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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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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최근연재일 :
2019.05.15 02:5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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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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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글자수 :
57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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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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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장 이중 납치 (1)

DUMMY

단양 장회나루에 도착하자 늦겨울 바람이 철삿줄처럼 매섭게 불어왔다. 유엔은 몸을 웅크렸다.

“예쁘긴 한데, 좀 추워 보인다.”

규진이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게 다야?”

유엔의 뜬금없는 질문에 규진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며 대답했다.

“응.”


“내 가방에서 짚업 꺼내서 니가 입어.”

“난 안 추운데.”


“원피스 위에 체육복 입을 순 없잖아. 그 코트 벗어줘.”

“내가 왜?”

“내가 추우니까.”

“뭐라는 거야?”

규진이 모른 척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좋아, 거래하자. 나도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게.”

“콜. 일단 소원 하나 저축이다.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

규진은 코트를 벗어 유엔의 어깨에 걸쳐 주더니 유엔의 백팩에서 트레이닝복 상의를 꺼내 팔을 끼웠다.


“작아. 이거 안 들어가는데. 너 보기보다 작네.”

“보기에도 너보다 작아.”


“그런데 왜 나보고 입어보라고 한 거야?”

“혹시나 해서.”

유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유람선 매표소로 걸어갔다. 투덜거리며 도로 옷을 집어넣더니, 규진은 양팔을 손으로 비비며 종종걸음으로 유엔을 따라갔다. 한눈에 봐도 추워 보였다.



오은명과 이희경은 주차된 차 안에서 아까부터 규진과 유엔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루터로 내려가 배에 올라타는 걸 보고 나서야 둘은 차 문을 열고 아이들을 뒤따라 갔다.


* * *


오은명은 규진을 보자마자 와락 껴안았다.


감정 절제가 몸에 밴 오은명의 평소 모습과는 다른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당황한 표정이었다.


히데오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부터 규진을 두고 온 것을 날마다 후회했던 오은명은 앞뒤 따지지 않고 아들을 품에 안았다. 눈물을 흘린 건 오은명이 아니라 규진이었다.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유엔은 이희경에게 다가갔다.

“엄마, 와이파이 갖고 왔어?”

“넌 오랜만에 엄마보고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입술은 왜 이래? 눈썹 찢어졌는데 병원 안 간 거야? 상처 벌어졌는데?”

이희경은 안쓰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유엔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폈다.


“이제 피 안 나. 괜찮아.”

“눈도 안 보인다면서.”


“원래 잘 안 보이던 눈인데 뭐. 신경 쓸 거 없어.”

이희경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유엔의 등짝을 내리쳤다.


“그만 때리고 빨리 와이파이나 내놔.”

“여기 있어.”

가방에서 유엔이 부탁한 걸 꺼내주며 이희경은 눈을 흘겼다.



“오케이, 접속 성공.”

유엔은 서둘러 와이파이를 연결하더니 탄식을 뱉었다.


“시노 이메일 왔어?”

규진이 궁금한 표정으로 유엔을 바라봤다.

“응. 잠깐만 기다려봐. 읽어 볼게.”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오늘은 아름다운 밤 성공하길 빌게.]

유엔은 읽으면서도 얼굴을 붉혔다.


오은명은 규진과 유엔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밤이야 항상 아름답지.”


“흐흐. 이모, 그런 거 아니에요.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답장부터 쓸게요.”


[싱글 침대 두 개 있는 호텔 따위는 체크아웃해 버렸어. 오늘은 근처에 강변 전망이 좋은 호텔로 갈까 해. 작업주로 쓸 만한 샴페인 알면 추천해줘. 어젯밤엔 맥주 몇 캔 먹였더니 지가 먼저 기절했다는 슬픈 전설이 ㅠㅠ]


유엔이 쓰는 이메일을 옆에서 보더니 이희경이 정색을 하며 유엔의 등짝을 내리쳤다.

“기집애가 제정신이야? 이게 뭐야?”

“아, 엄마 제발 좀. 시노 곤란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이희경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오은명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유엔을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규진에게 돈 봉투를 내밀었다.

“당분간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니까.”

규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오은명이 내미는 봉투를 받았다.


“엄마, 나는?”

유엔이 손바닥을 내밀며 이희경을 쳐다보았다.


이희경은 눈을 흘기면서 가방에서 지갑 하나를 꺼냈다.

“중학생 때부터 쓰던 지갑은 버리고 이거 써. 돈도 조금 넣었어.”



오은명은 유엔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유엔의 손을 꼭 잡았다.

“너 다치게 된 거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알지?”

