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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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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스키마
작품등록일 :
2024.05.08 12:0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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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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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글자수 :
28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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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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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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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7쪽

신기한 것, 희귀한 것(3)

DUMMY

이번에 채집 조로 계약할 때, 날인 하기 전에 계약서를 3번이나 읽어봤다.

그리고 집에서 무려 3번이나 또 읽어봤다.

심심하면 읽으려고 핸드폰으로 계약서 내용을 찍어 놓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철저하게 계약서를 외우고 관리하는 이유는, 혹시나 계약서를 잃어버리거나 분실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계약 내용을 언제, 어디서든 떠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종의 습관형 암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계약 내용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대신 숫자만 외우면 된다.


그 노력의 대가가 바로 지금이다.

계약서 내 고정급여를 제외한 채집 성과급 항목으로 잡혀 있는 세세한 정산 퍼센트.


예를 들어 마석이나 유마석 하나 캐면 그걸 판매한 대가 중 51%는 내 것, 49% 중 19%는 지자체 수입금과 세금 명목으로 빠져나가고, 나머지 30%를 조원들과 호위 각성자들이 나눠 가지게 되는데, 지금 이들의 인원수가 총 9명이니까 한 사람당 떨어지는 금액은 대략······,


2.7%. 맞나?


여튼, 이렇게 내가 번 수입을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환전소에서 알아서 정산을 해주지만,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나도 교차 검증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막말로 저 환전소 직원이 마석으로 야바위라도 해버리면 내가 애써 번 돈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셈이 된다.


우선, 마석을 판매한 총금액이 23,261,120원이고, 이중 내가 먹는 금액이 51%인 11,863,170원.

유마석을 판매한 총금액이 13,975,000원이고, 이중 내가 먹는 금액이 51%인 7,127,250원.


유마석이 마석에 비해 훨씬 단가가 비싸지만,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값이 나가지 않았다.


유마석은 마석의 3분지 1 크기.

그래도 판매 금액은 마석에 절반을 넘는다.


이건 다 그 커다란 초록 왕 꿈틀이가 똥을 쥐똥만큼 싸서 그런 거다.

내가 다람쥐 점심인 도토리를 3개나 줬음에도 불구하고, 똥을 쥐똥만큼 싸서 이 정도 밖에 못 번 거다.


덩치에 맞게 푸짐한 똥을 쌌다면 난 지금쯤-,


“······?”


만약 도토리를 3개가 아니라, 한 30개 정도 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녀석의 똥 양도 도토리가 연관 관계가 있으려나?


으음, 이것도 나중에 테스트해봐야겠다.

왕 꿈틀이에게 배가 터지도록 도토리를 먹여주지.


그러자면 먼저 도토리를 그만큼 주워야 할 것이고.

도토리는 다람쥐의 점심이기에 다람쥐들이 단체로 소풍을 가야 할 것이고.

내가 소풍 가는 녀석들을 위해 가이드로 전직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


씁! 또 망상에 빠져버렸다.


역시나 난 한 번 망상에 빠지면 토실토실한 올챙이들이 귀여워 한없이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건 조심해야 한다.

망상에 집중해버리면 주변의 일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큼, 다시 한번 계산해본다.

오늘 내가 마석과 유마석을 판매해서 올린 수입은 총 25,838,170원!


“······크큭.”


무려 두 달 넘게 노가다를 뛰어야 벌 수 있는 돈을 단 하루 만에 벌었다!

그리고 여기서 조원들이 캔 마석 값 일정 비율과 고정급여는 별도!

아아, 이 얼마나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숫자들인가!


캠프 전용 동전 코인으로 받은, 캠프에서 쓸 백만 원을 제외하고도 지금 나에겐 무려 2천4백만 원이 넘어가는, 현금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이체 확인증이 아름답게-,


“야,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혼자 실실 웃고 있으면 남들이 이상하게 본다. 그리고 뭘 다시 계산해? 환전소에서 잘못 계산했을 리가 없잖아? 그러지 말고 너도 이리로 와서 소주나 한잔해라. 오늘처럼 대박 친 날은 한 잔 마셔줘야지.”


“야, 아픈 애한테 술은 무슨!”

“누가 아파요? 저 봐요. 얼굴에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데-,”


허름한 천막 구석.

