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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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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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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작성
22.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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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3

DUMMY

8월의 어느 날, 그날은 눈이 내렸다.

여름이 시작되어도 진작 시작되었을 계절에, 기온이 높아도 가장 높아야할 날에 첫눈이 내린 것이다.


─띵도옹~


오랜만에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나는 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을 자연히 문으로 향했다.


그 긴 시간동안 우리 집의 방문자는 불을 받으러오는 광원 씨밖에 없었기에 나는 걸으면서 문밖에 서있는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유추하기 시작했다.


‘광원 씨인가?’


만약 그가 온다면 사전에 연락을 넣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히 후보에서 제외됐다.


‘잡상인일지도.’


하지만 잡상인이 오기에는 시기가 좋지 못했다.

방문판매원들이 사라진 것은 꽤 시간이 지난 일이었으며 먹고 살기도 힘든데 굳이 낯선 이를 집안에 초대해가며 물건을 살 이유가 지금 시대엔 없었다.


‘어쩌면 종교인일지도 몰라.’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전도를 위해 오는 사람이다.

자고로 종교는 희망을 거름삼아 자라고 희망을 상품화한다.

그리고 지금만큼 그런 희망이 간절할 시기가 없었다.


‘대부분 사이비겠지만...’


어딘가에는 불을 나눠주는 나를 섬기는 종교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진짜 존재하는 신을 믿는 종교는 사이비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신은 진짜여도 교리는 가짜라니 우습다는 결론을 내리며 손잡이를 잡았다.


방문자가 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희미한 기척과 은은한 흥분감이 이 강철로 된 대문을 뚫고 들어와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뭔가 이상해.’


나는 문을 열려다 말았다.

이제는 마치 내 것 마냥 익숙해진 피트 기관, 그 열(熱)을 보는 감각 기관이 밖에는 아무도 없다고 알려준다.


‘대체 뭐지? 실체가 없다고?’


나는 지금 허깨비를 상대하고 있는가.


“누구세요?”


지금 시리우스가 검으로 있다는 게 아쉽다 생각하며 나는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오늘 난 그와의 대련에서 처음으로 유효타를 먹이는 것에 성공했고 그는 회복을 위해 잠시 검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나는 허리춤에 꽂힌 시리우스를 단단히 움켜줬다.


“......”


돌아오는 답이 없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시리우스에게 유효타를 먹였을 때의 그 감각이 아직 지워지지 않아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상태.


나는 마음을 다잡고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없어?’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다는 것에 긴장하는 것도 잠시, 나는 내가 너무 예민했노라 생각하며 다시 문을 닫았다.

정확히는 닫으려고 했다.


“어딜 보는 거야! 여기라고! 여기!”


문틈 사이로 발을 집어넣고 내 밑에서 소리를 지르는 누군가만 없었더라면.


“어린... 여자애?”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리고 있는 작은 소녀가 제 머리 위에 소복히 쌓인 눈을 그대로 둔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작네...’


아무래도 그동안 덩치 큰 남정네들만 상대하다보니 시선을 위로 하는 것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불청객의 모습에 나는 눈높이를 맞추고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여줬다.


“꼬마야, 길을 잃었니?”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어른스러운 어조였다며 내심 감탄했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퍽.


“억!”


그리고 모든 아이가 그렇듯 자신이 아이라는 사실을 격하게 부정하는 아이에게 정강이를 차였다.


“씁! 그러면 못 써!”


나는 고통을 참으며 ‘어른의 설교’를 시작했다.


고통에는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뼈를 울리는 이 아픔은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눈앞의 이 아이가 한두 번 상대를 걷어 차본 솜씨가 아님은 알겠다.

뼈를 어느 각도에서 때려야 자신에게 부담 없이 상대에게 고통을 심어줄 수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훈계하지 마!”


화가 나는지 발을 구르며 씩씩대는 그 애는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예뻤다.

