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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558_chldmswl1 995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의 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작뚜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6
최근연재일 :
2021.07.29 10:00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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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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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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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귀신의 집에서

DUMMY

도깨비를 구미호의 집으로 보낸 뒤 여인은 재빨리 일을 끝내고 귀신의 집을 나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엔 몸이 실체를 띄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를 뚫고 이동하는 여인은 경이로울 정도의 속도에 달하고 있었다.

이윽고 산의 중턱을 넘어 여인은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순이 말 대로면 여기 쯤 일텐데..’

“찍, 찍”


소리를 낸 것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큰 쥐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가운 기색을 띄었다.


“할아버지. 먼저 와 계셨군요.”

“당연하지. 아까 홀에서 구순이 말을 들은 사람은 전부 이상하게 생각했을 걸.”

“전부는 아니겠지만..”


여인의 머릿속에 인간이라며 무서워했던 대부분의 귀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부분이 귀신의 집에서 오래 지냈건만 인간을 겁 먹이긴 커녕 겁을 먹는 모습이 생각나 여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따라와. 미리 찾아뒀지.”



큰 쥐를 따라 다다른 곳에는 남자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시체는 어떻게 죽은 것인지 몰라도 몸이 차갑게 식은 것만 빼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무 상처도 없었다.


“흠.. 예상보다..”


여인은 쭈그려 앉아 시체의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과 휴대전화 등 소지품 몇 개를 뒤져보는 모습이 어떻게 봐도 강도였다.


“..할아버지, 이 녀석 일은 제가 담당하면 안 될까요?”

“갑자기 뭔 바람이 분 거야? 남의 일은 거들떠도 안 보지 않았나?”

“홀로 죽은 걸 보니까 이 녀석도 외롭게 죽었구나, 싶어서요.”


여인은 시체의 손이 꽉 쥐고 있던 작은 약 통을 힘으로 빼 어깨근처에서 흔들며 말했다.


“그럼 위쪽엔 내가 말해두지.”


덩치 큰 쥐의 입가가 웃는 것처럼 씰룩거렸다.


“대신 뒤처리 좀 해주게. 인간이 이 산에 안 들어왔으면 하는 건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여인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풀고, 큰 쥐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무언가 다짐하는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이죠. 확실하게.”



남자가 도깨비를 처음 보고 느낀 점은 달리 없었다.


‘엄청 커..!’


생각보다 점잖은 외형과 머리에 솟은 두 개의 뿔, 무엇보다 성인 남성의 세 배도 넘는 몸집이 남자를 당장에라도 짓누를 것 같은 분위기를 발산했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말했다.


“니가.. 신입이냐?”

“..네, 네!”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머리가 저 위에 있어서 크게 말해야 들릴 것 같아서였다.


“이름은?”


남자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졌다.


“어.. 죄송합니다. 기억이..”


도깨비의 얼굴이 이상하게 비틀어졌다.


‘웃는 건가? 아니야, 저런 표정이 웃는 표정일리 없어.’

“얘는 생전일은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한다고 하네요.”


도깨비는 구미호를 잠시 보았다가 멍한 표정의 남자를 보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웃었다.


“그래도 저번 그 애 보다는 신입답군. 멍청해 보이는 게 맘에 들어.”


남자는 순간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거구한테 따질 자신은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앞으로 귀신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으니까 아저씨가 방까지 좀 데려다 주세요.”


구미호가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리고 화려한 초가집으로 들어갔고, 도깨비는 손짓으로 인사했다.


“가는 길은 안 까먹었겠지?”


도깨비는 남자가 생전 기억을 전부 잃은 것에 빗대어 놀리는 말투로 물은 것이었지만 남자에게는 협박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서워.. 이게 뭐야.. 내가 선택을 잘 못 한 건가. 그냥 알아서 한다고 할 걸.’


우는 생각을 하면서도 남자의 이성은 이게 바른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백지 상태로 뭘 할 수 있다고. 좀 만 버티면 되겠지. ’내‘ 기억이니까. 분명 떠오를 거야.’



“이름을 기억 못 한다는 건 좀 불편하겠군.”


산만한 덩치의 도깨비와 같이 걸어가는 것도 처음엔 무서웠지만 그 도깨비가 계속 말을 걸자 남자는 점점 공포에 무뎌지고 있었다.

낙엽이 도깨비의 발에 밟혀서 눌러지는 것과 달리, 남자가 밟은 낙엽은 마치 솜바람이 지나간 듯 살짝 팔랑거리기만 했다.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 게 드문 일인가요?”