코인으로 구매한 식권으로 다 같이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테이블 위에 PX에서 사 온 여러 안줏거리를 차려놓고, 아저씨들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저씨들은 첫날 무사히 채집한 것을 자축하며, 앞으로도 오늘만 같게 해달라고 축하 파티를 하고 있었다.

진용이 형이 나에게 한잔 권하자 덕수 아저씨가 그를 타박하는 중인데-,


“한지원 씨! 연구소장님이 찾습니다!”


상사 군인 아저씨가 느닷없이 나타나 이상한 소리를 한다.

갑작스런 호출에 내가 눈만 끔뻑대고 있자, 얼른 가보라며, 그러면서도 테이블 위의 안줏거리를 훑는다.


“큼, 소장님이 찾습니다. 본관 연구소장님 실로 지금 가보세요. 그리고 감출 것 없습니다. 관련 정보를 협회와 공유하면 평생 로열티 개념으로 연금이 지급되니까, 다른 각성자들을 위해 좋은 정보는 오픈하는 게 좋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저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습니다. 상담이나 면담이면 그냥 내일-,”

“연구소장님은 캠프 대장님과 함께 이곳에서 제일 높은 권한을 가지신 분입니다. 내일 아침에 면담이 아니라 바로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예이-, 갑니다. 가요.”


아-주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본관으로 향했다.


내가 오늘 돈을 많이 벌었지만, 내일도 많이 벌려면 이곳 공동 대빵한테 밉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멈칫.


지자체와 계약한 것을 어기고 게이트 연구소장이 마음대로 우리 일정을 조정할 수 있나?


상사 군인 아저씨의 말투를 보면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럼 원래 일정보다 더 늘릴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으음, 밖에서 두 달 동안 노가다를 뛰어야 벌 돈을 오늘 하루에 벌었다.


우리 조가 게이트에 머물면서 채집할 일정은 대략 2주일.


그럼, 연구소장님에게 손바닥 좀 비비고 꼬리나 엉덩이 좀 흔들어주면, 대충 한달 정도로 채집 기간을 늘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


아니다. 기대하진 말자.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그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일정이 늘어난다면, 그동안 착하고, 귀엽고, 예쁜 지은이가 아주 보고 싶겠지만, 애써 참아야 할 것이다.

돈은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좋은 예감이 든다.




캠프 본관 연구소장실에서 연구소장을 만났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건가? 자네의 ‘분석’ 스킬 때문인가? 뭘 어떻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는 거고?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개념? 의지? 같은 건가?


다른 분석 스킬 각성자들은 그냥 성분분석 같은 개념인데, 자네는 한층 더 특수한 능력 같군. 이런 걸 수치화할 수 없다니 대단히 안타까운 노릇이야.


그럼, 마석이나 유마석 말고 다른 것도 찾을 수 있나? ‘분석’ 스킬은 하루 몇 회, 어느 정도 쓸 수 있는 거지? 제약 같은 건 없나?


아, 보유한 마력이 제한되어 있다면 무작정 쓰지는······.”


“······.”


좋은 예감이 빗나갔다.

내 예감은 항상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줄줄.


이건 내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소리다.


한참이나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물어보며 날 테스트하려는, 빛나는 머리를 가진, 막강한 권한을 가진 연구소장.

내가 아무 반응이 없이 멍청한 마네킹 흉내를 내고 있자 그가 화제를 돌린다.


“혹시 정찰조로 보직을 바꿔보는 건 어떤가?”

“싫습니다.”


돌려도 너무 돌렸다.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인가.


뜬금없이, 갑자기 소속을 바꾸라는 연구소장.


난 딱 잘라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다.

오늘 하루 번 돈을 앞으로 2주일 동안 벌어서 난 부자가 될 예정인데, 내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하, 그렇게 딱 잘라 얘기할 건 없네.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그래도 일단 정찰조에 들어가게 되면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닿게 되지.

그곳에 신기한 것, 희귀한 것, 아주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더군다나 자네는 ‘분석’ 스킬이 있으니, 거기서 어떤 것들이 더 값어치가 나갈지 바로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미지의 영역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생명체를 찾아 녀석들의 특성이나, 습성, 처리 방법 등을 협회와 공유해 준다면 자네는 그 대가로 앉아서 돈을 엄청나게 벌어들일 수도 있단 말이지. 특이한 녀석들만 사냥하러 다니는 상급 파이터 계열 각성자들에게 아주 귀중한 정보를 제공······.”


