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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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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작품등록일 :
2024.08.11 20:56
최근연재일 :
2024.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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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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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피크닉?

DUMMY

기연이란다, 기연.


이건 또 무슨 장난인가 싶은 마음을 감추기 힘든 레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제는 밝게 웃고만 있다.


갑자기 피크닉을 가고 싶다고 해서 급히 준비된 후작영애의 행차.


평소 같은 으리으리한 의전은 됐다고 할 때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향락과 사치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엘리제가 의전을 마다하다니. 저택을 벗어나 거리에 나갈 때도 기사단을 끌고 다니는 비효율의 극치가 바로 엘리제다.


그런데 제법 멀리 나온 이번 피크닉은 고작 호위 기사 둘에 아예 시종은 레오 한 사람만 대동했다.


그 시점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는데 기연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레오는 알 수가 없었다.


신종 장난인가?


그렇다면 무얼 노리는 거지?


내가 희망을 품었다 절망하는 게 보고 싶나?


그런 생각을 하는 레오를 보고 엘리제는 안타까운 기색을 보이면서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예요, 레오."


장난이 아니라 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될 거라면서 엘리제가 돌연 마차 안에서 일어서더니 레오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나란히 마주 앉아있던 두 사람이 이제는 나란히 같은 곳으로 보고 앉게 됐다.


게다가 은근히 밀착해오는 엘리제를 보고 레오는 직감했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날 쫓아낼 작정이구나.’


사실 그간 엘리제가 레오를 쫓아내고자 했다면 가장 확실한 수단이 하나 있었다.


바로 레오가 자신을 겁탈하려고 했다는 누명이라도 씌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름 아닌 프라이드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엘리제였으니까.


장래 이 나라의 국모가 되길 꿈꾸는 아가씨다.


그 높은 이상을 생각하면 귀찮은 집사 한놈 쫓아내는데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는 없다는 거지.


아무리 입막음하더라도 이상한 추문이 생기는 건 있을 수 없으니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귀찮은 감시자를 쫓아내려고 들 줄이야.


의전을 줄인 것도 다 이런 이유였군.


증인이 될만한 눈은 적은 게 좋으니까.


호위 기사 둘은 이미 매수된 상태인가?


괜찮아, 침착하자. 후작님이라면 자기 딸의 성격을 아는 만큼 말하면 믿어주실 거다.


어떻게 이 위기를 빠져나갈 것인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레오.


"이러시면 안···."


그러는 사이 엘리제가 손을 뻗어 레오의 손을 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레오의 어깨나 팔을 더듬는다.


고자가 아닌 이상, 아니 고자라도 가슴이 두근거릴 상황이었지만 지금 레오에겐 엘리제의 그 나긋나긋한 손길이 몬스터가 툭툭 건드려 먹이 상태를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는 하는데 다른 의미로 쿵쾅거린다.


아차 하면 자기 혼자 죽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까지 전부 줄초상이라는 사실에 위기 타파를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레오였는데,


"훌륭해요. 평소에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엘리제는 이런 소리를 한다.


당장 비명이라도 지르면서 준비한 쇼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레오의 다부진 근육질 몸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거지?


패닉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없었던 레오 옆에서 엘리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간다.


"살짝 걱정도 했는데··· 응, 이거라면 괜찮겠어요."


"에, 엘리제님?"


꼼꼼하게 근육 강도 등을 손끝으로 체크한 엘리제가 아쉬움을 참으며 스킨십, 아니 체크를 끝낸다.


"지금의 레오라도 충분히 기연을 받아들일 수 있겠네요."


난데없는 이 상황을 레오의 머리가 따라가는 데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 레오와 마주 앉아있는 엘리제가 보였다.


호선을 그리고 있는 눈.

살며시 입가를 가린 부채.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마치 후광처럼 두른 엘리제 버몬트는 가히 여신 같은 미모와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레오에게는 그 모든 모습이 그저 공포스러울 뿐이었다.


‘쫓아버릴 수 없다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로 하신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 안 가는 상황으로 가득했으니까.


그런데 더 이해가 안 가는 점은 그런 논리적인 사고와 달리 엘리제가 자신에게 호의, 호감이라 부를 것을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는 거다.


레오는 바보가 아니다.


