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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라도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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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넘기
작품등록일 :
2020.05.15 13:28
최근연재일 :
2020.06.08 19:0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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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5
추천수 :
321
글자수 :
135,533

작성
20.05.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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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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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표적

DUMMY

우리는 거실을 거처로 삼았다.


“아저씨랑 총 주고 받기 놀이를 하는거야.”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한 후, 본격적으로 은비와 연습을 시작했다.


철컥, 턱.

철컥, 턱.


내가 장총을 던져주면, 그걸 받은 은비가 빠르게 재장전을 해 다시 나에게 밀어준다.

그럼 난 그 총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한 다음, 다시 은비에게 던져준다.

이른바, 전투 지속력 향상을 위한 루틴 연습이다.

내가 쏘면, 은비가 장전하고, 다시 내가 쏜다.


아마 아이 엄마가 봤으면 기겁을 했겠지?

그도 그럴 것이 실탄이 장전된 장총을 가지고 하는 놀이라니.


십여 차례 반복하자, 우리의 합이 그럴듯하게 맞아들어갔다.

그 즈음, 하늘은 조금씩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은비에게 혼자 연습하라고 한 다음, 나는 분주히 움직였다.

땔감으로 쓸만한 나무들을 모았고, 작은 손거울들을 챙겨왔다.


가방에 들어있던 부싯돌로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웠다.

불이 밴시를 상대하는 좋은 공격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장노인의 말 때문이었다.


커튼은 고민 끝에 치기로 했다.

빛이 뻗어나가는 것도 막고, 밴시와 곧장 시선을 마주치는 것은 피해야 했다.

그리고 두 집에 있던 크고 작은 거울들을 가져와 창문을 비롯한 이곳저곳을 비추게 했다.

역시나 밴시를 직접 보지 않고 싸우기 위함이었다.


일련의 준비과정을 마무리 지은 후, 우리는 거실 구석에 자리잡았다.

은비는 하양이랑 놀았고, 나는 권총을 꺼내 총기수입을 시작했다.

해는 떨어졌지만,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이미 좀비와 구울의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밴시는 심야, 그러니까 12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까닭이었다.


먼저 권총를 찬찬히 살폈다.

처음 만져보는 권총이지만, 왠지 어떻게 총기수입을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그냥 손 가는대로 총기를 분해하고, 천과 기름을 이용해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점검했다.

열고, 닦고, 기름칠 하고, 다시 닦고.

처음에는 뻑뻑하던 방아쇠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잘 돌아가지 않던 탄창이 기름칠 몇 번에 뱅그르르 돌아갔다.


찰칵, 찰칵.


방아쇠를 당기자, 공이 소리가 매끄럽게 들려왔다.


이제 문제는 오직 하나, 권총에 쓸 탄환의 수급인데.


그런데 무심코 이것저것 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장총의 탄환이 권총 탄창에 들어간다는 것.

그냥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은 규격인 양 딱 맞았다.


‘이럴수도 있나?’


만약 우연의 일치라면 참으로 기꺼운 우연이다!


잔뜩 녹슨 탄환들을 뺀 다음, 아예 은탄환으로 여섯발을 가득 채웠다.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연발로 여섯 번을 쏠 수 있게 된 셈.

그야말로 지구 파괴 수준의 오버파워 무기이다.

아니, 그정도는 아닌가?


어쨌든 잘 작동하는지 시범 사격을 해보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다.

괜히 소음을 냈다가 좀비나 구울을 끌어모았다간 곤란하니까.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음?”


밴시와 어떻게 싸울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비가 물어왔다.

내 이름?

내 이름이 뭐였지?

그러고보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잠자코 있자, 은비가 날 측은하게 쳐다봤다.


“머리를 다쳐서 기억 안나나보다. 그렇죠, 아저씨?”

“..그런가 보다.”

“그럼 제가 아저씨 이름 지어줄까요?”

“아니, 괜찮다..”

“저 이름 잘 지어요. 하양이도 제가 지어준 이름이거든요.”


순간 말문이 막힌다.

그러니까, 개 이름 짓듯이 내 이름을 짓겠단 소린데?

어처구니가 없는 와중에도, 은비는 그만 둘 생각이 없나보다.


“아저씨, 얼굴 좀 보여봐요.”


내 머리로 향하는 아이의 손을 간단하게 밀어냈다.


“치, 생긴걸 봐야 이름을 짓는데.”


은비의 중얼거림이 섬뜩하다.

더욱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다.


이어서 은비는 가족관계와 사는 곳을 물어왔다.


내 가족?

내가 살았던 곳?

이 질문들은 사실 진즉에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모른다였다.


정말로 하나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은비의 말대로 뇌 손상을 크게 입어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건지도 모른다.


가만히 움푹 패인쪽의 머리를 가리키자, 은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해요, 아저씨. 기억 못할 수도 있죠, 뭐.”


