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복선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그대를 위한 핑크빛 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로맨스

완결

복선
작품등록일 :
2020.11.25 18:35
최근연재일 :
2021.01.11 22:00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065
추천수 :
22
글자수 :
270,363

작성
21.01.07 22:00
조회
15
추천
0
글자
12쪽

경우의 수

DUMMY

대민은 뒤뚱뒤뚱 비틀비틀 앞으로 뛰었다.


밤바람은 태어나서 처음 맞는 것처럼 기분 좋게 뺨을 스쳤다.


나가지 않겠다던 결심은 수감실에 버렸다.


지금은 여진네가 어느 방향으로 뛰어갔는지만 열심히 생각해 볼 뿐이었다.


이방인들은 참 이상했다.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돕고.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믿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나?


대민은 그렇게 살지 않아 왔다.

왜냐하면 대한이 그건 틀린 삶이라고 말했으니까.


가족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핏줄을. 대란이를. 서로를 챙기라고 했다.


그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에.

내 가족을 만드는 것 외에는 사는 방법을 몰랐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지?


자신에게는 튼튼한 두 손이 있고.

또 튼튼한 두 발이 있었다.


자신이 여진과 현진을 돕는다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라도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테였다.


이렇게 앉아 있기만 했을 때와는 분명 다른 결과가 나올 테였다.


물론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좋았다.

가족도 아닌데. 만난 지 겨우 며칠 됐을 뿐인 사람들인데.


여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현진을 위해 살고.

현진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진을 위해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알렉스도 그들을 도와준다고 했다.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냥 상대가 좋아서.


방금 말했듯, 대민도 이번에 처음 만난 이방인들이 참 좋았다.


어차피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간다면.


'나도.'

'나도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결심이 서는 순간

대민은 철창 밖으로 뛰쳐나왔다.


얼마 뛰기도 전에 진이 폭탄을 들고 있는 장면과 맞닥뜨렸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걸 막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라고.



*



A는 평군인들을 진정시키다가 문득 공터 저편을 바라봤다.


좀비들의 비명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와중에 뭔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자음?'


또 다른 폭탄이 터지려는 건가 싶었다.


평군인들의 위치와 소리가 들리는 위치를 번갈아 체크했다.


뭔가 터지더라도 군인들이 피해를 입을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안심이었다.


"그런데 폭탄 작업은 처음 한 번으로 끝난 거 아니었어요?"


A는 모두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 옆에 서 있는 진수에게 물었다.


"저는 그렇게 듣고 나왔지 말입니다."


진수도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저쪽도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 모양이었다.


진과 여진 일행은 A의 위치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 숫자와 실루엣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A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명.

저건 진일 테고.


한 명.

알렉스.


나란히 붙어서 뒹굴고 있는 두 명.

저건 여진과... 여진의 동료라는 그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작전 하다 말고 웬 연애질이야.'


여진 쪽을 가볍게 보고 넘긴 A는.

그들 외에도 한 사람의 그림자가 더 있다는 걸 눈치챘다.


진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는 그림자였다. 사이즈가 거대했다. 거의 남수 씨만 할 정도로.


'군대에 저렇게 큰 사람이 있던가?'


없었다.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럼 저 사람도 여진 씨가 데려온 사람인가 보네.'


피식 미소지었다. 팀원이 많아 참 좋겠다고 속으로 여진을 칭찬하면서.


그러고 나서-


"...."


실루엣이 어쩐지 굉장히 많이 본 사람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그럴 리는 없는데."


죽었잖아.

그 사람은.


A는 다시금 떨리는 눈동자를 겨우겨우 그림자에 고정시켰다.


다시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


귀신인가.

그렇더라도.


이름을 한 번 불러 보고 싶었다.


"...대민?"



*



진수는 지금 어이가 없었다.


세상 사람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진수처럼 어이 없어 했을 상황이었다.


A의 정신이 지금 갈린 상태라는 건 알았다.

눈이 밝고 귀가 좋아서 남들보다 더 많은 걸 본다는 것도 알았다.


근데 지가 봤으면.

남한테도 자기가 뭘 봤는지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런 것까지 바라는 게 나쁜 거야? 그러고 가면 어떡해? 부팀장님! 부팀장님 가지 말아 보십쇼! 부팀장님! 야! A!"


진수는 공터 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상사를 너무 큰 목소리로 깠는지, 진수의 목소리를 들은 기현 팀장이 진수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A 부팀장님께서 튀었, 아니 제게 전권을 위임해 버리셨지 말입니다!"


기현도 어이 없는 표정을 했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라니까!'

