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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그대를 위한 핑크빛 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로맨스

완결

복선
작품등록일 :
2020.11.25 18:35
최근연재일 :
2021.01.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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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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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0,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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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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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축제의 서막

DUMMY

진수는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서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과거의 인류는 뭐 겁 없이 우주에 갔다던가 그랬다.


살아가는 데 급한 생존지민들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 우주에는 카오스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지금 진수의 머릿속이 딱 그랬다.


눈앞의 빨간 안경 남자를 본 탓이었다.


'뭔데?'


좀비? 인간?

애초에 이게 왜 감옥에 있지 않고 여기 있나?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것들을 전부 파헤쳐보자고 마음먹기에는 진수의 머리가 너무 나빴다.


진수는 학구파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진수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넌 뭐세요 씨빠!"


일단 칼부터 꺼내 겨누고 보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아!"


사색이 된 남자가 양손을 위로 번쩍 치켜올렸다.


식은땀 줄줄 흘리는 걸 보니 지금까지의 이방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의 이방인들은 바깥에서 좀비와 구른 세월이 길어서, 상당히 무던하곤 했다.


'그럼 얘는 진짜 뭔데?'


바깥 생활을 오래 한 것 같지 않으면서.

군인도 아니면.


땅에서 뛰쳐나오기라도 했단 소린가?


"바, 방금 말, 말했다시피 저는 현진입니다만?"

"이름 물어본 거 아니거든요!"

"그, 그럼 어쩌라고요?!"


놈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곧 풀썩 쓰러질 것 같았다.


진수는 일단 칼은 다시 주머니에 넣기로 했다.

저 정도 피지컬의 상대라면 솔직히 언제 기습하더래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좀비는 아니니까.'


그건 확실하니까.

피부색도 정상이고 인간과 멀쩡히 의사소통했다.


그래도 주의해야 했다.


혹시 좀비를 숨기고 있다거나 할지도 몰랐다.

마치 여진이나 대한처럼.


스스로를 현진이라고 칭한 남자는 진수가 칼을 치운 후에도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었다.


"...이제 팔 내려도 돼요."


"안 찌릅니까?"


"안 찔러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이라면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을 테니까..."


"경찰?"


머리가 좀 이상한가?

바로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경찰이니 형사니 하는 건 역사 시간에나 배우는 개념이었다.


대민 씨도 머리가 좀 이상했었다.


바깥 생활을 오래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는 않은가 보다 하고 말았다.


"아무튼. 혹시 뭐 배는 안 고프십니까?"


진수는 습관적으로 물었다.


어쨌든 이방인을 만난 상황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게 뻔하니까 식당에 데려가 밥이라도 챙겨 줘야-


'아. 잠깐만.'


여기까지 생각하던 뇌가 덜컥 멈췄다.


지금 군대 내 분위기가 생각 난 탓이었다.


많이들 알렉스 팀장님을 욕했다.


나머지는 팀장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욕했다.


어쨌든 이방인인 대한은 모두가 욕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이방인을 데려간다고 제대로 맞이해 줄까?'


솔직히 말해선.


누군가 눈 돌아가 현진을 찌르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았다.


특히 카를 팀 사람들은 지금 대한에게 엄청난 분노를 쏟아 내는 중이었으니까.


'...'


진수는 눈앞의 처치 곤란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진수의 동료들은 이방인더러 무조건 나쁘다고 했지만. 그렇지만...


"왜, 왜, 왜 그렇게 보십니까?"


솔직히 진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군법을 위반한 여진에 대해서조차도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죄인이 아니오, 하고 온몸으로 순한 아우라를 뿜어 내는 사람은 지켜 주고 싶었다.


특별히 영웅 심리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방인이고 군인이고 이전에.

사람이니까.


'눈앞에서 사람 뒤지는 건 안 보고 싶단 말이야.'


...카를 팀장님의 생전 명언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그래서 진수는 현진에게 말을 걸었다.


"따라와요."


"나는 찾을 사람이 있어서,"


"따라오라면 좀 따라와요. 배 안 고픕니까?"


"배는..."


중얼거리던 현진이 갑자기 말을 뚝 그쳤다.

고픈 모양이었다.


