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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뿌링클

슬기로운 종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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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링틀
작품등록일 :
2023.06.20 16:12
최근연재일 :
2024.02.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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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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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만남 - 3

DUMMY

조금 전.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 루이와 재회했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사람과는 좀 달랐다.

단순히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라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교회를 떠날 때, 북쪽의 성전군에 합류하는 것 같았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나와 루이의 마지막 기억은 루이가 북쪽의 대장벽으로 향하는 성전군에 합류하는 것이 끝이었다.

상당히 위험한 여정이었기에 두 번 다시는 루이를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루이는 그런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사지 멀쩡하게 돌아왔다.


남이 버리거나 더는 못 입게 된 옷을 기부받아서 수녀님들이 기워준 옷이 아니라 남들은 비싸서 감히 엄두도 못 내는 비싼 드레스 차림으로 도시 고위층이 모이는 파티에 나타났다.


‘메리 부인의 시녀 겸 후계자라고 했지.’


메리 부인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도시 고위층의 파티에 들락거리는 것을 봤을 때, 꽤 높은 위치의 여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분노의 악마가 메리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교만의 악마는 대륙에 존재하는 메리라는 암컷만 해도 족히 수천만은 넘는데, 자신이 어찌 아느냐며 되묻습니다.]

[겸손의 천사가 당신의 귓가에 메리 부인에 대한 정보를 속삭여줍니다.]


메리 부인.

교단에서 활동하는 어떤 단체의 수장이라고 했다.

신앙심이 투철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아니, 이런 거 말고 좀 더 세세한 정보 없어요?’


[겸손의 천사가 잠시 고민합니다.]


그러고는 메리 부인의 검술 실력이 대륙 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갖췄다고 합니다.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검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루는 교단의 칼잡이 메리 부인이 여태껏 형인 줄 알았던 루이 누나를 시녀 겸 후계자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질투의 악마가 그 아이에게서 추잡한 신성력이 느껴진다며 당신께 고자질을 합니다.]


‘신성력? 그건 교회 사람들한테 다 있는 거잖아요. 지금 장난해요?’


[질투의 악마가 시무룩해합니다.]


지난 2년간 루이에게 뭔가 인생을 뒤바꿀만한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북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교만의 악마가 대장벽을 거의 함락시킬뻔했던 일화를 설명해줍니다.]

[겸손의 천사가 대장벽에서 벌어졌던 선 세력의 위대한 승리와 음욕의 악마 가슴팍에 새겨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터와 그 흉터의 주인이자 용맹한 여신의 딸을 노래합니다.]

[음욕의 악마가 이마를 찌푸립니다.]


‘음.’


천사와 악마의 말이 뒤엉켜서 잘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어느 정도 정리해보자면···.


‘루이가 북쪽에서 공을 세워서 메리 부인이라는 사람의 눈에 띄어서 후계자가 됐다는 건가?’


[겸손의 천사가 당신의 추리에 손뼉을 칩니다.]

[교만의 악마가 썩 나쁘지 않은 추리라면서 칭찬합니다.]


“그런데 왜 돌아온 거지?”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루이는 왜?

하필이면 지금?

도시로 돌아온 거란 말인가.


“흠.”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


도시에 우뚝 선 시청의 테라스.

보통 이런 곳은 파티의 열기에 취한 젊은 남녀가 밀회를 벌이는 곳이었지만, 이따금 도시 고위층이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자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랜만이에요 가필드 주교님.”

“저도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매일 악마들 머리통만 깨버리는 걸 제외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네요.”

“으음···. 대장벽의 상황이 그렇게나 안 좋습니까?”

“거기는 언제 뚫려도 이상하지 않죠~”


우리는 손에 든 샴페인 잔을 기울여 바닥에 샴페인을 뿌렸다.


“지금도 북쪽에서는 사람이 죽네 사네 하는 상황인데···. 후방에서는 다들 하하호호 즐겁기도 해라~”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이지요.”

“저마다의 사정이라···. 그렇죠.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고, 불행의 종류가 다 똑같다고 하던가요?”


루이는 빈 잔을 주교에게 건넸다.


“가필드 형제님.”

“예, 루이즈 자매님.”

