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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low 님의 서재입니다.

잠든 세상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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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low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8
최근연재일 :
2020.07.13 23:55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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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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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3,093

작성
20.05.3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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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7)

DUMMY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유저는 아닌 거 같다.

NPC도 개발진도 유저도 아닌데, 이런 곳에 있다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남은 가능성은 하나밖에 안 남았다.


산업스파이.


현재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포가튼 사가의 프로그램을 몰래 분석하고 해킹해서 정보를 빼가려고 하는 산업스파이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공간에 들어와 있는 거겠지.


‘이쪽’ 관련 인간이니, 자기의 계획이니 뭐니 하는 걸로 봐서는 빼박이다.


아마, 해킹을 해서 이렇게 보스몬스터나 기타 잡다한 걸 저장해 놓는 퍼스널리티 존(Personality Zone)까지는 들어왔는데, 너무 리얼한 몬스터들을 보고 겁을 먹어 당황했던 것 같다.


흠, 진짜 그럴싸하다. 내 예상이 99% 맞을 거다.


그녀의 정체야 둘째 치고 아무튼, 불편한 공기가 흐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그녀는 현재 둘 다 서로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상태였다.

되게 이상한 상황이다. 그녀도 나도 서로 마음에 안 드는데 둘 다 로그아웃하지는 않고 있다.


내 입장 상 나는 그녀를 그냥 쌩 까고 버그 리포터를 날릴 수가 없었다. 어쨌든, 포가튼 사가에서 접근이 제한되는 공간에 들어왔는데 거기에 웬 여자, 산업스파이일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같이 있었다고 하면 문제가 더 골치 아파질 거 같았다.

잘못되면 나까지 공범 취급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냥 다 무시하고 나 먼저 로그아웃하고 나중에 해결하자 하니, 그것도 왠지 나중에 나만 독박 쓸 거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그녀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녀도 먼저 로그아웃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마, 그녀도 내가 상당히 거슬릴 거다. 몰래 경쟁사에 들어와 데이터를 훔치려 하는데 어처구니없게 웬 이상한 놈한테 들킨 상황일 테니.


어쨌든, 둘 다 여길 빠져나가려면 서로에 입장과 상황을 정확히 들어보고 그 후의 어떻게 할지 협의를 해야 할 거 같다. 근데 왠지 그걸 먼저 터놓고 말하자니 뭔가 지는 거 같은 느낌이랄까? 아쉬운 건 내 쪽이 아니다라는 자존심을 괜히 내세우고 싶은 기분이랄까. 암튼, 그런 분위기인지라 먼저 묻기 애매했다.

그녀도 같은 마음인지 푸른 두 눈동자에 꺾이지 않는 고집이 얼핏 엿보인다.


결국, 둘 중 하나는 먼저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데······.


“······.”“······.”


문제는 나도 그녀도 쓸데없이 자존심을 세우며 서로 할 말을 미루고 있다는 거다.

여자한테 져주는 게 이기는 거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내 경험상, 주로 수아지만, 아무튼, 여자한테 한 번 져주기 시작하면 계속 져야 하므로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어쩐지 모쏠의 슬픈 변명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나 나름 고집이 있었다.


그녀도 뭔가 내가 되게 마음에 안 드는 듯 처음 봤을 때의 얼굴과 완전 180도 바뀌어 싸늘한 얼굴만 하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시간만 낭비하는 무의미한 자존심 싸움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나?

아냐, 아냐. 왠지 지기 싫어.

다짜고짜 정체가 뭐냐, 얼간이 취급한 건 쟤가 먼저였다고. 정 짜증나면 그냥 로그아웃하면 되지. 아니, 그냥 지금 해버리자.

그래. 차라리, 내가 먼저 로그아웃 한 다음, 넬 프로스트 사에 전화해서 우연히 개발진이 짜놓은 로컬리티에서 수상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찌를까? 그럼 상식적으로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한테는 의심이 가지 않을 거 아냐.

응. 왠지 좋은 아이디어 같다. 뭔가 남자답고 쿨해서 멋있는 느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결정에 태클을 걸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좋아. 결정. 그럼 바바이.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예뻤기에 한순간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난 상대가 기분 나빠지기 충분할 정도로 썩은 미소를 짓고 로그아웃 창을 열었다.


훗, 이겼다.


저열한 승리감에 취해 속으로 웃고, 난 곧바로 화면에 떠오른 로그아웃을 클릭했다.


“어?”


분명 화면에 떠오른 로그아웃 창을 클릭했는데······. 왜 로그아웃이 안 되는 거지?!


“뭐, 뭐야!”


다시 로그아웃을 클릭한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다. 뭐야, 이거! 왜 로그아웃이 안 되는 건데!

서, 설마, 민혁이 프로그램 때문에 뭔가가 잘못됐나? 그래서 로그아웃이 안 되는 건가? 망할! 말도 안 돼! 고민혁 이 개새끼! 죽었어! 이래서 야매 프로그래머한테 뭔 일을 맡기면 안 되는데! 큰일 났다! 어떡하지!