“보통은 죽은 상황까진 기억을 하니까. 본인이 죽은 지점에 가서 기억을 상기하거나 시체를 뒤지거나 해서 자신에 대해 기억해내곤 하지.”

“시체를 뒤져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는 거야.”


도깨비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반면에 아직 인간이고 싶은 남자는 강한 이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침울해졌다.

시체든 뭐든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그게 힘들겠네요.”


남자는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격히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면 사라지는 것에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겠지만, 미련이 뭔지는 몰라도 사라지는 것은 절대 싫었다.

죽어서 귀신이 될 만큼 강한 미련일텐데 정작 자신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답답했다.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니까 어쩌면 금방 사라져서 아까 그 건물에 도착하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남자가 침울해 하면서 고개를 떨구자 도깨비는 남자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등을 치려고 했다.


“휘잉”


하지만 도깨비의 손은 남자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덕분에 남자는 더 침울해했고, 도깨비는 허공을 가른 손으로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

“그렇게 우울해하지마. 아직 자아를 잃진 않았으니까. 진짜 위험한 녀석들은 모든 감정을 잃고 멍하니 있는 녀석들이야. 넌 아직 기억을 찾고 싶다는 의욕도 있을 정도니까 훨씬 나은 편이지.”

“그렇게 말해주시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말로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전혀 마음이 놓인 기분이 들지 않는 남자였다.

그때 도깨비의 눈에 귀신의 집 벽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는 덩치 큰 쥐가 보였다.


“게다가, 아마 이름정도는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진짜요?”

“추측이지만.”


남자가 모르게 도깨비는 얼굴을 비틀었다.



잠시 후 귀신의 집에 도착한 남자는 도깨비의 말을 듣고 희망이 생긴 상태였다.


“이름을 알지도 모른다니까 좀 더 희망이 생기지?”

“아무래도요. 제가 대략 몇 살에 죽었는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벌써 저에 대해 두 가지나 알고 있는 거네요.”


도깨비는 복도를 걸어가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기억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구미호..님이 제가 10대 후반으로 보인다고..”

“...”


갑자기 도깨비가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긴 했지만 결국 도깨비는 말을 하진 않았다.


“왜 그러시죠?”

“음.. 아니, 별거 아니야. 아, 다 왔네.”

“이 방인가요?”


문을 열 수 없는 남자를 대신해 도깨비가 방문을 열어 주었다.


“몸이 다 통과하니 2층 이상 방은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어. 기억도 찾고 익숙해지면 바꿀테니까. 1층은 청소장 담당 녀석들만 지내는 방이거든. 너 같은 귀신이 지내기엔 부담이 크지.”


남자의 뇌리로 아까 몸의 반절이 피투성이였던 귀신이 떠올랐다.


‘같은 층이라고 생각하니까 무서운데.. 옆 방이었나? 그러면 내가 만난 대걸레를 들고 있는 귀신은 청소장이었구나.’

“좋은 거 알려줄까?”

“네?”


도깨비는 방문을 닫고 나가기 전 벽에 기대어 아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남자는 이젠 저게 아마 미소를 짓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몸이 다 통과하면서도 바닥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은 아직 어느 정도의 상식을 유지하는 힘은 있다는 얘기니까 너무 소멸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남자는 자신의 몸이 문도 벽도 대걸레도 다 통과했기 때문에 귀신의 집 바닥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서서히 미소가 퍼지는 얼굴을 보고 도깨비는 손짓으로 인사했다.


“더 궁금한건 없지?”

“혹시..”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도깨비가 가만히 자신의 질문을 기다리자 남자는 자신감이 생겼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도깨비는 그렇게 험악하지는 않았다.


“아까 구미호..님이 존댓말을 써서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나? 아니면 구미호님?”

“두 분 다.. 실례지만..”


도깨비는 잠시 생각하느라 말이 없었다.


“글쎄.. 500살 넘은 후론 딱히 세질 않아서.. 어쨌든 구미호님은 좀 있으면 천살이시니까 나는 천 살은 넘었겠지.”


어마어마한 나이에 남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두 분 다 오래 사셨군요.”

“여기선 나랑 구미호님이 제일 오래 살았지. 그나마 많이 산 쥐 할아범도 500살 좀 넘게 산 정도니까.”


쥐 할아범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남자의 머릿속엔 간사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더 궁금한 거 있어?”

“네? 아뇨..”


남자는 원래 왜 구미호가 도깨비에게 존댓말을 쓰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둘의 어마어마한 나이 때문에 잠시 잊어버렸다.

