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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무림공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초연[硝煙]
작품등록일 :
2019.08.30 00:45
최근연재일 :
2023.12.14 07:00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53,496
추천수 :
565
글자수 :
428,469

작성
20.05.01 06:00
조회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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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55화. 정파. 당가 편, 달밤.

DUMMY

무림공적


55화


[정파. 당가 편, 달밤.]


저벅... 저벅...


백화영은 어렴풋이 보이는 인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인형의 모습이 서서히 그의 양 눈에 아리기 시작했다.


‘긴 생머리...?’


여인이었다.

긴 흑발에 하늘거리는 비단 옷을 입고, 그녀는 자근거리는 입으로 차를 한 모금 서서히 옮겼다.


그 태연한 모습에 백화영은 그 곳으로 점점 더 빨려들어갔다.


스윽.


마침내, 달빛을 맞으며 연못에 뛰노는 고기를 보던 그녀는 마시던 찻잔을 손에 고이 들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머물다 가시는 맹의 분이신가요?”


그녀는 나지막히 물었다.


낮선 이에 대해 일말의 긴장도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그렇습니다. 당가의 소저 분인 듯 한데, 저는 그저 밤기운이 따스하여 잠시 산책 중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방해했다면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백화영은 정중히 사과했다.

아무리 이곳이 드넓은 당가여도, 남의 집을 객이 밤중에 함부로 돌아다닌다면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아닙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듯한데 여기서 같이 차라도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그녀는 그리 답했다.

이제 백화영은 함부로 남의 집을 쏘다니는 불청객이 아니라 당가의 심중, 비밀스런 정원으로 정중히 초대된 객인 것이다.


“그럼, 사양 않고...”


백화영은 이제 점점 더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잠시 달이 구름에 가려 어두워지더니 이내 비껴부는 바람을 따라 흘러가고.


‘...허어!’


그는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에 휘영청 달빛이 비쳤다.

고운 비단같은 머릿결이 바람에 찰랑였다.

곧게 솟아있는 콧날은 달빛마저 벼려낼 듯 날카로웠고, 그와는 반대되게도 얇으면서도 도톰한 입술은 부드러워보였다.

대조되는 묘한 분위기에 코와 입과는 다르게, 그녀의 눈은 사슴과 고양이의 것을 합친 듯 올망졸망함을 품은 도도한 격식을 담아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갸름한 얼굴선과 쏟아지는 폭포처럼 떨어지는 목선, 그리고 백색의 비단 금침위에 떨어지는 적색의 천으로 온 몸을 감쌌음에도 불구하고 기품이 묻어나오는 저 고고한 자태는 어떠한가.


백화영은 감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백화영이 묻자, 그녀는 답했다.


“필히 누군가를 알고자 한다면, 우선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객께서는 무림의 법도를 망각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정중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우위를 점한다.

그녀가 정중히 대하려 해도 자연스레 새어나오는 자태만큼이나, 그녀의 말솜씨는 유려했다.


“그렇군요. 제가 잠시 예(禮)를 망각했습니다. 부디 소저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저는 이번 맹의 특무대 일원으로 임명된 백화영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백화영은 바로 여유로운 자세로 정중히 포권을 건네며 순순히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아니, 적어도 그때의 그녀에게는 그렇게 보였었다.


‘뭔가 있군... 이런 부득이한 대화의 주도권 다툼에서는, 먼저 잘못하면 잡아먹힌다.’


백화영은 별 것 아닌 그녀의 말 한마디에도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분명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하고 또 이치에 맞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 무언가 다른 의지가 숨어있었다.


범인(凡人)이라면 이렇게 평범한 한 마디 속 숨어있는 뼈를 절대 눈치챌 수 없었겠지만, 그는 달랐다.


이건 그가 이곳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재판을 거치며 겪은 많은 논쟁들을 통해 자연스레 몸에 배어버린 무언가가 알아차려 버린 것이리라.


그의 본능은 이것이 단순히 우발적인 찻자리의 초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설마 내가 나간걸 보고받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것인가? 이건 거의 얻어걸린 기회를 감사히 받겠다는 듯 하군... 저 여자는 분명 무언가를 원하고 있어.’


뭘 모르는 제 3자가 보면 거의 혼자서 헛생각을 앞구르고 뒷구르고 옆으로 구르고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른 듯 한 이상한 생각의 흐름이겠지만, 백화영은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저 여자, 내게 기를 흘리고 있어. 그것도 미약하게나마 독기를 섞어서...’


그랬다.

그는 그녀가 흘리는 무형지독(無形至毒)을 느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류에 역류로서 거스르는 것은 삼류요, 역류에 휩쓸리는 것은 이류일 것이다.

분명 일류라면, 역류에 순류로서 자신 그 자체가 상대에게 역류가 되어 다가가야만 한다.


