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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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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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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566

작성
24.05.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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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12쪽

2. 이상한 전당포(1)

DUMMY

여우라니! 서울 시내에 여우라니!

그것도 온몸이 하얀 여우다. 사진에서만 본 북극여우 같은데?

아니, 북극여우는 귀가 짧고 둥글다고 했는데 쟤는 귀가 너무 뾰족한데?

시현은 여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휴대폰을 더듬었다.


어디 동물원에서 탈출했나? 어디다 신고해야 하지? 119? 구청?

아니 전에 보니까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라는 곳이 있었어. 거기다 신고하는 게 맞겠지?


시현이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를 검색하는 동안 여우는 고개를 돌리더니 조금 열려 있던 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라? 시현은 검색하던 손을 멈추고 여우가 들어간 집을 쳐다보았다. 혹시 이 집에서 키우는 여우인가?


여우가 들어간 집은 아담한 이층집이었는데 현관 앞의 나지막한 계단 위로 나무 문이 달려 있고 그 위로 자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竹林 전당포]


죽림, 짙은 녹색 바탕에 흰색으로 새겨진 글씨가 멋스러웠고 여백 중앙에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로고가 있었다.

뾰족한 귀와 갸름한 얼굴, 여우의 얼굴을 형상화한 도안이었다.


***


동물 그림이 있는 간판이라, 여기가 청운 고서점 손님이 지인에게 들었다는 그 전당포인가?

시현은 몇 발 뒤로 물러서면서 전당포를 살펴보았다.

빼꼼 열려 있는 나무 문도 꽤 낡아 보였고 희끗희끗한 간판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자그마한 이층집이었다.

계단을 올라간 시현이 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초인종이 없네?”


문 옆으로 푸른 녹이 살짝 슨 청동 종이 하나 걸려 있을 뿐이었다. 시현은 종 아래로 드리워진 줄을 당겨 보았다.

-댕그렁!

청명한 종소리가 울렸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문이 열려 있으니 사람이 있을 텐데.’


잠시 기다려 보던 시현이 문을 살짝 밀고 전당포 안으로 들어서자 문 안쪽에 달린 풍경이 다라랑, 은은한 소리로 울렸다.

어?

시현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현의 나이에 전당포라는 곳이 익숙지 않기는 하지만 급전이 필요할 때 전당포를 찾아가 본 적이 있긴 했다.

그때 시현이 가본 전당포의 인상은 꼭 교도소의 면회실 같다는 느낌이었다.

칸막이의 창구 안으로 노트북을 밀어 넣고 전당포 주인이 심드렁한 얼굴로 내주는 지폐 몇 장을 받았던 씁쓸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런데 여기는 창구가 있는 칸막이 같은 건 보이지도 않고, 누군가의 아늑한 서재나 거실 같았다.

마치 숲속에 들어온 듯 시원한 나무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가운데 옅은 회색의 벽과 녹색의 커튼, 단순한 선과 차분한 색감의 가구들이 어딘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현은 눈을 한 번 비볐다.

밖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작고 낡은 집이었는데 안쪽은 그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넉넉한 공간에 고급스러운 소파와 탁자가 있고, 널찍한 책상이 두 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벽을 따라서 서 있는 책장엔 들은 대로 고서가 많이 꽂혀 있고, 장식장에는 이런저런 골동품들 외에 조그만 단지가 여러 개 줄을 지어 놓여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문에 달린 풍경이 울렸으니 손님이 왔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금방 들어간 흰 여우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계세요?”


안쪽을 향해 사람을 불러 보았으나 실내는 조용했다.


“아무도 없나?”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사람이 없는데 안에서 기다리는 게 실례인 듯해서 현관 밖에 나가 기다리려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삐걱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 난 문을 열고 흰옷에 반바지 차림의 사내아이 하나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깜짝 놀랄 만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머리가 은발이었다.


“저기, 손님, 들어와도 돼. 뭘 맡길 거야? 나한테 말해도 돼.”