도깨비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엄청나네.. 내가 있어도 되는 건가?’


남자는 문득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는 같은 층, 아마도 옆방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 왼쪽이 너덜너덜한 귀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마음을 추스르고 방을 둘러보자 침대는 없었고,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벽에 붙어있는 의자에 앉아 생각을 하려다 몸이 뒤로 넘어갔다.


“으아아!”

“쿵!”

“뭐, 뭐야!”


남자가 몸의 반이 넘어간 방은 겉보기엔 멀쩡한 인간 남자가 있었다. 인간은 난데없이 등장한 남자를 보고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어?”

“넌 뭐야?”


꽤 젊어 보이는 인간은 몸의 반만 드러난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힘껏 발을 휘둘렀다.


“휘잉”


당연히 발은 실체가 없는 머리를 통과했고, 중심을 잃은 인간은 추하게 뒤로 넘어졌다.


“쾅!”

“아오, 아파..”


반사적으로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슬그머니 눈을 뜬 남자는 인간이 쓰러져 있자 몸 전체를 인간의 방 쪽으로 옮겼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보이냐!”


인간이 버럭 화를 내가 남자는 문득 화가 치밀었다.


‘아니, 머리 찬 것도 화나는 데..!’

“허락도 없이 방에 들어온 건 죄송하지만 그쪽도 그렇게 나오시면 안 되죠! 난데없이 발로 차질 않나!”

“누가 남의 방에 들어오래?”


인간은 넘어진 부위가 욱신거리는 지 허리를 짚고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그건..! 좀 복잡한데..”


본인이 아직 귀신의 몸에 미숙해서 일어난 일이고, 그 얘기를 하려면 기억에 관련한 것까지 얘기해야 되나 싶어서 남자는 말을 줄였다.


“아씨, 겁나 아프네. 이래서 인간 몸은 싫다니까. 쓸데없이 크기만 하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귀신의 집에 있는 이상 평범한 인간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했다고 해서 마음의 준비까지 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남자는 눈앞에서 인간이 줄어들어 쥐가 되자 흠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일반적인 쥐의 열 배도 넘는 크기에 안 그래도 동물을 무서워하는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 그래도 아픈 건 여전하네. 할아버지는 괜히 연습을 시키질 않나. 쓸데없어, 정말.”

“애초에 실체도 없는 귀신한테 전력으로 발차기를 하니까 그 꼴이 난 거 아니냐. 그것도 다 연습이 부족해서 그래.”


남자는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몸을 돌렸다.

거기엔 문 옆의 개구멍을 통해 들어온 게 확실해 보이는 매우 큰 쥐가 있었다.


“우앗!”


자신의 무릎까지도 닿을 것 같은 거대한 크기에 남자는 쥐와 거리를 벌렸다.

구순이를 피해 청소장의 뒤에 숨었을 때와 같이 빠른 속도였다.


“쥐, 쥐가..”

“흠, 아직 그 애는 못 만난 것 같구나. 이렇게 깜짝깜짝 놀래서야.”

“말을..!”

“그럼 당연히 말 정도는 하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 강산이 몇 번을 바뀌었는지 알아?”


털이 듬성듬성 빠진 쥐가 인간 말을 하는 해괴한 모습에 남자는 이 집이 평범한 집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할아버지, 다 보고 계셨어요?”

“어. 내 손자가 잘 하고 있나 확인하러 왔다.”

“시키신대로 인간 모습 유지 2시간 했어요. 이제 됐죠? 저 나갔다 올게요.”

“인석아, 또 어딜 간다고..!”


상대적으로 작은 쥐는 개구멍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저거저거, 예의는 어따 박아두고 저러는지 원..!”


큰 쥐는 혀를 차고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쥐에서 도망치려는 건지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있었다.


“자네는 뭘 했길래 그런 자세로 누워있었나? 아직 본인이 인간이라고 생각이라도 한 거야?”


원래 동물을 무서워하는 탓에 남자는 그나마도 말소리가 작아졌다.


“딱히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사내 녀석이 말도 똑바로 못 끝내? 이래가지고 제대로 살아남기나 하련지 모르겠네.”


쥐는 남자를 걱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며 꼬리를 휘둘러 남자의 다리를 치려했다.

남자는 피하려고 움찔, 움직였지만 꼬리가 적잖이 긴 탓에 다리까지 닿고도 남았다.


“휘잉”


당연히 꼬리는 남자의 몸을 통과했다.

쥐는 자신이 예상한 결과가 나온 것에 실망하고 자려는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


남자가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움직이자 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가고 뭐하는 거야? 볼 일 있어?”

