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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뿌링클

슬기로운 종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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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링틀
작품등록일 :
2023.06.20 16:12
최근연재일 :
2024.02.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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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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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만남 - 1

DUMMY

한참이 지나고 클레어가 문을 열어줬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바깥에 있는 이단의 무리와 담벼락에 기대앉아서 하루 종일 기다릴 뻔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성전군이 교회를 뛰쳐나와서 이단의 무리를 체포하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올리버 경이 교단 기사를 관두셨다고요?”


나는 따로 주교와 대면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단과 접촉했으니 혹시 모를 타락의 위험을 조사코자 위함이지만···. 실제로는 보상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습니다. 레온하르트 형제.”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기는요? 이단을 제압하는 큰 공을 세우셨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실 겁니다.”

“음···.”


교회의 보상이라니 조금 기대가 됐다.

황제나 귀족들은 고작해야 자기 영지, 나라 전체에서 세금을 뜯어내지만, 교회는 대륙 전역에서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돈을 뜯어낸다.

그러니 기왕 돈을 받을 거라면 교회가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까 잡은 놈이 얼마나 센 놈이라고 했죠?’


[분노의 악마는 조금 전 그런 녀석은 자신이 데리는 전사 중에서도 일개 병사에 불과한 녀석이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교만의 악마가 조금 전의 그 녀석은 이 일대에서 분노의 악마에게 가장 많은 피를 바치던 전사였다고 귀에 속삭입니다.]

‘음···!’


이 주변에서 제법 악명이 높은 자이니, 그놈 목에 걸려있는 현상금도 적잖을 것이 분명했다.

슬쩍 주교실을 훑어보니, 금빛으로 반짝이는 금속 펜이나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금 촛대,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그림과 장식품이 교단의 부를 추측할 수 있게 해줬다.


‘저건 얼마나 하려나···.’


[탐욕의 악마는 저런 예술품은 팔아치우기도 복잡하고, 제값을 알아보는 구매자도 구하기 어려우니, 차라리 금 촛대나 제기용으로 쓰이는 식기를 노리라고 조언합니다.]

‘오···. 그렇군요.’

[절제의 천사가 한숨을 쉬며 헌신 자체가 곧 보상이니 탐욕에 빠지지 말라 조언합니다.]

‘?’


헌신이 곧 보상이라니, 이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겸손의 천사가 현재 악마에게 위협받는 대륙의 현황을 설명하며 이런 위기의 시대에 헌신이야말로 더 높은 자리로 오를 기회임을 알립니다.]

‘오···.’


이렇게 설명해주니 좀 이해가 됐다.

헌신이 곧 보상이라···. 아주 좋은 말이었다.


[나태의 악마가 자기 뒤통수를 때린 게 누군지 모르냐며 당신에게 묻습니다.]


아무래도 나태의 악마는 잘 자고 있다가 대뜸 뒤통수를 맞은 게 제법 억울했던 모양이다.

나는 절대로 겸손의 천사가 탐욕의 악마 뒤통수를 때리려다가 헛손질한 거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나태의 악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주교의 앞이라고 조금 경직됐던 몸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악마와의 거래.

언제나 짜릿했다.


[겸손의 천사가 당신의 가벼운 입을 나무랍니다.]

[친절의 천사가 정직하지 못한 겸손의 천사를 나무랍니다.]


이후에도 천사들이 뭐라 떠들어댔지만, 그쪽은 아예 관심을 끊었다.

어차피 저분들은 온종일 붙어 다니며 날 지켜보는 악마들과는 달리 드문드문 찾아와서는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족속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인내의 천사가 대륙 각지에서 준동하는 악마와 그 하수인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런 것이라 항변합니다.]

[분노의 악마가 천사들을 비웃으며 하수인을 더 내려보냅니다.]

[절제의 천사가 분노의 악마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뭐···.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바쁜 모양이었다.


“내 젊은 형제께 카에르아우곰의 교회와 시민들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군요.”


주교는 그리 말하며 내게 머리를 숙였다.


“아니, 뭐···.”


평소 종교 행사 때 먼발치서 바라보는 게 아니면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사람이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니 떨떠름했다.