“······.”


콸콸.


이건 내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소리다.

하지만 난 이런 음파 공격 스킬은 많이 당해봤기에 이 정도로 날 굴복시킬 순 없을 거다.


연구소장이 또 화제를 돌린다.


“‘개코원숭이’는 시간을 멈추지.”

“예?”


이번에도 뜬금없다.


시간을 멈춰? 개코원숭이?

원숭이인데 개코를 가진 잡종이란 말인가?


내가 드디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자, 연구소장이 씨익 이상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개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0.1~0.2초 정도 시간을 멈춘다고 밝혀졌어. 심장에 마석이 있는데, 그걸로 마력을 발현해서 찰나의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멈춘다네. 어때, 신기하지 않은가?”

“신기하긴 하군요.”

“이걸 누가 발견했는지 아나?”

“아뇨.”

“자네도 들어본 사람일세. 바로 신화검이 발견해서 협회와 공유한 내용이야.”

“예?! 그-, S급 파이터 계열 각성자, 신화검님 말씀입니까? 검 하나로 산과 바다를 갈라버린다는?”


“하하. 뭐, 소문이 좀 이상하게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지. 그런 신화검조차 이런 정보를 협회와 공유한다네. 그가 정찰조에 속해 있을 때 확인한 내용이고, 이 사실을 공유해 준 덕분에 지금은 상급 전투 조원들이 ‘개코원숭이’를 그나마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게 만들어 줬지. 그러니까 자네도 정찰조에 속해 미지의 영역에서······.”


연구소장이 뭐라 뭐라 말 줄임표를 계속 반복하고 있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는다.

지금 연구소장의 음파 스킬 공격이 문제가 아니다.


무려 S급 각성자 신화검님 얘기가 나온 것이다.


국내 유일무이 S급 각성자, 세계 탑 랭커 9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빛나는 대검으로 거대한 곰도, 호랑이도, 수백, 수천의 까마귀 떼마저 한 방에 쓸어버리는.

그 이름도 거룩한 신화검님의 얘기를 이런 허접한 공간에서 들을 줄이야.


나 같은 비루한, 이제야 E급 각성자인 내가 다가가기엔 너무나 멀고, 위대하고, 돈 많은, 대기업 회장님보다 더 부러운, 그런 영웅의 뒷담화를-,


“······그러니까, 자네가 채집하면서 버는 돈보다 로열티로 받는 돈이 더 많아질 거란 말-, 자네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예? 아, 예. 물론이죠.”


사실, 내 귀가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귀가 사라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구소장이 왜 나보고 정찰조에 들어가는 것을 적극 권하는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밀어도 난 정찰조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게이트 내에서 1년 365일 있어도 된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전투 조는 당연히 내가 들어가지 못하니 신경 쓸 필요조차 없고.

정찰조는 안전지대가 아닌 게이트 미지의 영역에서 그야말로 정찰 임무를 담당하는데, 당연히 위험하고 위험하다.


신기한 거, 희귀한 거, 돈 되는 거 남들보다 일찍 발견해보려다 내가 그들보다 훨씬 빨리 저세상으로 갈 확률이 아주 높다는 말이다.


난 가늘고, 길게, 아-주 오래 살아야 한다.

지은이 마력 병이 다 나을 때까지 다쳐서도 안 되며, 이 세상과 안녕은 더더욱 안 된다.




한참이나 날 정찰조로 유혹하던 연구소장은 이제 포기한 것 같았다.

대신, 슬라임과 도토리의 상관관계,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더 이상 난 아는 게 없다고.

당신의 음파 스킬 공격은 대단히 날카롭다고, 대충 건성으로 대답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연구소장에게 물었다.


“소장님, 혹시 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큼, 그래. 물어보게.”

“혹시 마력 포션에 포도가 들어갑니까?”

“······!!”


어, 뭐지? 저 표정은?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진짜라고?


“그, 그럴 리가 없잖-, 하-, 부정하는 것도 웃기는군. 이것도 ‘분석’ 능력인가?

