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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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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최근연재일 :
2019.05.1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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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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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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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77,838

작성
19.02.2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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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장 염곡동 살인사건 (7)

DUMMY

박재열 피살사건 수사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윤민석 경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떨리는 손에는 박재열 부검 결과 최종 보고서가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부검 중간보고와 마찬가지로 사망의 원인에 ‘흉기에 의한 경동맥 손상’이 직접 사인으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눈에 띄는 추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의사의 주요소견: 약물중독 (바르비탈 계열)]


“장 경감, 이게 뭐야? 바르비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지 않아도 방금 부검의하고 통화했는데, 그거 안락사할 때 쓰는 약품이랍니다.”


“뭐, 안락사?”

윤 경정의 눈빛은 더욱 복잡하게 떨렸다.


“바르비탈 계열 약물이 근육 이완제로 쓰이기도 하지만, 검출된 약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P 약물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실험실에서 동물 마취제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보기 힘든 약이랍니다. 그 정도 양이라면 호흡 중추가 마비되어 무호흡으로 즉시 사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연질캡슐로 조제된 거로 봐서 안락사 약으로 밀거래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칼에 찔려 죽은 피해자 배 속에 왜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도 없는 약이 들어 있는 거야?”

“원점에서 수사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약물 입수 경위부터 새로 조사 중입니다.

장 경감은 교과서에서 읽힐 법한 사무적인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윤 경정의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 찼다. 그런 상투적인 대답을 듣자고 물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망 원인은 왜 안 바뀐 거야?”

“살해당할 시점에는 연질캡슐 속의 약물이 흡수되기 전이라고 합니다.”

장 경감의 대답이 끝났지만, 윤 경정의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용의자도 알고 있었을까?”

“네?”

“자기가 칼로 찌르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몇 분 안에 죽을 운명이었다는 걸.”

장 경감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저히 자기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용의자가 몇 분만 더 기다렸으면 살인사건 범인이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잖아.”

“모르지 않았을까요?”


장 경감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자 윤 경정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알고 죽였을 거야. 그런 우연히 겹친다는 건 확률적으로 불가능해.”


윤 경정의 추리에 장 경감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거 말고도 이 사건 이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용의자 김여원이 종종 집에 안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올해 들어서 집에 들어온 적이 거의 없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어.”

“그것도 그거지만, 16년 전부터 실종이라던 피해자 조카가 올해 2월 일본에서 입국한 기록이 있습니다.”


“동광무역 3대 주주라는 그 박규진이 입국했다는 기록은 나도 봤어.”

“그런데 말입니다. 9월 7일 오은명 자택 주변 CCTV에 김여원이 잡혔는데, 거기 젊은 남자도 같이 찍혔습니다. 아마 박규진인 것 같습니다.”


“용의자 김여원이 피해자 조카와 함께 있었다? 그렇다면 얘들 공범 아니야? 살해 동기도 성립하잖아.”

“그런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하는 중입니다.”

장 경감이 이번에도 사무적이고 형식적으로 답변하자 윤 경정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일본 혼혈 시노라는 여자애는 어때?”

“최자현의 일원동 오피스텔 앞에서 두 명 잠복 중이긴 한데, 이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주민등록 이전일이 9월 10일입니다. 낮에 동사무소 가서 주소 이전하고 저녁부터 잠적한 겁니다. 마치 사건이 일어날 걸 미리 알았던 사람처럼 일부러 자기 위치를 노출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탭니다.”


“애 엄마는? 그 일본 여자도 5월에 입국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다마루 나나미 추적하다가 조금 전에 희한한 걸 하나 찾았습니다. 영장 문제가 좀 있어서 보고서에는 아직 못 올렸습니다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성질 급한 윤 경정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지만, 장 경감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의료 기록에 산부인과 진료가 하나 뜨는데, 아무래도 임신이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그게 왜?”

“47세 유방암 말기 환자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게 상식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이상하긴 한데 그게 이 사건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그 여자가 사건 1주일 전 피해자 부인 이지영과 전화 통화한 기록이 있습니다.”


장 경감의 설명에 윤 경정은 입을 쩍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돌리며 뭔가 생각해내려고 노력했지만, 연결고리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도무지 범행동기와 용의자의 관계를 이을 수 없었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윤 경정은 애먼 장 경감에게 화를 쏟아부었다.

