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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그 님의 서재입니다.

로그라이크 던전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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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그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3.08.1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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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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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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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450

작성
22.05.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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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 1층 : 튜토리얼(1)

DUMMY

삶이란 선택의 연속이다.

나 역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그중에는 옳은 선택도, 옳지 않은 선택도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선택은 무엇이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살면서 후회되는 선택은 없었어요.’ 하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진짜 후회되는 선택은 죽은 뒤에 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삶은 썩 괜찮은 삶이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적당한 직장을 얻어서 적당히 먹고살았다. 그러다가 살고 있던 빌라에 화재가 일어나 죽었다.


비참하다면 비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에 아이 한 명을 살릴 수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마지막에 영웅적인 희생을 하고 죽는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고 절망하면서 죽었다. 그렇게 죽고 나서 다시 정신을 차리니, 나는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에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찬란한 빛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강처럼 길게 길러,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있는 나신의 미인이었다.


이 초현실적인 상황에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그 여인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 장현우지? 안타깝구나, 너는 죽었단다. ]

“그러면 여기는 사후세계인가요?”


그 얼빠진 질문에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 그 입구지. 이대로 내가 사라지면, 넌 그대로 사후세계로 갈 거야.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곳에서 자아를 잃고 그저 존재만 하겠지. ]


생각보다도 삭막한 사후세계의 정체에 내 후회와 절망이 더 깊어지자, 여인은 빙긋 웃었다.


[ 하지만 그건 너무 아쉽지. 난 네가 살아가는 것을 봤단다. 어려운 삶에서도 더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쓰고, 타오르는 건물에서도 홀로 도망가는 대신, 아이를 구하던 모습을. 그런 네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이대로 공허한 사후세계로 가는 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지. 난 네게 기회를 주고 싶구나. ]


“기회요?”


[ 그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삶. 그뿐이 아니지. 네게 특별한 힘을 줄게. 초월적인 힘과 초월적인 성장을 네게 줄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세계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게. 넌 그저 내 가호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그래. 마치 게임처럼 간단한 삶이지. 그것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은 네게 걸맞는 보상이 아닐까? ]


다시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수상쩍은 조건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초자연적인 분위기인 장소에 있는 데다가 눈앞의 여인은 마치 신과 같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의심하지 못하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선택이었다.


*****


“씨발.”


그것이 내가 이틀 만에 입 밖으로 꺼낸 단어였다. 전신이 부러졌다가 간신히 몸이 다 나았는데,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내 몸뚱이보다 커다란 개미 세 마리가 나를 뜯어먹기 위해 몰려왔으니, 이것도 지금 느끼는 분노와 설움에 비해서는 온건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분노와 설움을 입을 통해 쏟아내는 대신,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팔다리에 불어넣었다.


내 움직임에 반응하여 개미들도 내게 달려들었다. 이대로 세 마리의 개미를 동시에 상대하려 든다면, 내 몸은 다시 만신창이가 될 게 뻔했다. 하지만 나도 아무 데서나 쉬고 있던 게 아니었다. 난 허리춤에서 송곳 하나를 꺼내 가장 앞서서 달려드는 개미를 향해 던졌다.

그리 강하게 던지지도 않았고, 송곳도 조잡하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개미는 위턱을 살짝 트는 것만으로도 송곳을 튕겨냈다.


공격이 먹히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노린 것은 약간의 시간이다. 그 개미가 송곳을 튕기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틀자, 다른 두 마리도 그 개미에 막혀 잠깐 멈추었다. 난 그 지체를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내가 물러난 곳은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였다. 이렇게 되면 개미들도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하나씩 기어들어 와야 한다.

내 의도대로 개미들은 일렬로 줄 서서 들어왔다.


난 가장 먼저 들어온 개미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 던진 건 제대로 만들어진 단검인데다가 힘껏 던졌기 때문에, 정확하게 개미의 머리에 박혔다.

머리에 단검이 박혀 선두의 개미가 움직임을 멈추자 난 그대로 뛰어올라 뒤꿈치로 개미의 미간에 박은 단검을 내리찍었다. 칼날은 더 깊숙이 들어가 외골격을 완전히 뚫고, 개미의 뇌를 헤집었다.


뇌가 크게 손상되었음에도 개미는 고개를 젖히고 위턱을 닫아 나를 찢어발기고자 하였으나, 나는 그 움직임보다 잽싸게 단검을 움켜쥐고, 위턱을 걷어차서 위로 뛰어올랐다. 결과적으로 개미의 위턱은 나를 찢어발기는 대신 허공을 갈랐고, 나는 첫 번째 개미의 등 위에 착지했다.