붉은 색의 대척점에 놓인 듯한 푸르른 눈동자와 북극여우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은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눈 색이 특이하네... 두 가지 색이 섞인 건 처음 봤어.’


두 가지 색이 섞여있는 눈동자는 마치 안에 찰랑찰랑 물이 차 있는 것 같기도 하였고, 그 색으로 인해 푸른 밤하늘에 찬연한 보름달이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스네구로치카(Snegurochka), 이 소녀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된 존재의 이름을 나는 입에 잠시 머금어보았다.


‘차갑다.’


영어로는 Snow Maiden, 눈 소녀 내지는 눈 처녀라는 뜻처럼 차가웠다.


언뜻 일본의 설녀(雪女)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스네구로치카는 설녀와 달리 겨울의 끝에 본인이 녹아 죽는다는 것이 달랐다.


‘녹아서 구름이 된다고 했던가?’


불멸의 존재인 아비를 두고 있기 때문인지, 스네구로치카는 내년 겨울에 다시 만들어진다.

나는 그 애의 머리 위에 마치 구름처럼 쌓여있는 눈에 시선을 보냈다.


─푸스스스.


그 시선에 그제야 자기 위에 눈이 쌓였음을 알았는지 고개를 흔들어 눈을 털어낸다.


‘뭔가 개 같네.’


그 모습이 젖은 몸을 털어내는 개처럼 보여 약간 귀여웠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하티의 첫 만남이었다.

길고 긴 애증의 시작이기도 했다.


나는 아픈 다리를 문지르며 그 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눈앞의 소녀가 환상인지, 유령인지, 사람인지, 그도 아니면 진짜 눈의 여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상태창]


1. 이름(Name) : 하티(Hati)

2. 성별(Sex) : 여성

3. 종족(Species) : 올드 원(늑대-순혈)(알파)

4. 기원(Origin) : 월식(Eclipse)

5. 권능(Warrant) : 달을 삼킨 늑대(Managarmr)(Rank:S+), 지배자(Domine)(Rank:S)

6. 특성(Trait) : 항마(Rank:A+), 저주의 감시자(Rank:S), 아비선망(Rank:B-)

7. 소유 : 후계의 증거-달의 감시자(Rank:A), 리버스폰(Rank:C), 월석(Rank:B+)

8. 계약 : ■■의 그림자(계승)

9. 기술 : 체술(수인족 비전무예-따라오는 달)(A), 무공(소수마공)(B+), 사냥(B+)


“어?!”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감정은 어떤 색을 띠고 있는가.

감탄인가 아니면 탄성인가.

어쩌면 경악을 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라고...?’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소녀, 하티는 틀림없는 다음세대였다.

비록 신은 아닐지라도, 해당 종의 원종(原種)이라 칭송받는 올드 원(Old One)의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짜 신화 속의 하티가 되살아난 거라면 반쯤 신이라 봐도 무방해. 일단 신혈(神血)을 이었으니까.’


그것도 나의 전생, 로키의 피를 이었다.


신화 속에 나오는 하티는 일식을 일으키는 스콜의 형제이자 로키의 자식인 신을 삼킨 늑대 펜리르의 아들로 하티가 달을 물때마다 월식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신화는 동시에 월식이 끝나는 이유까지 설명해주는데 그 이유가 참 재밌다.

달이 너무 차가워 하티가 결국 삼키지 못하고 뱉어버리기 때문에 월식이 끝난다는 거다.

이를 반대로 적용하면 스콜이 일으키는 일식이 된다.

또한 이것은 혹독한 겨울과 더불어 신들의 황혼의 징조 중 하나다.


그런 짐승신이 어째서인지 어린 여자애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권능은 달을 삼킨 늑대, 마나가름(Managarmr). 가름이 사냥개를 뜻하니 마나는 달을 뜻할 텐데... 달과 마나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고대 노르드어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바벨 이전의 언어라는 특성 덕에 어느 정도 뜻이 이해가 됐다.