“정말 골 때리는 사건이구만. 아무리 들어도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만 못 알아듣는 거야? 아니면, 보고가 엉망인 거야? 아휴~ 내가 문제지. 나만 이상한 거야. 맞지? 어? 나만 못 알아먹는 거 맞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수사본부의 시선이 몰리자 장 경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찔끔찔끔 구두 보고하지 말고 종합보고서를 만들란 말이야. 동네 바보가 와도 척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응? 그래야 나도 뭐라도 들고 가서 상부에 보고할 거 아니야? 추석이 코 앞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보고서 정리해서 바로 올리겠습니다.”


“증거, 영장 따지지 말고 지금까지 등장한 사람들 싸그리 다 잡아들여.”

윤 경정은 수사본부 모두에게 들리도록 쩌렁쩌렁 큰 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싹 다 잡아 오란 말이야.”


멀리서 김시형 경사가 중얼중얼 혼잣말했다.

“그게 문젭니다. 다들 1급 잠수 자격증이라도 땄는지 선수들이 흔적도 안 보이지 말입니다.”

김 경사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윤 경정은 애써 모른 척하며 참았다.


그때 김 경사 옆에 앉은 이정우 경위가 손가락을 꼽으며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댔다.

“용의자 김여원, 친구 최자현, 최대식, 다마루 나나미 그리고 피해자 조카 박규진. 잠수 탄 사람 다섯 명 맞지?”


하지만, 삐딱한 말투를 참지 못하고 윤 경정이 버럭 화를 냈다.

“이 경위 그 중요한 걸 이제 알았어? 어? 오늘 중으로 다섯 명 중 하나라도 잡아 와. 한 명이라도 잡아 오기 전에는 집에 갈 생각 꿈도 꾸지 마. 알았어?”


* * *


곽 경사와 조 순경이 타고 온 차가 경기도 여주시의 한 창고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주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 인력들은 현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해 질 녘, 어둠이 산허리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도주로를 차단하는 주변 봉쇄에만 강력계 세 팀이 투입되었다는 말을 들은 후, 곽 경사는 앞장서서 창고 문을 열었다. 후방에선 서치라이트로 창고 안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문이 열리자 창고의 텅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쓰지 않는 빈 창고였다.


곽 경사의 눈엔 반대쪽 모서리 끝에 컨테이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 계세요?”

곽 경사가 동네 아저씨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창고 모서리 끝에서 누군가 푸드덕거리며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금속에서 반사되는 빛을 본 곽 경사는 걸음을 멈췄다. 손을 올려 주먹을 쥐어 일행을 멈추게 한 다음 곽 경사는 크게 소리쳤다.

“무릎 꿇고 손들어.”

곽 경사는 손전등을 권총처럼 쥐고 창고 구석에 앉은 사람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빛이 가까워지자 쨍그랑, 둔탁한 금속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정글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칼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색하게 주저앉은 채 양손을 머리에 올린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란 눈으로 곽 경사를 쳐다보는 사내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진정하세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곽 경사가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몇 발자국 더 다가선 곽 경사는 손을 뻗어 바닥으로 엎드리는 시늉을 하며 천천히 말했다.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리세요. 네, 좋습니다.”


남자는 창고 밖을 에워싼 경찰을 흘끔 보더니 곽 경사가 시키는 대로 손을 쭉 뻗은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곽 경사는 바닥에 엎드린 남자를 돌아 컨테이너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투명한 소재로 창문 대부분이 막혀 있었지만, 작은 투명창 하나가 보였다. 흐릿했지만, 안에 누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안에 누가 계세요?”

곽 경사가 컨테이너 창문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누구세요?]

컨테이너 천정에 달린 환풍구를 통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친 목소리를 겨우 짜내며 여자가 힘들게 말하는 게 느껴졌다.


“경찰입니다. 거기 혼자 계신가요?”

[네, 저 혼자예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크게 소리친 다음 곽 경사는 바닥에 엎드린 남자를 향해 돌아섰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저요? 저∙∙∙ 저는 강민수라고 합니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남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좋습니다, 강민수 씨. 지금 이 창고 안에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네.”

“컨테이너 안에 여자분 한 명 그리고 강민수 씨 두 분만 있는 거 확실합니까?”

“네, 맞습니다.”


곽 경사는 대답하기 쉬운 질문에서 시작해서 중요한 질문으로 화제를 옮겨갔다.

“컨테이너 문은 어떻게 열죠?”

“보조키 열쇠는 제 주머니에 있는데, 도어락 비밀번호는 저도 모릅니다.”

