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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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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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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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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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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4

DUMMY

나는 곧장 광원 씨에게 연락을 넣어 협회 건물을 대절했다.

그는 하티에 대해 알고 있는지 크게 한숨을 쉬긴 했지만 몸을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내 명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렇게 다음세대의 신들이 싸운다는 소식에 협회는 몰려드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관객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몰려온 건지 정말 관객이 많았다.

야구장 크기의 대련장이 순식간에 가득 찰 정도로 말이다.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무얼 하든 시선이 따라붙는 존재니까. 그나저나 넌 다음세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네. 이강현 원로님의 아들이 최근 조직에 복귀했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내가 신이란 걸 자각한 게 얼마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렇게 무례하게 굴었단 말인가.


세상 모든 ‘배려 부족’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말로 몰라서 못하는 경우이고, 나머지 하나는 알면서도 일부러 행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행하지 말고,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아야 하니, 우리는 그것을 보고 나쁘다고 부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다, 하티는 나쁜 년이다.


“왜? 그래서 핸디캡이라도 주게?”

“좋아. 보다시피 나는 무투가. 수인족 비전무예, 따라오는 달을 익혔지만 특별히 이걸 사용하진 않겠어. 기본기만으로 찍어눌러줄게.”

“이런, 내가 기본기에 약한 건 어찌 알고...”


그래도 아주 나쁜 년은 아닌가 보다.

아닌가? 내가 처음 만나는 유형의 존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시작!”


워낙 날치기로 시작되어 관중만 많고 심판은 없는 대련.

경기의 시작을 말한 건 하티였다.

천장이 뚫려 중앙에 소복이 쌓인 눈 무더기 위를 하티는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달려왔다.


시작이라는 말과 동시에 달려드는 그 모습에 목 끝까지 반칙이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입을 열 시간조차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다급하면 가장 익숙한 행동을 한다고 했던가.

나는 현재 내게 가장 자신 있는 특기, 불의 벽을 세웠다.


“불의 신이다.”

“이번에 싸우는 게 불의 신이었어?”


관중석이 시끄럽다.

그들은 싸우는 이들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지하드가 시작된다는 말에 곧장 달려온 모양이다.


-우오오오오오!!


자신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되어있고 현존하는 신들 중 가장 잘 알려졌다고 할 수 있는 내 존재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지명도가 높다고 해서 내 얼굴까지 노출된 것은 아니었는데 현재 리버스에 소속되어 얼굴이 알려진 다음세대는 누나밖에 없다.


‘얼굴 팔리긴 싫은데.’


이건 리버스에서 어떻게든 처리해주리라.

비밀유지서약을 쓰게 하든, 뭘 하든 해서라도.


“이제... 어떻게 할까나?”


나는 안전하게 불의 벽 안에 숨은 채 저 괴물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아무리 내가 현 세계의 최강자에 가까운 시리우스한테 훈련을 받긴 했다지만 체술 A랭크, 무려 극한자에 도달한 무투가를 상대로는 무리야.’


겁을 먹은 게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 그랬다.

심지어 하티는 무공까지 익혔다.

인간이 신에 닿고자, 자연을 닮고자 만든 것을 신인 그녀가 익힌 것이다.


다음세대는 기맥이 없어 무공을 못 익힌다고 알고 있는데 원종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너무 성급했나?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좀 더 상대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했어야 했는데...’


아버지에게 요청하든, 누나의 도움을 받든 간에 어떻게든 상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아야했다.


‘약간 치사하지만 일단 벽 안에서 싸우자. 권능으로 요격하는 거야.’


무술이든 검술이든 아무리 뛰어나도 권능은 그보다 위에 놓인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법칙 중 하나다.


“너 검사 맞아? 그럴 바엔 차라리 활을 들지 그래?”


내가 쏘아낸 불화살들을 여유롭게 피하며 하티가 외쳤다.


“마음대로 지껄여 봐! 어디 그 입이 지져지고도 입을 놀릴 수 있는지 보자고.”


치사해도 나는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겠다.


“하! 그래서... 세상과의 작별인사는 끝냈니?”