진수는 조금 뿌듯해졌다.


상황은 대충 이랬다.


A가 뭘 보고 놀랐다가 혼잣말 중얼중얼하다가. 아무튼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더니.


갑자기 창 한 자루 안 쥐고 공터 쪽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뭐 하십니까!]

[아, 진수 씨! 잠깐 군대 좀 부탁할게요!]


놀라서 말리려는 진수에게 이런 말을 남긴 채였다.


'나한테 군대를 왜 맡기냐고!'


통 크게 양보해서 알파 팀 정도까지는 통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같은 팀이고 친한 사람뿐이니까.


그런데 지금 A는 남수 리더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지 않았나.


진수에게 그 권한을 넘겨 버리면.

진수가 여기 사람들을 전부 지휘해야 한다는 소리가 됐다.


"지가 갈 거면 다른 팀장들한테 맡기든가 그래야지 그거를...!"


기현이 옆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팀장님 뭐라도 말씀을..."


"내가요?"


"팀장님께서 지휘하셔야죠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님들이 안 계시는데 그,"


더듬더듬 속사포로 내뱉다가.


"으음. 이제 와서 계급 따지지 말고 상황부터 좀 보죠."


한 소리 듣고서야 현실 문제로 돌아왔다.


기현 팀장은 손을 뻗어서.


공터 쪽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 방향을 살폈지만 진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지 말고 소리를 들어요."


기현이 툭 던졌다.


"소리요? 소리 같은 건 아무것도 안 들리는-"


진수는 망했다 내지 뭣됐다의 마음으로 급히 대답하다가.


"...그러게요."


바로 그 대답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좀비들이 전부 울음을 멈춘 상태였다.

비명도. 소음도. 발소리도. 사라지고 없었다.


광활한 공터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조용했다.


"예의 차릴 때가 아냐. 굉장히 특이한 상황인데 이게,"


기현은 그 고요한 어둠을 응시하던 눈을 진수에게로 돌렸다.


"왜 이렇게 됐는지 너는 알고 있을 것 같거든. 리더님을 보고 왔으니까."


진수는 이제 긴장되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저흰,"


입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이제는 스스로가 평군인이라던가 하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저희는-"



*



알렉스는 묵묵히 서서 고개를 숙였다.


뚝 떨어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두 개의 몸뚱아리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무슨."


진이 힘겹게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그는 주변 땅이 멀쩡한 걸 보며 대충 상황 파악을 하려는 것 같았다.


진의 계획은 폭발 직전의 폭탄을 땅에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알렉스는 알 수 있었다.

진이 폭탄을 바닥에 내리꽂으려는 듯한 모션을 취하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서 봤으니까.


알렉스는 전선을 끊어 폭발을 막을 작정이었다.


정 안 되면 폭탄을 붙잡아 몸으로라도 감쌀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자음을 듣는 순간.


멈칫해 버렸다.


잠깐 두려워해 버렸다.


'이제 막 여진을 만났고.'

이제 막 솔직하게 살기 시작한 참이었다.


지금 죽어야 해?

당장?


-따위로 생각하며 비겁하게 발을 멈춘 그 잠깐 사이에.


대민이 알렉스를 앞질러 나갔다.


먼저 폭탄에 손을 댔다.

먼저 끌어안았다.


그다음에 알렉스가 본 건,


번쩍하고 펑-


지금의 대민이 저렇게 바닥에 널부러져 있게 한 장면이었다.


"...대민."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뻗었다.


"대민!"


뛰쳐가서 옆에 앉았다.


똑바로 눕혀서.

상처가 어떻게 난 건지.


복부는 어떻게 찢어졌는지 살피려 했다.


친한 전우를 잃은 군인이라도 된 것처럼.


손바닥에 피가 가득 찍혀 나왔다.


"괜찮은 건가?! 당장 지혈을, 아니, 하지만 상처 부위가...!"


칼에 찔린 게 아니라 폭탄에 직격으로 당한 것이었다.

소형 폭탄이라고는 해도, 대민이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눈, 뜨고 있나?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눈꺼풀을 감지 못한 것뿐은 아닌가?


뱃가죽이 많이 찢어졌다. 갈비뼈는? 손 쪽은 확실히 망가졌다. 그래도 지금 당장 치료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갑자기 온몸의 피가 식었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을 걱정해주고 있지?'


대한이 카를을 죽이고 알렉스가 대한을 찔렀던 그 날.


알렉스는 대민을 데리고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망했다고 보고하고 주유소 편의점에 내버려 두고 올 수도 있었다.