강민수는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옆으로 내밀었다.


곽 경사는 열쇠를 받으며 다시 물었다.

“컨테이너에 갇힌 여자분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습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바닥에 엎드린 강민수는 눈썹이 하얗게 변하도록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곽 경사는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물었다.

“강민수 씨가 납치했습니까?”

“아, 아닙니다.”

강민수가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부인했다.


“그러면 납치 감금한 범인이 누굽니까?”

“전 모릅니다.”

애써 모른다고 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는 이미 자포자기하는 말투였다.


“모르는 거 말고 아는 것만 대답하세요. 강민수 씨는 누구 명령을 받고 여기에 있는 겁니까?”

곽 경사는 차분하던 목소리 톤을 바꿔 위압적으로 소리 질렀다.


강민수는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는지 몸에 힘을 쭉 빼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곽 경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강민수를 내려다보았다.

“조 순경, 강민수 수갑 채우고 미란다 고지해.”

곽 경사는 컨테이너 문을 유심히 살폈다.


조 순경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동안, 여주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이 강민수 주변을 에워쌌다.


곽 경사가 열쇠를 돌리자 보조잠금장치는 찰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하지만, 번호키를 누르는 도어락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곽 경사는 잠긴 문을 몇 번이고 세게 흔들어 보더니 고개를 돌려 문틈을 보았다.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을 잠금장치가 하나 더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도어락 안에서 열 수 있지 않나요?”

곽 경사는 컨테이너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안에서는 열 수 없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웅웅 울리는 소리를 내며 겨우 들렸다. 단어 몇 개가 들리지 않을 만큼 여자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비밀번호 누가 알고 있죠?”

곽 경사가 수갑을 찬 강민수를 향해 소리쳤지만, 강민수는 고개만 가로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컨테이너 안에서 웅웅 소리가 들렸다.

[제가 알아요, 비밀번호.]

곽 경사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갇힌 사람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 곽 경사뿐이 아니었다. 강민수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호송차로 끌려가던 강민수는 다리에 힘을 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작가의말

경찰이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 찾았습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일주일 전으로 시곗바늘을 돌려 사건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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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4장 가짜 열쇠 (2) 19.03.18 76 1 14쪽
73 24장 가짜 열쇠 (1) 19.03.15 76 0 11쪽
72 23장 타이거 앤드 울프 (3) 19.03.13 61 0 13쪽
71 23장 타이거 앤드 울프 (2) 19.03.11 60 0 12쪽
70 23장 타이거 앤드 울프 (1) 19.03.08 52 0 13쪽
69 22장 살인의 목적 (3) 19.03.06 51 2 12쪽
68 22장 살인의 목적 (2) 19.03.04 70 1 12쪽
67 22장 살인의 목적 (1) 19.02.28 73 1 11쪽
66 21장 허술한 작전 계획 (3) 19.02.27 67 2 12쪽
65 21장 허술한 작전 계획 (2) 19.02.25 75 2 11쪽
64 21장 허술한 작전 계획 (1) +1 19.02.22 86 2 13쪽
» 20장 염곡동 살인사건 (7) 19.02.20 70 2 12쪽
62 20장 염곡동 살인사건 (6) 19.02.18 117 3 14쪽
61 19장 숨탄 5월 (3) 19.02.15 76 3 13쪽
60 19장 숨탄 5월 (2) 19.02.13 82 2 12쪽
59 19장 숨탄 5월 (1) 19.02.11 72 2 12쪽
58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4) 19.02.08 79 1 13쪽
57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3) 19.02.06 78 2 13쪽
56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2) 19.02.04 92 2 12쪽
55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1) 19.02.01 93 2 12쪽
54 17장 이중 납치 (3) 19.01.30 86 1 13쪽
53 17장 이중 납치 (2) 19.01.28 81 2 15쪽
52 17장 이중 납치 (1) 19.01.25 80 1 11쪽
51 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3) 19.01.23 77 2 12쪽
50 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2) 19.01.21 113 1 12쪽
49 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1) 19.01.18 92 2 12쪽
48 15장 햄릿의 칼끝 (3) 19.01.16 87 1 12쪽
47 15장 햄릿의 칼끝 (2) 19.01.14 87 1 11쪽
46 15장 햄릿의 칼끝 (1) 19.01.11 80 1 13쪽
45 14장 거짓말 게임 (3) 19.01.09 8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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