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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라도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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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넘기
작품등록일 :
2020.05.15 13:28
최근연재일 :
2020.06.08 19:0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5,491
추천수 :
321
글자수 :
135,533

작성
20.05.2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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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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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1쪽

맨헌터

DUMMY

이제 맨헌터 중에 살아있는 것은 한쪽 다리를 다쳐 전의를 상실한 놈뿐이었다.


“저기요? 절대로 말하지 않을게요. 그냥 구울을 만나서 저만 겨우 살아남았다고 보고 하겠다고요, 네?! 제가 거짓말을 하면요, 진짜 죽어도 싼 아새끼요!”


놈은 살려달라며 침을 튀겨가며 구걸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


“만약에 여기서 제가 죽으면, 그쪽도 곤란할 겁니다. 저희 크루가 졸라 집요한 편이거든요.”


크루라면 사냥꾼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즉, 자기를 살려줘야 우리가 안전할거라는 소리였다.


“뭔, 이런 개소리를 듣고 있나?”


불쑥 잡초더미를 뚫고 나타난 강노인이 대뜸 놈의 목에 칼을 쑤셔박았다.

놈은 하고픈 말이 남은 듯, 크게 벌린 입을 몇차례 오물거리려다가 고개를 떨궜다.


“그 애냐?”


당황한 은비가 어찌할 새도 없이 강노인이 은비의 얼굴을 붙잡고는 눈, 코, 입, 귀 등을 유심히 살폈다.

강노인의 진지한 행동에 나는 굳은 자세로 그걸 지켜봤고, 한참이나 살펴본 강노인이 이윽고 허리를 폈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다.


“어때 보이나?”

“쓰읍, 자세히 살펴봤는데..”

“봤는데?”

“허어...”

“...?”

“흐음, 하아.”


강노인의 한숨이 깊어가자, 마음이 자꾸만 불안해져갔다.

한참 한숨을 내쉰 후에야 말문을 여는 강노인.


“아무래도 본격적인 건 아지트로 가서 다시 봐야겠는데.”

“하! 그럼 대체 지금 본 건 뭐냐?”

“일단은 안전한지, 사람을 물지는 않는지 살펴봤네.”


천연덕스레 대답하는 강노인의 모습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럼, 돌아갑세.”


그러면서 앞장서는 강노인.

놈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놈을 죽여야 하나, 살려야 하나?

그러다 문득 이 고민 자체가 원래는 하지 않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냥 죽일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생각보다 아는 것도 많고, 물어볼 것도 많다.

게다가 은비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마저 가지고 있으니.


후, 시간이 지날수록 죽이기가 어려워지는군.


나와 은비는 조용히 강노인의 뒤를 따랐다.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조금 더 무거웠다.

손에는 죽은 놈들의 탄약통(은탄환 스물일곱 발, 일반 탄환 백이십 발이 들어있었다)을 들었고, 등에는 사냥꾼들의 무기였던 장총 네자루를 멨다.

자루처럼 생긴 가방도 하나 둘러멨는데, 거기에는 각종 생필품들과 소금 주머니 이십여개, 그리고 사냥꾼의 옷 일부가 들어있었다.


맨헌터들의 시체는 치우지 않았다.

강노인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마 하룻밤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거네.”

“좀비들 때문에?”

“자연의 섭리인게지.”


눈빛이 흔들렸다.

어떻게 좀비 따위를 자연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는거지?


혹시나, 시체를 이들의 크루나 다른 사냥꾼들이 먼저 발견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강노인이 먼저 발길을 옮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시체를 그대로 두었다.



돌아오는 길에, 강노인은 왔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어떤 골목에 들어서는데, 기이한 장면을 포착했다.

잔뜩 낡은 가로등에 대롱대롱 매달린 커다란 흰 천포대 두 개가 있는데, 포대 안에서 연신 괴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르르르, 크으 크으-


강노인은 허리춤에서 길쭉한 물통을 하나 꺼내더니, 포대 아랫부분에 갖다 놓고서 어디서 주워왔는지 단단히 보이는 막대기를 대뜸 휘둘렀다.


따악-


포대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었던 모양이었다.

경쾌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 검붉은 색의 액체가 흘러나와 물통을 채워갔다.

그제야 난 포대 안에 있던 것이 좀비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간밤에 좀비들이 덫에 걸렸고, 강노인이 그걸 수확하는 꼴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들이 떠올렸지만, 애써 참았다.