곧바로 오은명은 규진을 돌아보며 당부했다.

“아들. 우리 여원이 내 딸이나 다름없는 아이야. 안 다치게 잘 돌봐 줘.”


“오누이는 사절입니다.”

유엔은 팔을 엑스자로 만들며 장난을 쳤지만, 이희경은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오은명은 피식 웃으며 규진의 어깨를 감쌌다.

“추우니까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오은명을 따라 들어간 유람선 안은 나이든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가 있을 뿐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동광무역, 하코네 종합상사 모두 관세법 위반으로 조사 중이야. 일본에선 자금 세탁법 위반도 수사 범위에 들어가 있어.”

오은명의 설명에 유엔이 바로 반박했다.

“문제는 곧바로 반격당해서 나나미가 납치되었다는 거죠. 번번이 되로 주고 말로 받고 있어요.”


유엔의 지적에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은명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 * *


시노는 박재열에게 손을 흔들었다.

“답장 왔어요.”


박재열이 다가오더니 유엔이 쓴 이메일을 소리 나게 읽었다.


“싱글 침대 두 개 있는 호텔 따위는 체크아웃해 버렸어. 오늘은 근처에 강변 전망이 좋은 호텔로 갈까 해.”

거기까지만 읽더니 박재열은 안 실장에게 손짓했다.


“안 실장, 대구 근처에 강변 보이는 호텔 전부 다 조사해.”

“네.”


“이것들이 말장난하나? 다시 답장 써.”

시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도 싹싹하게 태블릿을 당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뭐라고 쓸까요?”


“그건 알아서 하시고. 호텔 위치 알아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들 못 찾으면 오늘 밤엔 땅속에서 엄마 손 잡고 잠들게 될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나 빈말 안 하는 사람인 거 알지?”


시노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태블릿에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나 당장이라도 한국 가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 둘 잘 되는 건 차마 못 보겠다. 무슨 호텔인지 말해. 바로 갈 테니까. 여기 있어 봐야 엄마한테 맨날 혼나기만 해. 라면 식당 같은 거 차릴 생각 말고 한국 가서 하던 일이나 잘 하래. 이름이 좋아서 그런지 엄마 생각보다 건강해. 우리 엄마 이름 알지? 나나미, 일곱 개의 바다.]


시노가 힘없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렇게 적었어요. 보내기 전에 봐주세요.”


박재열은 고개를 갸웃하며 시간을 들여 이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다시 고칠까요?”

시노의 물음에 박재열은 뭔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고민하더니 시노에게 태블릿을 다시 건넸다.


“아냐, 그냥 보내.”


* * *


뾰족한 대책이 없는 오은명은 시노 문제를 계속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모, 잠깐만요. 시노 답장 왔는데요.”

“뭐라고 왔어?”


“무슨 호텔인지 말해. 바로 갈 테니까, 라고 적었는데요 많이 곤란한 모양이에요.”

유엔의 말을 끊고 규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낚아챘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마지막에 여기 봐. 우리 엄마 이름 알지? 나나미, 일곱 개의 바다.”


“일곱 개의 바다, 우리 암구어잖아.”

“응, 할아버지가 세운 칠대양이란 법인 생각하면서 만든 암호.”

규진과 유엔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오은명과 이희경은 영문을 몰라 눈만 깜박이며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 같아.”

유엔의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나도 마찬가지야. 시노가 박재열과 사업파트너였다는 생각에 상황을 너무 낙관했어.”

규진도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요. 타협을 하든 싸움을 하든 뭐라도 해야 한다구요.”

유엔은 오은명을 돌아보며 부탁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으로써는 타협도 어려워. 하코네 종합상사를 공격한 이상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어.”

오은명은 대답하면서도 괴로워했다.


유엔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당돌하게 말을 꺼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도 그거 해요. 납치.”

“누굴?”


“박재열도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다면서요.”

유엔의 말에 오은명은 눈이 동그래졌다.


“넌 네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알고나 하는 거야?”

이희경이 펄쩍 뛰며 유엔을 야단쳤다.


“납치하다가 걸리면 큰일이니까, 납치하는 척만 하죠.”

“어떻게?”


“박재열 아들 얼마 전에 고3 졸업했다고 했죠? 제가 한 번 접근해 볼게요.”

“미쳤어, 미쳤어.”

이희경이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부산스럽게 몸을 흔들었다.


“그럼, 시노는 어떡해? 저러다 박재열 손에 죽을지도 몰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유엔이 단호한 말투로 소리쳤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오은명은 아들 의견을 물었다.


