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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그대를 위한 핑크빛 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로맨스

완결

복선
작품등록일 :
2020.11.25 18:35
최근연재일 :
2021.01.11 22:00
연재수 :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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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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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수 :
270,363

작성
21.01.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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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축제

DUMMY

진수는 잠깐 카를 팀장님을 추억했다.


그녀는 가끔 아주 쌩뚱맞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허탈할 정도로 엄청 맞는 소리였다.


팀장님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현진에게서 자꾸만 카를이 겹쳐 보였다.


'닮았어.'


진수는 생각했다.


그래서 덩달아 미묘하게 애착이 갔다.


솔직히 이렇게 사소한 이유로 끼어들 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진수에게도 눈치코치가 있었다.


좀비 치료제가 있단 것만도 쇼크였고.

리더가 직접 발로 뛸 정도의 큰일이었다.


이런 일에 평군인이 끼면 안 됐다. 진수 같은 소시민은 적당히 찌그러지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그게 소시민이 오래 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껴도 된다고 했잖아.'


진수는 열심히 합리화했다.


이방인을 싫어하기도 싫고.

군인들끼리 서로서로 뒷담화하기도 싫었다.


그럼 아예 확 튀는 일에 참여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만약 저들이 말하는 대로 좀비가 전부 치료된다면 문제도 전부 해결될 테고-


'...'


해결되겠지?


일단은 그럴 거라고 믿어 보기로 했다.


진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쉽게 쉽게 사는 게 최고였다. 적어도 그녀의 인생 모토는 그랬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래의 계획 정도는 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건데요?"


앞에 서 있는 셋에게 물었다.


"글쎄?"


여진이 웃었다.



*



땅 밑의 치료제를 밖으로 꺼낸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포크레인을 부르면 되는 문제 아냐?"


현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여진도 처음엔 저렇게 생각했었다.


문제는 지금이 문명이 파괴된 지 수십 년은 지난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포크레인이 뭡니까?"


진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세요?"

"당연히 모르죠. 혹시 역사학자세요?"

"그야 돌아다니다 보면 당연히 알게 되는,"


현진과 진수가 서로를 신기해했다.


"지금은 그 정도의 인프라가 없으니까. 좀 다른 게 필요할 거야."


여진이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럴듯한 척 나서긴 했지만.


사실 여진도 '정확히 얼마만큼의 기술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상황 정리가 필요했다.


진수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굴삭기나 포크레인은 모르는 거죠?"

"친구한테 물어볼까요? 걔 이상한 거 잘 아는데."

"아뇨, 그럴 필요는 없고. 전동 드릴은요?"

"드릴 있습니다! 그런데 생존지에서나 쓰는 거라 여긴 없지 말입니다."


적어도 전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건물 내부의 조명에도 문제없이 불이 들어오곤 했었다.


"여기에는 드릴 비슷한 거라도 없어요?"

"없습니다만?"


문제는 지금 써먹을 수 있는 전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려고 했다. 드릴조차 없다면...


"그 많은 걸 삽으로 일일히 파내야 하는 건가?"


치료제가 얼마나 깊이 파묻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노가다가 될 게 뻔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치료제를 꺼냈어요? 어쨌든 불을 붙이는 연료로서 사용했다면서요."


일말의 희망을 갖고 남수에게 물었다. 쉽사리 전부를 빼낼 수단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아... 지금까지 말이죠."


남수는 어색하게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였다.


"땅 속에 파이프를 박고, 연료가 길을 따라 올라오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퍼내는 장치가 있었던 거예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연료가 저장된 지하의 압력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상과의 통로가 연결되면 연료들이 저 스스로 위로 올라오곤 했죠."

"그렇게 자연적으로 지상에 노출된 파우더들을 긁어 모아서 소각에 사용하곤 했습니다."


듣고 보니 파우더들이 놓여 있던 창고의 모습이 떠올랐다.


파이프 입구를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파우더들.


"저기, 저분께서 뭐라고 말씀하신 거야?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현진이 목소리를 죽여 물었다.


