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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558_chldmswl1 995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의 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작뚜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6
최근연재일 :
2021.07.29 10:00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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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6
추천수 :
16
글자수 :
402,336

작성
17.06.2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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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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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어서와, 귀신의 집은 처음이지?

DUMMY

한 밤중의 어두운 숲 속, 서양 저택과 전통 한옥이 합쳐진 괴상한 모양의 저택 3층에서 한 여인이 대걸레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새하얀 소복과 치렁치렁한 검은 긴 머리만 보았을 땐 처녀귀신이 연상되는 모습이었지만, 앞머리를 뒤로 넘겨 보이는 얼굴은 귀신이라기엔 이상하리만치 생기 있어 보였다.

여인은 구석에 떨어져 깨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도자기 파편을 지나쳐, 더러워 바깥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창문에 다가섰다.


“거미줄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흰 전통 소복에 현대식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대걸레를 들어 올려 천장을 두드렸다.


“쿵, 쿵”

“네~”


천장과 벽 틈새에서 타란툴라가 고개를 내밀자 여인은 앞치마에서 노트를 꺼내 표시했다.

같은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한 듯 여인은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거미줄, 경고야. 한 번 더 걸리면 경고가 아닌 거 알지?”

“네, 조심하겠습니다.”


여인이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앞으로 걸어가자 타란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청소장님.. 확인은 끝나셨나요..”


갑자기 들려온 말은 바닥에서 들렸다.

여인은 바닥에 머리만 삐죽 올라와 있어도 그것이 일상인 마냥 흐트러짐 없이 말했다.


“거의. 무슨 일 있어?”


창백한 얼굴의 머리는 귀신의 목소리라면 이렇게 들릴 것이라는 전형적인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처럼 말했다.


“인간이에요.. 1층은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여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고 보니 1층이 유난히 시끄러웠다.


“인간? 여길 잘도 찾았네. 구미호님한테 보고는?”

“이제 가려고 합니다.. 먼저 청소장님이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알았어.”



그 시각 1층에선 귀신의 말대로 난리가 났다.

다양한 모습의 귀신들은 넓은 홀의 중앙을 비우고, 둥글게 모여 소란을 떨고 있었다.


“인간이라고? 제령사야?”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무심하게 귀신은 팔팔했다.


“우왓, 밀지 좀 마! 무섭다고!”


그 앞의 귀신은 다리가 없었다.


“니가 그러고도 귀신이냐?”

“내 뒤에 서있으면서 말은 잘하네.”


하나같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귀신들을 보며, 중앙에 홀로 서 있는 남자는 어쩔 줄 모른 채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다 뭐지? 다 다친 것 같은데.. 힉, 프랑켄슈타인!’


남자는 온 몸에 기운 자국이 남아있는 덩치를 보고 쓰러질 힘도 없는지 후들거리는 다리로 용케 서 있었다.


‘저 사람은 인간인가?’


인간인 줄 알았지만, 그 인간이 미소를 지으면서 보인 긴 송곳니에 남자는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인간이 아냐! 흡혈귀?! 여긴 뭐하는 데야?’


눈앞에 가득 모여 있는 귀신과 괴물을 보고 남자는 벌벌 떨었다.

남자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남자를 보는 귀신들의 태반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스윽”

‘뭐지?’


남자는 희무끄레한 형체가 나타나 가까워지자 잘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뒤로 가려했다.


“뭐야, 인간이 아니잖아?”


갑자기 선명해진 여자 얼굴이 코앞에 나타나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으아아!”


눈앞의 여인은 흰 소복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등에 자기 키만한 대걸레를 등에 메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짜증이 극에 달한 듯 했다.


“뭘 한심하게 놀라는 거야. 너 여긴 어떻게 왔어?”


갑작스런 상황에 남자는 몸 전체를 바들바들 떨면서 입만 간신히 움직였다.


“어.. 그..”


그 때 남자의 뒤에 기척이 느껴졌지만, 남자는 돌아볼 힘도 없었다.


“츠.. 내가 데려왔는데. 무슨 일이야? 다 모여서.”


