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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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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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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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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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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곤드 대륙 #9

DUMMY

대지모신이 떠나간 뒤 어둡고 음침한 창조신의 거처는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천사들과 아주 편안하게 잠이 든 창조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세상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기구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테이블 위를 열심히 닦고 있는 천사들은 보람찬 땀을 흘리며 촉수로 해파리 같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창조신은 이들을 만들어낼 때 불필요한 감정을 전부 제거하고 오로지 창조신의 명을 듣는 것에서만 보람을 느끼도록 설계했기에 이들은 사실상 하나의 생명체라기 보다는 생체로봇에 가까웠다.



삑! 삑! 삑! 삑!



그런 천사들조차 종종 곤란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오는데 아까 전 대지모신의 방문이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창조신은 자신을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고 보통 상황이었다면 천사들은 창조신의 단잠을 방해하는 존재를 철저하게 배제했겠지만 기존에 설정해놓은 우선순위가 굉장히 높은 명령들과 상충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들은 3가지 패턴을 보이게 된다.


첫째는 지금까지 들어온 창조신의 명령들과 기존에 창조신이 보였던 반응을 취합해서 어떤 행동이 가장 창조주를 만족시킬지 분석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지금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창조신의 책상 위에 놓여진 메인 시스템 컨트롤러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확인하였다.

창조신이 직접 현장에 행차하지 않고 방에서 일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이 장비는 창조신 말고 그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천사들은 감히 알람을 꺼서 창조주의 편안한 숙면을 보장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 알람음은 게임판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를 알려주는 패턴이었기에 창조신이 무조건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현 상황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훨씬 넘어서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천사들은 2번째 패턴으로 들어갔다.

창조신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는 것이었다.

현재 시끄러운 알람음이 들리는 방에 모여있는 천사들은 소리 없이 전기 신호로 의견을 빠르게 주고 받았고 순식간에 4가지 경우를 예상하였다.


첫째는 분노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인해 팔다리가 박살나는 중상을 입은 창조신이 아픈 몸을 가지고 지금까지 야근을 하다가 간신히 잠들었는데 아내인 대지모신의 방해로 한 번 잠에서 깨어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번 더 단잠에서 깨어난다면 그는 분노할 가능성이 높았다.

은근히 막나가는 성격인 창조신이 분노를 먼저 터트리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방에 있는 물건들과 천사들 본인들을 보호할 상당히 수준 높은 대비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둘째는 짜증이었다.

첫번째 패턴과 마찬가지만 창조신은 어쩌면 아내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대부분의 신들을 막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내인 대지모신만큼은 예외였기에 창조신은 짜증을 부리면서도 일단 화를 터트리기보다는 상황을 먼저 파악하려 할 수도 있었다.


셋째는 체념이었다.

낮은 확률이지만 창조신은 상황 파악을 하거나 무턱대고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방 안의 모든 소리를 없애버리고 다시 숙면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마지막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이 짧은 시간동안의 수면만으로 창조신의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어서 얌전히 일어나 다시 업무를 볼 가능성이었다.

방에서 일하던 천사들조차도 이것만큼은 하늘을 날던 드래곤이 갑자기 유체이탈이 되어서 대륙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날아가는 동안 아무도 드래곤을 건드리지 않아서 시골 집에서 자고 있던 필멸자에게 처박혀 둘 다 죽을 확률만큼이나 낮은 가능성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람음이 계속 지속되자 창조신의 눈썹이 꿈틀댔고 그 작은 움직임은 이내 얼굴의 찌푸림으로 발전하였으며 마침내 이마의 혈관이 부각되는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천사들은 창조신의 분노를 예상하고 미리 그를 달랠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아내의 방해도 없어졌겠다 느긋하게 꿀잠을 자던 창조신은 결국 삑삑대는 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났다.



"후일라 욥 뜨바유 맛! 얼마나 용감한 용사이기에 감히 이 창조신의 지엄한 분노를 보고 싶어 하느냐!"


삑! 삑! 삑! 삑!



창조신은 분노를 터트리며 어두운 형체를 손에 모아서 던지려고 했으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자신의 물건인 것을 보고 잠깐동안 고민하였다.

