮게 읊조렸다.


“언젠가 그 자리를 돌려받기 위해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너는 그래야 할 거다.”


그렇게 시리우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추하기 위해 시작된 길고 긴 문답은 당사자에게 닿지도 못할 ‘으름장’으로 끝났다.


언제나 제 삶을 모든 순간을 선택하길 바라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인정받고픈 인간에게 마지막의 마지막에 선택지를 쥐여준다면 그 선택은 과연 신의 뜻일까, 아니면 인간의 의지일까.


강현은 장고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시엘.”


[예, 마스터.]


“무림의 의뢰를 받는다고 전해라. 광원을 통해 사람을 보내.”


강현은 자기연민의 시간은 이걸로 끝이라는 듯, 외투를 걸치며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 뭉그적댈 시간 따윈 없었으므로.


[하지만 분명 더 이상은 무리라고...]


“그래서 하는 거다. 권능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으면 코르도 조금은 얌전해지겠지. 가능하다면 사도를 들이게 하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무리겠지.”


마침내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된 강현은 그의 권능, 운명개변과 특성인 확률조작을 사용해 가장 좋은 길을 코르에게 쥐어주었다.


[마스터,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습니까? 틀림없이 미움 받을 것입니다. 이 모든 걸 들키는 날엔 절연이라도 당하는 것이 아닐지...]


“설령 원망 받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이번엔 절대 잃지 않을 거다.”


어딘지 자신과 닮아있는 그 모습에 시엘은 더는 묻지 않고 그저 복종하기를 택했다.

인도자의 선택을 받은 길잡이의 왕은 언제나 옳을 것이기에.

그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자(Fail-Not)’였으니까.


***


“광원 씨가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에요?”


하티와의 대련이 끝나고 얌전히 집에 머물며 빈둥거리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 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매달 내게서 불을 받아가기 위해 오긴 했지만,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에, 그가 찾아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그의 방문은 반가움과 동시에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평소와 같으면서도 다른 용건입니다.”


그는 가방에서 평소와 다르게 생긴 화로를 꺼내며 답했는데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최소 기원전의 물건이라고 짐작케 했다.


“이게 뭐죠? 평소의 그 베스타의 화로랑은 많이 틀리네요. 무늬를 보니 동양 쪽 같은데...”

“바로 부탁드립니다. 꽤나 급한 일이여서요.”


이에 호기심이 든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설명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익숙하게 화로에 불을 담으며 생각했다.


‘동양에 불과 관련된 신물이 뭐가 있더라?’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바로 이 화로의 상세정보를 확인해보려는 거다.


그런데...


“사, 상태... 어, 어라?”


어째선지... 눈이 자꾸 감겼다.


“코르 님, 푹 쉬십시오. 그럼 한결 괜찮아지실 겁니다.”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로 광원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제가 할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부디.”


그답지 않게 확신에 차있지 않은 말투였다.


“두려워 마십시오. ‘실패하지 않는 자(Fail-Not)’의 밑에 선 이는 언제나 ‘불안해하지 않는 자(Dread-Not)’인 법이니.”


광원은 코르의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명을 입에 올리며 희미하게 뜨여진 코르의 눈을 살며시 감겨주었다.


***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내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가 옮겨준 모양이다.


“뭔가 데자뷰가...”


요즘 누가 자꾸 나를 침대로 들어 옮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나저나 왜 이리 어둡지? 불을 좀 켤까...”


방의 불이란 불은 죄다 꺼졌는지 너무 깜깜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자 나는 작은 불씨라도 만들고자 평소처럼 권능을 사용했다.


─픽! 픽! 푸쉭-


“부, 불이 안 나와.”


하지만 성냥을 연상시키는 미약한 불이 잠시 번뜩이다 이내 푸쉭- 하는 볼품없는 소리와 함께 꺼져버렸다.

처음 겪는 상황에 나는 갑자기 반신 불구라도 된 것 같았다.

화력이 너무 세서 조절에 애를 먹은 적은 있어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시리우스, 나 좀 이상해! 일로 좀 와봐...!”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시리우스를 크게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시리우스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와의 계약의 실을 추적했고 그제야 침대 머리맡에 검으로 돌아간 시리우스가 놓여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게 뭐야... 대체 시간이 얼마나...”


아무래도 내가 잠이 들고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나보다.

최근 시리우스한테 피를 먹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장된 혈액을 다 소모하고 저렇게 돌아가 버린 것을 보니 말이다.


“광원 씨는 또 어디 간 거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분명 그 이상한 화로에 불을 주입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특이하게 생긴 그 화로에 호기심을 느껴 상태창을 확인해보려다 그대로 기절해버려 이후의 기억이 끊겼다.