특히 강노인에게 이 세상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는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덫에 걸린 좀비는 두 구였다.

두 구의 깨진 머리에서 나온 체액을 모두 받아낸 강노인은 덫을 조정해 다시 바닥에 깔았다.

머리가 깨진 좀비의 사체는 근처의 건물에 던져 넣었다.

70대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 왕성한 체력과 힘이었다.

아, 타락자라고 했던가?


모든 일처리를 끝낸 강노인이 날 보며 이죽거렸다.


“거, 젊은 양반이 노인네 좀 도와주면 안되나?”

“..다시 말하는데, 먹을만치 먹었다니까.”

“어른 공경 이런 말도 모르나?”

“...”


젠장, 귓구멍을 뚫어주고 싶은 노인네다.


강노인의 아지트가 있는 아파트 건물에는 알고보니 비상 계단이 따로 있었다.

건물의 가장자리에 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서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 있었던 것이다.


아지트에 도착하자, 강노인은 곧장 은비더러 침대에 누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아프지 않게 해주마. 그냥 잠깐 살펴만 볼 거야.”


불안하게 날 바라보는 은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제야 은비는 침대에 누웠다.

강노인은 곧 본격적으로 은비의 상태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청진기의 등장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기술자라더니, 의사같은 면모도 보이는 게 여러모로 신기한 노인이었다.


강노인은 진찰하는 중에 자꾸만 질문을 던져왔다.


“아이 이름이 뭐냐?”

“은비, 성은 이씨다.”

“몇살이냐?”

“글쎄? 한.. 여섯, 일곱?”

“일곱살이에요. 엄마가 이제 일곱 살이라고 했어요.”


불쑥 끼어드는 은비.

그 뒤로 몇몇 질문에는 나 대신 은비가 직접 대답하기도 했다.


“둘이 무슨 사이냐?”

“절 구해주신 아저씨예요.”

“아하, 혈육은 아니구만.”

“좀비한테서도 구해주고, 밴시한테도 구해줬어요.”

“뭐? 밴시?!”


깜짝 놀란 강노인이 다급히 날 쳐다봤다.


“아이 말이 사실이냐?”

“사실이다.”

“정, 정말로 밴시를 따돌렸다고? 너희들 혹시..?”


그러면서 다급히 은비의 몸을 살피는 강노인.

그의 행동에 짐작가는 바가 있어 입을 열었다.


“표식 따윈 없을 거다. 죽였으니까.”

“죽어도 표식이 사라지진 않아! 그것은 끝까지 쫓아온다고!”


강노인의 말에 일순 어리둥절해졌다.

무슨 소리지? 밴시가 불사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분명히 대가리를 박살냈다.”

“대가리? 이렇게 멀쩡한데?”

“밴시의 대가리를 박살냈다고.”

“뭐, 뭣이라? 그러니까 밴시를 죽였다는 말이냐?”


그제야 우리는 서로간에 오해가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죽였다는 게, 밴시가 아니라 은비인줄 오해한 것이었다.

밴시를 죽였다는 말에 강노인은 놀란 표정으로 날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죽였는가? 그 요망한 것을..?”

“이봐, 강노인은 아이에게 집중 해줘.”


난 그가 은비에게 집중하길 원했다.

그의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어주기보다는 은비의 상태를 알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큰 탓이었다.


“사실, 은비의 상태에 대해선 진즉에 판단이 섰네.”

“말해봐라.”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 흐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강노인의 얼굴에 돌연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노인의 말.


“헤븐에 데려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네.”

“헤븐?”


헤븐이라면 이미 그에게 몇 차례 얘기들은 바가 있다.

좀비를 연구하는 단체라 했었다.

강노인은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있을 때, 헤븐에서는 구울에 대한 연구도 한창 진행중이었었지. 이제 30년도 더 지났으니 구울 연구에도 분명히 괄목할 성과가 있었을게야. 분명히 그들이라면 은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네.”


두근두근.


그의 심장소리가 빨라졌다.

이 신호가 의미하는 바는 두가지였다.

흥분, 혹은 거짓말.

강노인은 둘 중 어느 쪽일까?

고민을 하려는 찰나에 강노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같이 가겠네.”

“어딜?”

“헤븐에 갈 거라면, 길을 안내할 사람이 필요할 거야. 내가 바로 적임자네.”

