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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뿌링클

슬기로운 종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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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링틀
작품등록일 :
2023.06.20 16:12
최근연재일 :
2024.02.10 20:19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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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7
추천수 :
223
글자수 :
133,069

작성
24.01.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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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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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고아 - 2

DUMMY

사이한 기운이 흘러나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기운이었다.


‘이건···?’


그리고 골목에서 그림자가 비쳤다.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의 것에 가까운 음산한 그림자가 비쳤다.


“저, 저건···!”

“!!!”


골목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두 발이 아니라 네발로 기어 다니는···.


“꿀꿀.”

“야옹.”

“왈왈!”

“꼮꼮꼮···.”


다섯 마리 동물이었다.


“······?”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보이는 당나귀의 등 위에 돼지와 개, 고양이, 그리고 수탉이 순서대로 올라가 있었다.


“와! 서커스단인가 봐 레온!”

“······?”


클레어는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동물이라며 이를 신기하게 여겼지만···. 내게는 어딘가 익숙한 동물들이었다.


[나태의 악마가 한숨을 내쉽니다.]

[식탐의 악마가 주린 배를 쓰다듬습니다.]

[분노의 악마가 자신의 늠름한 자태를 당신에게 자랑합니다.]

[질투의 악마가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탄 닭을 고깝게 쳐다봅니다.]

[교만의 악마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포효합니다.]


“꼬끼오-!”

“와! 신기해! 어쩜 이렇게 훈련이 잘됐을까?”

“······.”


어딘가 익숙하다 싶더니, 심연에 있어야 할 대악마가 대륙에 강림한 모양이었다.


[음욕의 악마가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보며 배꼽을 잡습니다.]


‘다른 악마들은 대륙에 강림할 때마다 세상이 멸망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온 대륙이 뒤집어지는데···. 명색이 악마들의 군주라는 사람들이···. 왜···?’


[분노의 악마가 고개를 떨굽니다.]

[질투의 악마가 얼굴을 붉힙니다.]

[교만의 악마가 멋쩍어합니다.]


다들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태의 악마가 다들 천사의 방해를 받아서 꼴이 말이 아니라고 알리며 다른 형제자매 중 하나는 천사들을 따돌리는 미끼로 던져줬다고 말합니다.]

‘아···.’


당나귀의 모습을 한 나태의 악마가 자신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줬다.

원래 대악마가 지상에 강림하기 위해서는 좌표를 딱 고정해줄 우상이나 제물이 필요했는데, 보통 그런 건 추종자들이 준비해줘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 아니, 악마들은 다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단 지상에서 적당한 제물을 찾아 강림한 모양이었다.


“······.”


그렇지 않고서야 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태의 악마가 당신이 자신과 형제자매들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여 시험 삼아 내려온 것이라고 말하며 중간에 천사들의 강한 반발 때문에 몇몇 형제는 뒤에 남아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외양간에 드러누워 잠이나 자고 있을 것 같은 당나귀가 그렇게 말하니 굉장히 언밸런스했다.


“레온! 이 고양이 귀엽지 않아?”

“데샤아아악!!!”


평소 고양이를 좋아했던 클레어가 질투의 악마가 빙의한 건지, 아니면 본인이 변신한 건지 모를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자 고양이가 맹수처럼 하악질을 하며 위협적으로 앞발을 날렸다.


“그래~ 언니도 너랑 노는 게 좋아~”

“······.”


하지만 지옥의 대악마가 날리는 펀치는 일개 수습 수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결국 아직 신성력의 ㅅ자도 이해하지 못한 수습 수녀에게 제압당한 지옥의 대악마는 얌전히 클레어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음욕의 악마가 질투의 악마를 비웃습니다.]

[질투의 악마가 고개를 돌립니다.]

[분노의 악마가 질투의 악마를 구하기 위해 나섭니다.]


“크르르···. 컹컹! 왈왈!”

“꺄악!”


이번엔 돼지의 위에 올라탔던 개가 나서서 클레어의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면 안 되지.”

“크르르···. 왈! 왈왈! 왈왈!”


하지만 내 손에 붙들렸다.

내 손에 붙들린 분노의 악···. 아니, 분노한 강아지가 맹렬히 짖으며 난동을 부렸으나 그래봤자 강아지는 강아지일 뿐이었다.


“개가···. 좀 사납네.”

“그러게.”

“왈왈! 왈왈왈!”


분노의 악마는 맹렬하게 짖으며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겠네.”


자신에게 맹렬히 짖어대는 개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클레어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고양이를 내려놓고 개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뭐 하려고?”