“몸이... 많이 피곤했던 건가? 그래, 그래서 그런 걸 거야...!”


하티와의 대련의 여파가 아직 몸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권능을 이용해 불을 나누기까지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리버스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약 이틀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이외에도 광원 씨로부터 몸조심하라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평소의 약 5배에 달하는 거액의 포인트가 입금되어 있었다.

아마 할당량 이외의 일을 시킨 것에 대한 위로금 혹은 성과금인 것 같다.


하지만 평소라면 나를 기쁨의 춤을 추게 했을 그것이 지금의 내겐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만약... 내가 이대로 권능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마치 내 정체성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하여, 나는 아무도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웅크려 숨었다.


-웅크려 숨은 이불 밑에 있는 것이 너의 안식처더냐.


평소처럼 나를 훈계하는 목소리의 말이 내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려는 거지? 가지 마... 좀만 더, 내가 잠들 때까지만이라도 좋으니까... 목소리를 들려줘. 여긴... 너무 어둡단 말이야.”


어두우면 피트 기관을 다시 사용하면 될 텐데도 역시 그건 싫었다.


-하아~ 이번뿐이다.


그런 나의 칭얼댐에 목소리는 처음으로 어리광에 어울려주었다.


“오늘은... 친절하네.”


그때, 꼬르륵 하고 배가 울린다.


-일단 힘들어도 무언가 먹는 것이 좋겠구나. 정 힘들면 그를 깨워도 좋겠지.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창피한 감정이 올라왔다.


***


그때의 걱정이 다 기우였다는 듯, 며칠 쉬는 것만으로 나는 다시 팔팔해졌다.


그동안 몸을 너무 험하게 굴린 탓일까?

권능의 사용은 여전히 잘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일상생활에서 권능을 쓰는 일은 대장장이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곤 없었기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동안 목소리는 나를 달래듯이 내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SS랭크, 결코 낮은 랭크는 아니었지만 전 지구인이 사용할 불을 나 혼자서 짜내는 것엔 역시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권능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더는 무섭지 않았다.


“야장일은 당분간 강제 휴식이네...”


내 단조로운 일상에서 제작이 빠지자 남은 것은 이제 검술뿐이었다.

하티와 싸우며 느꼈던 그 감각, 마나를 다루는 흐름, 몸을 움직이는 궤적.

그 모든 걸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지금이 그렇게 나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시리우스! 대련하자!”


나는 곧장 시리우스를 찾아갔다.


“코르,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몸이 정상화된 지 얼마나 됐다고.”

“무려 한 달이나 지났지!”


그날로부터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이 한 달 동안 하티와의 대련에서 얻은 대부분을 것을 소화시켜 진정한 내것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연습은 하루도 빠지면 안 되는 거라고 시리우스 네 입으로 그랬잖아.”

“제가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때의 절 때려주고 싶네요.”


근 한 달간 이어진 강행군에 시리우스는 이제 대련 소리만 나와도 산책 대신 목욕하자는 말을 들은 개처럼 경기를 일으켰다.


항상 무언가를 하자고 조르는 건 그였고 시달리는 건 나였기에 나는 이 뒤바뀐 상황이 적잖이 맘에 들었다.


“코르.”

“또 왜!”

“관리자가 세상을 창조한 창세의 7일 중 마지막 날을 왜 안식일로 지정하여 쉬었다고-”

“됐고 빨리 나와.”


시리우스는 오늘 하루라도 꿈 같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 세상의 창조설화까지 들먹이며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그 모든 설득을 듣기 싫다는 한마디로 묵살했다.


“아아......”


이에 시리우스는 마치 일주일 뒤 운석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내가 지었던 것과 흡사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절망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다.

솔직히 약간은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나도 내 검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나는 언제나 온전한 나만의 것이 갖고 싶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내 것을.

이제 곧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 들떠있는 내게 타인의 사정을 봐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감각도 완성됐고 형도 조금 잡혔지만 뭐든 서두르면 체하는 법입니다. 이미 충분히 빠른 속도에요. 조금만 천천히 가도 아무도 뭐라 안한단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르의 ‘감각’을 일깨워준 시리우스는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을 느꼈다.


‘이건 곤란해요... 자극이 들어오는데 고통인지, 쾌락인지 분간이 안 가...’


그동안은 너무 큰 실력차이로 인해 맞을 일이 없어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마침내 ‘초감각(超感覺)’을 완성한 코르에게 하티의 ‘형(形)’까지 더해지자 아무리 검의 극한자라고 한들 대련에서 부상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계약의 영향으로 인해 그에게 조금의 상해도 입히지 못하지 않은가.