나는 곧장 권능의 상세정보로 넘어갔다.


[권능: 달을 삼킨 늑대(Managarmr)(Rank:S+)]


「달을 삼키는 이의 전설은 각 신화에 넓게 분포하여 있습니다.

본 권능은 월식에 관한 권능을 통합한 권능입니다.


차가운 달을 견디기 위해 추위에 강한 내성을 가집니다.

허나,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달을 삼키는 존재이니 만큼 마나에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달을 가리는 당신의 존재가 과연 달일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지에 대해 고민해야만 할 겁니다.


-성인식을 치르지 않아 랭크가 두 단계 하락했습니다.」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처음 보는 종류의 권능과 상태창의 향연에 넋을 잃고 그녀의 특성마저 확인하려던 나는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아직 듣지 못했다.


“내가 처음 만나는 다음세대가 짐승신일 줄은 몰랐는데 여긴 어쩐 일이야? 다음세대의 신에 대한 정보는 기본적으로 은폐되는 게 아니었나?”


누나를 제외하고 처음 만나는 다음세대의 존재에 나는 무시 받지 않고자 최대한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며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내가 그녀의 상태창을 보는 사이, 하티 역시 나를 봤는데 그 시선이 마치 달을 보는 늑대와 같다고 느꼈다.


내 물음에 하티는 그제야 내 눈에서 시선을 떼고 입을 열었다.


“네, 네가 할아버님의 다음세대야?”


아무래도 내 질문에 순순히 답해줄 생각은 없나보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할 셈이야? 남의 거처에 찾아와서 자기소개도 하지 않는 건 너무 무례하지 않나?”

“아...! 그, 그게 나는 하티야. 네가 로키 신의 환생이면 로키 님은 펜리르 님을 낳았으니까...”


그런 내 말에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는지 하티는 서둘러 부연설명을 했다.

어딘지 수줍어 보이는 그 모습은 그 나이대의 소녀처럼 보였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수인은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아이의 모습을 유지한다.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단... 긍정해줄게. 전생의 계보에 따르면 우리는 조부모관계가 맞아.”


굳이 전생이라 딱 잘라 말한 건 약간 선을 긋고자한 의도였는데 하티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건지 오히려 밝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킁!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와서 한다는 게 내 주위를 돌면서 체취를 맡는 거라니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한 나는 하티를 밀쳤다.


“뭐하는 거야! 개도 아니고!”


그러자 하티는 아까의 수줍음이 거짓이라도 된 양, 갑자기 돌변하여 나를 살벌하게 노려봤다.


“나를 개라고 부르지 마.”


하티는 그냥 있어도 살이 에이도록 추운 영원의 겨울에 한기를 더했다.


‘피트 기관으로 감지가 잘 안 되는 게 이것 때문이었나...’


내가 평범한 인간보다 체온이 높다면 하티는 평범한 인간보다 체온이 낮았다.

피트 기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일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불쾌감도.


“먼저 무례를 저지른 건 네 쪽이야. 네가 개가 아니면 뭔데? 이 ‘달 사냥개’야.”

“너... 벌써 두 번이나 나보고 개라고 그랬어?! 이익! 세 번은 없어! 세 번은 없다고! 기억해!”


개라고 불리는 게 마치 어마어마한 모욕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티는 추위가 아닌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야말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선 넘지 말라고.”


나는 유머를 사랑하되 선을 넘는 것은 혐오했다.


적정선을 지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덕(美德)이라, 용기가 선을 넘으면 만용(蠻勇)이 되고 장난도 선을 넘으면 괴롭힘이 되듯이 모든 것은 지켜야만 하는 선이 있는 법이다.


난생처음으로 상대보다 우월한 신장을 이용해 상대를 내려다보는 나와 반대로 하티는 도전적인 눈을 들어 나를 흘겨보았다.


“싸우자는 거야?”