그리고 우리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난 늙은 여 사냥꾼의 수첩을 꺼내들어 밴시에 대한 페이지를 찾았다.


-4종 밴시, 유령. 공포를 먹는 귀신. 그 생김새는 흰옷을 입은 여자와 같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눈이 없고, 입이 길게 찢어져 무척이나 공포스럽다고 한다. 공간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때때로 귀곡성을 질러댄다. 인근의 좀비와 구울을 다스리는 상위 존재.


그리고 그 아래에 밴시에 대한 공략이 나와 있었다.


-공포를 먹고 사는 밴시는 최면과 정신 지배를 사용하고, 휘하의 괴물들을 이용하여 대상을 공격하기도 한다.

-은 무기 외에는 공격이 통하지 않으며, 일설에는 은 무기도 통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공략법이라기보다는, 도망치라는 소리같은 설명이다.

게다가, 설명에 일관성이 없다.

통한다는 거야, 안 통한다는 거야?

만약 은 탄환이 안 통한다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나는 본격적으로 밴시와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밴시가 출현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것의 정신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만약, 괴물들을 끌고 왔을 경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사실, 뾰족한 수는 없었다.

나는 전투의 스페셜 리스트도 아니었고, 전투 경험이 그닥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믿는 것은 튼튼하고 강한 몸뚱아리.

그리고, 괴물들이 날 적대하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전부였다.


어쩌면, 밴시는 은비만 죽이고 떠날지도 모른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비열한 바람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그 감각은 예고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음습하고 섬뜩한 감각.

머리를 열어다가 차가운 냉수를 부은 것만 같은 지독한 한기가 갑작스레 등줄기를 훑어 내려갔다.


“흡.”


짤막한 신음과 함께 눈을 뜨고보니 옆에 있던 은비가 사라지고 없다.

얘가 어디갔지?


아이의 심장소리를 쫓아 황급히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은비가 커튼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몽유병 환자같은 은비의 기묘한 모습에 잠시 쳐다만 보고 있는데, 문득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톡톡.


특별할 것 없는 그 소리에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일어났다.

은비 앞의 커튼 너머로 옷자락을 흐느적거리는 사람의 인영이 거멓게 드리워진 것도 거의 동시였다.


“은비야!”


난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장총을 빼들었다.

그리고,


탕-!


총알은 은비의 머리위를 스치듯이 날아가 그대로 유리를 깨부수고 밴시의 왼쪽 가슴에 명중했다.


와장창-


끼아아악-


유리창이 무너져 내리고, 새하얗게 늘어진 옷을 입은 밴시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그것의 송곳니 가득한 주둥이는 미소를 잃었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느라 잔뜩 일그러졌다.


됐어!! 은 탄환이 먹힌다!!


하지만 민감한 청각으로 잡아낸 밴시의 심장소리는 살짝 빨라지긴 했지만, 별반 변화가 없었다.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는 뜻.


나는 밴시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나가 은비를 붙잡았다.

부서진 유리창 너머로 막 걸음을 내딛으려던 은비가 내 손에 잡혀 맥없이 거실 안으로 끌려왔다.

은비를 내려다보자,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심장 박동이, 방금 같은 상황이라면 빨라져야 정상일텐데 하등 변화가 없었다.

밴시의 주특기가 최면과 정신지배라더니, 아주 제대로 당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최면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하지?


잠시 고민한 끝에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딱-


강력한 딱밤에 은비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런 후 또렷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는 아이.


“아야! 이씨! 왜 때려요?!”


앙증맞은 주먹으로 날 때리려는 은비를 간단히 제압하고, 장총을 건내줬다.


“장전해.”

“네?”


은비를 뒤로 슬쩍 밀치며 두 번째 장총을 꺼내자 그제야 은비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빠르게 발로 손잡이를 당겨 탄피를 제거하고 은탄환을 밀어넣는 은비.


그즈음, 나는 부서진 창가에 선 채, 거울을 통해 창 밖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략 20미터쯤 떨어진 허공에 밴시가 허연 옷을 흐느적거리며 떠있는 것이 거울에 비쳤다.

지상에서 계산하자면, 대략 100미터 높이의 상공.

그것은 귀신같은 행색으로 허공을 날아올랐다.


나는 주워든 거울을 보며 장총을 들어 밴시에게 겨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지만, 초인적으로 상승한 지각 능력이 이대로 쏴도 백퍼센트 명중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밴시가 수직으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상하좌우로 빙글빙글 돌며 정신 사납게 부유했다.

그래도 다행인게, 맨눈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나 무섭던 밴시가 거울을 통해서 보니 견딜만했다.

장노인의 말대로 직접 보지 않는 전술이 효과가 있었다.