아무리 실력 차가 나더라도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감각을 제대로 느끼게 지 얼마 되지 않음을 아시잖아요... 더 이상은 자극이 너무 강하단 말입니다.”


시리우스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나름의 논리로 자신의 상황을 피력하려 해봤지만 한 달 전과 비교하여 사악함의 함량이 약 23% 가량 증가한 코르는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시리우스.”

“불안하게 왜 웃으시나요...”

“시작은 네가 했으니 끝은 내가 맺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잠시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감상해줬다.


“조금만 더 어울려줘. 전에 집에서 술을 빚어보고 싶다고 했지? 이게 끝나면 관련 도구들을 사줄 테니까.”

“이... 사악한! 그걸 사주시면 뭐합니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코르, 진짜 로키에 침식되어버리는 것은 아니죠? 전생에 잡아먹히지 말고 환생한 다음세대로서의 긍지를 보여 달란 말입니다! 나의 순수했던 코르가 점점 로키를 닮아가고 있어...!”


로키로 인해 죽은 것과 다름없는 시리우스에게 있어 로키란 단어는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욕설 중 최고 수위에 달하는 욕설일지도 몰랐다.


“네가 시간이 없긴 왜 없... 아!”


나는 시리우스의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되물으려다가 억울함 가득한 시리우스의 얼굴을 보고 이해해버렸다.


우리는 서로간의 생활을 크게 터치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나와 대련이 끝난 후 시리우스에겐 하루의 자유시간이 보장된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내게 부상을 입고 또 이를 회복하기 위해 시리우스는 대련이 끝날 때마다 검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또한 검의 모습으로 돌아간 시리우스는 회복이 끝나도 자신의 의지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없었다.

내 허락이 없다면 그는 영원토록 이지 없는 검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나는... 대련 직전에나 시리우스를 깨웠다.

그의 입장에선 눈을 뜨자마자 자신은 공격을 가할 수 없는데 당하기만 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졌다가 대련이 끝나고 좀 휴식할 수 있나 했더니 곧바로 검의 모습으로 돌아가 회복을 하고 다시 다음 날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부조리한 상황을 견뎌내야하는 것이다.

근 한 달간 그는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하루 종일 싸우고 다음 날이면 다시 쌩쌩해져서 또 싸움을 벌이는 건 발할라의 에인헤랴르들도 늘상 벌이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들도 저녁이 되면 연회를 벌이며 쉰단 말입니다. 그들도 먹고 자고 쉬고 하는데 전 그조차 없어요!”


그는 한탄인지 푸념인지를 계속 들어놓았다.


참고로 ‘에인헤랴르(Einherier)’는 ‘한때의 전사들’이란 뜻으로 라그나로크를 대비해 신들이 모은 전사들을 말한다.

바이킹들이 싸움 중 용맹하게 죽어야만 발할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건 바로 이 때문으로 신화시대가 한 번 끝났던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싸우는 것의 반복, 어쩌면 이것이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천국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것은 시리우스의 천국이 되지 못했다.


“그... 미안!”


수긍, 납득, 분노의 과정을 거치는 시리우스의 모습에 나는 사과의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음을 깨달을 때,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이는 신 또한 예외가 아니니라.


‘내 잘못이야...’


내가 그를 친구라 생각한다면 조금 더 그의 입장을 생각해주어야 했다.

더욱이 그가 내게 검을 가르쳐주는 것은 온전히 그의 호의에서 비롯된 것인 이상, 이를 내 좋을 대로 이용해먹는 건 옳지 못했다.


“온전한 내 것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들떴었나 봐. 그럼 방해 안 할 테니 쉬어...”


나는 축 쳐진 채 혼자 방을 나갔다.


-혼자 열을 올리다, 혼자 기가 죽는 모습이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구나. 뭐, 너는 그걸로 좋다. 신은 본디 어린아이와 같은 법이니, 언젠가 네가 도달해야하는 모습도 이와 닮아있다.


풀이 죽은 내게 ‘목소리’는 다시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붙잡는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대체 왜 그리 조급해하시는 겁니까? 코르의 성장이 빠르단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에요. 무언가 목표라도 있나요?”


풀이 죽은 내 모습이 무던히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하티와의 대련 이후, 계속 생각했어. 제대로 성장하려면 적당한 위험은 필요한 것 같다고. 그래서 이번에 검술의 대략적인 형을 잡으면 DMZ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보완과 개선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야.”


나는 더 강해지고 싶었다.

하티와 같은 상황이 또 일어날지 모르는데 이번에도 그때처럼 운에만 기댈 수는 없었으니까.