남자의 뒤에 나타난 것은 홀 전체를 한 바퀴 감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대한 구렁이였다.

여인은 까마득한 높이의 구렁이에게 눈치를 주고는 몸을 돌려 귀신들에게 말했다.


“그러게. 다들 안 부끄럽나? 하다하다 이젠 같은 귀신을 보고도 놀라고, 앞길이 훤하네.”


여인이 자신들을 째려보자 남자를 두려워하던 귀신들은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귀신이라기엔 너무 멀쩡해서..”

“상처하나 없잖아.”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고.”


여인은 등에 멨던 대걸레로 후려치기라도 할 것처럼 손에 들었다.

귀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섰다.


“변명은 그만하고 다 돌아가세요!”


여인은 대걸레로 바닥에 쾅, 내리쳤고, 귀신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며 물러갔다.


“도대체가..”


여인은 귀신이지만 두통이라도 이는 것인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저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리자 여인은 남자를 째려보았다.


“뭐야.”

“전 귀신이 아닌데요.”

“...”


남자는 순간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에 어색하게 계속 앉아있었다.

여인은 화를 참기 위해 잠시 입술을 물었다가 말했다.


“구순아, 이런 앨 어디서 데려온 거야?”


구렁이가 긴 혀를 스륵, 뱉으며 말했다.


“츠르.. 산 중턱 좀 넘어서. 혼자 있길래 길을 못 찾는 줄 알고 데려왔지.”

“아니, 그런 의미로 물은 게 아니라..”


여인은 잠시 천정을 보았다.

일도 다 안 끝났는데 시간을 이런 일에 할애한다는 것이 적잖이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여인은 짜증을 참고 말했다.


“근데 이 난리가 나도록 이 녀석 혼자 두고 어딜 갔다 온 거야?”

“결계에 혹시 이상이 생겼나 확인하고 왔어.”


결계 이야기에 여인의 어조가 심각해졌다.


“..알았어. 이상은 없는 거지?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도 이만 가봐.”


구렁이는 큰 머리를 끄덕이고 그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재빠르게 숲을 향해 사라졌다.


“...”


여인은 구순이가 숲으로 간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자신의 뒤를 보았다.

적잖이 어이가 없었는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뭐하냐.”

“제가 동물을 무서워해서..”


남자는 어느새 기어서 이동한 것으론 보이지 않는 속도로 여인의 뒤에 숨어있었다.


“진짜 이건 앨 어디서 데려온 거야..”


여인이 잠시 한숨을 쉬는 동안 남자는 아무리 봐도 인간 같은 여인의 모습에 경계심을 죽이고 일어났다.


“저기..”

“뭐.”

“전 인간이 아닌..”


여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데없이 대걸레를 휘둘렀다.


“쉬익!”

‘맞는다!’

“...응?”


자신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고통을 기다렸지만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자 남자는 눈을 슬쩍 떴다.


“어?! 이게 뭐야!”

“이제 알겠어?”


눈을 뜨자 여인이 내지른 대걸레가 자신의 몸을 뚫은 게 보여 남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지만 확실히 대걸레는 남자의 몸을 뚫고 있었다.


“어라, 안 잡히네.. 이게 무슨.. 아프지도 않고..”


남자가 계속 손을 휘적거리며 대걸레를 잡으려 하자 여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인은 대걸레를 잡지 않은 손을 허리춤에 올려 무게중심을 바꿨고, 그 행동은 여인을 더욱 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보니까 실체를 유지할 힘도 없는 것 같은데. 죽었을 때의 기억은 있어?”


남자는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그니까 전 인간이라고요!”

“바보야?”


여인은 대걸레를 고쳐들고 음산한 기운을 뿜다가 차츰 제정신을 찾았다.


“그래, 흔하진 않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거면 이럴 수도 있는 거겠지.”


남자는 분명히 인간으로 보이는 여자가 발산한 기운에 몸을 잔뜩 움츠렸다가 조금씩 몸을 뒤로 뺐다.