아마도 메인 시스템 컨트롤러를 박살내서 잠잘 시간을 확보하는 것과 지금 당장 일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뒀을 때 올 후폭풍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결국 이성과 분노 사이에서 이성이 승리했는지 창조신은 입속으로 온갖 욕을 중얼거리면서 침대에서 흐느적거리며 기어나와 책상 앞의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에 앉았고 천사들은 즉시 창조신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의자를 대령하였다.

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시스템에 기록된 로그를 확인하였고 화면 구석에 떠 있는 특이사항이 발생한 지점의 확대화면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보인 것은 곤드 대륙의 던전 중 하나가 된 마추픽에서 무차별적인 파괴행위를 하고 있는 엘프들과 그 두목이었다.



"..."



그들은 던전의 회복 능력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키기 위해 끝없이 암석을 녹여서 지하로 파고드는 산성용액을 뿌려대고, 마력을 양분 삼아 계속 뻗어나가는 마력수를 소환해 던전의 암반을 깨부수고 있었다.

마력수와 산성용액을 주입하는 자리가 던전의 복구능력으로 메워지려고 하면 무기를 든 엘프 팔라딘들이 암반을 박살내서 계속 자리를 확보하였고 그 결과 복구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던전 핵이 던전 내부에 풀어놓은 몬스터들을 다시 흡수해서 에너지로 변환해 복구에 사용하느라 던전 내의 몬스터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던전 내부에 있는 엘프들을 제외한 6명의 인간과 드워프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으나 그들의 파괴공작 덕택에 몬스터가 사라져서 목숨을 건졌다.



"저것들은 또 왜 저기에 있느냐?"


"삐쀼삐쀼삐"



창조신의 물음에 세상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일을 담당하는 천사들이 앞으로 나와서 설명을 시작하였고 창조신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드모'우레스가 있는 던전은 그냥 원래 난이도로 해놓을 걸 그랬나?"



첫번째 만신전의 신들을 봉인하고 그들의 던전 시스템을 산산조각 내버리고서야 간신히 권한을 회수할 수 있었던 창조신은 만신전의 악 성향 신들이 해놓은 짓을 보고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웅들의 연합이 지키고 있는 부활이 굉장히 편한 두 세상과 달리 부활 마법과 부활 권능에 엄청난 자원이 소모되는 이 세상에서 창조신은 어느 정도 선을 지켜가며 컨텐츠를 만들었다.


하지만 악신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이 던전은 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즉사 트랩으로 도배되어 있는 던전, 던전 핵을 부수는 순간 던전 전체가 맨틀 밑으로 함몰되어 내부의 모든 생명체를 죽여버리는 던전, 몬스터를 죽이면 죽일 수록 저주가 쌓여서 던전 핵에 도달할 때 즈음에는 근접수단, 원거리 수단, 마법, 신성력 그 어떤 것으로라도 핵을 건드리는 순간 저주 스택이 터져나가 던전 내의 모든 필멸자들에게 최강의 저주들이 내려지는 던전, 클리어하는 순간 던전 내의 모든 물질에 라인의 황금 효과가 적용되는 던전, 클리어하면 훗날 태어날 아이에게 썩씨딩 유 파더를 당하게 되는 저주가 걸리는 던전, 클리어하는 순간 서로에 대한 감정을 반전시켰다가 5년 뒤에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는 저주가 내려지는 던전 등등 깨라고 만든 것인지 의심되는 악랄한 시스템만 잔뜩 깔려있었다.


심지어 저주가 종료되었을 때 저주에 의해 생성된 포인트는 전부 악신들에게 지급되는데다 저주를 푸는 방법도 역겹고 토나오는 끔찍한 짓을 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창조신은 첫번째 만신전의 악신들이 왜 자기한테 허락 안맡고 이계의 힘으로 프로텍트를 걸어놨던 건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포이부스와 그 부하들이 창조신에 의해 적당한 난이도로 수정된 던전을 시작부터 개박살내놓는 걸 보니 창조신의 머릿속에서 몇몇 던전들은 끔찍한 난이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솟아나고 있었다.



