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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그대를 위한 핑크빛 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로맨스

완결

복선
작품등록일 :
2020.11.25 18:35
최근연재일 :
2021.01.11 22:00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067
추천수 :
22
글자수 :
270,363

작성
21.01.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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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악마의 사정

DUMMY

3인 가족을 꾸리고 살던 시절이 진에게도 있었다.


지금의 [생존지]에 오기 전 이야기였다.


진은 지금도 자신이 살던 곳을 대충 떠올려낼 수 있었다.


건물을 해체한 부품을 떼어다가 얼기설기 지은 방호벽.


주변 마을을 털어다가 겨우 먹던 통조림들.


진은 태어나서부터 거기에서 살았다.


[그녀]도 그랬다.


그 자그마한 [보호소]에는 대략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두 명 정도는 태어났다가 죽었다가 하니까 정확히 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포함해도, 그중에서 진의 나이 또래인 것은 그녀뿐이었다.


성별을 막론하고. 놀 상대도 이야기 상대도 서로뿐이었다.


그러니까 진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리고 그녀가 진을 사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진은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의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는 거라곤 잔소리와 보초 서는 일뿐인 주제에, 진이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



"더 먹고 싶네."


그녀는 진의 옆에서 통조림 망고를 아삭아삭 씹어 먹으며 말했다.


"그러겠네."

"더 먹고 싶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그건 입덧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망고만 먹고 싶어하지 않았다. 앞에 있다면 어떤 과일이든 다 잘 먹었을 테였다.


사실은 과일이 아니더라도 잘 먹을 게 분명했다.


"더 먹으면 안 돼?"

"이제 없어."


그녀가 하는 것은 입덧이 아니었다.


항상 참고 살았던 말을 입 밖으로 마구 꺼내는 것뿐이었다.


"더 먹을래."

"나갔다 올게."


그녀가 말하면 진은 창을 들고 밖으로 나가 근처 매점 같은 걸 털고는 했다.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주위 건물들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썩은 라면뿐일 때가 많았고.


그렇다고 보호소 자체를 옮기기에 적합한 시기도 아니었다.



*



아이가 태어난 후, 그녀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배고프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실제로는 배고프다는 점에서도.


하지만 아이는 끊임없이 말했다.


온 마을 사람들의 말을 아이가 뺏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 증 언제 가?"

"증이 아니라 정찰. 엄마는 저번주에 갔었으니까 이번 주 주말에나 갈 거야."

"그러면... 아빠는? 아빠는 증 언제 가?"

"정찰이라니까. 아빠는 어제 갔잖아."

"배고픈데..."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보호소 내부의 기류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모두가 공유하는 창고 구석에 일종의 보관소가 있었다.


식량 보관소.


다들 가져와서 쌓아 놓고, 가져가고 그랬었다.


"..."


진은 텅 비어 있는 구석을 쳐다봤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챙긴 식량을 공용지가 아닌 자기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했다.


"다녀올게."

"가게? 같이 가."


진이 일어서자 그녀도 따라 일어섰다.


진은 점퍼 속 통조림 하나의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그걸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가 두 손에 꼭 끌어안을 정도로 작은 통조림이었다.


"먹고 있어, 알겠지."

"조용히?"

"조용히."


몽둥이를 들었다.


보호소 밖으로 나서면서, 펜스 주변에서 망을 보던 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놈들이 진에게 손을 흔들어 줬던가?


아니면 그 시점에 그들은 이미 정찰병 움막에 없었던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



조금 멀리 갔다.


그건 당연하니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음식을 구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멀리 갔으니 위험에 처한다.


이것도 뻔한 수순이었다. 좀비를 싹 정리해 놓은 보호소 근처와는 차원이 다르게 위험했다. 쫓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망치는 데에 실패했다.


아내가 좀비로 변했다.


이건 좀 중요한 부분이었다.


진은 통조림 가득 든 가방을 끌어안은 채 건물 안에서 귀를 막았다.