진짜로 내 캡슐에 문제가 생긴 건가? 아님, 버그 때문에 이 망할 던전에 들어와서 갇히게 된 건가? 여긴 정상적인 방법으로 로그아웃 안 되는 공간인가?

망할!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뭐가 뭔지 모르겠어! 갑자기 떠오른 여러 가지 가설들 모두가 하나 같이 최악의 상황밖에 없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다.

이거 영화처럼 평생 이 포가튼 사가의 갇혀 지내야 하는 건가! 서, 설마, 현실 속 나의 육체는 이미 죽은 거고, 나 영혼만 귀신처럼 남아서 포가튼 사가에 갇힌 걸까? 아니면, 내 뇌가 계속된 뇌파의 영향으로 녹아버려 내 자의식만 데이터로 남아 이 포가튼 사가에 떠돌게 된 걸까?

아,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럴 순 없어!


“로, 로그아웃!”


난 병신같이 로그아웃을 직접 입으로 말하며 필사적으로 계속 로그아웃을 클릭했다.


“씨발! 왜 안 되는 거야!”


이미 이성을 잃었다. 난 미친 듯이 로그아웃 창을 광클릭했다. 어쩌지. 어쩌지. 젠장, 버그 리포터부터 얼른 보내자. 누군가 도와주러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새로운 메시지 창을 띄우는데 갑자기 차가운 감촉이 내 손 위로 느껴진다.


“진정해.”

“어······?”

“진정하라고. 뭐 땜에 그렇게 당황했는지 모르지만, 가만히 지켜보기 꼴사나워.”


그녀는 냉정한 눈으로 혼자 왔다 갔다 하던 내 손을 붙잡았다. 만일, 5분 전이었다면 사춘기 소년다운 두근거림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돌아버릴 거 같은 초조함이 밀려든다.

난 초조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먼저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말았다.


“지금 로그아웃이 안 돼! 버그 때문인지 이 던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로그아웃이 안 되는 상태라고! 혹시 넌 돼? 한 번 해봐! 아니아니, 하지 마! 하지 말고 있어! 너 이씨, 나만 두고 가기만 해!”


객관적으로 봐도 찌질함의 끝을 달리는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다. 혹시, 그녀만 로그아웃이 가능하다면 나만 이 거지 같은 던전에 혼자 남게 된다. 그녀가 날 두고 가버릴 확률이 충분한 이상 어떻게든 그 꼴만은 면해야 했다.

어떤 욕설이 날라 와도 무방한 내 언행에도 그녀의 냉정한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쓰레기 취급당해도 할 말 없는 처지였으나, 그녀는 의외로 날 비웃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되지도 않는 위협이 가소로운지 그녀는 나랑 만나고 처음으로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만 두고 간다? 하, 내가? 그럴 수나 있으면 퍽이나 좋으려만······.”

“······뭐? 그, 그럼 너도 로그아웃이 안 돼?”


이거 뭐야. 둘 다 로그아웃 안 되는 거면, 이 던전에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 이럴 때가 아니라, 얼른 버그 리포터 날려야 한다.

난 서둘러 버그 리포터 창을 열어 허겁지겁 지금 던전에 갇혔으니 구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는 포가튼 사가의 병적인 리얼리티와 설정에 대한 집착 때문에 메시지 전달 기능은 마을 밖으로 나갈 경우, 불가능해지지만, 버그 리포터와 같은 핵이나, 오류, 버그 같은 것은 바로바로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을 잡고 버그 리포터를 발송 버튼을 클릭했다.


“젠장! 이건 또 왜 안 돼!”


하지만, 버그 리포터가 보내지지 않는다. 내 현재 사정이 구구절절하게 쓰여 있는 메시지 칸에서 발송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영상 편지나 음성 편지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작동하는 게 하나도 없다.

이것까지 안 되면 어쩌자는 거야! 망했다!

내 머릿속에는 벌써 내 시체가 해골로 발견되어 뉴스에 나오는 상황까지 그려진다.


“하······. 하하······.”


허탈한 웃음만이 흘러나온다. 이거 어쩌냐. 진짜 이대로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하나? 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며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제에에에에엔자아아아앙하아아아아알! 왜! 왜! 왜! 안 나가지는 거냐고오오오오오오!!!”


난 미친놈마냥 소리치며 땅바닥을 굴러다녔다. 이미 패닉에 빠진 나한테 그깟 알량한 체면이나 자존심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난 온각 난리를 치면서 돌아다니며 이 망할 던전의 벽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부서져! 부서져! 부서져!”

“······아무리 내 의사 인격이었다지만, 저런 인간한테 잠시나마 희망을 느꼈다니. 자괴감이 드네······.”


내 발광하는 꼴을 보고 그녀가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았으나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하고. 이리 와봐.”

