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조조가 아니라 조비의 눈치를 보면서 지내야 한다
제21화 조조가 아니라 조비의 눈치를 보면서 지내야 한다
하후연 장군 치소.
“와하하하! 어서 와라.”
하후연이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뭐? 강녕? 강녕이 뭐 하는 거냐? 먹는 거냐? 하하! 이 자식이 덩치 좀 커졌다고 말하는 거 보소.
그냥 편하게 말해, 인마!
이 숙부님한테 당과 먹고 싶다고 찔찔 짜던 녀석이 갑자기 어른 흉내냐?”
하후연이 친척 조카를 대하듯 푸근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후연하고 조진이 친한 사이···?’
별로 친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도 하후연의 성격 때문일 것 같다.
하후연과 조조는 형제 같은 사이다.
조조의 어릴 적부터 아주 친하게 같이 큰 친구이며 친척이다.
하후연은 하후돈의 동생이며 조조의 친족 장수 4인방인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중 조인과 함께 한 지역을 책임지고 군을 운용할 줄 아는 군단급 사령관 노릇을 해준 장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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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이 볼 때 하후연과 하후돈은 조조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된 자들이다.
특히 조조가 어렸을 때.
조조는 환관의 자손이라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고 사고를 여러 번 쳤다.
대표적인 사건은 원소와 함께 알지도 못하는 집안의 결혼식 날, 막 결혼한 신혼 부부의 집에 들어가 신부를 보쌈해 납치한 것이다.
조진이 보기에 절대 용서가 안 되는 불법 패륜 범죄였다.
원소와 조조가 멀쩡한 남의 집 신부를 납치해 얼굴 구경하려고 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강간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신부를 납치해 도망가다 원소가 가시덤불에 갇힌다.
납치 강간이 미수가 되었지만, 역사서에 기록되었을 정도이니, 이 두 불량소년들에게 참변을 당한 여자가 어디 한두 명이었겠는가···?
납치 강간만 했겠는가?
별의별 범죄를 다 저지르고 다녔을 거라고 조진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처벌받지 않으면 아니 처벌받더라도, 범죄자들은 범죄 순간의 짜릿하고 쫄깃쫄깃한 긴장감을 못 잊어 계속 범행을 하는 게 인간이다.
이들이 전쟁통에 살인으로 범죄를 대신했으니 망정이지···.
노비를 어머니로 둔 사세 사공 가문의 얼자인 원소와 한나라 최고의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더러운 뇌물로 치부한 환관의 손자 조조.
조진은 이들이 난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별의별 범죄를 다 저질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떻게 보면, 원소와 조조는 때를 잘 만난 행운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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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가끔 고향에 내려가 지낸 적이 있었다.
말은 공부했다는데,
글쎄. 분을 삭이며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하여간 고향에 내려 가서,
공부는 안 하고 사고 치며 같이 몰려다녔는데, 이때 의기투합 되어 같이 다녔던 사람들이 하후돈과 하후연 형제였다.
조조가 현의 관리에게 일을 저질러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자 하후연이 그 죄를 대신 떠맡아 감옥에 가겠다고 나섰을 정도로 하후돈의 조조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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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은 군량 수급을 잘했고, 행군 속도가 빨라 적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 공을 세운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숙부님은 여전하시군요.”
“여전하지.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겠냐? 그런데 네가 추천했던 그 요화란 녀석 말이다.
그 녀석 생각보다 제법이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제법 글도 읽어 아는 것도 많은 데다 무예도 뛰어나 내가 요긴하게 쓰고 있다.”
“하하! 제가 아무나 추천했겠습니까!”
“그래. 그건 그렇고. 네 소문은 내가 많이 들었다.
학문과 무예가 뛰어나다고?”
“열심히 노오력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말이다. 나는 내가 직접 보지 않고는 잘 믿지 않는 사람이라서 말이지.”
하후연이 장난기 어린 눈으로 조진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생각한다.
‘내가 올해 41일세. 아직 선봉에 설 수 있지만, 몇 년을 더 서겠는가?
이제 선봉에 설 녀석들이 조 씨와 하루 씨에서 나와야 할 때인데···.
이 녀석과 최근에 합류한 조예가 쓸만했으면 좋겠군.’
“...?”
“일단 네가 데려온 병사들이 지낼 곳을 살펴보고, 한 시진 후에 연무장으로 와라.
네가 쓰던 활, 창, 칼 다 가지고 오고.
내가 한번 얼마나 하는지 봐야겠다.”
“하하! 좋습니다.”
하후연의 나이가 41세, 하후돈과 조조가 43이다.
일반적인 나이로 보면 무장으로서는 한물갔다고 할 수 있다.
조진이 전생을 살 때 격투기의 최고봉인 UFC 최고의 선수들 나이가 34세였다.
30대 후반부터 내리막을 타는 게 일반적이다.
이 시대의 일반적인 수명을 생각하면 40을 넘어선 하후연은 나이가 적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데 원래 강골로 태어난 것도 있지만, 평생 무예를 갈고 닦으며 체력 관리를 해서인지, 몸에 힘이 넘친다.
‘평소 관리를 잘하고 있군···. 평생 전장을 누빈 사람답게 풍기는 기도도 심상치 않다.’
똥배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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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
조진이 데려온 부하들을 돌아보고 연무장으로 가니, 하후연의 참모들과 부장들 그리고 요화까지 수십 명이 구경하러 나와 있다.
‘헐! 갑자기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군···.’