"화산 폭발하는 것처럼 됐다는 뜻이야."


"화산?"


"땅 속 압력이 높으니까 파우더들이 밀려 나왔다는 거지. 마그마가 땅 속에서 끓다가 팍 터져 나오는 것처럼."


화산과의 다른 점이 있다면.


파우더가 나오는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는 것이었다.


파우더 더미 안에 현진을 넣어 놓자, 파우더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었다.


그건 딱 하나의 사실을 의미했다.


'가루가 새어나오는 속도가 좀비 하나를 치료하는 속도보다 느리다는 거지.'


그래서야 전부를 치료할 양이 모일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결국 삽이네."


여진은 잠깐 해탈하기로 했다.


그때 현진이 다시 중얼거렸다.


"진짜 화산처럼 펑 터져 나오면 좋을 텐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수도 있지. 다이너마이트 같은 게 있으면."


"다이너마이트?"


"예전엔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광산에 구멍을 뚫기도 하고 그랬다잖아."


여진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학교에서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러네."

"다이너미가 뭡니까?"


진수가 냉큼 끼어들었다.


"다이너마이트. 폭발물이에요. 저희가 살던 곳엔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은 있을 리가 없는 물건.


"폭발물? 그거 수류탄 같은 거예요?"


...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하듯 대꾸했는데.


"그거 많습니다!"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순간 귀가 반짝 뜨였다.


"진짜 급할 때 쓰려고 아껴 놓는 건데 말입니다. 한 번 터뜨리면 펑 터져서 주변 건물 다 날아가지 말입니다."


진수가 팔을 마구 휘적거렸다.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나와 기쁜 표정이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전투용인데 지금 계획이랑은 별로 상관 없지 않습니까?"

"아뇨, 상관 있어요."


여진은 진수에게 대답해 주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잘 됐을지는 모르겠다.


"건물을 부술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땅을 팔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요."


"아, 그럼 수류탄을 땅에 설치해서!"


남수가 냅다 소리쳤다.


항상 온화하던 사람이었다.

저렇게 목소리를 크게 내다니.


"그거면 되는 겁니다, 중간중간에 흙이 섞여 있어도 치료에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


드디어 구체적인 계획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어지간히 기뻤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계획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지?"


"첫 번째. 수류탄을 땅에 설치해서 터뜨린다."

현진의 물음에 여진은 손가락 하나를 치켜 세웠다.


"두 번째. 지상에 드러난 핑크 파우더로 좀비들을 유인한다."

손가락 두 개를 더 들어올렸다.


"세 번째. 군인들에게 치료된 좀비들을 보여주고 어쨌든 싸움을 끝장낸다."


"근데요,"


진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것만 해서 싸움이 끝나는 거 맞습니까?"


진수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지금 군인들끼리의 싸움은 꼭 좀비에 관련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좀비 치료제가 없었던 시점에 좀비를 옹호했던 게 옳았냐 틀렸냐]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테였다.


하지만.


"생존지와 군인들 입장에선 갑자기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방인이 생기는 거겠죠."


정신 없이 바빠질 테였다.


"사람은 할 일이 많아지면 쓸데없는 쌈박질은 관두기 마련이거든요."


논쟁은 논쟁으로 끝날 것이다.


갑자기 생겨난 사람들을 받는 데만도 바쁠 것이다.


이후 치료제의 존재를 알게 되면, 좀비 탓에 망해 가는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싸울 틈이 없어질 거예요!"


"그거 일 엄청 시켜서 싸울 체력도 안 남기겠다는 말로 들리지 말입니다?!"


"그런가요?"


저마다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사실 바라고 있었다.


좀 바쁘고 지치는 일상이어도 좋으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그리고 서로가 그걸 바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은 계획대로 가는 데만 집중하죠."


"네. 걱정 이외에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예를 들면,"


여진에 이어 말한 남수가 사무실 창밖을 가리켰다. 평군인들 몇이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른 군인들에게 어떻게 들키지 않을 건지도 생각해야겠죠."