“레온,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마침 수녀원장님한테 새로 배운 게 하나 있거든.”

“배운 거라니?”

“히히.”


클레어는 짓궂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기도문을 외웠다.


[분노의 악마가 경악합니다.]

[나태의 악마가 흥미진진하게 지켜봅니다.]

[식탐의 악마가 식욕이 떨어집니다.]


클레어가 단순히 기도문을 외울 뿐인데, 그녀의 손에서 미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빛을 쐰 멍멍이는···.


“낑낑···. 낑낑···. 왈왈! 왈! 끼이이잉···.”

[분노의 악마가 당장 저 창부의 입을 틀어막아 달라고 고함칩니다.]


온몸을 비틀면서 도망치려했다.

하지만 난 그럴수록 개를 더욱 꽉 붙들었다.

분노의 악마에게 원한이 있다거나 악마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과연 악마에게 신성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될까?


“끼에에에에엑!!!”


결국 개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기괴한 비명과 함께 몸이 축 늘어졌다.

오늘의 실험 결과.

지옥의 대악마에게도 신성 마법은 통한다.


[음욕의 악마가 일개 수습 수녀에게 심연으로 사출 당한 분노의 악마를 보며 폭소를 터뜨립니다.]

[분노의 악마가 끝없는 분노를 일으키며 음욕의 악마에게 덤벼듭니다.]

[음욕의 악마는 분노의 악마에게 그래서 무얼 할 수 있느냐며 조롱합니다.]


“아! 사라졌다.”

“······.”


지옥 군주의 짧은 외출은 세상을 수호하는 불멸자나 드래곤, 하다못해 오랜 세월 악에 대항하고자 스스로를 갈고닦은 고매한 엘프나 드워프가 아니라 한낱 인간.

그것도 엄청난 실력자가 아니라···. 이제 막 교단에 발을 들여놓은 수습 수녀에게 퇴치되었다.

누가 들으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보겠지만, 조금 전에 봤다시피 클레어는 그냥 개가 아픈 것 같아서 개를 치료하려 했을 뿐이다.


“어? 주, 죽은거야?”

“그런 것 같네.”

“아... 불쌍해라...”

“······원래 죽을 놈이어서 그런거야.”


클레어는 죽은 강아지의 명복을 빌어줬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곳에서 태어나렴.”


[분노의 악마가 크게 분노합니다.]


클레어는 그저 자신의 치료가 실패하여 죽은 강아지를 애도하는 것뿐이었지만, 분노의 악마 입장에서는 자신을 지옥으로 보내놓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교만의 악마가 콧방귀를 뀝니다.]


교만의 악마가 의태, 혹은 변신한 수탉이 코웃음을 치며 클레어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높이 들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날개를 활짝 펼쳤다.


[교만의 악마가 오늘에야말로 저 아이를 죽여 당신의 번뇌와 고민을 해결해주겠노라 선언합니다.]


“······.”

“와~ 레온, 저거 보여? 닭이 나한테 인사하네? 안녕~ 넌 이름이 뭐니?”

“꼮꼮꼮···. 꼬꼬댁!!”


-푸드덕.


수탉은 있는 힘껏 날아올라서 클레어의 목을 노리며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슬프게도 닭은 하늘 높이 뛰어오를 수는 있어도 날 수는 없는 동물이었다.


“꼬꼮?”


호기롭게 날아온 수탉은 클레오의 목은커녕 가슴높이도 올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추락에 대응하지 않은 건지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돌멩이에 머리를 부딪혔다.


“꼬꼮···. 꼭···.”


[음욕의 악마가 웃다가 배가 찢어집니다.]


분명 음욕의 악마는 지옥에 있을 텐데 내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태의 악마가 형제들의 추태에 창피해합니다.]

[식욕의 악마는 당신에게 먹을 것이 없냐며 묻습니다.]

[질투의 악마가 벌써 지옥의 대군주 둘을 보내버린 수습 수녀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벌벌 떱니다.]


“앗···. 닭이 죽었어···.”

“······.”


재가 되어 사라진 분노의 악마와는 다르게, 교만의 악마는 대륙에 있는 닭의 몸을 빌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고기 맛을 좀 볼 것 같았다.


‘교만의 악마···. 평소에 내려주시던 축복보다 이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네···.’


[교만의 악마가 고개를 돌립니다.]

[분노의 악마가 그녀를 비웃습니다.]

[음욕의 악마도 함께합니다.]


지옥의 다섯 대악마 중 이제 셋만 남았다.

둘 다 클레어를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당한 만큼, 나머지 인원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나태의 악마가 지금은 평소처럼 몸을 쓸 때가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할 때임을 알립니다.]