“저.. 죄송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봤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자는 아직 열려있는 문을 향해 내달렸다.


“어딜 도망가는 거야. 이렇게까지 해줬으면 니 정체정도는 스스로 알아차려야지.”


하지만 여인의 손짓에 열려있던 대문이 쾅, 하고 닫혔고, 남자는 닫힌 문을 앞에 두고 멈춰 섰다.

여인은 당황한 남자의 뒤에 소리 없이 다가가 속삭였다.


“넌 귀신이라고.”



같은 시간, 빨갛고 노란 면직물로 치장된, 마치 무당의 집 같은 곳에서 한 여자가 귀신과 말하고 있었다.

앳된 모습의 여자가 앉아있는 침구는 그 주인에게 어울리기엔 지나치게 커서 마치 요람 같았다.

그 침구의 뒤로는 사람만한 꼬리 아홉 개가 늘어져있었다.

여자는 꼬리 때문인지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자신보다 큰 꼬리 하나를 끌어안아 쓰다듬고 있었다.


“인간? 그런 냄새는 못 맡았는데.. 지금 그 애랑 있다는 거지?”

“네.. 아까 가보겠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속삭이듯 말하는 귀신의 말을 듣고 구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만 가도 돼.”


귀신은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땅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생각을 하다 구미호는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화면을 꾹꾹 누르는 모습이 적잖이 많이 사용한 듯 익숙해보였다.


“..여보세요. 그래, 어떻게 됐어?”


구미호는 꼬리를 쓰다듬으며 전화에 귀 기울였다.


“어. 이리로 데려와줄래? 확인해볼게 있어서. 결계는 괜찮대? 흠,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결계가 아니니까 이런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지. 아무것도? 세상에, 그런 경우도 드문데. ..그래도 물어봐야할게 있으니까 일단 데려와줘. 응, 고마워.”


구미호는 꼬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품에 넣었다.


‘마중이나 나갈까.’



남자는 방금 휴대전화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집어넣은 여인을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아까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귀신들과는 다르게 핏자국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생기마저 도는 얼굴에 남자는 이 여인이 귀신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뭘 그렇게 봐?”

“저기, 혹시 인간 아니신가요?”

“뭐?”


여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남자는 시선을 돌리면서도 중얼거리는 것이 진짜로 이 여인이 인간이길 바라는 것 같았다.


“아니, 다른.. 귀신들이랑은 다르게 피도 안 나고, 인간 같고..”

“스마트폰도 쓰고? 왜, 귀신은 현대적인 물건 쓰면 이상해?”

‘진짜 인간처럼 보이니까 말한 건데..’


남자는 대꾸하면 아까처럼 대걸레가 몸을 관통할까봐 조용히 있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그런 꺼림칙한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때 희무끄레하게 보였었다는 걸 생각하면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이 건물에 인간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라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단 가자.”

“집에 데려다 주시는 건가요?”

“무슨 헛소리야?”


남자가 갑자기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묻자 여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닌가요? 가자고 해서..”

“집에 가는 건 니가 나중에 알아서 하고, 지금은 다른 데야.”

“어딜 가는 건데요?”

“방금 통화한 분한테.”


남자는 여인이 앞서 걸어가도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저는..”


여인은 몸을 돌려 남자를 째려보았다.


“죽은 기억이 없어서 인정하기 싫은가 본데, 너 귀신이라고. 그리고 나도 할 일이 따로 있단 말이야. 지금은 잠자코 내 말에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여인의 싱긋 웃는 미소가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그래서 여긴 대체 어떤 곳인지, 눈앞의 당신은 누군지, 아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누구인지 궁금한 게 산더미 같았지만 잠자코 말을 듣기로 했다.

여인은 남자의 입장을 헤아려 주려는 건지 딴에는 친절하다고 생각하는 어투로 말했다.


“가능 동안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알려줄 테니까 일단 따라와.”



잠시 뒤따라 걸어가면서, 무엇부터 물어볼까 고민하는 남자의 눈에 여인의 대걸레가 들어왔다.