그때 무언가가 내 불의 벽을 뚫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권능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잠시 하티의 움직임을 놓쳤고 그 사이 갑자기 벽에서 웬 8개의 흰 점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끝에 손톱이라 불리는 것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 하티가 요격을 뚫고 들어와 내 불의 벽에 손가락을 박아 넣은 것임을 깨달았다.


─촤악~


하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불을 잡고 거칠게 찢었다.

불똥이 흩날리며 벽이 스러졌다.


“미친...”


그냥 불이 아니다.


“권능을 맨손으로 찢었다고?!”


나의 권능으로 만든 불꽃은 단순 열기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물리력까지 품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한 불이 아닌 진짜 불의 벽이 가능한 것이다.

내 불의 벽은 총알 따위는 가뿐히 막아내는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기선제압을 원하는 건가? 맨손으로 불을 잡으면서까지?’


하지만 불의 무서움은 닿기만 해도 피해를 입는다는 것에 있다.

나는 함부로 신의 불에 손을 댄 하티가 어리석다고 속으로 혀를 차며 그녀의 손이 어느 정도의 화상을 입었는지 확인하려했지만.


‘깨끗하잖아...?’


하티의 팔을 물집 하나 없이 빌어먹을 정도로 희었다.


‘이게 소수마공(素手魔功)인가.’


소수마공은 극음(極陰)의 성향을 지닌 무공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이기에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있다.


‘극성까지 익히면 그 팔이 새하얗게 물들어 도검불침(刀劍不侵)에 든다고 하더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항마(降魔)의 특성까지 섞었어.’


그렇지만 단순히 무공 하나에 찢기기엔 신의 불꽃이란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마 하티의 개인 특성인 항마까지 사용한 것이리라.


‘거기에 더해 그녀의 권능인 달을 삼킨 늑대까지 함께 사용했겠지...’


마나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현 세계에 그녀는 그야말로 무적의 신체를 가진 것이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절망하기에도 이르다.


맨손이 아니란 건 그래도 내 불이 어느 정도 통하긴 한다는 뜻.

상성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짐승신이라 그런지 가진바 힘의 크기는 커도 그 격은 내 아래야.’


나의 권능, 로키의 불태움은 권능의 사용 중에 권능의 랭크 이하의 온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해주는 힘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태...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아무리 도검불침이라 한들, 신검인 시리우스의 칼날까지 막지는 못하리라.


‘내가 이긴다!’


가능성을 본 나는 잠시 몸을 도사렸다가 그 팔을 베어버리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파앙!


그때 하티의 손이 갑자기 허공을 격했다.

나와는 이렇게 거리가 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함에 실수를 한 걸까?

그녀가 생각한 내 속도는 그만큼 빨랐던 것일 수도 있다.


‘무슨 짓거리를...!’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수인 그녀가 실수를 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에 나는 일단 멈춰 섰다.

그리고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보내오는 위험신호에 재빨리 고개를 꺾어 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파.


─콰우우우우!!!


‘외, 왼쪽 얼굴에 감각이 없어...!’


제대로 피한 것 같은데 그 여파만으로 왼쪽 얼굴에 얼얼함만이 느껴졌다.

누군가 공기를 뭉쳐 내 뺨을 후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수준차이에 나는 잠시 넋을 잃고 하티를 바라봤다.


그동안 시리우스와의 대련을 통해서 그 감각에 대해 익히지 않았더라면 지금 일격으로 대련이 끝났으리라.


만약 이걸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면 나는 분명 한방 맞고 뻗은 불의 신 따위로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을 당했을 것이란 생각에 속으로 이 시대의 참된 스승, 시리우스에 대한 감사함이 차올랐다.


물론 신의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리버스에서 최우선적으로 막아주겠지만 암암리에 내 흑역사가 널리널리 퍼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너... 귀찮네, 이걸로 기절했으면 서로 편했을 텐데. 엄청 약한 주제에 감각만은 일류야.”

“비전무예... 따라오는 달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녀가 거짓말을 한 걸까?

나는 나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모욕으로 받아들여야하나 고민했다.


“당연히 이건 기본기지! 무의 경지 중 하나라고. 발경(發勁) 몰라? 발경.”


다행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몰라도 나는 거기에 희망을 걸어야했다.