그 마지막 공격을 끝으로 첫 번째 개미는 완전히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래도 안심할 틈은 없다. 내가 보이자 두 번째 개미는 곧바로 위턱을 앞으로 치켜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세 번째 개미는 멀뚱멀뚱 보는 대신, 꽁무니를 치켜들고 개미산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턱도, 개미산도 어느 쪽이든 맞았다가는 일주일이 넘게 요양해야 한다. 그럴 수야 없지. 난 몸을 숙인 채 한쪽 손으로 땅을 짚은 후, 첫 번째 개미의 등을 디디고 있던 두 발과 땅을 짚은 왼손에 힘을 줘서 밀어내 앞으로 굴렀다. 두 번째 개미의 위턱은 내 위를 스치고 지나갔고, 세 번째 개미가 쏘아낸 개미산은 첫 번째 개미의 사체가 뒤집어썼다.


그렇게 두 공격을 모두 피한 나는 그대로 드러누운 채, 두 번째 개미의 목을 베었다. 외골격이 갈라지며 상처에서는 진득하고 투명한 체액이 맺혔다. 이어서 두 다리를 위로 치켜들고 허리를 튕겨 두 발로 두 번째 개미의 턱을 올려 쳤다.


개미의 목은 그 덩치에 비해 얇았다. 단검에 베인 것만으로도 머리를 지탱하기 힘들 지경이었는데, 거기에 턱까지 얻어맞자 더 버티지 못하고 몸에서 떨어졌다.

이로써 남은 개미는 단 한 마리. 혼자가 된 개미는 더 싸우는 대신, 동료들을 불러 모을 심산인지 등을 돌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난 녀석이 물러난다고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그대로 뛰어서 도망치는 녀석의 뒷다리를 단검으로 그어 움직임을 봉쇄한 뒤, 손으로 꽁무니를 짚고 녀석의 몸을 뛰어넘으며 목 뒤쪽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녀석의 위턱 한 쌍을 손으로 움켜쥐고 강제로 벌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위턱이 닫히는 힘을 이겨낼 수 없었겠지만, 목에 칼이 박힌 탓에 녀석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결국 녀석은 위턱이 점점 벌어지는 것을, 그로 인해 얼굴이 반쪽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위턱이 벌어짐에 따라 갈라지는 얼굴에서는 투명하고 끈적한 체액이 줄줄 흘렀다.


“후우······.”


그렇게 마지막 개미가 쓰러졌다. 이로써 당장 몰려온 적은 모두 해치웠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다른 개미들이 동료를 찾아서 이곳으로 몰려들 수도 있었고, 싸우는 소리나 개미가 죽어서 흘린 체액 냄새를 맡고 다른 포식자가 몰려들 수도 있었다.


꼬르르륵.


그렇게 물러나려는 찰나, 배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면서 쥐어뜯는 것처럼 아팠다. 생각해보니 이틀 내내 앓아눕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뭐라도 먹을 필요가 있었다.

식사할 생각을 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 가지고 있는 먹거리는 없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다.


난 개미의 목에 박았던 단검을 뽑고 가슴을 찔렀다. 그 상태로 칼날을 아래로 그어, 외골격을 가르고 갈라진 틈새에 손을 넣어 넓게 벌렸다. 그렇게 넓어진 틈새에 칼질을 몇 차례 더하자 투명한 살덩어리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끈적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살덩어리. 차마 입에 넣고 싶게 생긴 모습이 아니었지만, 억지로 입에 넣었다. 반쯤 굳은 가래를 씹는 것처럼 역한 식감에 씹을 때마다 풍기는 비릿한 냄새 탓에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어졌으나, 억지로 삼켰다. 하다못해 굽기라도 하면 좀 나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불을 피울 여유도 없고 도구도 없다.


그렇다고 토해내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그저 꾹 참는 수밖에 없다. 치킨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아니, 전생에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흰 쌀밥에 김치도 진수성찬인 것처럼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전생이 떠오르자, 아까의 선택이 떠올랐다. 그 여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일반적인 인간의 힘을 아득히 뛰어넘은 초월적인 힘을 지닌 몸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개미 한 마리를 잡는데도 끙끙대었는데, 이제는 세 마리도 우습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초월적인 성장도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안쓰러워서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말만큼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새로운 몸을 얻고 태어난 세계는 괴물들이 가득한 거대한 미궁이었다.

보상이라고?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괴물들은 숫자가 많고 강했다. 내 몸이 초월적이라는 것은 전생의 내 몸에 비해서 초월적이라는 뜻이지, 이곳에 사는 괴물들에 비하면 초월적이긴커녕 초라하기 그지없다. 힘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세계라고? 가진 힘을 모두 쏟아도 살아남을까 말까한 세계였다.


게임 같은 삶? 이딴 게?

그래. 어릴 때도 비슷한 게임이 있기는 했다. 주변에는 주인공보다 강력한 몬스터가 즐비하고, 주인공보다 약한 몬스터들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런 게임.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진 것과 지형지물을 이용해야 하는 그런 게임. 그런 주제에 죽으면 되돌릴 수도 없는 영구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게임.


이른바 로그라이크 게임.


그래. 내가 떨어진 세계는 마치 로그라이크 던전과 같았다. 불합리함이 가득한, 약간의 실수가 죽음으로 연결되는 그런 세계. 이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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