[겸손의 천사가 신을 향한 이 자의 헌신은 당신만큼이나 대단하다고 추켜세웁니다.]

‘······?’


그것참 이상한 말이다.

내 앞의 주교가 나와 같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주교도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겸손의 천사가 이마를 짚습니다.]


천사들도 진실을 깨닫고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레온하르트라고 했던가.”

“예.”

“신을 향한 자네의 신실함이 오늘의 기적을 만들어냈으니···. 제국 동부 교구의 주교로서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바.”


주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이 요동쳤다.


“교단을 대표하여 자네에게 무언가 보상을 하고 싶은데···. 흠···.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군.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가?”

[악마들이 단체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생각을 늘어놓으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정리 불가.]

‘음.’


주교가 내 보상 문제로 고민이 많아 보였다.

조금만 챙겨 주자기엔 내가 너무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했고, 그렇다고 마구 퍼주기엔 교단의 고아라는 내 신분이 발목을 붙잡는 모양이었다.


[교만의 악마가 당신의 통찰력은 전부 자신의 축복 덕분이라고 자랑합니다.]

[분노의 악마가 개소리는 개집에서 하라고 말합니다.]

[겸손의 천사가 신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뭐, 천사나 악마 입장에서는 주교나 일개 고아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삭막한 세상살이에서 신분의 벽은 문명과 야만을 갈라놓은 북부의 대장벽만큼이나 높고 두터웠다.

귀족과 평민이 자유롭게 놀고 즐기는 것은 자유지만, 다음에 귀족이 기분이 나빠졌다고 평민을 끌고 가서 흠씬 두들겨 패는 것도 자유였다.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것이며 이건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능력이 뛰어나도 결국 신분이 천하면 그냥 천한 놈인 거다.

지금 내가 그렇다.


‘교단의 일개 고아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뭐가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요구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속이 보이는 요구였다.


[탐욕의 악마가 돈은 언제나 옳다고 말합니다.]

[분노의 악마가 돈은 죽이고 뺏으면 그만이라고 알립니다.]

[음욕의 악마가 세상에는 돈보다 더 즐거운 것이 많다고 귓가에 속삭입니다.]

[절제의 천사가 탐욕은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조언합니다.]


천사의 말이 옳았다.

어찌 됐든 내가 한 행동은 악마의 권능을 부여받은 악마의 하수인을 아무런 피해 없이 제압하는 것으로 모자라 타락한 영혼을 정화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이단의 무리에게 포위당하여 위기에 빠진 교회를 구원했다.

과장 좀 보태자면, 제국 수도의 교황청에서 내 이야기를 기적이라 선포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수준이란 말이다.


[분노의 악마가 악마의 힘으로 이루어진 기적이라며 이를 조롱합니다.]

[겸손의 천사가 덕분에 데모니아 대륙의 신앙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며 감사를 표합니다.]

[분노의 악마가 분노합니다.]


이렇듯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돈을 요구하는 것도 좀 모양이 안 좋았다.


[절제의 천사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거기에 내가 한 게 얼마인데, 고작 이런 곳에서 돈 한번 받고 끝내겠는가?

기왕 보상받을 것이라면 카에르아우곰의 주교의 ‘개인적인 보상’과 제국 수도의 교황청으로부터 교단의 ‘공적인 보상’을 받으면 될 텐데 말이다.


[탐욕의 악마가 이마를 치며 감탄합니다.]

[나태의 악마가 왜 자기 이마를 때리냐며 짜증을 냅니다.]

[겸손의 천사가 고개를 젓습니다.]


“흠흠···. 저는 그저 제국의 일원이자 여신의 자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음!”


여기서 말하는 여신의 자손이라는 말은 교단에서 자라는 고아들에게 사제들이 흔히 하는 말이었다.

밖에 나가서 부모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죽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였는데, 반대로 이 말을 한다는 것부터가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셈이었다.


“여신의 자식이라···.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낯설지 않고 가족처럼 익숙하다고 여겼는데,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이야!”