“설마 제가 전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걸 추천한다고 했던 그 얘기 때문인가요?”


내 말에 시리우스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놀라 되물었다.


“그것도 있긴 해.”


더 상위의 경지에 가고자 한다면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야한다고, 그래야 자신이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대련의 여파로 곯아떨어지기 직전의 내게 시리우스는 말했었다.


“하아, 제자가 스승의 말을 따르겠다는 데 더 화를 냈다간 제가 창피를 당하겠군요.”


스스로가 제 무덤을 팠다며 한숨을 쉬는 시리우스의 반응에 나는 기대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바로 시작하도록 할까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짓는 시리우스.


“아싸!”


이에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대련을 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주변에 멀쩡한 대련장이 있던가요?”


시리우스는 지하에 마련된 연무장이 우리의 잦은 대련으로 인해 망가져 수리에 들어간 것이 떠오른 듯 반색하며 말했지만 언제나 우리는 방법을 찾아왔고 찾아낼 것이다.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세상 모든 대련장이 망가졌으면 하는 시리우스의 간절한 마음을 놀리기라도 하듯 저번에 하티와 함께 대련했던 그곳의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이 마침 오늘 아침에 온 것이다.


“하티와 대련했던 협회 대련장 수리가 다 끝났다더라. 우리가 그 영광스런 첫 이용객이 되어주자고.”

“전혀 영광되지 못해요... 오딘의 ‘영광’의 자식이었던 제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고요.”


그는 툴툴대면서도 착실히 내 뒤를 따랐다.


마침내 도착한 협회 대련장.

관리인은 나를 알아봤는지 잔뜩 긴장한 채로 이번에는 제발 조금만 부숴 주십사 하고 숨어서 기도를 올렸다.


우리가 신인데 대체 누구한테 기도하는 걸까? 관리자?’


“으... 코르가 검술의 대략적인 뼈대를 만들고 나면 저도 한 달 정도는 휴식기를 가질 거예요.”


그런 의문은 검을 잡은 시리우스로 인해 잠시 뒤로 미루어야했다.


“그동안 술을 빚든, 여자를 만나든 알아서 하고 어울려주기로 한 이상 진지하게 좀 해줘.”


말에서는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지만 그가 일을 대충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것을 나는 알았다.


‘이거 봐봐. 말로는 힘들다 지쳤다 엄살을 부리면서도 검만 들었다 하면 분위기가 바뀌는데 그렇게 힘들었을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시리우스와 연결된 계약의 끈을 약간 느슨하게 잡는다.

이 정도면 시리우스도 내게 생체기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다.


무언가 달라짐을 느낀 걸까?


“제약을 이렇게 풀어줘도 되는 건가요? 한 번 느슨하게 된 계약은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리우스는 오히려 염려의 말을 보내왔다.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묻는 걸까?


“나름의 믿음의 표현이라고 봐도 좋아. 설마 내가 자는 사이에 내 눈을 뽑아가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나는 그를 믿는다고 답했지만,


“설마 지금까지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어딘지 잔뜩 상처받은 낯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왜, 이제 신뢰한다니까?”

“후우~ 코르가 나름의 신뢰를 보여줬으니 저도 나름의 보답을 해줘야겠죠?”


그는 눈은 전혀 웃지 않은 채 입 꼬리만을 들어 웃어보였다.

누가 봐도 기분이 상했지만, 이를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설마 내가 아까 시작은 네가 했으니 끝은 내가 낸다고 한 걸로 마음이 상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에이~ 설마요. 우리는 ‘신뢰’하는 사이잖아요?”


아아, 어딘지 스산해 보이는 웃음이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늘 웃고 다니는 그였지만 이럴 때의 그의 웃음은 정말로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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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4 +3 22.06.09 165 5 23쪽
63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3 22.06.09 160 7 19쪽
62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2 22.06.08 166 7 30쪽
61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1 22.06.08 176 5 23쪽
60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8 +5 22.06.07 173 9 13쪽
59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7 22.06.07 159 9 16쪽
58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6 22.06.06 163 9 14쪽
57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5 22.06.06 168 9 17쪽
56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4 22.06.05 179 11 22쪽
55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3 22.06.05 173 10 18쪽
54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2 22.06.04 178 9 20쪽
53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1 +2 22.06.04 183 9 15쪽
52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0 +1 22.06.03 189 10 16쪽
51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9 22.06.03 181 9 18쪽
50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8 22.06.02 180 9 15쪽
49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7 22.06.02 186 10 27쪽
48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6 22.06.01 193 11 18쪽
47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5 +2 22.06.01 185 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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