“저기, 그 대걸레는 왜 갖고 다니시나요?”

“아, 나 청소부거든.”


남자는 창문마다 가득하게 낀 먼지와 거미줄, 곳곳에 떨어진 털과 머리카락을 보고 다시 여인을 보았다.

악의는 없었다.


“청소가..”


여인은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받고 예의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여긴 귀신의 집이거든.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게 내 일이야.”

“아, 그렇구나. 저, 왜 무섭게 안하고 다니시나요?”


남자는 맞을 것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자 질문을 바꿨고, 여인은 잠시 화를 누그러뜨렸다.

평소 여인의 성격을 알고 있는 다른 귀신이 보았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할 모습이었다.


“무섭게 하고 다니면 일의 효율이 떨어져서 그래. 다른 처녀귀신들처럼 머리카락을 내리면 앞이 잘 안 보이잖아. 옷도 그렇고.”

“처녀귀신이시구나.. 그럼 아까 본 다른 귀신들이 무섭게 분장하고 있는 건 왜 그렇죠? 다들 무섭게 분장하고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가요?”

“분장이 아닌 경우도 있어. 잠시만.”


여인은 복도를 지나다가 갑자기 왼쪽 방문의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문고리는 아무 소리 없이 잘 돌아갔다.


“안되겠네. 또 고쳐놨어.”


여인이 수첩에 표시하는 것을 보고 남자는 물었다.


“그건 뭔가요?”

“내가 직급이 좀 높거든. 보강해야할 부분은 없나 확인하는 거야. 이 문고리 내가 저번에 부드럽게 움직이면 안 된다고 분명히 고장내놨는데..”

“쾅!”


여인이 대걸레로 바닥에 구멍을 내자 남자는 뒷걸음질쳤다.


‘세상에, 저게 가능해?’

“어, 무슨 일이야?”


방에서 나타난 귀신은 으레 있는 일인지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몸의 왼쪽이 피투성이인데다가 심지어 왼쪽 팔이 없는 귀신의 모습에 남자는 구역질을 했다.


“우욱..!”


여인은 남자를 잠깐 한심하게 보다가 귀신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제가 왜 불렀는지는 알겠죠.”


귀신은 여인이 턱으로 문고리를 가리키자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상황판단이 빠른 귀신이었다.


“미, 미안! 바로 고장 낼게!”

“아무리 본인 방이라도, 규칙은 지켜야죠? 아예 문짝을 떼는 건 어때요?”


여인의 살벌한 모습에 왼쪽이 너덜너덜한 귀신은 땅에 박을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진짜, 다음부턴 안 그럴게!”

“이번까지는 경고로 넘어가지만 다음엔 좋게 안 끝날 거예요.”

“응, 진짜 조심할게.”

“..가자.”


여인이 앞서가자 남자는 입을 틀어막고 여인을 뒤쫓았다.



“저기..”

“뭐!”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여인은 화를 억눌렀다.

계속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어지간히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이 녀석 잘못은 아니지. 애먼데에 화 푸는 것도 적당히 안하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너도 귀신이야. 일일이 인간처럼 놀라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아까 분장이 아닌 경우도 있다고 했지? 방금 니가 만난 귀신을 예로 들면 저렇게 죽었다고 할 수 있지.”

“네?”

“생전에 저 모습으로 죽은 거라고. 아내를 구하다가 저렇게 된 거였나? 아무튼 지진이 일어났을 때 누굴 감싸다가 몸의 반쪽이 깔렸다고 하더라.”

“아..”

“동정하지마. 저 아저씬 생전에 ..아, 내연녀 감싸다가 죽은 거랬지.”

“..”

“바람핀 것 때문에 아내랑 싸워서 내연녀 집에 갔다가 지진이 나서 내연녀랑 같이 죽었다고 하더라고. 자식들도 있으면서..”


남자는 여인이 말을 끊자 쳐다보았다.


“암튼, 다른 궁금한 건 없어?”

“어떻게 저 귀신에 대해 그렇게 잘 아세요?”


여인은 그런 게 궁금하냐고 되물으려다 말았다.