충격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주변에 남은 불길마저 따라서 흩어졌다.

자신을 방해하는 불길이 모두 꺼지자 하티는 아무 거리낄게 없다는 듯이 그대로 내게 달려왔다.


“타죽어도 난 몰라!”


나는 힘을 짜내서 열기를 더했다.

열기에 순간적으로 공기가 팽창하며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하티는 뒤로 날아갔다.


이걸로 1:1이다.


“아악! 귀찮게!”


내 필사의 일격이 고작 귀찮음이라니 조금 상처다.


“적어도... 네 예쁘장한 얼굴에 화상자국은 새겨줘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아.”


아, 이 감정을 뭐라고 하더라?

시리우스와 대련할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호승심(好勝心)?

아니면 내가 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픈 날 것 그대로의 투쟁심(鬪爭心)?

어느 쪽이든 내겐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하?! 해보시던가!”


진심으로 기가 차다는 하티의 표정을 통해 하티 역시 나와 같은 걸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서서히 화력을 끌어올렸다.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열기.


─코오오오!


내가 숨을 내쉴 때마다 호흡에 불길이 섞여 뿜어져 나왔다.


“으아악! 뜨거워!”

“여기는 안전할 거라며!”

“도망가!”


그 열기에 싸움을 구경 온 관중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도망갔다.

천장이 뚫려있는 공간이라 망정이지 아니라면 내가 내뿜는 열기에 건물 전체가 타버렸으리라.

대련장 중앙에 쌓여있던 눈들은 어느새 기화되어 전부 사라졌다.


강철도 녹일 수 있는 불꽃 사이에 오롯이 서있는 나의 모습은 실로 불의 신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괜찮은 눈빛이 됐네? 전사의 눈이야.”


그런 내 모습에 하티는 더욱 마음에 든다는 듯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내게는 가증스럽게만 느껴지는 도전적인 미소였다.


“어째서 초면부터 이리 무례하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넌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야.”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도전자는 나라는 걸.

그녀는 서열 3위의 검증된 강자, 그에 비해 난 제대로 된 대련을 치러본 적도 없는 애송이.

나는 시리우스를 잡고 자세를 잡았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건 참 편리하다.


이 싸움에서만 이기면 된다는 건 끊임없이 동귀어진(同歸於盡)을 시전하며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하면 된다는 것.


‘죽음에서 부활이 가능한 건 자연의 신뿐. 하물며 문명의 신조차 되지 못한 짐승신이 부활이 가능할 리가 없지.’


나는 모든 가드를 풀고 하티의 빈틈만을 노렸다.


“너... 미쳤어?”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에 순간 당황했는지 하티가 거리를 벌렸다.


“미친 건 너겠지.”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못해도 무승부는 내야한다는 생각에 나는 더더욱 위험천만한 공격을 감행했다.

지레 겁을 먹고 저쪽에서 항복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뭐 어때! 나는 세상에 불이 남아있는 한 죽지도 않는데!”

“쉬지끄! 이 미친 정신병자새끼가! 역시 신들은 다 미쳤어!”


‘쉬지끄(Шизик)’는 러시아 욕설 중 하나로 정신병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지랄하는 사람에게 쓰인다.

이걸 고려하면 하티의 말은 ‘지랄하네! 미친 정신병자새끼가! 역시 신들은 다 미쳤어!’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하티가 진심으로 자신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느끼며 낮게 허리를 베었다.

이에 하티는 침착하게 허리를 꺾어 이를 피하고 내 복부를 걷어차 멀찍이 떨어뜨렸다.


“우욱!”


순간 숨이 안 쉬어졌다.

나는 하티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티는 오히려 내가 숨을 고를 시간을 주며 내게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하아, 뭘 모르나본데... 다음세대는 불로(不老)일지언정 불사(不死)가 아니야. 그 영혼은 분명 불멸(不滅)이기에 환생이 가능하지만 그 육체는 너와 같이 한정적인 불사에 도달할 수는 있어도 마수에게 신성이 먹히거나 다른 신에게 죽임당할 경우 진짜로 죽어.”

“뭐?”

“물론 네가 사도(使徒)를 두었다면 또 다르겠지만, 권능처럼 높은 법칙이나 힘의 근원을 탈취당하면 꼼짝없이 죽는 거야.”