“약한 개가 더 잘 짖는다더니.”


신은 서열에 민감하다.

그 어떤 신도 제 권위에 도전하는 존재를 용서하고 넘어가지 않는다.


여기 두 신이 있다.

아직 어리지만 그만큼 충동적이고 먼저 자신을 낮추고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는 두 신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하티는 내가 그녀가 정한 선을 넘어버리자 오히려 싱긋 웃었다.

너무 화가 나서 아예 돌아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그 분위기는 가히 기괴하여 이전보다 섬뜩함을 더해갔다.


“넌... 넥타이가 잘 어울릴 것 같네. 붉은색 넥타이가.”


스산하게 중얼거리는 하티.


넥타이를 선물하는 것의 일반적인 의미는 존경과 소유욕이다.

‘당신을 가지고 싶어요.’라는 의미로 주로 연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물이다.


매일 아침 존경의 의미로 제 대부의 넥타이를 메어주던 소녀는 난생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진한 소유욕을 드러냈다.


─핏!


순간 하티의 다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가 다시 나타났을 땐, 어쩐지 목이 따끔거렸다.

내 손은 저절로 통증이 퍼지는 목으로 향했고 무언가 축축한 것이 손에 닿았다.


“어라?”


끈저억, 소리와 함께 손에 피가 배어나온다.


“하, 하하!”


마치 인주처럼 손에 찍힌 붉은 자국을 보고 나는 실소를 흘렸다.


목이 베였다.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반응도 못했다.


“하하! 아핳하하하!”


신이 아닌 인간의 기준으로도 짧은 생이 방금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그냥 웃음이 터졌다.


고작 이 정도의 상처로는 나도 하티도 죽지 않음을 알지만, 순간적으로 느낀 죽음의 향기가 그 어느 때보다 진해서...

세상에 내가 퍼트린 불이 남아있는 한 내가 진정한 의미로 죽는 일은 없겠지만, 만약 하티의 발이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다면 처음으로 죽음과 동시에 부활을 경험했으리란 사실에...

항상 내 뒤를 쫓아오던 죽음이란 존재가 나를 앞서려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서...


그래서 웃었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이 어이가 없어서 아주 크게 웃었다.


이에 상처가 벌어져 더 많은 피가 흘러나왔고 그 피는 중력을 따라 자연히 밑으로 흘러 내 웃옷을 적셨다.


목욕 끝에 갈아입은 깔끔하게 다려진 하얀 셔츠는 내 피로 붉게 물들어 마치 붉은색 넥타이가 달린 것 같은 모습이 됐다.


그 모습에 하티도 따라 웃었다.


“너 마음에 든다. 나랑 같이 가자. 너 약하잖아~ 응? 방금도 죽을 뻔했어. 내가 지켜줄게. 내가 매일 넥타이를 매어줄게. 산책도 시켜줄 거고, 맛있는 밥도 줄 거야.”


혈향에 취했는지 하티는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이게 일반적인 다음세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가 죽이려고 했으면서 죽을 뻔했다며 보호해주겠다는 그 모순 섞인 말에, 어쩌면 시간이 흘러 나도 그녀처럼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다시 웃음이 흘렀다.


나는 곧장 그녀가 가진 두 번째 권능, 지배자를 이어 확인했다.


[권능: 지배자(Domine)(Rank:S)]


「어쩌면 지배자란 위치는 그 자체로 자신이 신임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본 권능의 주인은 마치 신과 같이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굴복한 이를 종복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타고난 왕으로서 굽히는 이에게 관대하고 굽히지 않는 이를 경멸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결코 굽히지 않습니다.」


‘이 권능 때문인가... 머리가 아파...’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계열의 권능인 모양이다.

하티가 저 정신 나간 소리를 내가 진심으로 들을 거라 믿는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이리라.


“너... 넥타이랑 목줄을 뭔가 착각한 거 아니야?”