“시노가 최대식에게 부탁은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일 겁니다. 우리가 도와줘야 해요.”

“일단 서울로 가자. 방법은 가면서 찾아보자.”

규진의 말을 들은 뒤 오은명도 유엔의 제안에 동의했다.


“지푸라기만 잡고 끝나선 안 돼. 시작하면 성공해야 해.”

나나미와 시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 이희경도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나루터에 돌아온 넷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오은명은 곧바로 정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대리님. 급한 일이 생겼어요. 지금 박재열 아들 박규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나요?”

[네, 잠시만요. 바로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음 오은명은 유엔의 손을 잡았다.

“규태, 고3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 입학 앞두고 있어. 경호원 겸 운전 기사가 한 명 붙어 있을 거야. 둘째는 이제 중3 졸업한 여학생인데 주로 집에서 공부하니까 접근하기는 더 어려울 거야. 게다가 너무 어리니까, 웬만하면 막내가 놀랄 일은 만들지 말자.”

“네, 그렇게 해요.”


“조카에게 미안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네.”

“걱정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잠깐만 잡아 두면 그걸로 충분해요. 전화기만 빼돌리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전화벨이 울렸다. 정 대리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지금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 받고 있을 겁니다.]

“그 후 일정은요?”


[집 근처 운전면허학원 저녁반 다니고 있습니다. 7시쯤 끝납니다.]

“좋아요, 정대리. 미안한 부탁이지만, 티 안 나게 미행 좀 해주세요, 우리가 그쪽으로 갈 때까지만. 지금 제천 지나고 있어요.”

[네, 그럼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유엔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오은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모, 그 운전학원 저 혼자 들어갈게요.”

“어쩔 생각이니?”


“미인계를 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규태를 고립시켜야 해요. 어떻게든 핸드폰을 빼돌릴 테니까 그걸로 협박을 하는 거죠. 그건 규진이 네가 직접 해.”

유엔이 계획을 말했다.


“무슨 말로 협박하면 통할지 난 지금부터 멘트 연구할게.”

규진의 다짐을 들으며, 유엔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작가의말

시노의 거짓말 게임 때문에 요란하게 한국에 들어온 규진과 유엔은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았습니다. 호기롭게 엄마를 구하러 간 시노는 차갑고 습한 지하실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밀실에서 나나미와 시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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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4장 가짜 열쇠 (2) 19.03.18 76 1 14쪽
73 24장 가짜 열쇠 (1) 19.03.15 76 0 11쪽
72 23장 타이거 앤드 울프 (3) 19.03.13 61 0 13쪽
71 23장 타이거 앤드 울프 (2) 19.03.11 60 0 12쪽
70 23장 타이거 앤드 울프 (1) 19.03.08 52 0 13쪽
69 22장 살인의 목적 (3) 19.03.06 51 2 12쪽
68 22장 살인의 목적 (2) 19.03.04 70 1 12쪽
67 22장 살인의 목적 (1) 19.02.28 73 1 11쪽
66 21장 허술한 작전 계획 (3) 19.02.27 66 2 12쪽
65 21장 허술한 작전 계획 (2) 19.02.25 75 2 11쪽
64 21장 허술한 작전 계획 (1) +1 19.02.22 86 2 13쪽
63 20장 염곡동 살인사건 (7) 19.02.20 69 2 12쪽
62 20장 염곡동 살인사건 (6) 19.02.18 117 3 14쪽
61 19장 숨탄 5월 (3) 19.02.15 76 3 13쪽
60 19장 숨탄 5월 (2) 19.02.13 82 2 12쪽
59 19장 숨탄 5월 (1) 19.02.11 72 2 12쪽
58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4) 19.02.08 79 1 13쪽
57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3) 19.02.06 78 2 13쪽
56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2) 19.02.04 92 2 12쪽
55 18장 가벼운 것들의 무게 (1) 19.02.01 93 2 12쪽
54 17장 이중 납치 (3) 19.01.30 86 1 13쪽
53 17장 이중 납치 (2) 19.01.28 81 2 15쪽
» 17장 이중 납치 (1) 19.01.25 80 1 11쪽
51 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3) 19.01.23 77 2 12쪽
50 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2) 19.01.21 113 1 12쪽
49 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1) 19.01.18 92 2 12쪽
48 15장 햄릿의 칼끝 (3) 19.01.16 87 1 12쪽
47 15장 햄릿의 칼끝 (2) 19.01.14 87 1 11쪽
46 15장 햄릿의 칼끝 (1) 19.01.11 80 1 13쪽
45 14장 거짓말 게임 (3) 19.01.09 8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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