그녀는 애초에 타인을 모르쇠로 대할지언정 오지랖은 넓지 않았다.


“여긴 그냥 귀신의 집이 아냐. 인간사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귀신들을 위한 귀신의 집이지. 인간에 비하면 사랑의 집 같은 거야. 여기선 귀신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해주고 있어. 무섭게 굴 수 있는 방법이나 형체를 유지하는 법 같은 거?”


여인이 건물을 나서자 남자도 문을 잡고 나가려 했으나 몸이 문을 통과해 버리자 당황했다.


“여기서 나는 강사 역할도 맡고 있거든. 내 담당 귀신이 생전 어떤 인간이었나 정도는 파악해두고 있지. 뭐하냐, 너.”


여인은 남자가 문에 팔을 넣다 뺏다 하는 것을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안 믿겨서..”

“너 귀신이라고 아까도 얘기했잖아. 빨리 따라와. 거의 다 왔어.”


여인은 숲속으로 향했다.


“건물 안에 계시는 게 아니었구나.”

“사정이 있어서 따로 지내고 계시지. 이 귀신의 집 총책임자시고.”


여인은 자신의 상사를 말하면서 그닥 존경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남자는 총책임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 귀신에게서는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후, 남자는 숲에 들어서서 희미하게 들리는 방울소리와 스산한 바람을 느끼고 예전에 보았던 공포 드라마를 떠올렸다.


‘아빠랑 엄마가 까준 과일 먹다가 무서운 장면보고 뱉어가지고 혼났었.. 어라? 얼마 안 된 일인데.. 왜 이리 오래 된 것 같지?’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부모님 얼굴이 기억이 안 나..’

“뭐해?”

“아, 죄송합니다.”


대답을 한 순간 남자는 자신이 무엇을 고민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딸랑, 딸랑”


방울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이윽고 두 귀신의 앞에 초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야.”

“생각보다 작네요. 총 책임자라고 해서 아까 그 건물보다 더 큰 건물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한 것까지 알려줄 순 없고, 궁금한 건 니가 직접 물어봐.”

“휘우우우..”


갑자기 바람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불었다.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소년이여..”

‘소년?’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 쪽을 보고 여자인지 다시 확인했다.


‘어라, 내가 소년인가? 근데 나는 나이가..’

“쿵!”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앞을 보면서 남자는 또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어서오게. 선물은 가져왔겠지?”


떨어진 것의 정체는 인간의 형상을 한 구미호였다.

자신의 집에서 귀신과 대화했을 때와는 달리 성인 여성의 모습이었다.


“선물이요?”


구미호의 얼굴이 여우처럼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자 남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뒷걸음질쳤다.


“싱싱한.. ‘간’말이야!”


구미호가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숙이고 팔로 얼굴을 가렸다.


“으아아!”

“...”

“풋, 하하하하! 이 맛에 놀리는 걸 그만 못 둔다니까.”


남자는 슬쩍 팔을 내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뭐가..!”

“한심하네.”


여인은 남자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어떻게 된거죠?”

“구미호님이 장난 치신거야.”

“오랜만의 손님이라 좀 그러고 싶었어. 기대하던 반응보다 좋은데?”


남자는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심장이 멈춰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장난..”

“일단 안에 들어가자. 정신없었을 텐데 나까지 장난쳐서 미안하네.”

“미안한 표정은 아니신 것 같지만요.”


굳은 표정으로 상황을 보다 여인이 툭 던지듯 말하면서 먼저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이어 구미호가 뒤따라 들어가면서 남자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전통 한옥의 사랑채에 서양 카펫이 깔린 이상한 방에서 구미호를 앞에 두고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았고, 여인은 벽에 기대어 섰다.


“구미호님,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아직 일이 다 안 끝나서.”

“미안. 대신 도깨비 좀 불러줘.”

“후.. 알았어요.”


구미호는 여인이 나갈 동안 잠시 기다렸다가 꼬리를 하나 끌어안고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흠.. 인간일 때의 기억은? 죽는 순간도 기억이 안나?”