마치 나를 생각해주는 듯한 그 말에 나는 하티의 말이 거짓일 거라는 생각을 버렸다.

또한 사도는 나도 처음 듣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모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내게 사도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얌전히 항복해. 너도 느꼈잖아. 넌 죽었다 깨어나도 날 못 이긴다는 걸.”


그 말에 차라리 여기서 항복하면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정신력도 약해. 원래 신들은 대부분 정신계에 면역인데 너는 어찌된 영문인지 내 지배자 권능에 적잖은 영향을 받아. 그냥 패배를 받아들여.”


그녀는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콕 집어 말했다.

다시 두통이 인다.


그 수많은 ‘남의 말’들에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편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패배’란 당장의 안위를 위해 미래의 안녕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건 상대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의미하며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원하는 게 아닌 이상, 그 요구를 들어줘야함을 뜻했다.


‘그건 싫어!’


리버스에서 중재를 해줄 것이기에 내가 그녀의 종복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패배를 인정한 순간 이 대련도 더 이상 대련이 아닌 하극상으로 치부되며 나는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미안하지만... 역시 안 되겠네.”

“칫! 거의 다 왔는데.”


이에 하티는 실패의 아쉬움에 혀를 찼다.

하지만 내가 아직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것은 여전했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마음 따윈 없었기에 내 움직임은 소극적으로 변했고 싸움의 기세는 자연히 하티에게 넘어갔다.


─핏! 찌익!


하티는 노련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내 몸에 상처를 늘려갔다.


이에 나는 느꼈다.

이건 더 이상 대련이 아니다.

처형 내지는 사냥이라 보아야 옳았다.


“어떻게 발차기의 풍압으로 옷이랑 살가죽을 찢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나는 이어지는 하티의 맹공을 시리우스를 이용해 가까스로 막아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냥 엄청 빠르게 냅다 차버리는데 그 경로 상에 놓인 모든 것이 죄다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본래 흰색이었던 와이셔츠는 붉게 물들어 이내 조각나 넝마가 됐다.


“그러는 너야말로 그런 검을 들고서 대련에 임하는 건 잘한 일이고?”


그 말을 듣고 나니 할 말이 궁해졌다.

직접 몸을 맞대면서 느꼈으니까.


“맞아. 검은 비겁하지...”


그 우월한 거리, 단단함, 날카로움이 왜 인류가 무기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내가 이렇게 하티와 싸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부터가 전부 이 우월한 무기 덕분이다.

소수마공을 익힌 하티조차 시리우스의 날에 직접 부딪칠 자신이 없는지 검면을 치거나 피하는 걸 택했다.


“그리고 이 모든 역경을 뚫고 들어오는 네 육체는 불합리하고.”


마치 무기를 든 순간 나는 너보다 약한 것이 맞노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검사한테 검을 버리라고? 넌 네 단련한 육체를 버릴 수 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지 그래?”


하지만 나는 검사였다.


싸움에서 비겁?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지자면 애초에 비겁하지 않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공평함이란 그저 꿈속의 개념에 불과하며, 모두의 재능, 모두의 환경, 끈기와 열정, 흥미까지도 모든 것은 이다지도 불공평하다.


대련에서 이 모든 공평함을 고려하고자 한다면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수밖에 없으리라.

아니, 그렇다 해도 패자는 승자에 대한 불만을 가지리라.

오히려 아쉽기에 더욱 반발하리라.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서라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세상의 정의를 정하는 것은 오직 승자인 법이다.


“으드득! 그 검부터 날리고 무릎 꿇려줄게.”


이에 역으로 할 말이 궁해졌는지 하티는 이를 갈며 눈으로 쫓는 게 고작일 정도의 공격을 계속 이어갔다.


─쿵!!


나는 그 모든 공격을 나름 침착하게 막아나갔지만 그 요행이 언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티의 그 단단한 육체가 내 검로를 비집고 들어와 어깨와 등으로 내 가슴을 강하게 밀쳤다.


“철산고(鐵山靠)!”

“커헉!!”


내 몸은 맨몸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날아 바닥을 굴렀다.