"앞으로 저런 룰치킨 짓을 못하게 던전을 구획별로 나눠놓아야 하나? 아니면 던전의 내구도 자체를 올려?"



지금 포이부스 일행이 실행하고 있는 던전의 회복 능력을 역이용해 회복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게 만드는 저 공략법은 마력과 힘이 엄청나게 들어가기 때문에 현재 전 세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세력은 많아도 진짜로 저질러버릴 세력은 드물었다.

한창 사방에서 전쟁이 터지는 만국에 의한 만국의 투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수백 명의 고위 마법사와 숙련된 전사들을 최종 보상으로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던전 하나 공략하겠다고 꼬라박을 신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창조신은 화면에 보이는 포이부스의 상태창을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천사에게 말했다.



"그냥 저 녀석도 불멸자로 승천시켜버리고 그 대가로 스탯은 반토막 내놓고 현계에 강림해 있을 수 있는 시간 제한을 걸어놓을까? 시간제한이 생기는 디메리트가 있기는 하지만 죽어도 나중에 포인트 소모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 손녀도 반대는 안 할 거 같은데"


"쀼쀼삐삑!"


"하긴 다른 신들은 몰라도 이그니 녀석은 결사 반대하겠지."



불과 번개의 신 이그니는 제2시대에 큰 도박을 행했고 거의 성공할 뻔했다.

지금도 창조신의 축복 없이도 약한 신의 화신체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중상급 신들의 화신체를 상대로 간신히나마 버틸 수 있는 필멸자가 지상을 활보하고 있는데 만약 불의 신이 던전을 만들겠다고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아서 시간 가속이 진행되는 2천년 동안 포이부스가 수많은 적과 괴물들의 심장을 뜯어먹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다른 신의 명령을 잘 듣는 최하급 신이 어떠한 제한도 없이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허나 다른 신들에게는 천만 다행히도 이그니는 계획이 거의 성공해가자 자만심이 차올라 다른 동료들과 함께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뱀을 그리는 대회에서 뱀에 발을 그려 탈락한 자와 같이 쓸데없는 사족을 붙여 몰락해버린 이그니는 지금도 지하 깊은 곳에서 그를 숭배하는 야만인들이 던져넣는 거대 두더지의 피를 마시며 봉인 속에 묶여있다.


창조신은 지상에서 놀고 있는 진실의 신 쪽을 슬쩍 보고는 진실의 신이 어둠의 신 아펩의 봉인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는 걸 보고 다시 포이부스 쪽을 보고는 앞으로 밸런스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적당히 던전들의 자체 회복에 관련된 몇몇 코드를 수정하고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삐빅


"아 진짜..."



하지만 그때 갑자기 다른 패턴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고 창조신은 그게 접속 종료했던 유저 중 하나가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알려주는 소리라는 걸 깨닫고는 그냥 손을 흔들어 천사들에게 알림을 꺼버리라고 지시하였다.

천사들은 창조신의 지시대로 유저 복귀 알람을 꺼버렸고 창조신은 다시 편안한 꿈나라로 돌아갔다.


꿈 나라에서 손녀 중 하나인 꽃과 꿈의 여신 에우레테가 타주는 홍차를 마시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창조신은 잠시 후 벌어지게 될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



한참동안 던전을 학대하던 포이부스 일행은 거의 1시간 30분 가까이 파괴행각을 계속한 끝에 던전이 다시 재생되지 않는 걸 확인하고 공격을 중지하였다.

공격은 중단되었지만 오리스가 불러낸 산성용액이 계속해서 지면을 파고들고, 던전 곳곳에 포이부스가 불러내서 성장시킨 나무뿌리들이 포이부스의 명령 없이도 물을 뿜어내고 계속 성장해나가면서 던전의 암반을 깎아내고 있으니 한동안은 던전의 힘이 회복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을 다보는군. 어떻게 이런 참신하고 기발하고 엄청난 계획이 빡대가리 이젝투스의 머리에서 나온 거지?"


"이 새끼 아까부터 자꾸 보자보자하니까!"