남자는 아까 여인이 전화를 하면서 자신에게 기억에 대해 물어본 것이 기억났다.


“어..”


남자는 골똘히 생각했지만 기억하려 할수록 오히려 머리에서 기억들이 달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나한테 죄송할 게 아니지, 그건. 오히려 너 자신한테 죄송하라고. 그런 식으로 가다간 니 정신마저 사라질 테니까.”

“네?”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보네.”


구미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꼬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귀신이 왜 생기는 지 알아?”

“아뇨, 사실 지금 상황도 실감이 안 되서..”

“귀신은 단 한 가지, 생전의 미련 때문에 생겨. 대부분 특정 인간에게의 복수나, 애정이 미련으로 남는데, 그래서 그걸 기억하는 게 중요해. 지금 너한테 가장 문제되는 것도 그거고.”

“미련을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거군요.”


별 생각 없이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미호는 한숨을 쉬었다.


“미련 때문에 생겨난 존재가 미련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구미호는 남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것인지 잠시 말이 없었다.

집 밖에서 방울소리가 울렸다.


“설마, 없어지는 건가요?”


남자가 드디어 충격 받은 목소리를 내자 구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련이 없어서 성불하는 거랑 다르게, 그냥 ‘소멸’이야.”

“소멸..”

“지금 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줘?”


구미호는 방구석의 상자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 남자 쪽으로 던졌고, 그것들은 전부 남자의 몸을 통과해 바닥에 부딪혔다.


“본인이 귀신인지도 모른 상태였으니까 일부러 몸을 실체가 없게 한 것도 아닐 테고, 스스로 형태를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겠지. 이대로 가단 소멸이야.”

“그건..”

“싫지?”


구미호는 상자에서 서류를 꺼내왔다.


“여기는 너 같은 존재를 위해 설립한 곳이야. 귀신의 집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영적 능력을 가진 동물도 일부 여기에서 살고 있어.”


남자는 아까 보았던 거대한 구렁이를 떠올렸다.

하기야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만한 크기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됐다.


“요즘은 미련을 갖고 죽는 인간들이 줄어서, 귀신도 많이 줄었거든. 여기서 생활하면서 귀신들이 인간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저기..!”


남자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자 구미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그 처녀귀신의 말대로라면 지금 내 모습은 죽었을 때의 모습일거야. 조금이라도 생전 나에 대해 알아야 돼.’

“지금 저는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눈이 하나 없다거나, 피를 흘리고 있다거나..”


구미호는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야. 실체만 있다면 살아있는 인간으로 보일 정도로.”

‘아까 귀신들도 내가 인간이라고 얘기했었지. 그렇게 정상적으로 보이는 건가?’


남자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긴 바지와 특이한 무늬의 넥타이에 눈이 가긴했지만 당연히 자신의 얼굴은 볼 수 없기에 남자는 다시 되물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한 부분은 없나요?”

“흠.. 굳이 뽑자면 상당히 어려 보인다는 거야. 대략 10대 후반..인 것 같은데. 뭐, 동안이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젊은 나이에 죽었네. 자살이나 사고가 아닌 이상 흔치 않은 경우지.”

“그런가요..”

“기억은 니가 앞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야. 어떻게 할래?”


침울한 남자의 앞으로 구미호가 서류를 내밀었다.


“우리 귀신의 집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해준 것 같고, 너만 동의한다면 여기서 지내게 해줄게.”


남자는 눈앞의 서류를 응시했다.


“달리 갈 데가 있어?”

“...”

“그러면 기억을 찾을 방법은?”

“...”


구미호가 낮은 목소리로 한 말이 남자의 가슴에 박혔다.


“다른 선택이 있을 것 같아?”


고민하는 남자의 귀에 방울소리가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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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집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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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니라면 17.06.26 74 0 17쪽
3 첫 수업 17.06.26 104 1 17쪽
2 귀신의 집에서 17.06.26 221 2 22쪽
» 어서와, 귀신의 집은 처음이지? +2 17.06.26 686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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