알렉스가 그를 버리고 왔더라면 대민이 여기로 뛰어들 일도.

애꿏게 폭탄에 죽을 일도 없었던 게 아닌가.


그러니까 알렉스에게는 슬퍼할 자격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그런데도 대민은 희미하게 눈을 뜨고 희미하게 입술을 움직여서.


"...다..."


"뭐라고?"


"죽이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대민에게로 귀를 댄 알렉스에게 조곤조곤 말해 줬다.


"나는... 했다, 내가... 할 일..."


말은 이어지고.


"그러니까... 너도... 한다..."


또 이어지다가.


"네가... 해야 할 일."


대민이 살아있었던 게 꿈인 것처럼, 가느다래지다가.


뚝 끊겼다.


마지막 순간에 대민은 웃고 있었다.


"..."


마지막까지도 영 나쁜 일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알렉스는 눈두덩을 꾹꾹 눌러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막았다.


A가 알렉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대민은 행복했다.

이제야 모든 걸 정리했다는 느낌이었다.



*



여진은 혼란스러웠다.


폭탄을 없애려 대민이 뛰어왔다는 것부터가 예측 밖 상황인데.


A까지 와서는 알렉스에게 질문을 쏴 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에요?"


A는 여진보다도 혼란스러워 보였다. 놀란 것도 같았다.


알렉스는 놀라는 걸 넘어서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진짜 대민 씨네, 죽었던, 아니, 살아 있는데,"


A는 주저앉아 대민을 더듬다가.


알렉스에게로 자신의 슬픔을 뱉어 냈다.


"죽였어요? 팀장님이 죽인 겁니까? 그런 건가? 아니라고 말해, 당신 아니라고, 당신-"


"..."


"왜 대답이 없어."


"..."


"죽었다고 말한 게 당신이잖아! 근데 왜 여기에 있고, 이제 막 죽은 것 같은데, 뭐라고 설명을 좀-!"


그때.


"그 여자가 안 죽였을 건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낸 사람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내가 봤어. 폭발 때매 죽은 거고 그 여잔 말리려다가 못 말린 거고. 근데 여기는 어디랴?"


순간 공기가 붕 떴다.

아니. 아예 없어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

울던 사람들의 눈물이 마르고.

정신을 놓으려던 사람의 이성이 갑자기 돌아오고.

그렇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왜 이렇게 깜깜해. 농삿일 하다가 뭐가 쫓아온 것까정은 기억이 나는디, 나이를 처먹었나..."


목소리를 낸 것은.

어느 할아버지였다.


다 해진 꽃무늬 셔츠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허리는 구부정하지만 피부색과 언행을 보아 사람이 분명했다.


콧잔등에 분홍색 가루가 조금 묻어 있는 것만 제외하면.


"...사람이다!"


현진이 먼저 소리쳤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현진이 말해 주고서야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믿을 수 있었고.


그리고.


"됐다,"


호흡이 가빠졌다.


"됐어."


현진을 움켜잡은 손에 간질간질한 미열이 돌았다.


심장이 뛰었다.


"됐어!"


기쁨이 주체할 줄 모르고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여진은 벌떡 일어나 현진을 잡아 끌었다. 현진도 뒤쳐지지 않고 뛰었다.


할아버지를 필두로.


그 뒤에.


사람들이.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기는..."

"누구세요?"

"어디야?"

"머리야,"


사람들이 가득.

공터를 메우고 있었다.


작가의말

끝까지 얼마 안 남았네요.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 그대를 위한 핑크빛 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여담 +2 21.01.11 26 1 5쪽
52 END 21.01.09 46 0 11쪽
51 종결장 21.01.08 19 0 10쪽
» 경우의 수 21.01.07 16 0 12쪽
49 경우의 수 21.01.07 12 0 10쪽
48 경우의 수 21.01.06 13 0 13쪽
47 악마의 사정 21.01.06 12 0 10쪽
46 악마의 사정 21.01.05 14 0 11쪽
45 악마의 사정 21.01.05 12 0 10쪽
44 악마의 사정 21.01.04 9 0 11쪽
43 악마의 사정 21.01.04 15 0 11쪽
42 악마의 사정 21.01.03 14 0 11쪽
41 축제 21.01.03 15 0 12쪽
40 축제 21.01.02 13 0 11쪽
39 축제 21.01.02 15 0 11쪽
38 축제 21.01.01 13 0 11쪽
37 축제 21.01.01 16 0 11쪽
36 축제의 서막 20.12.31 22 0 12쪽
35 축제의 서막 20.12.30 17 0 12쪽
34 축제의 서막 20.12.29 2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