그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 역시도 이제는 인사로 답했다.


“맹의 일원으로서 특무를 수행중인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당가의 제 2 소가주, 당천혜라고 합니다. 편하게 ‘혜’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소가주...란 말인가... 이걸로 확실해졌군.’


백화영은 확신했다.

이건 당가의 취조다.


그는 그녀에게서 위화감을 느끼자 마자, 기감을 최대로 올려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자 약 30장 뒤 담벼락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뭔가를 그녀에게 쏘아 보내고 자리를 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가주에, 흘리는 기에, 내용은 모르나 하인과의 내통까지. 분명 내가 나간 것을 보고받았겠지... 특히 정파 제 2의 정보집단이라면 말이야.’


그는 이리 생각했다.


‘내게 닿는 이 독(毒)도... 딱히 해가 되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형지독이라면... 일종의 자백제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좋아, 받아주지.


그의 눈빛이 잠시 이채가 돋았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혜 소저. 소저께서는 어떤 연유로 이런 불청객을 혼자만의 시간에 초대하셨는지...”


“객을 친절히 대하는 것이 주인된 자로서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방금 전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시던데, 무슨 연유로 과년한 제 얼굴을 바라보셨는지요?”


부드러우나, 답을 강요하듯이 압박하는 무언가 힘이 느껴진다.


“별 것 아닙니다. 그저... 혜 소저의 본안이 달빛조차도 시기할 것만 같이 너무 아름다워 그만...”


그러면서 백화영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게 얼굴을 붉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호호, 그리 보아주시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혹시 요 몇 년 새 다른 곳에 계셨나 봅니다...?”


“예?”


이건 또 뭔소리야?

그가 잠시 당황한 사이, 그녀가 친절하게도 답을 건네주었다.


“저는 과분하게나마 정파 강호에서 칠룡 사화 중, 사화의 한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맹에서 발주받아 임명되었건만... 모르셨습니까?”


그렇다.

칠룡사화는 본래 정파무림에서 후기 지수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수려한 이들을 뽑아 맹의 특별직으로 임명하는 제도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차기 무림을 이끌어갈 재목이자 정파의 미래이기에, 적어도 정파 무림에서 그들의 얼굴은 모르더라도 이름과 소속을 알고 나서는 그들이 칠룡 사화임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하,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저희 특무대의 일원에 화량, 저 친구도 당당히 자리하는데 말입니다.

그저... 사화 중 한 분을 처음 뵙는 것이라 진실로 놀라서 그러하였으니, 혜 소저께서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어색하지만 겨우 한 고비는 넘겼다.

애초에 정파인도 아닌 백화영이 칠룡 사화 따위 알게 뭔가?

심지어 화량, 저놈을 보며 ‘그놈의 미래는 개뿔...정파의 미래는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하고 속으로 혀를 찬 그였다.


그가 그러는 와중.


“혹여 화량을 생각하며 실망하셨다면, 저도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뜨끔!


“...예? 저는 무슨 말인지 도통....”


들켰다!

이럴 때는 오리발 작전이다.

그러나, 오리발을 채 내밀기도 전, 그녀의 대답이 한 발 더 빨랐다.


.....


55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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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화. 정파. 무림맹주(5) 20.06.02 236 2 7쪽
62 62화. 정파. 무림맹주(4) 20.05.29 220 2 7쪽
61 61화. 정파. 무림맹주(3) 20.05.26 226 2 7쪽
60 60화. 정파. 무림맹주(2) 20.05.22 225 2 8쪽
59 59화. 정파. 무림맹주 20.05.19 249 2 7쪽
58 58화. 정파. 당가 편. 완. 20.05.15 240 2 8쪽
57 57화. 정파. 당가 편. 정세 20.05.08 243 2 8쪽
56 56화. 정파. 당가 편. 역 취조 20.05.05 254 2 9쪽
» 55화. 정파. 당가 편, 달밤. 20.05.01 268 2 8쪽
54 54화. 정파. 당가 편. 비밀통로 20.04.28 269 2 8쪽
53 53화. 정파. 당가 편 2- 독왕 당산형. 20.04.24 274 3 8쪽
52 52화. 정파. 당가 편. 20.04.21 292 2 8쪽
51 51화. 정파. 가는 길 20.04.17 293 3 8쪽
50 50. 정파. 교육의 장. 20.04.10 307 3 7쪽
49 49화. 정파. 만남의 장. 20.04.07 317 2 8쪽
48 48화. 수색준비. 20.04.03 371 2 8쪽
47 47화. 가자! 정파로! [신교 초편, 완.] 20.03.31 329 2 11쪽
46 46화. 설...설명이 날아든다! 살려줘! 20.03.27 345 2 7쪽
45 45화. 전차...전차! 20.03.24 368 2 8쪽
44 44화. 어쩌란 말입니까 20.03.20 395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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