거의 최치원의 돌진을 맨몸으로 감당했을 때의 수준이다.

그래도 이 손에 쥐어진 시리우스만큼은 결코 놓지 않았다.


‘내, 내장이 터진 것 같아...’


극심한 통증에 눈꼬리에 눈물이 맺힌다.

그제야 여태 시리우스와 싸우며 내가 별다른 부상을 입은 적이 없음을 떠올렸다.

고통이 익숙하기는 개뿔, 내게 통증이란 이렇게 먼 존재였다.


고통의 역치란 게 세상에 정말 존재하는 개념이긴 한 걸까?

배가 뚫리고, 손목을 긋고,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했음에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게 바로 고통이었다.


하티는 강했다.

힘도 속도도 나보다 작은 주제에 더 강하고 더 빨랐다.

나의 검은 하티에게 스치지도 못했고 불길에 머리카락 끝이 그을린 것을 제외하곤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이겨...’


그녀는 물리법칙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존재였다.


“내가중수법의 묘리가 섞였으니 만약 네가 인간이었으면 단전이 깨졌어.”


불합리한 강함.

아마 그 비결은 ‘마나’이리라.


“그러니 이제 그만 항복하지 그래?”


나는 아스팔트를 맨주먹으로 깨부술 수 있었지만 하티는 거기서 더 나아가 아스팔트에서 석유를 쥐어짜는 것이 가능했다.

그 정도의 차이.


마나에 대한 것은 스스로 깨달아야한다며 시리우스도 가르쳐주지 않은 부분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그래?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 생각하고 내 밑에서 기회를 노려도 좋아. 그저 어쩔 수 없었다고 너 스스로를 합리화를 할 수 있어. 넌 열심히 했어. 최선을 다했지. 그냥 운이 없었을 뿐이야.”


*과하지욕(袴下之辱):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치욕을 견딘다는 뜻으로 한나라의 장군, 한신에서 비롯된 말.


그녀는 내가 진심으로 굴복하길 원하는지 당장이라도 이 지겨운 싸움을 끝낼 수 있으면서도 항복을 종용했다.


“계속해.”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추슬렀다.

하티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며 내 빈틈을 찾았다.


‘내가 먼저 공격하는 걸로는 답이 없겠어.’


검을 휘둘러 하티를 벨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린다.

내 검은 하티를 맞추지 못한다.

운에 기대지 않는다.


생각과 동시에 방법을 바꿨다.


꼭 내가 하티를 베어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방어에만 전념할 시 먼저 지치는 건 하티야.’


소수마공(素手魔功)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래 양팔을 국한된 무공이다.

하지만 내 열기에 버티기 위해선 온몸으로 펼쳐야 한다.

그 피로감이 장난 아닐 거다.


나는 검을 휘두르는 대신 하티의 주먹이 날아오는 방향, 발차기가 쏘아지는 방향에 칼날을 세워 견제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큭, 재미있게 해주네...!”


내 생각을 읽은 건지 하티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와 반대로 나는 속으로 작게 환희했다.


하티는 차마 주먹을 끝까지 뻗지 못하고 회수해야했다.

아무리 하티라도 자신의 손의 강도와 시리우스의 강도를 비교해볼 마음은 없는 듯했다.


‘길게 보자. 서두르지 말자. 대련장 전체에 불꽃을 퍼트려 천천히 하티를 익히는 거다.’


오만은 방심을 부르고 조급함은 실수를 부르는 법이다.

하티는 어떻게든 빈틈을 노리려는 것인지 내 주위를 빠르게 돌기 시작했지만 처음에야 방심해서 당했지, 진리안에 열 감지까지 갖춘 내 시야를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변보다 온도가 낮아서인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여.’


하티가 문을 두드렸을 때와 달리, 주변을 내 불꽃으로 가득 채운 지금, 하티의 낮은 온도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열세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티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긴 했지만 그뿐, 지친 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 입에선 단내가 났다.


“괴물 같은 체력이네... 넌 탈수도 안 와?”


하티의 옷은 땀에 젖음과 동시에 내 열기에 증발하여 하얀 소금기만 남았다.


─찌익.


“거슬려. 따끔거리고...”