나는 가만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 하티를 따라 싱긋 웃어줬다.

하티는 욕을 들어먹고도 오히려 전보다 더 싱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재밌네. 다음세대들 간의 서열전... 성전(聖戰)을 의미하기에 지하드(Jihad)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그래서 넌 몇 위니?”


나는 걸려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 주의다.


다음세대는 어떤 의미로는 짐승과도 같아서 어떻게든 상대보다 위에 있으려 한다.

이는 인간도 같을지 모르지만... 뭐, 인간도 짐승의 한 갈래이니 짐승으로 봐도 무방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제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든 우리가 짐승 같은 면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세상에 신화는 많고 많았고 그들은 그것이 운명이라도 되는 양 서로 끝없이 부닥쳐 왔다.

그런 다음세대의 호승심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성전(聖戰), 지하드(Jihad)의 존재다.

이를 이용해 그들은 서로간의 서열을 정했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진심으로 네가 내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해~?”


하티는 마치 목줄을 잡듯 붉은 물이 든 와이셔츠의 윗부분을 틀어쥔 채 내게 물었다.


“글쎄...”


하티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난 아직 신으로서 나를 자각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확신한다.

내가 겪은 이 반년의 시간, 그 시간의 밀도는 그 누구보다 높았단 것을.

코끼리의 몸을 가진 이가 쥐의 시간을 살아간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 넌 짐승이 불을 이기는 건 가능하다고 보고?”


─고고고고고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한 채로 죽일 듯이 웃었다.

뭔가 서로 안 맞는 부류, 뭘 해도 엇나가고 싸움으로 끝나는 관계, 하티와 내가 그랬다.


“3위.”


하티가 자신의 서열을 입에 올렸다.

대련을 받는다는 의미다.


“리버스에 소속된 다음세대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열은 넘겠지. 그 중에서 3위라...”


자기 위로 고작 두 명밖에 올려두지 않았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하티는 분명 오만했지만 오만해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멋지네. 그나저나 이 넥타이, 목도 안 졸리고 정말 괜찮은 것 같아. 그 보답으로 난 목걸이를 선물해줄까 하는데. 네 목에 절취선 모양으로 목걸이를 둘러주면 아주 좋을 것 같아.”


네 목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나의 말에 하티는 아주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눈은 절대 웃지 않았다.


“꺄하핫! 내가 반지보다 목걸이를 선호하는 건 어떻게 알고.”


나조차 한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가녀린 목에 나도 모르게 손을 갔다대자 하티는 내 옷을 놓고 뒤로 물러나며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보라는 뜻이 담긴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래, 너와 나 사이에 그 만큼 거리가 벌려져 있다 이거지... 하지만 나도 지는 건 끝내주게 싫어하는 말이야.”


두 신의 신경전이 끝을 모를 정도로 과열되어갔다.


“지하드의 방식은?”


서열전이 있다는 걸 알기는 했지만, 그것과 관련된 규칙 같은 건 하나도 듣지 못했다.

수없이 다른 다음세대들과 격전을 펼쳐왔을 하티라면 이 규칙에 대해서도 잘 알 거란 생각에 나는 내 첫 서열전의 상대가 될 하티에게 물었다.


“아쉽게도 정식 서열전은 일 년에 한번뿐이야. 그래도 약식으로나마 대련은 가능하지. 각 협회 건물마다 대련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하티는 말꼬리를 늘이며 차림새를 단정히 했다.


“에스코트를 부탁해도 될까요? 무슈(Monsieur)?”


그리고는 내게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영광입니다. 마이 레이디(My Lady)”


나 역시 이를 장난스럽게 잡아주었다.


서로 정중한 예를 취하면서도 그 안에 깔린 것은 상대를 짓밟고 말겠다는 내재된 폭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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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7 22.06.02 186 10 27쪽
48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6 22.06.01 193 11 18쪽
47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5 +2 22.06.01 185 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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