그것이 10여미터쯤 접근했을 때, 나는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탄환은 정통으로 밴시의 머리에 꽂혔고, 관통했다.


됐다!! 명중했...어?


분명 첫 번째 공격은 벤시에게 타격을 주었었다.

심장 부위에 총격을 입은 놈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었다.

그랬기에, 두 번째 총격에도 틀림없이 고통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밴시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급격히 다가왔다.

마치 실체가 없는 양, 총알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것의 양 손에서 길게 뽑아져 나온 손톱이 허공을 길게 가르며 들이닥쳤다.

그와 함께 갑자기 지척에서 들려오는 그것의 심장 소리.


아, 심장소리!!


나는 즉시 세 번째 장총을 빼어 들며, 동시에 권총을 뽑았다.


탕, 탕, 탕, 탕-


장총에서 한 발, 그리고 권총에서 세 발이 뿜어졌다.

날아간 은탄환들은 단 한발의 예외도 없이 밴시의 머리통에 모두 꽂혀 들어갔다.

잔뜩 머리를 젖힌 채로 크게 휘청거리며 튕겨나가는 밴시.


끼아아아아아아아-


길게 비명을 내지른 그것이 허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와 함께 미칠 듯이 뛰는 그것의 심장소리도 함께 멀어져갔다.


이거구나!!

난 이제야 은탄환이 통하기도 하고, 안통하기도 한다는 말의 진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밴시는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기도 하고, 안가지기도 하는 존재였다.

평소에는 물리적 실체가 없다가, 창문을 두드리거나, 공격을 하려고 할때만 실체를 가지는 존재였던 것이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것의 심장소리가 그 증거였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제 놈을 상대할 방법을 알았을 뿐이다.

아직 놈은 죽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놈의 심장소리가 그 증거였다.


이대로 놈이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은비가 걸린 표적의 저주는 벗어날 길이 요원해진다.

언제고 놈의 방문을 대비하며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을 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놈은 벌써 허공을 날아 저 아래쪽으로 사라졌다.

애초에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존재를 두발로 쫓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어떡하지?

만에 하나 쫓아가기로 결정하더라도 은비를 데려가야 한다.


그때였다.

예민한 청력으로 복도 너머, 계단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분주하게 올라오는 소리가 잡혔다.


타다다다닥, 타다닥.


난 금방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좀비들이다.

어쩌면 구울도 몇 마리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놈이 불렀구나!


나는 급히 거실로 돌아와 가방에서 소금주머니들을 꺼냈다.

일종의 퇴직금이라며 넣어준 열 개의 소금주머니.

그중 세 개를 은비가 설치했고, 일곱 개가 남았다.


소금이라면 나 역시도 질색이지만,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 안에 들어있을 때는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비상 계단으로 달려가 주머니 세 개를 연달아 계단 아래쪽으로 던졌다.


퍽퍽퍽-


이로써 계단은 일단 단단히 방비했다.

그리고 복도로 돌아오는데, 어디선가 괴성이 들려왔다.

가만 들어보니, 망가진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들려오는 소리다.

엘리베이터는 어딨는지 알수 없고, 시커먼 빈 공간만이 보였다.


설마, 이 놈들, 여길 타고 올라오나?


몇걸음 물러선 다음 엘리베이터 입구 바닥을 향해 소금주머니를 강하게 던졌다.


퍽-


주머니가 터지며 일부는 입구 바닥에 뿌려지고, 일부는 엘리베이터 통로 안쪽으로 떨어졌다.


어꾸레에에-


잠시 후, 들려오는 뭔가 억울함이 깃든 괴성.

그리고 쿵쿵, 뭔가 묵직한 추락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작가의말

어꾸레에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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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밴시 사냥꾼 +8 20.05.31 165 16 13쪽
16 맨헌터 +3 20.05.29 201 13 11쪽
15 맨헌터 +3 20.05.28 179 9 12쪽
14 타락한 사냥꾼 +6 20.05.27 215 13 11쪽
13 좀비라도 살고 싶어2 +1 20.05.26 201 7 12쪽
12 좀비라도 살고 싶어2 +3 20.05.25 249 9 13쪽
11 좀비라도 살고 싶어2 +3 20.05.23 226 11 13쪽
10 표적 +1 20.05.22 218 10 12쪽
» 표적 +3 20.05.21 219 8 13쪽
8 표적 +2 20.05.20 238 8 12쪽
7 표적 +4 20.05.19 247 10 13쪽
6 쫓기는 자들 +1 20.05.18 255 8 14쪽
5 쫓기는 자들 +4 20.05.15 311 14 11쪽
4 쫓기는 자들 20.05.15 312 12 13쪽
3 좀비라도 고독해. +2 20.05.15 320 18 13쪽
2 좀비라도 살고 싶어! +3 20.05.15 346 23 12쪽
1 나는 좀비였다. +11 20.05.15 50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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