“아, 아뇨! 죄송했습니다!”


남자는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가 손이 손잡이를 통과하고, 손에 무게를 실었던 몸은 그대로 밖으로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쥐는 한심하다는 듯 다시 혀를 찼고, 남자는 허겁지겁 문을 마저 통과했다.


‘그냥 벽을 통과해도 되는 거였나. 하.. 미치겠다, 진짜.’


꼴사납게 넘어진 게 부끄러워 남자는 재빨리 자신이 임시로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이미 다른 귀신이 와있었다.


“그 잠깐 새에 친구라도 생긴 거야?”

“안녕하세요. 친구는 아니고..”


방안엔 처녀귀신으론 보기 힘든 매무새의 청소장이 서 있었다.

청소장은 친구 얘기는 별 목적 없이 꺼낸 것이었는지 다른 이야기로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 전해주려고 왔어.”


남자의 머릿속에 도깨비와 한 대화가 떠올랐다.


“제 이름인가요?”

“응? 어떻게 알았어?”


청소장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남자는 왜 그런지는 몰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계속 겁을 줬던 대상이 곤란해 하자 그런 듯 했다.


“아까 도깨비..님이 알려주셨어요. 조만간 알거라고.”


구미호한테도 님을 붙이니까 더 나이 많은 도깨비한테도 님을 붙일 거란 생각에 남자는 도깨비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그래? 일단 이름부터 알려줄게. 김민수야. ..짜증나게..”


민수는 청소장이 마지막에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 말은 듣지 못했다.


“민수요?”

“어때?”


기대치가 너무 컸던 건지 민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에 실망했다.


“아뇨, 아무것도..”

“기억이 떠오르는 건 상황에 따른 법이니까. 이름 안다고 본인 미련까지 다 알 수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청소장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저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민수가 갑자기 한 질문에 청소장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까 구순이가 널 찾은 곳 근처에 니 시체가 있었어. 다행히 안에 니.. 학생증도 있어서 알았지.”

“제가 있어요? 거기에? 저 잠시 밖에 좀..!”


민수가 갑자기 문이고 벽을 전부 통과해 밖으로 달려 나가자 청소장이 다급히 쫓아갔다.

복도를 거닐고 있던 귀신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민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려!”


달려서 움직이는 민수와 달리 청소장은 날아서 쫓아갔고, 귀신의 집을 벗어난 숲 속에서 따라잡았다.

귀신의 집에선 꽤 많았던 귀신이 숲 속에선 보이지 않았다.

청소장이 앞을 막아서자 민수는 아무래도 귀신을 통과하는 건 거부감을 느꼈는지 멈춰 서긴 했다.

그러나 이내 청소장의 옆을 지나가려했고, 청소장은 다시 민수의 앞을 막아섰다.


“왜 막는 거예요?”

“이젠 거기 없어.”


민수는 잠시 청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청소장은 민수와 고개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설마 제 몸을 어떻게 한 건 아니겠죠?”

“...”


청소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버릇인지 입술을 잠시 깨물었다.


“어쩔 수 없어. 귀신의 집 방침이야.”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키웠다.

귀신이 된 이후로 여기저기 끌려 다니기만 한 무력감이 한 번에 폭발한 듯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제 몸 제가 보겠다는데!”

“..여긴 인간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귀신들을 위한 곳이야. 아무리 보호 장치를 해 놓아도 니 시체가 인간들한테 발견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어? 인간들이 이 산에 몰려들면 당장에 우리들은 여길 떠나야 된다고!”


청소장은 민수와 만난 후 처음으로 크게 화를 냈다.

강한 귀신의 힘이 주위를 물들이자 민수는 분명 추위를 느낄 수 없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점점 옥죄어 오는 강한 힘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난 이제 어떡해야 되지..’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건 뜻밖에도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마냥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청소장의 모습이었다.



나뭇잎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에 눌리는 것처럼 민수의 몸에 눌리기 시작할 때, 민수는 정신을 차렸다.


“으으..”

“귀찮게 형체도 없으면서 기절하지 말라고. 다시 데려 갈 수도 없잖아.”


민수는 귀신도 어지럼증을 느낀다는 걸 깨달으면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정신을 잃기 전 청소장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것이 떠올라 청소장을 보았지만, 청소장은 언제 그런 표정을 했냐는 듯 지금은 정말로 짜증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히, 아니, 확신은 못하겠지만..’


꽤나 정확하게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수는 청소장의 눈치만 살폈다.


“안 일어나고 뭐해?”

