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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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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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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591

작성
24.05.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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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
11쪽

4. 복숭아구이

DUMMY

서왕모의 복숭아? 서왕모가 누구였지? 시현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옛이야기 속의 서왕모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그, 저, 서왕모라면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인가 선녀인가 아닌가요? 옥산인가 곤륜산인가에 산다던······, 불사의 과일 주인이라고.”

“맞아요. 그 불사의 과일이 바로 이 복숭아랍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말은 들어 보셨겠지요?”

“들어는 봤는데 잘 모릅니다.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았다는 사람 아닌가요?”

“그렇죠. 그리고 동방삭이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은 서왕모의 복숭아를 먹었기 때문이고요.”


동방삭(東方朔)은 전한(前漢) 시대의 실존 인물인데, 장수하는 사람을 이르는 대명사로 유명한 사람이다.


“저승사자를 속여서 삼천 살인가 18만 년인가를 살았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물론 삼천 년까지 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동방삭이 서왕모의 복숭아를 먹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장수한 건 사실이에요.”


세나가 복숭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문처럼 불사의 과일은 아니지만 심신 안정과 노화 방지 효과는 확실하거든요. 맛이 훌륭한 건 물론이고요. 우리 전당포에선 서왕모의 복숭아를 정과로 만들어서 심신 안정이 필요한 손님에게 제공한답니다. 아까 드셔 보셨으니까 효과는 아시겠지요?”


진정제 역할인가. 시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짜 불사의 과일을 먹은 건 아니라는 게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자, 이제 복숭아를 손질할 수 있는 건 알았고, 요리 솜씨를 한번 볼까?”


금손이 분홍색 코를 쫑긋거리며 말했고 은롱이 잔뜩 기대에 찬 눈을 반짝였다.


“뭐 해줄 거야? 응?”

“음······, 평소에 뭘 잘 먹니? 한식을 좋아해? 양식을 좋아해?”


시현이 묻자 은롱이 마치 강아지처럼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다 할 수 있어?”

“응, 일단 한식이랑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 다 따놓긴 했고, 중식도 웬만한 건 가능하니까 좋아하는 거 말해봐.”


시현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잊혀진 송가의 옛 요리들을 현대에 맞게 되살려내는 거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요리법에 흥미가 있어서 한식, 양식 가리지 않고 많은 요리를 해보곤 했다.


“나 과일을 제일 좋아해, 사과, 복숭아, 포도 좋아하고 감은 그냥 그래. 그리고 두부, 계란, 치즈 좋아하고 떡 좋아, 국수도 좋아, 채소는 감자랑 꿈꾸는 풀이 제일 좋고 오이랑 가지도 괜찮아. 양배추도 익힌 건 괜찮아, 마늘이랑 당근, 파는 별로고······.”


은롱이 주워섬기는 것들은 주로 재료였고 요리는 아니었다. 요리 자체보다 재료에 중점을 두는 편인가?

의외로 고기보다는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는 걸 보니 사람의 간을 먹지 않는다는 게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잠깐, 중간에 묘한 게 하나 섞여 있었는데?


“꿈꾸는 풀은 뭐야?”

“아, 그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세나가 끼어들었다.


“꿈꾸는 풀은 바깥세상에선 나지 않는 재료고 구하기도 힘들어요. 나중에 혹시 여기서 일하시게 되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은롱이 아무리 많은 재료를 주워섬겼어도 일단 조리해야 하는 건 복숭아였다.

시현은 마음을 정한 뒤 조리대를 향해 섰다.


“복숭아구이를 해보겠습니다.”

“복숭아도 구울 수 있어?”

“응.”


시현이 반으로 자른 복숭아의 가운데 씨를 빼면서 은롱에게 대답했다.


“사실 이렇게 당도가 높고 과육이 쫀득한 복숭아는 그냥 먹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지만, 뭔가 조리를 원하시니까.”


파이도 만들 수 있고 갈레트라든지 조림이나 탕후루도 만들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니까 간단하게 구워 보기로 했다.


