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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6 18:50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2,123
추천수 :
3,371
글자수 :
357,178

작성
24.05.09 18:50
조회
1,218
추천
55
글자
11쪽

5. 형제(2)

DUMMY

-형아, 여기 봐, 물이 빙글빙글 돌아서 재밌어!


어린 성욱의 차랑차랑한 목소리가 물소리에 섞여 들렸다.


-형아!


그리고 아이의 외침 소리와 함께 물이 그의 눈앞으로 솟아올랐다.


“정말 제 눈앞으로 물이 솟아오른 건 아니겠지만 기억 속에선 그래요. 물 때문에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다 숨이 막혀가는 동생이 보여요.”


성욱아! 외치려고 했지만 누군가 입을 막은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뿌리박힌 것처럼 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허우적거리는 동생이 보이는데도.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공포가 동욱의 몸을 감쌌다.

물속으로 가라앉은 성욱의 고사리 같은 손이 파닥이고 공포에 질린 아이의 눈이 동욱과 마주쳤다가 가라앉았다.


-혀······.


부글거리는 물거품이 그를 부르느라 뻐끔거리던 입을 가렸다.


-성욱아! 성욱아!


뒤늦게 입이 터졌다. 그는 미친 듯이 물을 헤치고 동생이 허우적거리는 자리로 뛰어들었다.


-아유, 그래도 형이라고 손을 꼭 붙들고 놓질 않았네.

-우리 동욱이 덕분이야. 동욱이가 동생을 살렸어.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욱아, 성욱이는요? 성욱이는?”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리며 묻자 엄마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성욱이도 살았어. 괜찮아. 우리 동욱이가 동생을 살린 거야. 자칫하면 둘 다 잘못될 뻔했는데 그랬으면 엄마도 못 산다. 동욱이가 엄마도 살린 거야.”


다들 동욱을 칭찬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동생의 손을 놓지 않은 덕분에 둘 다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동욱은 깊이 후회했다. 성욱이 위험한 물길 쪽으로 가는 걸 보고도 빨리 말리지 않은 게 마음에 짐으로 남았다.


“성욱아, 형이 못 가게 말렸어야 했는데, 미안해, 형이 빨리 잡아줬어야 했는데.”


동생에게 몇 번이나 사과했지만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동욱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내가 잘못했는데 왜 형이 미안하다고 해? 형아, 내가 미안해. 나 때문에 형까지 죽을 뻔했어.”


부모님도 동욱을 탓하지 않았다.

중고생인 동욱과 현우에게 감독을 맡기고 자리를 비운 어른들 탓이라고, 얼마나 놀랐느냐고 오히려 동욱을 위로했고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성욱을 구한 동욱을 칭찬했으나 동욱의 마음은 무거웠다.


“어린 마음에도 한순간, 그 한순간 내가 마음속의 어둠에 삼켜진 것 같았거든요. 나도 모르는 새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서.”


익사할 뻔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성욱은 금방 회복했고 다시 원래의 밝고 개구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욱은 그런 동생에게 뭐든 양보하고 잘해주려고 했고 성욱도 그런 형을 의지하고 잘 따랐다.

한 번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아들 둘이 다 철이 들었고 우애도 깊어졌다고 어른들은 기뻐했고 동욱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아픔도 차차 치유되어 갔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남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럭저럭 상처를 잊어갈 무렵, 또 한 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죠.”


남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세나가 가만히 찻잔에 새 차를 따라 주었다.

남자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은롱이 살짝 고개를 외로 꼬고 남자를 쳐다보면서 앞발로 탁자를 두어 번 두드렸다. 남자가 그에 이끌리듯 은롱을 바라보았다.


“이 여우는 눈이 정말 예쁘네요.”


남자는 은롱의 눈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여우에 홀린다고 하더니 진짜네요. 저런 눈으로 보면 무슨 말이든 다 하게 될 것 같아요.”


홀린 듯 은롱의 눈을 보고 있던 남자의 입에서 마치 은롱에게 끌려나오는 것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사실은······ 사실은, 성욱이는 업둥이가 아니었던 겁니다. 업둥이는 저였습니다.”


***


남자는 마디가 굵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내가 업둥이였던 겁니다. 내 친부모가 갓 태어난 나를 양부모님 집 앞에 버렸던 겁니다.”


동욱의 양부모님은 새벽에 문 앞에 버려진 신생아를 발견하고 집에 들였다.

서른 중반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기도 했고, 버려진 아기가 불쌍하기도 해서 입양을 결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고 이사까지 한 뒤 출생신고를 했다.


아이에게 입양아라는 걸 알리고 키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부부 모두 아이가 그냥 친자로 알고 자라는 게 정서적으로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척들에게도 모두 늦둥이를 낳았는데 부정 탈까 봐 소식을 늦게 전했다고 나중에서야 출산 소식을 전했다.

원래 자주 집에 드나들던 이모만 동욱이 업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6년 뒤 정말로 늦둥이가 생겼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둘을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 주셨어요. 오히려 저한테 더 공을 많이 들이셨습니다. 늘 우리 장남, 우리 장남이라고······.”