주교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교단의 아이로서 교회의 위기가 닥쳐오니, 스스로 일어나 우리를 위기에서 구하였구나.”

“어렸을 적부터 배운 것이 그거뿐이라서···.”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제님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말이 교단이나 교단 사람이 위험에 빠졌을 때, 가능하면 그들을 도우라는 말이었다.

물론, 난 그럴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분노의 악마가 손뼉을 칩니다.]

[겸손의 천사가 한숨을 쉽니다.]

‘뭔가···. 보상을 많이 받는 방법 같은 거 없을까요. 들?’


남들에게 뭔가를 받는 게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또 이렇게나 높으신 분과 대화하는 것도 처음이라 굉장히 어색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눈탱이 맞지않고, 내 몫을 챙기려니 머리가 아팠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교만의 악마가 날 도왔다.


[교만의 악마가 한숨을 쉬며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읊으라고 말합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시네.’


나는 교만의 악마가 말해주는 말을 그대로 읊었다.


“저는···.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음!!!”

“그리고 제가 이단을 물리친 것 역시, 어디까지나 교단을 위해, 그리고 올리버 경의 종자가 되기 위해 그분의 시련을 통과하려는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상을 바라겠습니까?”

“으음!!! 음!!!”


내가 들어도 정말 입에 발린 소리였다.

악마의 풀이를 따르자면, 첫 말은 어떻게 내가 내 입으로 뭘 달라고 말하겠냐며 겸양을 떤 것이고, 그 뒤의 말은 내가 업적을 언급하며 내 입 아프게 하지 말고, 알아서 잘 챙겨달라는 무언의 사인인 모양이다.


[교만의 악마가 이만하면 더 배울 것이 없으니, 이만 하산해도 좋다고 알립니다.]

[겸손의 천사가 자기 이마를 칩니다.]

[나태의 악마가 베개를 가져옵니다.]


주교도 내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정말···. 정말 훌륭하구나.”

“별말씀을요.”

“좋아. 그렇다면 네 의견을 따라서 보상은 내가 따로 챙겨주는 것으로 하고, 교황 성하께도 이 일을 보고 올리지.”


어차피 주교라고 해 봤자 이 도시에서나 끗발을 먹어주지, 다른 곳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아저씨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죠?’


[악마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천사들은 중요한 것은 신앙이지 현세의 계급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다들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젠 큰 걱정 없이 두 다리 쭉 펴고, 보상만 기다리면 그만이다.


‘인생 참 쉽네~’


[교만의 악마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겸손의 천사가 연신 한숨을 쉽니다.]


‘그래도 주교쯤 되면 뒷주머니도 제법 찼을 테니까···. 돈 좀 챙겨주겠지?’


******


늦은 밤.

주교의 개인실은 여전히 빛이 훤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어째선지 주교의 방은 여전히 촛불로 훤했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스스로 뽐내기를 즐기거늘···. 허허···.’


주교는 조금 전에 만난 레온을 떠올렸다.

오늘로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성인이 됐다지만, 아직 얼굴에는 앳된 소년이기만 했던 평범한 도시의 아이였다.

그 아이는 거친 도시에서 악의 상징이라 불리는 붉은 머리를 가진 채 살아왔음에도 구김이 없었다.


“음.”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온 교회의 여러 자료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어렸을 적에 천사의 말이 들린다며 사제에게 말했다가 이단 심문소에 끌려간 전적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 험악한 곳에 끌려갔음에도 아직 내면의 순수함을 지키고 있을 줄이야···.’


이단 심문소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이단을 심문하기 위해 교단이 뽑아 든 날카로운 검이다.

이단 심문관은 평생 이단을 사냥하고 세상을 지키겠노라. 다짐한 이들이었고, 이단을 향한 그들의 증오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사지 멀쩡한 청년도 이단 심문소에 끌려갔다가 병신이 돼서 돌아오기 일쑤다.


그만큼 위험하고 험한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이 아이는 교회 사제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단 심문소에 끌려갔음에도 이단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단 심문관들에게서 자신의 순수함을 증명해냈고, 자신에게 내려진 이단 혐의를 벗고 도시로 돌아왔다.