아이의 울음소리 환청이 실제 좀비의 비명과 섞여 들렸다.


문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진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였던 것이 밖에 있었다.


그녀에게라면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아이 울음소리가.


환청임이 분명한 그 울음소리가.


진에게 그녀를 찌르게 했다.


사람이던 좀비를 시체로 만들고서 보호소로 달리게 했다.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는 지켜야 하니까.


좀비는 어찌 되었건 산 사람에게 음식을,

산 사람에게-


"문을 열어!"


진은 보호소 앞까지 와서 외쳤다.


보호소 근처에는 얼기설기 펜스를 둘러쳐 놓은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넘을 수 있는 높이였지만, 안에 있던 보초가 열어 주는 게 관습이었다.


아무도 열어 주러 나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느낌이 이상했다고 진은 가끔 회상했다.


펜스를 넘었다.


진네가 머무르고 있는 쪽방이 조용했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 있나?'


방 안으로 들어섰고.


피를 보았다.


자신의 손에 묻은 것과 같은 피였지만-

같았지만 달랐다.


사람을 위해 좀비를 죽이고 온 손과,


"지, 진 왔냐? 어쩔 수가 없었어..."


라고 말하며 아이를 죽인 사람의 손은.


다르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요?"


진은 허탈하게,


자신의 방에 서 있는 같은 보호소 보초를 향해 물었다.


해야 할 일조차 내팽겨친 채 어디로 갔나 했더니.


설마하니 여기로 와서.


아이 손만 한 통조림 하나를 위해 아이의 목을 꺾었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참사였다.


"왜, 아예 애 몸도 먹어 버리지 그러셨습니까. 저 밖의 좀비처럼!"


"야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냐... 미안하지만... 배가 고파서...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이 살아야지. 응?"


같은 보호소의 아저씨...


아니.


'놈'은 겁도 없이 지껄였다.


"사실 이 아이가 제대로 성장이나 하겠어? 이런 상황에서. 안 되겠지. 되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진은 주먹을 쥐었다.


"니들 부부 위해서라도 이게 나은 거야. 어른으로서 충고하는데-"


그 다음 말은 듣지 않기로 했다.


오른손에 들었던 쇠파이프 대신 주먹으로 친 걸 감사하게 여기길 바랐다.


놈은 휘청거리다 쓰러졌다.


진은 아이의 시체를 챙겨 들었다.


통조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축 늘어진 아이만 품에 안고 무작정 달렸다.


달리다가 생각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지?


좀비는 나쁘다. 가까운 가족마저 영 모르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평생 살아온 공간인,


그래 봐야 서른 명 살던 아주 작은 보호소로부터-


멀리멀리 도망치던 진은.


문득 멈춰서서 뒤돌아봤다.


인간은?


인간이라고 전부 착한가?


그게 진이 미련 없이 보호소를 등지며 한 생각이었다.



*



"그래서 나는 인간이라고 다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진은 결론 부분에 다다른 것처럼 이야기했다.


"이것은 군대의 의견이기도 하지."


여진은 여전히 알렉스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치료된 모두가 선한 인간일 거란 보장이 없어. 만약 전부 선하다고 해도 식량 문제가 발생해."


진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좀비인 것을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지 않나."


"이런 부족한 세상에 사람들을 억지로 깨워놓겠다니,"


"그거야말로 비도덕적인 행동 아닌가?"


본인은 굉장히 멋있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글쎄...'


진의 긴 이야기를 들은 후 여진의 감상은.


'멍하다'였다.


놀란 것도 무서운 것도 아니고 그냥 멍했다.


좀비 치료를 반대한다?


흔한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온전히 군대를 위해서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여진은 군대에 대해 잘 모르니까.


'정말로 식량 문제가 심각해서 남을 못 받는 상황일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진 리더님."


방금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알아 버렸다.


진은 생존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간도 아니고.


불쌍하게 여겨줘야 할 사람도 아니고. 그저-


"되게 찌질하시네요."


뭣도 모르는 인간이었다.