내 의문에 하티는 옷을 과감히 찢어버리는 것으로 답했다.


“관객들이 죄 도망쳐서 망정이지. 그렇게 다 벗어던져도 되는 거야?”

“짐승이 옷 입는 거 봤니?”

“많이 봤지.”


우리나라의 반려동물들은 저마다 신발이나 모자, 옷 따위를 하나 이상씩은 입고 있는 편이다.

그 목줄 또한 의복의 하나라고 본다면 모든 반려동물은 법으로 옷을 입어야한다고 정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걔네가 옷 벗으니 이상하든?”


극심한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가 한껏 올라가기라도 한 건지 하티의 말이 많이 짧아졌다.


“그러진 않았지,”


더 도발해봤자 좋을 게 없어보였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래, 인정할게. 넌 굉장히 영리하게 싸우는 편이야. 지금 이 상태로는 무리가 있겠어. 따라오는 달만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이건 세이프다?”


그 말과 함께 하티는 목에 걸린 목걸이에서 어떤 돌멩이를 떼어내 입에 물었다.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시리우스가 내게 완성시켜준 ‘감각’이 저것은 위험하다고, 당장이라도 막아야한다고 소리쳤다.


저게 대체 뭐기에!

나는 하티의 상태창에서 소유에 뭐가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일단 후계의 증거는 문신이다.

지금도 하티의 몸은 푸르스름한 문신으로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리버스폰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핸드폰의 일종인 리버스폰이 저런 돌멩이일 리가 없었다.


그럼 저게 월석(月石)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 검은 착실히 나아가 하티의 손목을 베고자 했다.

실제로는 0.1초도 되지 않을 시간인데 검을 휘둘러 상대를 베어내는 이 일순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길게만 느껴졌다.


─서걱.


마침내 내 검이 하티가 있던 위치를 그었을 때, 하티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 검은 허공을 갈라 허무하게 대련장 바닥을 찍을 뿐이었다.


‘내가... 상대를 시야에서 놓쳤다고?!’


내가 꿈을 꾸는 걸까?

방금까지 하티가 있던 자리엔 거칠게 찍힌 발자국과 짐승의 발톱자국 그리고 그 주위에 퍼진 균열만이 남아 누군가 이 위치에 틀림없이 서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아우우우!!!!”


뒤쪽에서 들리는 하울링(Howling).

나는 곧장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지만,


─콰앙!!


옆구리에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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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6. DMZ(Dangerous Monster Zone) 4 22.06.15 126 4 15쪽
75 6. DMZ(Dangerous Monster Zone) 3 +2 22.06.15 136 5 14쪽
74 6. DMZ(Dangerous Monster Zone) 2 22.06.14 135 4 15쪽
73 6. DMZ(Dangerous Monster Zone) 1 22.06.14 137 5 18쪽
72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12 +3 22.06.13 157 8 23쪽
71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11 +1 22.06.13 153 5 15쪽
70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10 22.06.12 152 5 21쪽
69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9 22.06.12 147 8 19쪽
68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8 22.06.11 154 6 18쪽
67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7 22.06.11 147 5 18쪽
66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6 22.06.10 153 7 25쪽
65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5 22.06.10 153 6 12쪽
»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4 +3 22.06.09 165 5 23쪽
63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3 22.06.09 160 7 19쪽
62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2 22.06.08 166 7 30쪽
61 5번째 재앙. 몬스터(Monster) 1 22.06.08 176 5 23쪽
60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8 +5 22.06.07 173 9 13쪽
59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7 22.06.07 159 9 16쪽
58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6 22.06.06 163 9 14쪽
57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5 22.06.06 167 9 17쪽
56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4 22.06.05 179 11 22쪽
55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3 22.06.05 173 10 18쪽
54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2 22.06.04 178 9 20쪽
53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1 +2 22.06.04 183 9 15쪽
52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10 +1 22.06.03 189 10 16쪽
51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9 22.06.03 181 9 18쪽
50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8 22.06.02 180 9 15쪽
49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7 22.06.02 186 10 27쪽
48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6 22.06.01 193 11 18쪽
47 4번째 재앙. 돌연변이(Mutant) 5 +2 22.06.01 185 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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