“굽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혹시 호두나 크랜베리가 있을까요? 아몬드도 괜찮고요. 계핏가루랑 모짜렐라 치즈도 있으면 좋고.”

“예.”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만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세나가 손짓을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세요. 향신료는 이쪽 찬장에 있습니다.”


시현이 냉장고를 열자 버터, 치즈, 크랜베리가 바로 앞에 있었다. 찬장에는 계핏가루가 든 병 외에도 각종 향신료 병과 호두, 아몬드 등 견과류 봉지가 줄지어 놓여 있고.


“말씀드렸잖아요. 필요한 식재료는 뭐든지 준비해 드립니다.”


세나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호두를 부수고, 크랜베리를 좀 섞은 다음 계핏가루와 꿀을 섞어서 달콤하고 녹진한 소를 만든다.

녹인 버터를 복숭아에 바르고 둥글게 씨를 파낸 부분에 소를 채운 뒤 오븐에 20분 정도 굽는다.


‘잘 나와야 할 텐데.’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시현은 오븐에서 익어가는 복숭아 쪽을 곁눈질했다.

복숭아구이는 간단하지만 자주 하는 요리는 아니었다.

시현이 일하고 있는 퓨전 한식당에서도 이렇게 사치스러운 후식을 낼 일은 없었고 집에서도 이런 걸 만들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현이 예전에 양식 조리기능사 시험 준비를 하다가 어느 영국 요리사의 요리 영상에 꽂혀 많은 영상을 섭렵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본 영상 중에 복숭아구이의 영상이 있었는데 흥미로워 보여서 나름대로 레시피를 변형해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때는 설탕 시럽을 먼저 만들어서 복숭아를 굴려 시럽을 묻혀 가면서 팬에 구웠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는 일반 복숭아보다 훨씬 단맛이 강해서 시럽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그 영국 요리사는 럼주랑 라임 크림도 썼는데.’


시도해 보고 싶은 요리가 있어도 재료를 구하기 어렵거나 구할 수 있다 해도 값이 비싸 엄두를 못 낸 일이 많은데, 죽림 전당포에서 일하면 재료 걱정 없이 요리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시현의 마음이 조금 간질간질해졌다.


땡 소리가 나며 오븐이 멈췄다.

오븐을 열자마자 잘 구워진 복숭아의 고소하고 달큰한 향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은롱이, 아이스크림 좋아해?”

“응, 응!”


앞접시에 복숭아구이를 하나씩 놓고 그 옆에 냉동실에서 찾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듬뿍 떠서 보기 좋게 담았다.

꿀을 바른 것처럼 금갈색으로 잘 구워진 복숭아 가운데에서 버터와 호두, 크랜베리, 치즈, 계피가 섞인 소가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며 녹아내렸다.


“잘 먹겠습니다.”

“손님, 아니 시현 형, 이거 맛있어! 진짜 맛있어! 달콤한데 그냥 단맛이 아니고 아주 깊은 맛이 나! 뜨거운 복숭아랑 차가운 아이스크림인데 잘 어울리고!”


복숭아구이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서 한 입 먹어 본 은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색다른 맛인데 훌륭하군.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게 이런 거로구먼.”


금손도 작은 접시에 담아 준 제 몫을 핥으면서 흡족한 듯 코끝을 쫑긋거렸고 세나도 맞장구를 쳤다.


“이건 맛없기가 어려운 조합이긴 하지요. 하지만 정말 잘 구워졌네요. 서왕모가 직접 드신다 해도 복숭아를 낭비했다는 소린 안 듣겠어요.”


시현도 복숭아구이를 맛보았다.

말랑하고 촉촉한 과육이 혀끝에 닿자마자 황홀한 단맛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바삭 씹히는 견과류의 고소함, 베리의 새콤달콤한 맛이 녹진녹진한 복숭아 살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야,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잘 나왔네.

복숭아 자체가 워낙 맛이 훌륭하다 보니 전에 집에서 만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월등했다.