“아직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떠나왔더니, 아직도 헤븐의 전경이 눈에 선하네.”

“얼마전? 방금 분명히 30년 되었다고..”

“사양 하지말게. 요 귀여운 아가씨를 보니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말이야.”


역시나, 내 말은 듣지도 않는다.

하지만 함께 가겠다는 그의 말에, 거짓으로 기울었던 판단이 상당부분 돌아왔다.

거짓말을 해놓고 굳이 따라올 필요는 없다.

들켰다간 죽을 게 분명한데, 그럼에도 따라오겠다고 하니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다.


그렇다면, 흥분을 했다는 얘긴데.

오랜만에 가는 고향이라 흥분하는걸까?

이것도 조금 이상한데?

일단은 좀 더 지켜보는게 좋을 것 같다.


“근데, 피부 색이 특이하긴 하네. 구울이라면 선명한 보라색이어야 하는데, 이 아이의 피부는 거의 회색에 가깝지 않나.”


강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날 흘끔 쳐다봤다.

허나 내 피부는 이미 적갈빛을 많이 띄게 되어서 은비의 회색과는 좀 달라보였다.


“그런데, 피부의 질감은 또 완전 구울이란 말이야. 이것보게,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가!”

“..칼로 찔렀단 말이냐?”

“아아, 진정하게! 여기서 포인트는 칼이 안들어갔다는 점이니까.”


이 미친 노인네가 칼을 들고서 해맑게 웃는다.


“아무래도 아이가 먹은 체액이 일반적인 구울의 것이 아닌 모양이야.”


그러다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쩍 벌리는 강노인.

그의 눈이 뚫어져라 날 향했다.


“..자네 피를 먹였구만!”


이제야 그걸 깨달은걸 보니,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하지만, 굳이 긍정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듣고 있는 마당에 할 말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나의 민감한 청력에만 그렇게 들렸을 뿐, 둔감한 강노인은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러 대의 차가 멈춰섰고, 곧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건물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증폭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미친 영감!! 무슨 생각으로 우리 사람들을 죽였소?!”


뭔가 싶어 집을 나가 복도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 공터에 차량 여섯 대와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게 보였다.

하나같이 사냥꾼의 복장에 장총을 든 자들이었다.


그 광경을 본 장노인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재수가 없었군.”

“뭐가?”

“살다보면 재수가 없을 때도 있는 법이지.”

“흐음.”

“밴시를 상대한 실력이라면 이정도쯤이야 모두 처리할 수 있겠지? 안그런가?”


역시 제 할말만 하는 강노인.

그와중에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제 말대로 모두 처리해줄 것라고 믿는 눈빛이었다.


“내 실력을 보고 싶단 소리군.”

“예리하군. 맞아, 헤븐에 들어가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안되지.”

“그럼, 저들을 다 죽여도 되나?”

“봐줬다간 자네가 죽을 걸세.”

“그렇군.”


나는 다섯 자루의 장총을 모두 장전하고, 가슴에 둘러 맨 스무 발들이 딴띠 두 개에도 일반 탄환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리볼버에도 여섯발을 모두 우겨넣은 다음, 옥상으로 올라갔다.


작가의말

주인공은 강노인보다 본인의 나이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추천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작도 엄청 감사드리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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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밴시 사냥꾼 +8 20.05.31 164 16 13쪽
» 맨헌터 +3 20.05.29 201 13 11쪽
15 맨헌터 +3 20.05.28 179 9 12쪽
14 타락한 사냥꾼 +6 20.05.27 215 13 11쪽
13 좀비라도 살고 싶어2 +1 20.05.26 201 7 12쪽
12 좀비라도 살고 싶어2 +3 20.05.25 248 9 13쪽
11 좀비라도 살고 싶어2 +3 20.05.23 226 11 13쪽
10 표적 +1 20.05.22 218 10 12쪽
9 표적 +3 20.05.21 218 8 13쪽
8 표적 +2 20.05.20 238 8 12쪽
7 표적 +4 20.05.19 247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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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쫓기는 자들 +4 20.05.15 311 14 11쪽
4 쫓기는 자들 20.05.15 312 12 13쪽
3 좀비라도 고독해. +2 20.05.15 320 18 13쪽
2 좀비라도 살고 싶어! +3 20.05.15 346 23 12쪽
1 나는 좀비였다. +11 20.05.15 50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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