그래, 마력 포션에는 게이트 포도 씨가 들어가네. 포션 베이스를 제외한 마력 활성화 12가지 첨가물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분석’ 스킬이라, 이거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어. 그러자면 특수 스킬 각성자를 대상으로······.”


“······.”


이제 궁금한 것도 해결되었으니, 그냥 튈까?


아니,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2차 검증까지 마치고 튀자.


“혹시 그 게이트 포도가 붉습니까?”

“잘 아는군. 맞아. 피처럼 붉지. 혹시 어디서 자생하는지 알고 있나?”

“아뇨.”


연구소장의 처절한 음파 스킬 공격 흔적을 몸에 잔뜩 새기고 다시 허름한 천막으로 돌아왔다.

귀가 사라졌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지만, 마냥 소득이 없지만은 않았다.


역시나 내가 꾸는 뿌연 안개 꿈은 마력과 현실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아마 내 몸뚱이가 조금씩 업그레이드될수록 꿈속의 내 몸도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분명하다.


“연구소장님이 뭐래?”

“그 ‘분석’ 스킬 때문에 불렀겠지.”

“도토리 때문 아닐까?”

“슬라임에게 도토리를 주면 마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분석’ 스킬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여전히 축하 파티를 하고 있던 아저씨들이 취기가 도는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난 그런 내용이 맞다고 대충 대답해줬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침대 옆 뜨거운 물에 담가놨던 도토리를 챙기고 다시 천막을 나섰다.


끝까지 남겨놨던 도토리 한 알.

이 도토리는 다람쥐 점심이고, 슬라임에겐 변비약이지만, 혹시나 이걸 사람이 먹게 되면 다람쥐로 변신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볼 요량.


캠프 경계, 어두컴컴한 펜스 인근까지 걸어가며 주변을 살핀다.

여기저기 휴대용 조명등을 켜놓았지만, 캠프 전체를 밝히기엔 전력이 모자란 모양인지 으슥한 곳은 대단히 어두컴컴하다.


아무도 없는 곳.

으슥하고, 어두운 곳에서 난 다람쥐처럼 깨작깨작 밤알 크기의 도토리를 까먹기 시작했다.


일단 이빨로 껍질을 전체적으로 긁어내고, 속살이 나오면 한입에 깨물어 먹을 심산이다.


내가 천막에서 이걸 까먹지 않은 이유는 다람쥐로 변신하는 모습을 아저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고, 혹시나 다람쥐로 변신하더라도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며-,


“너, 거기서 뭐 해?”

“······.”


삐걱대며 돌아가는 대가리.


내 뒤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지혜가 손전등을 들고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난 얼른 내 몸을 먼저 살폈다.


후-, 아직 다람쥐로 변신하기 전이었다.


“치워. 눈부셔.”


내 잘생긴 얼굴을 감상하려는 것인지 지혜의 손전등 불빛이 내 눈을 찡그리게 만든다.


전등을 치우라고 말하자 불빛이 바닥을 향하더니, 내가 도토리 껍질을 갉아서 바닥에 뱉은 흔적을 이리저리 살핀다.


난 얼른 발로 흔적을 지우며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이 근처에 사는 다람쥐들 짓이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밤알 크기의 도토리가 여전히 내 입안에 있었다.


“이거 뭐야? 어? 너, 설마 도토리 까먹은 거야? 여기서? 혼자? 왜?”

“······.”


지혜가 바닥의 흔적이 밤껍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는지 핵심을 찌른다.

난 재빨리 입에 문 도토리를 뱉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난 아직 다람쥐로 변신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냐. 그냥 바람 쐬고 있었어.”

“아까 입 볼록 튀어나온 거 봤어. ‘분석’ 스킬 쓰려면 그런 걸 꼭 먹어봐야 아는 거야?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너도 얼마나 절실했으면······, 후-, 너도 참 어렵게 산다.”

“······.”


너도?


지혜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았지만, 애써 변명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럼 중간은 간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펜스 너머 컴컴한 어둠을 응시한다.


그저 멍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렇게 침묵을 고수한다.

나도 잠시나마 그녀의 옆에서 침묵의 벗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게이트 투입 첫날 밤이 깊어갔다.


갑자기 귀여운 여동생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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