“죄송합니다.”


민수가 일어나기도 전에 청소장은 먼저 발을 옮겼다.

급히 몸을 움직여 청소장을 따라가다가 민수는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꼈다.


‘어라.’

“바스락바스락”


나뭇잎이 민수의 발에 밟혀지고 있었다.

민수는 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

“바스락바스락”

“어?”

“뭐야?”


민수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자 청소장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뭇잎이 밟히고 있어요!”

“그게 뭐?”


민수는 대답하지 않고 냅다 청소장의 손을 잡았다.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민수는 실체가 생겼다는 기쁨에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잡을 수 있어요! 실체가 있다고요!”

“...”


청소장의 표정이 굳어지자 민수는 황급히 손을 놓았다.

서서히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이해가 되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것 마냥 작아졌다.


“죄송합니다..”


청소장이 등에 맸던 대걸레를 손에 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실체가 있으니까 맞을 수도 있겠네?”

“죄송합니다!”


민수는 귀신의 집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잡히면 이미 죽은 몸이어도 다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뒤에선 청소장이 나무를 통과하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왔다.



구미호의 집에 도착한 키가 큰 대머리 남자는 골치 아픈 일이 있는 것처럼 입으로 끙, 소리를 냈다.

그 집 안에서 구미호는 계약서를 보고 있었다.


‘이제 힘이 좀 생긴 건가..’


계약서 하단에는 ‘김민수’라는 이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똑, 똑”

“들어와.”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키신대로 알아봤습니다. 괴리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 자세한 건?”

“아마 자살인 듯합니다. 소지품 중에 약병도 나왔고요.”

“음.. 생각보다 별 거 없네. 결계를 뚫었으니까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어.”

“참, 그 애가 자기가 담당하고 싶다고 하던데요.”


구미호의 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그 애’가 청소장임을 단박에 알아차린 듯 했다.


“어? 왜?”

“아마 외롭게 죽었다는 거에서 동질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구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얼굴에 서서히 장난스런 미소가 번졌다.


“그럼, 그렇게 하지 뭐.”


남자가 의외였는지 눈을 크게 떴다.


“괜찮습니까?”

“그 애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더 알려줄 건 없어?”

“아뇨, 특별할 게 없다는 것 빼곤.. 지금으로선 이게 다 인 듯합니다.”


남자의 머릿속에 아까 꼴사납게 넘어진 민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귀신과 다른 점이라면 생각이상으로 덤벙거리는 것뿐이었다.


“알았어. 이제 가 봐도 돼. 수고했어.”


남자는 문을 닫고 나왔고, 본래 모습인 큰 쥐로 돌아왔다.

한 발짝 내 딛을 때마다 털이 가닥가닥 빠졌다.


‘생각보다 간단히 승낙하시는 군..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디로 간 거야?’


큰 쥐는 자신의 손자인 작은 쥐를 찾기 위해 귀신의 집을 한 바퀴만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 시각, 작은 쥐는 흡혈귀에게 받은 통행증을 들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옆에 구순이가 보였지만, 몰래 지나가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만약에 들켜도 통행증이 있으니까 뭐.’


만으로 110살이 된 작은 쥐는 아직 어른에게 반항하고 싶은 나이였다.

때문에 할아버지 몰래 흡혈귀에게 통행증을 받아 귀신의 집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이번엔 저번에 진 빛이 어떻게 됐나 확인하러 가볼까~’


산을 빠져나온 쥐는 예전에 챙겨 둔 머리카락을 꺼내 씹어 삼켰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꽤나 괴로운지 쥐는 입을 악물고 버텼다.


“으..”


이윽고 인간으로 변한 작은 쥐는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았다.

성인 남자의 몸이 된 작은 쥐는 제자리에서 살짝 뛰어보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지금 몸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전에 마을에 나갔을 때 입었던 옷을 찾기 위해 밑 둥이 크게 뚫려있는 나무에 다가갔다.

나무 밑을 조금 파내자 상자가 나왔고, 작은 쥐는 상자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다행히 더러워지진 않았네. 저번처럼 인간들이 이상하게 보진 않겠다.”


작은 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옷을 입고 마을을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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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집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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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싸움 17.06.27 54 0 14쪽
5 미행의 정당성 17.06.26 61 0 16쪽
4 언니라면 17.06.26 74 0 17쪽
3 첫 수업 17.06.26 104 1 17쪽
» 귀신의 집에서 17.06.26 221 2 22쪽
1 어서와, 귀신의 집은 처음이지? +2 17.06.26 685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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