우선은 남수 리더님께 데려갈 예정이었다.


이방인에 대해서라면 유난히 너그러운 그였다.


적어도 진 리더님처럼 즉살할 것처럼 쳐다보거나 하진 않으시겠지.


"일단 가서 먹고. 그 다음에 뭘 찾든가 하죠."



*



소각장 앞 평군인들은 지금 아주 바빴다.


밤새 천천히 설치하려고 했던 행사장 장비들을 급히 나르려니까 손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여진이 알고 있는 세상에서처럼 음향 장비가 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기계들을 대신하는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많아 보였다. 의자나 단상 등등.


그게 그닥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평군인들이 그런 준비에 집중해준 덕에.

여진이 남들 몰래 소각장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


놈들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엿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일단 안으로 들어온 뒤로는 쉬웠다.


남수의 사무실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저번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A 머리통을 갈기고 도망쳤었지.'


이번에는 그 정도 일까지는 생기지 않길 바라며.

조심히 문을 열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등짝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


책상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수가 뒤돌았다.


오른손에는 깃펜을 든 채였다. 책상 위에는 직위 부여증 어쩌고 하는 종이가 놓여 있었다.


글씨들이 정갈하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곧 쓸모 없게 되었다.


남수가 종이 위로 깃펜을 툭 떨어뜨린 탓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그거 카를 씨 줄 거 아니었어요? 망치면 어떡해요."

"아, 이건 다시 쓰면 됩니다. 그보다도, 그."


그는 펜을 아예 책상에 내려놓은 채 여진의 앞으로 왔다.


"아예 도망쳐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리고는 실실 웃었다.


안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도대체 어디 숨어 계셨던 거예요?"


"설명하자면 긴데,"


"-태식 팀장이 도왔나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웃옷에 이름이 써 있네요."


"아."


지금 여진이 입고 있는 면티는 어젯밤 태식이 건네준 것이었다.


"그렇게 됐어요. 태식 씨가-"


여진은 스스로 내뱉으려던 설명을 뚝 끊었다.


전달해야 할 내용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었다.


액기스만 모아 말해야 했다.


"현진이가 깨어났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핑크 풀 찾았습니다."

"...네?"


"군대 바로 밑이요."

"네?!"


"그런데 그거 파헤치는 것까지는 볼 시간이 없으니까 저는-"

"아니, 아니. 잠깐만요."


급히 말을 끊은 남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휘저었다.


"하나씩. 천천히 부탁드릴게요."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요. 평군인들 분위기 안 보셨어요?"


"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무튼 지금 바로 도망쳐야 해서요."


남수는 잠시 가만히 여진을 응시했다.


정말이지 하나도 감을 잡지 못한 표정이었다.


'설명을 했어야 하나?'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도 확실하지 않고, 그러다 평군인이라도 들어닥치면-


여진이 남수를 바라보며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


남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추스르더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주차장으로 가죠."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야기는 차에 타서 들어도 되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도와주시는 건가요?"


"어쨌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거잖아요?"


그는 슬며시 웃었다.


현대였다면 호구로 불렸을 인간이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고마워요."


그 성질이 지금 여진과 현진을 구하고 있었다.


언젠가 감사해야 할 상대.


여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주 웃었다.


"그럼 숙소로 가서 현진이를 데리고-"


똑똑.


여진의 말을 끊으며 누군가 노크했다.


그 순간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이 사라졌다.


뒷목이 섬찟섬찟했다.


들어온 뒤에 문을 닫은 기억이 없었다.


지금 노크한 것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열려 있는 틈으로 여진을 알아봤을 테였다.


여진의 눈이 순간적으로 무기를 찾았다.


여차하면 저번처럼 갈겨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진아!"


다음 순간.


무기고 뭐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목소리.

한 음절 내뱉는 것만으로도 순간 주위를 발갛게 물들이는 목소리가-


여진의 이름을 불렀다.


여진은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했다.


"...현...진...?"


겨우겨우 이름만 불렀다.


그거면 충분했다.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현진이 달려왔다.


뒤에서 여진을 끌어안았다.


"너, 살아남았었구나, 다행이다..."


그는 중얼중얼거렸다.


여진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



그 순간.