알렉스와 A에게 지시를 내리고.


허태식을 자신의 밑에서 부리고.


그랬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리더에 어울리지 않아요."


보통 인간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진이 눈썹을 확 치켜올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감정적으로 결과도 신경쓰지 않고 좀비만 신경쓰는 이방인이 내게-"


"아니요. 감정적인 건 진 리더님이세요."


"뭐?"


"아이가 죽은 게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였어요? 그 보호소의 상황이 나빴고, 폭력 분자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식량이 인원수에 맞게 충분했더라면,"


"생존지에서 그랬던 거라면 몰라. 예전에 살던 보호소에서 있었던 일이라며요. [지금] 생존지민들이 한 끼라도 굶거나 그러나요?"


여진은 평군인들과 함께 며칠간 살아 왔다.


그래서 이런 객기도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평군인들도 팀장들도 다들 균형 잡힌 몸을 갖고 있는 걸로 보였다.


음식을 서로 양보하거나 뺏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급식은 매일 메뉴가 바뀐다. 가끔은 후식까지 나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잔반통을 보면.'


잔반통에는 언제나 얼마쯤 잔반이 남아 있었다.


군인들은 툭하면 음식을 버렸다.


생존지의 식량 보급 상황이 정말로 나빴다면 누가 감히 그럴 수 있었을까.


"대답해 봐요. 맞나고요? 아니죠, 당신은 그저-"


실소가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헛논리를 펼치고서, 객관적인 척 깔끔 떨고만 있는 거잖아요."


부족한 인간.


이게 진에 대한 최종평이었다.


"당신이 나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비판해 주길 바랐어요."


제대로 된 비판을 듣는다면.


그걸 토대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면 될 뿐이니까. 그러나-


"그런데 죽은 가족을 잊지 못해 군대를 수렁으로 밀어넣을 참이었다면,"


여진은.


"더 들어 줄 필요가 없군요!"


이 빠득 물고 읊조렸다.


다음 순간-


"닥쳐라!"


흥분한 진이 날리는 창을 보았다.


순간 두 가지 감정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하나는 안심.


'내 예상이 맞았네.'


진은 객관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가설이 맞아서 기쁘다는 생각이었다.


하나는 불안.


'망했네!'


날아오는 창을 피할 방도가 없어 보였다.


누운 채 꼼짝도 할 수 없는 자세였으니까.


곧 불안이 안심을 이겼다.


이제 곧 죽겠네!


-싶어진 순간.


"와악?!"


소리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프지 않았다.


살짝 실눈을 떴다.


날아오던 창은-


그 각도 그대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


알렉스가 손을 뻗어 창을 잡은 것이었다.


'이걸 구해주네?'


여진은 알렉스를 감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정작 알렉스는 여진을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진을 응시했고.


짤막하게 던졌다.


"그래서-"


정말 쌩뚱맞은 질문을.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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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여담 +2 21.01.11 26 1 5쪽
52 END 21.01.09 46 0 11쪽
51 종결장 21.01.08 19 0 10쪽
50 경우의 수 21.01.07 16 0 12쪽
49 경우의 수 21.01.07 12 0 10쪽
48 경우의 수 21.01.06 13 0 13쪽
47 악마의 사정 21.01.06 12 0 10쪽
» 악마의 사정 21.01.05 15 0 11쪽
45 악마의 사정 21.01.05 12 0 10쪽
44 악마의 사정 21.01.04 9 0 11쪽
43 악마의 사정 21.01.04 15 0 11쪽
42 악마의 사정 21.01.03 14 0 11쪽
41 축제 21.01.03 15 0 12쪽
40 축제 21.01.02 13 0 11쪽
39 축제 21.01.02 15 0 11쪽
38 축제 21.01.01 13 0 11쪽
37 축제 21.01.01 17 0 11쪽
36 축제의 서막 20.12.31 22 0 12쪽
35 축제의 서막 20.12.30 17 0 12쪽
34 축제의 서막 20.12.29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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