“시현 씨는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서왕모의 복숭아는 건강 증진, 심신 안정, 노화 방지, 수명 연장 효과가 있지만 일반인이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있으니까요. 삼천갑자 동방삭도 부작용을 알았다면 그렇게 많이 먹진 않았을 거예요.”


제약회사 직원처럼 말하는 세나의 뒤에서 금손도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오래 산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왠지 그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렸다.


***


“자, 아까 두 가지 요리를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바깥세상과 다른 식자재를 다룰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 이제야말로 우리 전당포의 메인 재료를 요리에 쓰실 수 있는지 볼 차례입니다.”


세나가 마치 자신이 요리 시험을 보기라도 할 듯이 심호흡을 했다.


“이게 진짜예요. 지난번에 왔던 오 셰프도 어찌어찌 복숭아는 잘랐지만 두 번째 요리에서 은롱이에게 퇴짜를 맞았거든요. 준비되셨나요?”

“예.”


서왕모의 복숭아를 먹은 뒤라서인지 시현은 평소보다 머리도 맑고 몸에도 활력이 넘쳤다. 지금이라면 어떤 요리든 물 흐르듯 해낼 수 있을 듯했다.


“잠깐만.”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핥아 먹은 은롱이 손을 닦더니 거실의 장식장으로 달려가서 조그만 단지 하나를 들고 왔다.

작은 질그릇처럼 보이는 단지의 뚜껑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은롱이 단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자 안에서 탁구공 정도 크기의 구슬 하나가 퐁 하고 떠올랐다.


“어딜!”


은롱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구슬을 잽싸게 낚아채자 구슬은 도망가려다 잡힌 아기 새처럼 포르르 파닥였다.

반투명하게 속이 어른어른 들여다보이는 청록색 구슬은 표면이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게 마치 커다란 이슬방울 같았다.


“이건 몽로(夢露)라는 거야. 손님이 맡기고 간 이야기를 뭉친 거지.”


꿈의 이슬인가.


몽로를 손에 든 은롱이 시현의 코끝에 구슬을 가까이 댔다.


“뭔가 느껴져?”


시현이 눈을 감았다. 촉촉한 느낌과 함께 풀 같기도 하고 약초 같기도 한 씁쓸한 내음이 코끝에 끼쳤다.


“씁쓸한 냄새가 나네. 씁쓸하면서 약간 맵기도 하고.”


양파를 얼굴에 댔을 때처럼 눈에 눈물이 맺혔다.


“손님이 전당품으로 맡기고 보관 기간이 지난 몽로야. 잘 숙성되었으니까 먹으면 되는데 나한텐 너무 써.”


은롱이 울상을 했고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향으로 봐선 그렇게까지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파나 부추 정도일까? 향이 좀 더 강하긴 해도 못 먹을 정도로 쓴 건 아닌 듯한데.


“그러니까요. 은롱이가 입이 까다로워서.”


세나가 맞장구를 쳤지만 은롱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쓴맛이 자꾸 나서 먹기 힘든 걸 어떡해. 난 세나 누나처럼 미각이 둔하지 않단 말야. 몇 번 먹어보려다가 관뒀는데, 형, 나 이거 먹을 수 있게 요리 좀 해주면 안 돼?”

“글쎄, 하지만 이거 어떤 식으로 조리를 해야 하는 거지?”


이슬방울 같은 몽로를 보며 시현이 머리를 갸웃거리자 은롱이 말했다.


“이거 터뜨리거나 살짝 짜면 돼. 시럽처럼 즙이 나와. 그걸 쓰면 돼.”

“아 그래?”


시현은 몽로의 향을 음미하며 어떤 음식을 할 수 있을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맛을 볼 수 있을까?”

“응, 그치만······.”


은롱이 잠시 망설였다.


“이거 맛을 보면 이야기도 보게 될 텐데?”






복숭아구이ff.jpg


작가의말

사진은 서왕모의 복숭아는 아니지만 일반 복숭아로 만들어 본 복숭아구이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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