약간의 의심만 들어도 온갖 끔찍한 고문과 처형으로 일을 처리하는 이단 심문소에서 이제 겨우 말문이 트인 아이가 자신의 순수성을 증명한 것이다.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이게 전부가 아니지.’


운이든 실력이든 이단 심문소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동안 걸어온 자신의 신앙생활을 부정하거나 혐오하기 마련이었다.

이단 심문소에서 그렇게나 끔찍한 일을 당하고 나면, 보통은 종교에 대한 회의감 정도는 느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레온이라는 아이는 이단 심문소에서 나온 뒤로도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사제들과 함께 봉사도 나가며 신실한 신앙심을 증명해냈다.


거기에 장성해서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남의 것을 빼앗아 간 도적 떼를 홀로 소탕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에게 뭘 가르치거나 시킨 것이 아님에도 이 아이는 스스로 원하여 이러한 일을 해냈다.


‘이런 이야기는 고대 신화나 교단의 여러 성인의 일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건만···!’


반대로 말하자면, 고대의 신화나 교단에 기록된 여러 성자, 성인의 이야기로 기록될 인물이 지금 주교의 곁에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분노의 화신까지···.’


분노의 화신이 뭔가?

지옥의 대악마이자 심연의 대군주인 분노의 악마가 아끼는 하수인에게 권능을 하사하여 만들어낸 괴물이다.

분노의 화신은 단순히 포효하는 것만으로 주변인들에게 끝없는 분노를 일으키며 지옥 대악마의 총애를 받는 몸답게 어마어마한 강함을 자랑하여 단신으로 도시 하나를 파멸로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존재다.


그런데 그 분노의 화신이.

고작 열여섯 살 먹은 소년에게 패배했다.

아니, 그냥 패배한 것도 아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자면, 레온이라는 소년은 분노의 화신을 제압하면서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분노라는 감정 외엔 모든 것을 잊은 분노의 화신에게 고통을 일깨워줬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타락한 자를 제압하고는 그의 부정한 기운을 모조리 쫓아내어 골수까지 침투한 타락의 정수를 다시 그 주인에게 돌려주기까지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다.

교단의 방패이자 인간을 초월한 불멸자마저 악마의 하수인을 처단할 뿐이지, 그들의 타락을 정화하지는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암울한 어둠 속에 사로잡힌 시대에 한줄기 구원의 빛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주교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아···. 신이시여···.’


사실 주교는 레온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를 의심했다.

레온이라는 소년의 인생이 흔히 볼 수 있는 깊은 절망에 빠진 제국 하층민의 그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일상이 지옥이기에 이단 신앙에 빠지기도 쉬웠다.


그렇기에 주교는 최후의 최후까지 소년을 의심하며 그를 시험했다.


‘레온···. 그 아이는···.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던 내 제안을 거부했지.’


주교가 뭔가?

한 교구를 다스리는 존재다.

그러니까 이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종교인들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카에르아우곰의 주교는 제국 동부 교구의 주교로서 가장 험난한 이단의 땅이면서 동시의 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교구인 동부 교구를 다스리는 주교다.


제국 수도의 추기경들마저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위치란 말이다.

막말로 그 아이가 원한다면, 어디 교회의 땅을 떼어주고 교회에 소속된 기사로서 귀족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말이다.


‘레온, 그 아이도 교회에서 자랐으니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겠지···.’


그런데도 레온은 그 모든 부귀영화를 거부했다.

오히려 당연하게 보상을 바라리라 여겼던 주교가 부끄러워질 정도의 겸손함을 보였다.


‘그 아이···. 종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


오히려 레온의 꿈은 무척 소박했다.


“아이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 어른의 일이지.”


레온은 교단의 검으로서 여신의 이름으로 악을 무찌르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싶어 했다.

당사자가 들었다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오열했겠지만, 불행히도 당사자인 레온은 이러한 뒷사정을 알지 못했다.


“내 역할은 이 미약한 불꽃이 꺼지지 않고, 더욱 커질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겠지···.”


그런 아이에게 올리버 같은 쓰레기를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왕이면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유능한 기사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어.”


마침 주교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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