[질투의 악마가 이에 동의합니다.]

[식탐의 악마는 배가 고픕니다.]


결국 셋은 머리를 한데 모으고 클레어를 죽일 방법을 고민했다.


‘이걸 죽여 살려···?’


내 앞에서 대놓고 내 친구를 죽이겠다며 고민 중인 악마들을 보고 있으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저들이 본체로 직접 강림했다면, 나도 긴장하며 어떻게든 그녀를 지키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 다들 나사가 많이 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대륙에 강림해서는 대악마의 체면을 구기고 있으니, 솔직히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나태의 악마가 힘을 모으자고 합니다.]

[질투의 악마가 동의합니다.]

[식탐의 악마가 계승자의 얼굴은 충분히 봤으니 이만 돌아가자고 권합니다.]


결국 세 악마가 힘을 합쳤다.

그들은 한데 모여서는 자신들의 권능을 충분히 발휘했다.


[나태의 악마가 권능을 개방합니다.]

[질투의 악마가 권능을 개방합니다.]

[식탐의 악마가 권능을 개방합니다.]


지옥의 대악마 셋이 힘을 한데로 모으니 주변의 땅이 진동했다.

그리고 허공이 점점 깨져나가며 안에서 피처럼 붉은 문이 튀어나왔다.

척 보기에도 불길해 보이는 이 문이 나타나자 고양이가 공중제비를 돌며 기뻐했다.


[질투의 악마가 크게 기뻐합니다.]


“갑자기 문이 나왔는데? 마술 같은 건가?”

“······.”


그리고 당나귀가 입으로 손잡이를 물고 지옥의 문을 열어젖혔다.


[나태의 악마가 지옥의 문을 열어젖혀 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려 합니다.]

[식탐의 악마는 부하들에게 건너올 때 먹을 것 좀 챙겨오라고 연락합니다.]

[분노의 악마가 무기를 꺼내 듭니다.]

[교만의 악마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사악한 주문을 읊습니다.]

[음욕의 악마가 오랜만에 몸단장을 시작합니다.]


누가 지옥의 악마들 아니랄까 봐 다들 대륙에 강림할 준비를 하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리며 세상에 어둠이 찾아오···.


“······.”


-쾅.


나는 당나귀를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그러자 당나귀가 날 올려다봤다.


[나태의 악마가 의문을 표합니다.]


고양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물어뜯고 난리였다.


[질투의 악마가 화를 냅니다.]


다만, 돼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옆에 있던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식탐의 악마가 배를 채웁니다.]


그렇게 지옥의 대악마들이 꾸민 사악한 대륙침공 계획은 두 고아에게 저지되었다.

대악마 둘은 이제 막 교단에 발을 들여놓은 수습 수녀의 손에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고, 나머지 셋은 내게 계획을 방해받았다.


“······다들 그만하시고 돌아들 가셔요.”

“샤아아아악!!!”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며 있는 힘껏 펀치를 날렸지만, 간지러울 뿐이었다.


“자자, 이제 진정들 하시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알겠죠?”


나는 그들을 공손히 배웅했다.

그러자 한참 화를 내던 고양이도, 그냥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당나귀도, 그냥 쓰레기통이나 뒤지면서 배를 채우던 돼지도 귀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갔다.


“아, 돌아가네.”

“서커스 단장이 찾는 모양이지.”

“서커스 재밌겠다. 나중에 같이 갈래 레온?”

“······별로 재미없을걸.”


나는 멀어지는 동물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봤다.

다들 내 귓가에는 무슨 날 이 세상의 영웅이나 부자,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온갖 달콤한 말을 속삭였는데, 인제 보니 이건 뭐···.


‘저놈들만 믿으면 안 되겠는데.’


솔직히 그동안 천사와 악마의 축복이면 뭐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고아에 뭐 기술하나 배운 게 없어도 안심하며 되는대로 막살아온 감이 없잖았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악마들의 추태를 보니, 인생의 큰 위기감이 느껴졌다.


‘열여섯에 백수···. 글도 모르고,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니까···.’


그야말로 취업시장의 맨 밑바닥 중 밑바닥이다.

진짜 지옥보다 더 무섭다는 현실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교만의 악마가 고개를 떨굽니다.]


언제까지고 천사나 악마들 축복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란걸 깨달았다.


“클레어.”

“응?”

“지난번에 종자 구하신다던 기사님···. 아직도 종자 구하시지?”

“응!”


청년실업이 문제시되는 요즘.

삭막한 세상에서 고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난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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