아이가 어른처럼 뒷짐을 지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시현을 올려다보았다.


‘눈동자가······ 금빛이네?’


은발과 금빛 눈을 보면 서양인 같지만 이목구비는 동양인다운 아이였다. 혼혈인가.


“자, 손님, 이쪽으로 앉아 봐. 내가 상담해 줄게.”


아이가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앞으로 가 의자에 깡충 뛰어오르더니 호기롭게 책상을 탁탁 쳤다. 몸집이 작아서 책상이 더 커 보였다.


“저기, 어른은 안 계시니?”


시현이 묻자 아이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내가 여기 주인이야. 나도 상담할 수 있어! 손님, 어떤 이야기를 맡길 거야? 대출하고 싶은 건 뭐야? 꿈? 힘? 역시 돈인가?”


시현은 아이의 말을 들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야기를 맡긴다고? 이 꼬마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때 다라랑 풍경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어머! 손님이 계시네. 은롱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출입구 쪽을 돌아보자 노란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은 젊은 여자가 막 현관 안으로 들어오는 참이었다.

고양이를 내려놓은 여자가 다다다 들어오더니 아이의 머리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콩 쥐어박았다.


“아야, 왜 때려? 내가 손님 상담해 주고 있는데!”


은롱이라고 불린 아이가 양손을 머리에 올리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여자는 아이를 밀어내면서 엄하게 말했다.


“네가 손님 상담을 맡으려면 백 년은 일러.”


여자가 아이를 밀어내고 대신 책상에 앉으면서 시현을 향해 우아하게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자, 손님, 죽림 전당포에 잘 오셨습니다. 저는 윤세나라고 해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예쁘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검은 생머리를 한 줄기로 대충 묶어 등에 드리운 차림인데도 어디서나 눈길을 끌 만한 단아한 미인이었다.


“손님?”


시현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고서를 많이 취급하신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제가 찾는 책에 대해 혹시 정보가 있을까 해서요.”


세나가 눈에 이채를 띠면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 그러세요? 이 전당포에 대한 말을 혹시 어디서 들으셨나요?”

“청운 고서점에서 들었는데, 제가 옛 조리서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어떤 손님이 말해주셨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뭔가 생각하는 듯 시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나가 입을 열었다.


“어떤 책을 찾으시나요?”

“송가미록이라는 옛날 요리책입니다. 크기는 이 정도고 꽤 두툼합니다. 백삼십 년 정도 된 책이고 표지 뒤쪽에 초승달 모양의 푸른 얼룩이 있어요.”

“송가미록, 송가미록······.”


세나가 두어 번 책 제목을 되뇌어 보았고 시현은 다소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십 대 중반 정도? 스물여덟인 시현보다 두어 살 어리거나 많이 봐 줘도 같은 또래, 그다지 경험이 많을 것 같진 않은데.

세나가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우리 가게에 오래된 요리책이 많은 편이긴 해요. 선대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매입도 많이 하셨고. 그런데 송가미록은 못 본 듯하지만, 표지가 떨어져 나가서 제목을 모르는 책도 있으니······, 이쪽을 한번 보시겠어요?”


세나가 일어서서 책장 한쪽으로 시현을 안내했다. 둘둘 말린 족자며 고서가 진열된 책꽂이를 지나 한쪽 칸을 가리켰다.


“이 칸이 모두 조리서예요.”


오래된 조리서들이 여러 권,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꺼내 봐도 됩니까?”


세나가 끄덕이면서 얇은 장갑을 건네주었다.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고서 몇 권을 훑어보던 시현이 감탄했다.


“귀한 책들이 있네요. 수운잡방(需雲雜方)은 필사본이지요?”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조선 초기에 탁청공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저술, 편찬한 요리책이다.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한국국가진흥원에서 위탁 보관하고 있는 책인데 여기에도 수운잡방이 있으니 이건 사본일 것이었다.


“맞아요. 이건 김유의 증손자가 필사한 필사본이에요.”