챙!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팔라딘 이젝투스는 마르세우스에게 할버드를 휘둘렀지만 마르세우스는 웃으면서 할버드를 막아냈고 포이부스는 두 엘프의 무기를 손으로 붙잡아서 강제로 바닥에 박아넣으며 말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던전이 힘을 회복하기 전에 드모'우레스 님의 흔적을 찾는다."


"알겠습니다."


"예"



상관인 포이부스의 제지가 있는데도 싸움을 지속할 만큼 담이 크지는 않은 두 사람이 싸움을 멈추고 포이부스는 일행을 이끌고 다음 방으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잔뜩 느껴지던 괴물들의 기척이 싹 사라진 걸로 봐서 던전이 자신의 몸을 재생하는데 생성해놓은 괴물까지 전부 다시 흡수해서 힘을 사용한 게 분명했다.


던전을 무자비하게 파괴해서 힘을 깎아내고 느긋하게 탐사를 한다는 제3자가 보기에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과격한 계획을 수행하느라 오리스는 마력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으나 꿋꿋하게 현기증을 버티면서 걸어갔고 포이부스는 안색이 안좋아진 오리스에게 물었다.



"휴식하지 않아도 괜찮나 오리스?"


"아직은 괜찮습니다만 한동안 전투는 알아서 해주세요."



전투로 마력을 더 소모하면 그때는 진짜로 위험하다는 걸 돌려말하는 오리스는 뷔토스의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길을 재촉했고 포이부스는 모두에게 활력 회복 마법을 걸어주었다.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던전을 뒤지기 시작한 포이부스 일행은 무지개와 무덤이 있는 방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4개의 갈림길이 나오자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였다.



"예전 마추픽의 규모를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다 함께 뭉쳐서 탐사하면 시간이 족히 2주는 걸릴 것 같은데 여기서 팀을 나눌까?"


"던전이 힘을 회복하지만 않는다면 그게 효율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 우리보다 먼저 누군가가 들어와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들의 힘은 미지수고 우리는 지쳐있으니 가능하면 뭉쳐있는 게 좋을 겁니다."



평상시라면 자신들에게 대적할 자는 없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을 이젝투스는 조금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번에는 마르세우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팔라딘들까지 이젝투스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저거 이젝투스 맞냐?"


"혹시 중간에 도플갱어 같은 걸로 바꿔치기 당한 거 아니야?"


"그런데 하는 걸 보니 이젝투스보다 유능한데 그냥 데리고 가자"


"아 진짜! 자꾸 그런 쓰레기 같은 말 좀 하지 말라고! 나도 할 때는 하는 엘프야!"



결국 이젝투스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는지 던전 부수느라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할버드를 휘둘렀지만 거기에 순순히 맞아주는 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포이부스는 그 모습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설마하니 엘프 만들기 제일 힘들거라고 생각했던 이젝투스가 제일 먼저 정상인이 될 줄이야. 이게 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하로나스 님께서 보우하신 결과다. 감사합니다 하로나스 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하로나스시여!"


"..."



이젝투스는 포이부스가 갑자기 하로나스가 있을 뮤 대륙 방향으로 절을 하는 걸 보고 그동안 일행 내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바닥에 처박혔던 건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평소에 눈치 없이 이상한 소리나 해대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던 이젝투스의 행태를 생각해본다면 던전 안에 들어온 뒤 이젝투스가 보이는 행동들은 괄목상대라는 말이 절로 떠오리게 하는 것이었다.

늘어난 게 재주가 아니라 양심이지만 포이부스에게는 이게 더 좋았다.


그렇게 작은 소동이 지나간 뒤 일행은 다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포이부스의 기억 속의 마추픽의 풍경과 비슷한 장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3번째 무지개를 발견했을 때 포이부스는 현재 자신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긴 예전에 친구들 안내를 받아서 들어왔던 제4공동으로 가는 길 같은데"


"4공동은 뭘 하는 곳이었습니까?"



오리스의 질문에 포이부스는 옛 일을 떠올리며 대답하였다.



"주로 외부와의 교역을 담당하는 구역이었지. 여기서 더 들어가면 여러 공동들을 이어주는 중앙 구역인 제2공동으로 갈 수 있고 거기만 확보하면 탐사가 훨씬 수월해질 거다."