10살부터 반강제로 시작한 집사 생활 탓에 눈치도 빠르지.


얻어맞지 않기 위해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도 능숙했고 특히 엘리제의 기분을 파악하는 건 귀신이었다.


그런 레오였기에 지금 엘리제가 자신에게 친밀의 감정을 보인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문제는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무서운 거다.


차라리 두들겨 패고 욕하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마음은 편할 것 같다.


호의라니?


대체 왜?


갑작스러운 엘리제의 변모가 가장 곤혹스러운 건 부모도, 다른 시종도 아닌 측근 레오였다.


아마 다른 상대였다면 호감을 보인다는 사실에 솔직하게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엘리제다. 그녀의 마음에 든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를 레오가 아니지.


아이가 재미있고 좋다는 이유로 곤충의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 엘리제의 호감이다.


무관심이 제일이고 차선이 짜증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진짜 뭔데···.’


모시는 아가씨가 돌변한 이후로 심로가 끊이질 않는 레오였다.


기연 타령도 그렇다.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쳐도 그걸 왜 자신에게 주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아카데미에 같이 가기 위해서라는 핑계도 말이 안 되지.


말이 기연이지 어디 몬스터 소굴에 강제로 밀어 넣고 실전에서 경험을 쌓으라는 소리나 안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레오였으나,


"여기예요."


기어코 도착해버리고 만 목적지를 본 순간 그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검의 평원···?"


버몬트 후작가가 자랑하는 역사의 장소.


300년 전 제국의 침공에 맞서 당시 소드마스터였던 버몬트 후작이 승리를 거둔 평원.


본래 이름 없는 평야에 불과했지만, 그 승리 이후 검의 평원이라 불리게 됐다.


실제로 평원에는 아직 당시의 전투 흔적이 남아있다.


소드마스터가 남긴 검흔.


혹시 거기서 뭔가 단초를 얻을 수 있진 않을까 하고 참 많은 검사가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냥 일종의 관광지 같은 곳이 되었고 그마저도 인기 없어 찾는 사람이 사라졌지만.


그런 곳에 피크닉을 핑계 삼아 기연을 찾으러 왔다는 말에 레오는 직감했다.


‘아, 역시 장난이네.’


소드마스터가 남긴 검흔을 보고 뭔가 얻어보겠다고 이곳을 다녀간 검사가 300년간 몇 명이나 됐겠는가? 그런 이들 중에 실제로 유의미한 무언가를 얻어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행비 날리고 평야 구경이나 하고 간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기연 같은 소리를 하면서 검의 평원에 왔다?


이건 십중팔구 장난을 치려는 것이지.


오랜 시간 엘리제를 모신 경험이 입각해 레오가 생각하기를,


‘자! 어서 버몬트 가문의 선조가 남긴 심득을 얻고 엑스퍼트에 오르세요! 못한다고요? 무리라고요? 왜죠? 지금 저희 가문을 무시하는 건가요? 모처럼 베푼 제 호의가 우스워요? 소드마스터가 남긴 것이 고작 엑스퍼트에 이르는 것도 못 도와줄 것 같아요? 성취를 볼 때까지 돌아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요!’


이러면서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평야에 버려두고 가진 않을까 싶다.


정말 당장이라도 현실이 될 것 같은 그 상상에 레오는 똥 씹은 표정이 되는 걸 참느라 필사적이었다.


그런 레오의 귓가로 들려오는 엘리제의 목소리.


"자, 그럼··· 읏."


잠깐 한눈을 판 레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제가 귀족 영애라면 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는 정절수호용 단검으로 자기 손바닥을 그은 것이다.


"아가씨!"


자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쫓아내려고 작정을 한 건가?


다양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황급히 마차에서 상비약을 꺼내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레오의 행동을 막으면서 엘리제가 소드마스터가 남겼다는 검흔 위로 자기 피를 뿌린다.


방울져 손끝을 타고 떨어지는 피.


엘리제의 지시를 따라 멀리 거리를 두고 있는 호위 기사가 이걸 보기라도 한다면 경을 칠 거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하려는 레오였지만 엘리제는 단호했다.


지혈을 거부한 채 자신의 핏방울을 뿌린다.


"대체 뭘···."


