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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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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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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5.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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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 서왕모의 복숭아

DUMMY

“일단 우리 전당포에서 쓰는 식재료를 다룰 수 있는 요리사가 거의 없고요. 그런 사람을 어렵게 찾아냈다 해도 후.계.자.님의 승인을 받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아서요.”


세나가 은롱을 살짝 흘겨보자 은롱이 뭔가 뜨끔했는지 얼른 항변했다.


“지난번에 왔던 오씨 말하는 거지? 그 사람은 요리는 잘하지만 냄새가 좋지 않았단 말이야. 이 손님처럼 좋은 냄새가 안 났어.”

“저기, 여기서 조리해야 하는 게 일반 음식은 아니죠? 저도 못 할 것 같은데요?”


시현이 손사래를 치자 은롱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 손님, 할 수 있어!”

“어떻게 알아?”

“우리 정 셰프가 처음 왔을 때도 내가 냄새를 맡고 알아차렸는데, 손님은 정 셰프보다도 더 좋은 냄새가 나는걸. 그러니까 분명히 할 수 있어.”


은롱의 말에 금손도 맞장구를 쳤다.


“내 느낌으로도 이 친구가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뭔가 간단한 걸로 한번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금손과 은롱과 세나가 나란히 기대를 담은 눈으로 시현을 바라봤다.


고양이와 여우와 미녀의 시선을 한몸에 받자 시현은 피부가 따끔따끔한 기분이 들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지금 일하는 식당도 있고요. 연락처를 남겨놓고 갈 테니 혹시 송가미록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을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꼭 전속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최대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책이거든요.”


구미호의 전속 요리사라니, 뭘 조리하라고 할지 알 수가 있나. 사람의 간 같은 건 안 먹는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찜찜해.

식당이면 몰라도 전당포라는 것도 이미지가 좀 그렇고. 아무래도 구미호와 관련된 곳에는 발을 담그지 않는 게 좋겠지. 암.


시현이 선을 그을 기세이자 세나가 얼른 말했다.


“우리 전당포에서 요리를 해주신다면 대출 불가능한 옛 조리서를 마음껏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식자재라면 어떤 것이든 제공해 드릴 수 있고요. 바깥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도 저희는 구해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세나가 금손을 곁눈질하자 금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가미록을 찾는 것도, 송가미록의 숨겨진 비법을 읽는 것도 도와준다니까. 자네 힘만으로는 어려울 텐데?”

“아우······.”


시현이 저도 모르게 신음하면서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거 유혹이 너무 강한데.

하지만, 조리서 열람은 그렇다 치고 저 말하는 고양이가 정말 송가미록을 아는 걸까? 고조부도 알고 송가미록에 빈자리가 있는 것도 아는 걸 보면 헛소리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제가 여기서 일한다고 송가미록의 빈 부분을 읽는 데 정말 도움이 될까요?”


시현이 의심스럽게 묻자 금손이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음, 아직 다 말해주기는 이르지만, 송가미록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사실 죽림과 인연이 있다네. 일단 책을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 후 숨겨진 부분을 읽기 위해서는 죽림에 대해 배워야만 해.”


잠시 입을 다물었던 금손이 반짝이는 눈으로 시현을 쳐다보았다.


“은롱이를 알아보고 스스로 죽림에 들어온 송가의 후손이고, 잃어버린 책을 찾으려는 마음도 대견하니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말일세.”


망설이고 있는 시현을 향해 세나가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렸다.


“주 5회, 1일 1식, 월급은 지금 다니시는 곳에서 받는 것보다 세 배! 하루 식사 한 상 이외의 추가 조리를 할 때는 추가수당 지급!”


저도 모르게 콜! 하고 외치려던 시현이 얼른 입을 가렸다.


1일 1식에 월급 세 배? 그러잖아도 이직을 고민 중이긴 했는데. 지금 다니는 식당의 고된 노동강도에 비하면 주 5회 1일 1식이면 놀고먹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게다가 월급은 세 배라니, 아직 갚아야 할 빚도 있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아니, 그래도 잘 생각해야지. 터무니없이 좋은 조건에는 보통 함정이 있게 마련이잖아.


고민하는 시현을 지그시 지켜보던 금손이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자네 고조부는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자네는 좀 다르군. 겁이 나면 포기해도 된다네. 자네가 우리 식자재를 못 다룰 수도 있으니까. 그럼 이건 다 없던 일이 될 걸세.”


아니 저 고양이 영감님이 날 도발하나!


시현이 미간에 주름을 잡는데 은롱이 시현의 손을 잡아 흔들며 사람을 녹일 듯한 눈웃음을 쳤다.


“아이, 손님, 계산이 어둡네. 이거 아무한테나 하는 제안이 아니야. 책 찾는 것도 도와주고, 희귀한 조리서 열람도 할 수 있고 급여도 섭섭지 않게 챙겨 줄 건데. 게다가 진귀한 식재료도 다뤄볼 경험이 생길 거고. 요리사라면 두 손 들고 먼저 고용해 달라고 매달릴 조건인데 왜 망설이지? 손님이 가능성이 있어서 테스트라도 해보자는 건데. 응?”


어리광부리듯 말꼬리를 길게 빼는 은롱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시현이 잠시 후 금손을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예. 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시험을 해본다고 바로 취직을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닌 모양이고, 대체 어떤 식자재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놈의 호기심, 이건 아무래도 말로만 들었던 고조부를 닮은 모양이다. 특이한 조리법이나 신기한 식자재를 보면 나도 모르게 홀리게 된다니까.

게다가 저 고양이는 아무래도 송가미록에 대해 많은 걸 알면서 말을 아끼는 것 같단 말이지.