드워프들이 처음 자리잡고 후에는 최초의 철검을 만들어냈으며 대숙청이 오기 전 마지막 순간에는 최신 기술을 연구하던 구역인 제1공동, 여러 공동들을 연결한 중앙 지역인 제2공동, 그 당시 드워프들의 주식이었던 곡물과 버섯을 재배하던 식량생산 중심지인 제3공동, 외부와의 교역을 담당하던 제4공동, 용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가 훗날 유해를 모아놓는 공동묘지로 용도가 변경된 제5공동, 흑요석이나 철광석에다가 온갖 희귀한 금속이 나오던 제6, 7공동까지 그동안 기억 속 깊은 곳에 처박아뒀던 마추픽 내부의 용도와 길들이 포이부스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는 모두를 제4공동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포이부스가 본 것은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없는 폐허였다.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전부 무너져내렸구나. 예전에는 이곳에 온갖 물건들을 내놓은 상점들이 있었지."



포이부스는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봤던 드워프들의 시체로 채워져 있던 시절보다도 더 황량해진 폐허를 보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때 팔라딘들이 뭔가를 발견하고 말했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는 걸 보니 무너진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뎁쇼?"


"혹시 아까 우리가 날뛸 때 무너진 게 아닙니까?"


"...여기서 먹었던 식용버섯 구이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포이부스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걸로 치고 애써 부하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때 팔라딘 모르테스가 바닥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고 말했다.



"지금보니 여기에 드워프 장인들의 발자국이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던전을 박살내고 있을 때 무너지는 건물 중 하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



옛 친구들이 남긴 마을을 의도치 않게 자기 손으로 박살내버렸다는 진실을 어둠 속에 묻어버리려던 그는 드모'우레스의 신도들인 드워프 장인들이 현장에 있었다는 보고에 더는 진실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닫고 노선을 변경하였다.

포이부스는 진지하게 드모'우레스가 다시 깨어나서 마추픽을 보고는 자기 도시가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어봤을 때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다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드워프 장인들부터 확보한다."


"입막음 하시려고요?"


"드워프들이 뭐 좋아하더라?"



포이부스는 불쌍한 드워프 장인들을 죽일 생각은 없고 일단 뇌물로 입을 틀어막을 생각이었다.

모르테스와 첩보부 출신 팔라딘들이 드워프 장인들의 발자국을 찾아내 따라가는 동안 포이부스와 나머지 팔라딘들은 드워프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모르테스 일행이 멈춰섰다.



"드워프들을 찾았나?"


"발자국이 끊어졌습니다."



그 말대로 드워프들의 발자국은 갑자기 허공답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뚝 끊어져 있었다.

다시 뒤로 돌아간 흔적도 없고 잘 뛰어가다가 갑자기 허공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처럼 뚝 끊어진 흔적에 다른 팔라딘들은 당황했지만 모르테스와 그 동료들은 침착하게 그 앞의 텅 빈 바닥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아무 흔적도 없는 흙바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닥에서 팔라딘 중 하나가 뭔가를 찾아내 들어올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지개 무덤이 있는 방의 추적자들의 야영지에서 찾아낸 비늘파편과 똑같이 아주 작은 비늘 파편이었고 모르테스는 그 파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드워프들은 납치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움직이죠!"



모르테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알겠다는 듯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고 포이부스와 나머지 팔라딘들은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모르테스를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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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뜻하지 않은 재회 #3 +11 20.03.10 1,849 77 16쪽
148 뜻하지 않은 재회 #2 +15 20.03.09 1,834 74 17쪽
147 뜻하지 않은 재회 #1 +11 20.03.06 1,869 84 13쪽
146 곤드 대륙 #12 +14 20.03.05 1,820 80 13쪽
145 곤드 대륙 #11 +17 20.03.04 1,816 82 17쪽
144 곤드 대륙 #10 +14 20.03.03 1,807 82 17쪽
» 곤드 대륙 #9 +11 20.03.02 1,822 79 20쪽
142 곤드 대륙 #8 +5 20.02.28 1,974 70 19쪽
141 곤드 대륙 #7 +13 20.02.27 1,900 6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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