옛날에는 복사기가 없었으니 귀한 책을 돌려보려면 필사를 해야 했다. 저명한 인물이 필사한 필사본은 원본보다 더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수운잡방의 필사본이 몇 권 있다고 듣긴 했는데 보는 건 처음이에요.”


수운잡방 외에도 음식디미방, 계미서(癸未書)의 필사본을 비롯해 시현처럼 옛날 조리서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꿈 같은 책들이 모여 있었다.


“계미서는 필사본이 있다는 말도 못 들어봤는데 여기 필사본이 있다니!”


시현은 저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 침을 꼴깍 삼켰다. 갖고 싶다! 읽어보고 싶다!


“혹시 이 조리서들 판매나 대출도 하십니까?”


시현이 묻자 세나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이쪽 칸의 책들은 선대 주인분과 저희 고문으로 계시는 분이 특별히 수집하신 거라 판매나 대출은 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귀한 책들이니······.”


시현은 아쉽게 입맛을 다신 후 잠시 책 욕심에 혼미해졌던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책을 살폈다.

이 정도로 조리서를 수집했다면 송가미록도 혹시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송가미록이 섞여 있지 않을까 싶어 표지가 떨어져 나간 책까지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송가미록으로 보이는 책은 없었다.


“저, 혹시 송가미록에 대해서는 아시는 게 없을까요?”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제 전문 분야는 조리서 쪽이 아니어서요. 이쪽으로 정통하신 분께 여쭤봐 드릴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세나가 이 층으로 올라간 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은롱이가 시현의 소맷자락을 당겼다.


“손님, 요리사지?”

"?"


어떻게 알았지? 시현은 깜짝 놀랐는데 아이는 시현의 손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눈을 사르르 감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


오늘은 휴일이고, 아침에 샤워도 했는데 항상 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몸에 음식 냄새가 배어 있나?

시현은 손을 들어 자신도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손님, 나 맛있는 거 좀 해주면 안 돼?”


은롱이가 동그란 금빛 눈을 시현을 향해 깜박였다.


“우리 주방장이 그만둬서 나 맛있는 거 한참이나 못 먹었어.”


아이가 불쌍한 표정을 짓자 눈꼬리가 처지는 게 귀여웠다.


“나 밥을 못 먹어서 이렇게 살도 빠졌어!”


뽀얗고 포동포동하기만 한데? 아이의 볼을 보며 시현이 절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식당이 아니고 전당포인데 주방장이 있어?”

“응! 우리 전당포는 요리가 아주아주 중요한걸! 그런데 세나 누나가 해주는 밥은 맛이 그냥 그렇단 말이야!”

“은롱이! 손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층에서 내려오던 세나가 아이의 말을 듣고 눈을 흘기며 시현에게 사과했다.


“손님, 죄송해요. 저 녀석이 버릇이 없어요.”


은롱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맞잖아. 세나 누나는 차나 잘 끓이지 음식 솜씨는 영 별론걸. 이 손님은 진짜 요리사야. 아주 좋은 냄새가 난단 말이야!”

“아무튼 좀 기다려. 이 손님은 요리하러 오신 분이 아니고 책 찾으러 오신 분이야.”


이 층에서 내려온 세나는 전문가를 모셔 온다는 말과 달리 노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을 뿐 혼자였다.

아까 밖에서 들어올 때도 저 고양이를 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시현의 의아한 얼굴을 보고 세나가 살짝 웃었다.

고양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세나가 고양이를 향해 말했다.


“자, 금손 씨. 이 손님이 송가미록이라는 조리서를 찾고 있는 분이에요.”


금손 씨? 누가 금손 씨야?

어리둥절하고 있는 시현을 향해서 노란 줄무늬 고양이가 연둣빛 눈을 반달처럼 접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쪽 눈이 감겨 있는 외눈박이 고양이였다.


“반갑네. 난 금손이라고 한다네. 이 전당포의 고문(顧問)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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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흰 여우 +17 24.05.08 1,827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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