"그럼 군인들의 이목을 끄는 팀과 폭탄을 터뜨리는 팀으로 나뉘어야겠네요."


여진이 남수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군인들은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 흩어져 있지 말입니다. 그거 우리가 다 잡을 수 있습니까?"


진수가 딴지 걸었다. 은근히 철저히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진수 씨 말대로 [흩어져 있다면] 무리겠지만요."


여진은 싱긋 웃으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저녁엔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예정이잖아요?"


바깥에는 여전히 의자들을 옮기는 중인 평군인들이 있었다.



*



진은 신경질적으로 담배 끄트머리를 씹었다.


오늘은 담배에 불을 붙일 기분도 나지 않았던 데다가.


식당 안에서의 흡연은 규칙 위반이었다.


"그러다가 절명하시지 말입니다."


진의 옆에 앉아 있던 A가 깝죽거렸다.


창문 밖의 해는 붉었다.


A의 얼굴도, 진의 얼굴도 노을을 받아 붉게 보였다.


진의 식판에는 음식이 반쯤 남아 있었다.


A의 식판에도 마찬가지였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글쎄."


진은 A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 고민이라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수하들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무책임한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았다.


"자네야말로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저야 언제나 군대 걱정뿐인 거 아시잖습니까."


A는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얼굴은 전혀 평소 같지 않았지만.


자신이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진은 A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속으로 한숨 쉬었다.


[연료]를 모아 놓은 창고에서 연료가 대거 사라졌다.


어딘가로 옮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알아챈] 거라면...'


진은 가만히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만약에라도 정말 알아챘다면.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세워 둬야 했다.


하지만-


"뭐든간에, 일단은 카를 팀장님 추대식부터 하고 생각하시죠!"


A가 말하는 대로였다.


추대식에는 모든 군인이 모인다.


빠져나간 놈이 있다면 바로 눈에 띈다. 그러니까 그때 뭔가 저지를 정도로 간 큰 놈은 없을 테였다.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몰랐다. 다 모여 있으면 수상한 기색을 보이는 놈이 더 잘 드러날 테니까.


그때 잡자.


진은 마음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을 정리하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발이 흙바닥을 밟는 바로 그 순간.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기우일까."

"저한테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A."


일단은 내려놓기로 했다.


앞으로 쭈욱 걸었다.


추대식이 진행되는 공터까지.


전부 와 있었다.


남수.

알렉스.

자신과 함께한 A.


허태식과, 저쪽에서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기현.


각각에게 통솔되는 평군인들까지.


저마다 카를과의 추억을 한 줄기씩 붙들고 여기 서 있었다.


'역시 빠져나간 사람은 없군.'


진은 공터를 죽 둘러본 뒤 급조된 단상 위에 올라섰다.


앞을 보고 연설했다.


"지금부터-"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고 카를의 추대식을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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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여담 +2 21.01.11 26 1 5쪽
52 END 21.01.09 46 0 11쪽
51 종결장 21.01.08 19 0 10쪽
50 경우의 수 21.01.07 16 0 12쪽
49 경우의 수 21.01.07 12 0 10쪽
48 경우의 수 21.01.06 13 0 13쪽
47 악마의 사정 21.01.06 12 0 10쪽
46 악마의 사정 21.01.05 14 0 11쪽
45 악마의 사정 21.01.05 12 0 10쪽
44 악마의 사정 21.01.04 9 0 11쪽
43 악마의 사정 21.01.04 15 0 11쪽
42 악마의 사정 21.01.03 14 0 11쪽
41 축제 21.01.03 15 0 12쪽
40 축제 21.01.02 13 0 11쪽
39 축제 21.01.02 15 0 11쪽
38 축제 21.01.01 13 0 11쪽
» 축제 21.01.01 17 0 11쪽
36 축제의 서막 20.12.31 22 0 12쪽
35 축제의 서막 20.12.30 17 0 12쪽
34 축제의 서막 20.12.29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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