남자, 조동욱은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어렸을 때 제가 동생을 멀리했던 건 처음에는 어린 동생이 생긴 큰애의 질투였지만, 나중에는 그 애가 업둥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있었을 겁니다.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기 전에는 업둥이가 들어와서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억울해서 알게 모르게 텃세를 부리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사고 후에는 그런 마음을 다 접고 그저 잘해주려고만 했습니다. 업둥이니까 안쓰럽다고, 더 잘해줘야지 생각하면서.”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정작 업둥이는 저였던 거지요.”

“······.”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이미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후였고, 그런 일로 비뚤어져서 부모님이나 동생을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르십니다.”


아이들이 그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절대 자신이 알고 있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수십 년, 더 착한 아이가 돼야 한다. 더 좋은 사람이 돼서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 동생에게도 더 잘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우리 장남은 정말 든든해, 우리 집안의 기둥이야, 동생에게도 얼마나 좋은 형인지 몰라.

-우리 형처럼 믿음직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야. 너무 헌신적이어서 미안할 정도지.


다복한 가족,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좋은 가족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동욱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그늘이 남아 있었다.


“좋은 부모님, 좋은 아우고, 이제 다들 결혼도 해서 자식도 두고 평탄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제 목에 이렇게.”


남자는 손을 목에 대 보였다.


“이 밑에까지 뭔가 차오를 때가 있거든요. 평생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지만, 또 누구에게든 한 번쯤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그래서 몇 년 전에 한 번 이곳을 찾아왔지만 죽림 전당포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었다.


“잊어버리고 살려고 했는데 요즘 자꾸 꿈을 꿉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자와 남자가 보퉁이에 싼 아기를 어떤 집 대문 아래 빈틈으로 밀어 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꿈.

그리고 물에 빠진 동생이 물속에서 일어선 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을 물가에 혼자 선 자신이 바라보는 꿈.


“평생을 혼자 짊어지고 살아온 비밀이고, 다 지난 일인데 요즘 자꾸 꿈에 나와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 꿈을, 내가 버림받은 업둥이라는 걸, 우리 집에서 나 혼자만이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걸 계속 상기시키는 이 꿈을 버리고 싶어요. 잊고 싶습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남자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나직하게 물었다.


“가능할까요?”


세나가 그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혹시 친부모를 찾고 싶진 않으신가요?”

“아니요.”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 생각은 많이 해봤습니다. 하지만 찾고 싶지 않아요. 그분들에게도 아마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제게 부모님은 지금의 부모님뿐입니다. 죽는 날까지 두 분께 효도를 다할 거예요.”

“좋습니다.”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야기를 아예 파실 건가요? 저당으로 맡기고 일정 기간 보관하실 건가요?”

“아, 그건.”


남자는 그 부분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팔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판매하신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받으시고 이 전당포를 나가시는 순간 이 전당포를 포함해서 모든 이야기를 잊게 되십니다. 그런 꿈에 시달리셨다는 것까지 잊으실 겁니다.”

“저당은요?”

“저희에게 전당품으로 꿈이나 이야기, 물건을 맡기신 경우 1년 이내에 대출받은 것 또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는 다른 것을 상환하시면 전당품을 도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1년간은 죽림에 전당품을 맡겼다는 기억을 갖고 계시겠지만, 1년이 지나면 판매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은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전당품은 저희에게 귀속됩니다.”

“예에.”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당으로 맡기고 싶습니다.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고, 완전히 잊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아주 잊을 것인지는······, 조금 생각해 보고 싶으니까요.”


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지에 몇 자 적어서 그에게 내밀었다.


“대출을 원하신다면 이 정도 금액을 책정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현금보다는 좋은 꿈을 받아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남자는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뭐 대출 같은 거 안 받아도 좋습니다.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후련한데요? 그래도 뭔가 주실 수 있다면 편하게 잘 수 있는 꿈으로 부탁드립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잠시만요.”


세나가 일어서더니 창가 쪽 장식장으로 가서 작은 단지 하나를 골라 왔다.


“이 꿈이 좋겠습니다. 편안한 숙면을 취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세나는 단지의 뚜껑을 열면서 말했다.


“단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차에 넣어 드릴게요.”


단지 속에서 작고 하얀 구슬이 떠오르더니 남자의 앞에 있는 찻잔 속으로 퐁 소리를 내며 빠졌다.

드라이아이스처럼 포르르 하얀 김이 오르면서 순식간에 구슬이 녹아 사라졌다.


“드세요.”


남자가 찻잔을 들고 남은 차를 모두 마셨다.


“자, 그럼 이야기를 받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아 보실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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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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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6. 두부달걀채소쌈(1) +7 24.05.10 1,222 56 11쪽
» 5. 형제(2) +7 24.05.09 1,219 55 11쪽
6 5. 형제(1) +3 24.05.09 1,307 54 13쪽
5 4. 복숭아구이 +7 24.05.08 1,381 64 11쪽
4 3. 서왕모의 복숭아 +5 24.05.08 1,470 65 11쪽
3 2. 이상한 전당포(2) +6 24.05.08 1,606 70 13쪽
2 2. 이상한 전당포(1) +8 24.05.08 1,635 71 12쪽
1 1. 흰 여우 +18 24.05.08 2,084 7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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