송가미록의 단서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현은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하고 세나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은 깨끗하고 쓰기 편하게 잘 정돈된 공간이었고 한식이든 양식이든 쉽게 조리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조리도구가 잘 갖춰져 있었다.


“두 가지 재료를 조리하셔야 하는데 우선 간단한 것부터 해보죠.”


안쪽 벽에 붙은 작은 문을 연 세나가 그 안으로 사라졌다.

문이 작아서 냉장고 정도의 크기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사람이 완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세나가 들고나온 것은 뜻밖에도 평범해 보이는 복숭아가 서너 개 담긴 바구니였다.


“복숭아네요?”


시현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실망한 말투가 되었다. 뭔가 기이한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복숭아라니?

모양이 예쁘고 신선해서 탐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아직 철도 아닌데 나온 것 외에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는 구석은 없었다.


“복숭아는 우리 은롱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일하시게 되면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재료기도 합니다. 아까 드신 정과가 이 복숭아로 만든 정과예요. 우리 전당포에선 항상 상비해 두는 거죠.”


아하, 시현은 아까 먹었던 정과의 맛을 돌이켜보았다. 그렇게 맛있고 향기로운 정과는 처음이었는데.

세나가 복숭아를 시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복숭아를 다루실 수 있으면 우리 전당포의 웬만한 식자재는 다 다루실 수 있어요.”


시현은 손에 든 복숭아의 무게를 살짝 가늠해 보았다. 모양이 예쁘고 향이 짙은 편이다. 보기보다 무게가 좀 나간다.

딱딱이 복숭아도 아니지만 많이 물렁하지도 않았다. 아까 먹었던 정과를 생각하면 과육이 상당히 쫀득한 종류인 것 같았다.

아직 제철이 아닌 걸 생각하면 온실 복숭아인가 싶은데 그렇다기엔 밖에서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복숭아처럼 아주 탐스럽고 실해 보였다.


시현 기준에 이렇게 좋은 복숭아는 생으로 먹는 게 가장 맛있지만, 죽림 전당포의 식구들은 이걸로 뭔가 조리를 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니 뭐가 좋으려나.

다른 식자재에 비해 조리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은데.


“혹시 못 드시는 음식이 있거나 조리 방법에 제한이 있습니까? 아니면 따로 선호하는 조리법이라든지?”


시현이 묻자 세나와 은롱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뭐든지 마음대로 조리하시면 됩니다. 부재료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다 준비해 드립니다.”

“양식이든 한식이든 아니면 손님이 새로 개발해낸 요리든 상관없어.”

“음, 고양이랑 여우가 먹으면 안 되는 재료는요? 땅콩이나 초콜릿 같은 건 쓰면 안 되죠?”

“아니야, 괜찮아. 우린 사람 먹는 거 다 먹을 수 있어!”


사람이 못 먹는 것도 먹고······. 은롱이 조그맣게 덧붙였지만 시현은 그것까진 미처 듣지 못했다.


‘먼저 한 조각 맛을 본 뒤에 어울리는 요리를 정하자.’


복숭아를 씻어 도마에 놓고 칼이 여러 개 꽂혀 있는 칼꽂이에서 과도를 뽑았다.

복숭아에 칼을 대고 툭 힘을 준 시현이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다.


“뭐지?”


칼이 복숭아에 들어가지 않았다.

시현은 과도의 날을 들여다봤다. 과도치고는 약간 지나치게 날카로울 정도로 날이 잘 서 있는데 왜 안 들지?

시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복숭아에 칼을 댔다.

역시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복숭아가 스스로 칼을 거부하고 고무공처럼 칼날을 튕겨내는 느낌이었다.


난처해진 시현이 식탁 쪽을 돌아보자 세나와 금손, 은롱은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서 조리대 앞에 선 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롱은 여전히 눈에 기대를 잔뜩 담은 채 시현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금손과 세나의 얼굴은 으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현은 왠지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 복숭아가 왜 날 거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그냥 질 줄 알고? 이래 봬도 내가 이름 높은 대령숙수 송가의 피를 이었다고.


시현은 눈을 감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한 점에 모았다.

처음 할아버지에게 요리를 배우던 시절처럼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복숭아만 생각하면서 다시 과도를 집어 들었다.

송가미록이 죽림 전당포와 인연이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내게도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지 않을까?

칼등에 얹은 손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주었다.


말캉!

과육이 잘려 나가는 느낌과 함께 주방 안에 복숭아 향기가 화르륵 피어올랐다.


“됐다!”


눈을 뜬 시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와! 이거 미쳤는데!”


칼을 대기 전에는 그냥 실한 복숭아 같았는데 과육의 속살이 드러나자마자 새콤달콤한 복숭아 향이 폭죽처럼 터져 나와 주방 안에 진동했다.


“와! 진짜! 이거 대체 무슨 복숭아인데 향이 이렇죠?”


시현이 입안 가득 고이는 군침을 삼키며 감탄할 때 식탁에서 깡충 뛰어내린 은롱이 도도도 달려와서 시현의 소맷자락에 매달렸다.


“그것 봐, 난 이 형이 해낼 줄 알았어. 복숭아가 이 형을 받아줄 줄 알았다고!”


어느새 시현을 부르는 호칭이 손님에서 형으로 바뀌었다. 마치 자신이 복숭아를 자르기라도 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은롱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구미호가 원래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동물인가? 너무 귀엽잖아.


“오호, 대단한데, 이렇게 금방 해낼 줄은 몰랐는데!”


금손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탄성을 토했고 세나도 눈을 크게 떴다.


“그러게요.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시현 씨. 축하드려요.”

“음, 복숭아 하나 잘랐다고 이렇게 축하받을 일인가요?”


시현이 머쓱해하자 세나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야, 이 복숭아는 보통 복숭아가 아니니까요.”

“예?”

“이건 말이죠,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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