“교황청의 고위 심문관들이 카에르아우곰의 대규모 이단 발생에 관심을 둔다고 하더라고요.”

“······!”


카에르아우곰의 주교 가필드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교황청의 고위 심문관은 제국 전역···. 아니, 대륙 전역에 존재하는 이단 심문소의 주인들이다.

그들의 업무는 이단과 악마, 그리고 불신자를 찾아내 이 땅에서 모조리 불살라 버리는 것이다.

단 하나의 이단을 죽이고, 대륙에 숨어든 악마를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마을 하나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불태우는 작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카에르아우곰에 관심을 둔다는 말은 곧···.


“이단 심문소가 카에르아우곰을 의심한다는 말이로군요···.”

“의심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워 보이더라고요.”

“으음···.”


가필드 주교는 머리털이 쭈뼛 섬과 동시에 술 시운이 싹 날아감을 느꼈다.

이단 심문소에서 이곳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카에르아우곰과 관련된 모든 자들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종교인들은 한층 더 깊이 있는 조사를 받을 테고 말이다.


“큰일이로군요.”

“큰일이지요.”


카에르아우곰의 주교 가필드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그런데 아니었다.

제아무리 이단 심문소라도 자신의 신실한 신앙심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레온, 그 아이만은 안된다.’


카에르아우곰이 전부 불에 타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레온하르트, 그 아이에게까지 화가 미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레온, 그 아이야말로 여신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한 줄기 빛이요. 구원이 아닌가!’


더군다나 레온은 이미 어렸을 적, 사제의 실수로 이단 심문소에 들어갔던 전적이 있다.

어떻게든 이단과 엮으려면 엮을 수 있는 존재란 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가필드 주교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정말 큰 일이로군요···.”


가필드 주교가 머리를 짚었다.

믿음에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될 일이고, 그의 신앙생활 동안 대가를 탐한 믿음으로 타락한 이를 수없이 봐왔다.

그렇기에 가필드 역시 믿음에는 대가가 따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이번 시련은 그가 견뎌내기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신앙의 수호자가 이단으로 몰려 교수대에 매달리는 것을 가만히 두고 봐야 하는 것인가? 살아있다면 수천, 수만···. 어쩌면 대륙 전체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를 영웅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가필드는 지난 60년을 돌아봤다.

이단 심문관에 의해 불태워진 마을 시체 더미에서 어머니의 희생으로 태어나 운 좋게 글을 배워서 교단에 입문했다.

지난 60년···. 절대 짧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그동안 가필드는 하늘에 맹세코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고, 이 대륙에서 부정한 자를 몰아내는데 가장 앞장섰다.


그렇기에 교황청에서도 그의 흔들림 없는 신앙과 믿음을 인정하여 제국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제국 동부 교구를 맡겼다.

지나간 세월에서 믿음이나 신앙을 의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 시련은 너무나 견디기 어렵나이다···.’


차라리 희망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걸 잃었을 때의 절망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그 희망의 불꽃이 꺼졌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깨달았다.


‘여신이시여···. 부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대륙의 사람들을 구원해주소서.’


가필드는 다시 기도를 올렸지만, 늘 그렇듯 여신과 천사들은 그에게 계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지난 60년간 무수히 많은 고통의 순간에도, 이단의 무리에게 교회가 위협받을 때도! 신앙과 믿음이 흔들리는 이 순간마저도 계시는 들리지 않았다.


“······.”

“주교님?”

“아, 음···. 미안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했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루이즈 양.”

“······그러시군요.”


루이즈는 주교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레온 말이에요.”

“레온? 그 아이가 왜요? 교황청에서 그 아이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나왔습니까?”


돌연 주교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뇨···. 그런 것은 아니고요. 지난번에 교황청으로 레온하르트의 기적을 기록한 보고서와 레온을 종자로 맞이할 기사를 구하신다고 들어서요.”

“후···. 그랬지요. 하지만 고위 심문관들이 관심을 보이는 도시 출신의 고아를 누가 종자로 삼으려 들겠습니까?”


기사들은 평소에 이단 심문소에 건수 잡힐만한 일을 많이 하는 족속들이다.