“으갸갸갸갹! 부서져라! 터져라! 박살나라!”

“······그만해.”

“젠장!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모쏠로 죽을 순 없단 말이야!!!”


내가 뭐라 하는지 나 자신조차 모르는 상태로 말 그대로 지랄발광을 떨었다. 그때, 그런 내 모습을 도저히 더는 못 참겠는지 갑자기 그녀가 짙은 한숨과 동시에 강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날 말렸다.


“······휴우. 적당히 해!”


[퍽]


“크악······. 아, 아퍼?!”


뭐, 뭐야? 왜 이렇게 아픈 거야? 그녀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땅콩 쥐어박은 감각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치 실제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이 감각은 현실 세계에서 느꼈던 거랑 차이가 하나도 없다. 개조 캡슐을 사용했을 때도 이 정도로 현실감 넘치지는 않았는데? 뭔 짓을 한 거지?


“정신이 들어? 이제 개 흉내는 그만하고 사람으로 돌아와. 창피하지도 않아?”


그녀의 말이 귀에 쏙 박힌다. 그녀가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정신을 차리게 한 건 분명했다. 아니라면, 벽을 이빨로 물어뜯고 있는 내 모습이 서서히 쪽팔리기 시작할 리가 없다.

난 간신히 이성을 회복하고 벽에 붙은 몸을 억지로 떼어냈다.


“에헴. 미안. 너무 무서워서. 순간 이성을 잃었어.”

“두 번 무서웠다가는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겠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본 가장 예쁜 여자애 앞에서 저따위 행동을 했으니. 당장 옥상에서 뛰어내리고픈 충동이 든다.

근데, 어떻게 얘는 왜 이렇게 태연한 거지?

······뭔가 억울한데. 나만 병신 같잖아.

아니, 근데 솔직히 내 쪽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이렇게 가상 세계에 갇히게 되었는데 제정신을 유지하면 그게 사람인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신병자지. 누구나 나처럼 공포에 질려서 패닉에 빠질 거다.

그래서 난 소심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넌 괜찮아? 안 무서워? 이렇게 갇혔는데? 현실 세계로 못 나갈 수도 있잖아.”


내 물음을 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난 괜한 질문을 했나 하고 바로 후회하게 되었다. 그녀의 그 아름다운 얼굴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살기로 가득 차 얼음보다 차갑고 비수보다 날카롭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온 세상을 저주하는 것만 같은 증오스러운 어투로 차갑게 내뱉었다.


“······나한텐 현실 세계가 더 끔찍해. 언젠간 그 세계로 강제로 돌아갈 때가 오는 게 무서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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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Chapter 6. 데이트(13) +3 20.06.19 29 3 11쪽
54 Chapter 6. 데이트(12) +2 20.06.18 26 2 11쪽
53 Chapter 6. 데이트(11) +2 20.06.17 30 2 8쪽
52 Chapter 6. 데이트(10) +2 20.06.16 26 2 9쪽
51 Chapter 6. 데이트(9) +2 20.06.15 33 3 9쪽
50 Chapter 6. 데이트(8) +2 20.06.13 31 2 9쪽
49 Chapter 6. 데이트(7) +2 20.06.12 29 1 10쪽
48 Chapter 6. 데이트(6) +2 20.06.11 42 2 12쪽
47 Chapter 6. 데이트(5) +3 20.06.10 33 3 14쪽
46 Chapter 6. 데이트(4) +1 20.06.09 32 3 11쪽
45 Chapter 6. 데이트(3) +1 20.06.08 28 2 8쪽
44 Chapter 6. 데이트(2) +3 20.06.05 36 3 8쪽
43 Chapter 6. 데이트 +2 20.06.04 42 3 12쪽
42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10) +3 20.06.03 31 3 8쪽
41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9) +3 20.06.02 61 4 8쪽
40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8) +4 20.06.01 33 4 9쪽
»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7) +9 20.05.31 38 6 12쪽
38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6) 20.05.31 38 1 13쪽
37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5) 20.05.30 36 1 13쪽
36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4) 20.05.30 49 1 14쪽
35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3) +2 20.05.29 33 2 12쪽
34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2) 20.05.29 39 2 15쪽
33 Chapter 5. 소년은 소녀를 만나다 +11 20.05.28 36 1 9쪽
32 Chapter 4. 보스 몬스터 공략(11) +1 20.05.28 62 1 14쪽
31 Chapter 4. 보스 몬스터 공략(10) 20.05.26 31 1 10쪽
30 Chapter 4. 보스 몬스터 공략(9) +2 20.05.26 36 2 11쪽
29 Chapter 4. 보스 몬스터 공략(8) +1 20.05.23 39 1 12쪽
28 Chapter 4. 보스 몬스터 공략(7) 20.05.22 34 1 9쪽
27 Chapter 4. 보스 몬스터 공략(6) +1 20.05.22 3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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