하시는 거냐고 더는 참지 못하고 따져 물으려던 찰나였다.


엘리제가 흘린 피에 이끌리듯 그녀의 선조가 남긴 검흔에서 인간 형상의 실루엣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지 놀라서 말문이 막힌다.


그런 레오에게 엘리제가 웃으며 말했다.


"저 실루엣에 접하면 300년 전 선조께서 치른 전투를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예? 그 말씀은···."


"네, 이젠 전설 취급당하는 마지막 소드마스터의 힘이라는 걸 느껴볼 수 있다는 거죠."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분명 엄청난 기연이 맞다.


고수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수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아마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알면 그야말로 사람을 죽여서라도 원하는 검사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재능 없는 레오라고 해도 이런 기연이라면 벽을 넘기 위한 실마리는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겠지.


다만, 그래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런 기연이 정말 사실이라면 더 적합한 사람에게 주는 게 맞지 이걸 왜 자신 같은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에게 준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버몬트 기사단의 단장에게 준다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버몬트 후작가가 300년 만에 소드마스터라는 강력한 무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오크 목에 드래곤하트도 아니고 레오 같은 둔재에게 준다니.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도 한도가 있지.


레오는 정신없이 엘리제를 설득해서 하다못해 따라온 호위 기사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이건 오르골처럼 언제든 되감아 들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 일회용이니까요."


"그러니 더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옳다고 말하는 레오에게 엘리제가 차갑게 식은 눈빛을 보였다.


"뭐가 옳다는 거죠? 말로는 충성을 부르짖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깃발을 바꿔 드는 자들에게 이런 기연을 양보하는 게 옳다고요?"


"아가···씨?"


"후."


잡념을 털어내듯 한숨을 쉬며 엘리제는 상처에서 피가 나는 손바닥을 레오에게 들어 보였다.


"레오. 이 상처도 이 기연도 모두 당신을 위한 거예요. 그걸 다른 사람에게 주자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네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는 레오.


기연이 실존한다는 충격에 잠깐 잊고 있었다.


엘리제가 스스로 피를 흘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실수로 작은 생채기 하나만 나도 그날은 아주 저택 뒤집어지는 날이다.


약 바르면 될 걸 고위 사제까지 불러서 난리를 치는데···.


그런 엘리제가 기연을 위해서라고 해도 자해했다? 더구나 기연을 자신에게 주기 위해?


이쯤 되면 레오는 뇌 정지 수준이 아니라 뇌 파괴가 일어나려고 한다.


억측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엘리제 버몬트의 탈을 쓴 별개의 타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지금 모든 상황이 충격이었다.


"10년 동안 날 위해 노력해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줘요. 부담스럽나요? 그럼 그 부담만큼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 주면 된답니다."


갈등은 길었으나··· 결국 레오 역시 검사 나부랭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결단을 내린 레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수건으로 엘리제의 손바닥을 지혈해주었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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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7 상대원박씨
    작성일
    24.08.14 15:39
    No. 1

    더 없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RUT
    작성일
    24.08.14 17:56
    No. 2

    연참은 무리인데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k7******..
    작성일
    24.08.15 02:08
    No. 3

    노벨피아에서 연재중인 로판속 만화 그리는 엑스트라 읽다 문풍당당이 생각나 작가님 신작 안 쓰실려나 하고 별 기대 없이 문피아 들어와 찾아 보니 이겐 웬일?!진짜 신작이 있네요. 이번 신작 아직 3화뿐이지만 꽤 취향 직격이라 이후 이야기도 기대되네요. 연중없이 유료연재까지 성공적으로 가시길 기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ㅇ낄낄ㅇ
    작성일
    24.08.28 07:56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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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래에 투자하다 24.08.22 609 23 12쪽
10 이 악역영애는 마케팅비가 필요해요 24.08.21 687 23 12쪽
9 버틀러 메이커 +3 24.08.20 720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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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금 달라진 소녀의 꿈 +1 24.08.16 897 29 13쪽
4 이제 진짜 피크닉 +5 24.08.15 931 35 12쪽
» 피크닉? +4 24.08.14 1,005 33 12쪽
2 아가씨가 이상하다 +2 24.08.13 1,150 38 11쪽
1 프롤로그 +4 24.08.12 1,352 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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