깜짝 놀란 건 여진뿐만이 아니었다.


"엥?"


현진 이후에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진수는 눈을 크게 뜬 채 여진과 현진, 그리고 남수를 번갈아 봤다.


"엥?"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에에엥?"

"다 설명할게요."


딸꾹질까지 시작한 그녀에게 남수가 황급히 다가갔다.


"리더님? 여진 씨가 왜 여기 있어요? 아니 있습니까? 뭐지 이거? 엥?"


"누가 올지도 모르니까 문부터 닫고,"


콰앙-


"여진 씨!!"


"문을 닫아도 그렇게 크게 말하면 밖에서 들릴 거예요..."


"여진 씨, 근데 내 말 안 들려요? 왜 대답 안 해 주세요? 탈옥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엄청 찾았는데 안 보였습니다? 여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던 진수는 문득 입을 다물었다.


놀랐던 머리가 제정신을 차렸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진이 전혀 반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진..."


여진은 아까부터 사이렌마냥 같은 소리만 반복해대고 있었다.


남수가 옆에서 진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내가 설명할게요."

"...아, 네."

"손 내밀어 봐요."

"손이요?"


오른손을 내밀자 마자 묵직한 것이 쥐여졌다.


책이었다.


붉은 표지의 책.


"두껍죠? 내용은 여기에 정리해 뒀으니까 이걸로 봐도 괜찮아요."


뒤이어 남수는 웬 노트도 한 권 건넸다.


"저 글씨 잘 못 읽지 말입니다."

"그래도 동방어 정도는 얼추 해석할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진수는 책을 펼쳤다.


활자를 따라 눈을 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얼."


입을 헤벌렸다.



*



여진은 퍼뜩 뒤돌아봤다.


이젠 흥분이 좀 가라앉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서 오케스트라 몇 군단이 합주를 해대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어?"


휘릭 돌아간 시야에 현진의 얼굴이 똑바로 잡혔다.


순간 또 멍해질 뻔했다.


와.


진짜 현진이네.


"오는 길에 군인들 안 만났어?"

"군인들? 사람 한 명 안 만났어. 근데 네 뺨은 왜 때리고 있어?"

"정신을 좀 차려야 해서..."

"...?"


현진이 깨어났다.


기절해 있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그럴 때도 되긴 했다.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아찔했다. 현진이 멋대로 밖에 나온 걸 봤으니까.


쪽지 한 장 써놓지 않은 여진의 실수였다.


현진은 지금 아무것도 몰랐다.


무작정 아무 데나 돌아다니다가 평군인들에게 험한 꼴 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곳으로 오다니 운이 좋았다.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저 사람이 데려가더라고. 널 만날 줄은 몰랐지."


현진이 여진 뒤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입을 헤벌레 벌린 진수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와인색 표지 책이 들려 있었고.


남수는 진수 옆에서 세상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아...응... 감격 상봉의 시간은 끝난 거죠?"

"어우 대박. 이게 돼?"


진수가 대꾸했다. 사실 대꾸라기보다는 자기 혼자 책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핑크 파우더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었으니까... 음..."


남수가 박수 짝짝 치며 모두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조금 생각해 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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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END 21.01.09 45 0 11쪽
51 종결장 21.01.08 19 0 10쪽
50 경우의 수 21.01.07 15 0 12쪽
49 경우의 수 21.01.07 12 0 10쪽
48 경우의 수 21.01.06 13 0 13쪽
47 악마의 사정 21.01.06 12 0 10쪽
46 악마의 사정 21.01.05 14 0 11쪽
45 악마의 사정 21.01.05 12 0 10쪽
44 악마의 사정 21.01.04 9 0 11쪽
43 악마의 사정 21.01.04 15 0 11쪽
42 악마의 사정 21.01.03 14 0 11쪽
41 축제 21.01.03 15 0 12쪽
40 축제 21.01.02 13 0 11쪽
39 축제 21.01.02 15 0 11쪽
38 축제 21.01.01 13 0 11쪽
37 축제 21.01.01 16 0 11쪽
36 축제의 서막 20.12.31 22 0 12쪽
» 축제의 서막 20.12.30 17 0 12쪽
34 축제의 서막 20.12.29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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