그렇기에 명예나 긍지를 잃는 것은 참아도, 이단 심문소와 엮이는 것은 죽어도 싫어하는 족속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레온을 종자로 받아들이진 않겠지요···. 후···.”


주교의 한숨이 밤공기를 타고,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적임자가 있는데 뭘 그리 고민하시나요?”

“적임자? 그게 누굽니까?”


루이즈는 당당히 자신을 가리켰다.


“교단의 챔피언인 마리 루이즈가 있잖아요.”

“······챔피언.”


교단의 챔피언.

대륙의 모든 사람을 대변하여 악마와 싸우는 교단의 대전사다.

이들은 가장 끔찍한 장소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와 맞서 싸우는 이들이다.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대신 심문관들의 입에서 다른 소리가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음.”


가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에르아우곰에 이단 혐의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고위 심문관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그것도 조만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레온을 빼돌린들···. 문명 비스름한 것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이단 심문소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교단 챔피언의 종자로 들어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악마와의 싸움에 임하거나···.


‘대장벽을 넘어 악마의 영역으로 도망가는 것뿐이지···.’


어느 쪽이건 쉽지 않은 길이다.


“레온 형제님을 살릴 방법은 그 방법뿐이군요.”

“심문관 녀석들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알아서 대장벽까지 오진 않겠죠.”

“······레온 형제를 잘 부탁합니다.”


가필드 주교가 손을 내밀었다.

주름지고 추레한 손이었다.


“레온은 제 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였어요.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루이즈는 방긋 웃으며 가필드의 손을 붙잡았다.


******


-쾅쾅쾅!


이른 아침.

굳이 따지자면 해가 이제 막 어스름히 뜨기 시작한 낮과 밤에 걸쳐있는 애매한 시간대.


“으음···. 누구야?”

[나태의 악마는 잠을 방해받아서 기분이 몹시 불쾌함을 알립니다.]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레온! 안에 있지? 안에 있는 거 아니까 열어!”

“루이?”


익숙한 목소리에 문을 여니,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황금빛 갑옷으로 중무장한 루이가 서 있었다.


“좋은 아침.”

“흐아암···. 아직 아침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긴 무슨 일이야?”

“우리 사이에 굳이 일이 있어야 찾아오나?”

“······이른 아침부터 갑옷 입고 찾아오는 사이가 어떤 사이지?”


루이는 활짝 웃었다.


“기사가 종자 사이지!”

“종자? 누가 종자인데?”

“너.”

“나?”

“응.”

“?”


[나태의 악마가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분노의 악마가 무슨 기사냐며 코웃음을 칩니다.]

[음욕의 악마가 말없이 누군가를 노려봅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아니, 그냥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루이는 내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으려는 듯이 커다란 가방을 건넸다.


“정확히 10분 뒤에 대장벽으로 떠나는 마차가 올 거거든? 그러니까 5분 안에 필요한 짐 다 챙겨.”

“대장벽? 거긴 왜?”

“왜긴 왜야. 너도 이제부터 교단 챔피언의 종자로 거기서 복무해야지.”

“······.”


루이는 다시금 방긋 웃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빨리 챙겨.”

“?”

“아! 그리고 대장벽에는 생필품이나 옷가지가 부족하니까 그런 종류부터 챙겨!”

“······?”


그리곤 다시 가버렸다.

루이의 황금 갑옷은 확실히 고급품이긴 한 모양인지 걸을 때도 소리가 나질 않···.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죽은 줄 알았던 루이가 돌아와서는 다음 날 아침···. 아니 새벽 댓바람부터 날 데리고 대장벽으로 떠나겠단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피어올랐지만, 천사님이 주신 냉철한 이성은 자연스레 내 몸을 움직여 짐을 챙기는 걸 도왔다.


[분노의 악마가 당신과 다시 만날 생각에 다심이 두근거린다고 말합니다.]

[교만의 악마가 조만간 대장벽으로 마중 나가겠다고 알립니다.]

[탐욕의 악마도···.]


내가 대장벽으로 간다는 소식에 악마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하지만 지금 여러 가지 사건이 잇따라 닥친 나에게 있어서는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좀 다 닥쳐봐요.’

[악마들이 입을 다뭅니다.]


이제 좀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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