‘하후연이 공개적으로 무예를 시험해 내 지위를 공인받게 하려는 거···?’
‘...?!’
조진은 나이가 겨우 16살인데, 1,200명의 병력 이상을 지휘하게 된다.
여기에 병력을 조금만 더 더해주면 2천 명 이상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된다는 말이다.
21세기로 말하면, 대기업에 방계 로열패밀리의 아들이 대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부장 직함을 달고 출근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자기 부하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어 능력 있는 낙하산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건가?’
하후연의 생각이 그 정도로 깊다고···?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하후연은 그렇게 꾀가 많은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
아마도 별생각 없이 부관에게 말했을 것이고, 부관에게서 말을 들은 장수들과 참모들이 좋은 구경거리 생겼다고 몰려 왔을 것이다.
조진이 연무장에 먼저 도착해 하후연을 기다리는데 하후연이 20세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장수와 함께 오고 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젊은 장수인데 갑옷과 투구의 품질이 좋은 것을 보니, 좋은 집안 출신인 게 확실했다.
하후연이 같이 오는 청년 장수와 정겹게 이야기하고 오는 걸 보고 조진은 확신했다.
‘또 다른 낙하산인 것 같군!’
조진에게 가까이 온 하후연이 말했다.
“진아야! 최근에 합류한 조 씨 일족의 청년 장수이다. 이름은 조휴라고 하고.”
‘아! 조휴가 있었지···.’
조진이 조휴를 쳐다보니, 조휴가 반가워하며 말한다.
“네가 신동으로 유명한 조진이구나. 나는 조휴라고 한다.”
“조진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진이 조휴와 인사를 나누자, 하후연이 말한다.
“휴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장례를 치른 후, 모친을 모시고 고향인 초현을 떠나 할아버지가 태수를 역임했던 오군으로 이사를 했다 얼마 전에 허도로 왔다.
활을 잘 다루고 말을 잘 타 호표기에 들어가 있지.
휴가 20살이니, 진이 네가 형님으로 잘 모셔라.”
“예!”
졸지에 형님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얘도 오래 못 사는 거로 기억이 난다.
조진과 조휴는 방계 혈족이라 자기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조비가 총애했지만, 둘 다 일찍 죽어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할 수 있었다.
조휴와의 인사가 끝나자, 하후연이 뭐가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야! 이거 우리 일족의 젊은 녀석들이 선봉에 설 장수가 될 날이 머지않았구나.
나하고 돈 형님이 40살이 넘어서면서부터 조인 말고는 장군 할 놈들이 없다면서 한탄을 했는데 말이다.”
“...!”
조진이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데, 조휴가 나서며 말한다.
“저희 말고도 많이 있잖습니까? 창이도 있고요.”
“야! 창이가 몇 살인데? 이제 겨우 9살이야. 언제 커서 장군이 되겠냐?”
“하하! 진이를 보면 창이도 7년 후에는 전장에 나서지 않을까요?”
조휴의 말에, 하후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그건 그렇지 않아. 진이가 워낙 체격도 좋고 특이하게 무예를 좋아해서 그렇지, 다른 애들은 힘들 거다.
너무 일찍 나서는 것도 좋지 않아.
잘못하면 싹이 나기도 전에 죽을 수가 있거든.”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여간 창이는 창이고, 오늘은 너희들 둘이 함 겨뤄봐라.
누가 더 나은지 확인해봐야겠다.”
“일단 활 10발을 50보 떨어진 과녁에 쏴봐라.”
“예!”
“옙!”
“쉭! 쉬쉭!”
둘이 연달아 10발씩을 쐈다.
“짝짝짝! 좋군, 아주 좋아. 둘 다 10발 모두 과녁 중앙을 맞추다니, 아주 좋다.
그럼 이번엔 100보 떨어진 과녁에 10발씩 쏴라!”
“예!”
“옙!”
“쉭! 쉬쉭!”
“크하하하하! 이거 아주 기분이 좋군. 둘 다 실력이 아주 뛰어나구나!
10발을 모두 과녁 중앙에 집어넣다니 말이다.
그러면 활은 됐고,
창날을 무디게 만든 대련용 창을 가지고 한번 대련해봐라.”
“예!”
“옙!”
조진은 잠시 고민한다.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을까···?”
하후연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좋다.
그러나 의심 대마왕인 조조는···?
능력 있는 자를 좋아하고 총애하지만, 조조는 한편으로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시기한다.
양표의 아들 양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양수는 조조가 잘난 체를 하고 싶어 하는데 항상 자기가 더 조조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걸 자랑했다.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고 세상에 자기를 돋보이고 싶어 하는 조조의 성격은 고려하지도 않고.
학업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살다 죽은 건 양표의 아들만이 아니다.
예형도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조진은 일단 요화하고 대결할 때보다 한 단계 향상된 자신의 능력을 다 보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조조보다 더 난이도가 높은 조비를 생각해서다.
조비!
이놈은 조조의 나쁜 점만 배운다.
왕이 될 때까지는 조조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현명한 척, 인내심이 있는 척, 사려 깊은 척, 군주의 자질을 가진 척한다.
그러나 조조가 죽고 왕이 되는 순간,
억눌려 있던 조비의 본성이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자기감정만 중시하는
하급 군주가 된다.
뭐든 길게 보는 건 없고 한마디로 자기 꼴리는 대로 하는 절대자!
‘그러니 조조가 아니라 조비의 눈치를 보면서 지내야 한다.
어차피 조비는 얼마 살지도 못하지 않는가!
조비가 죽으면···,
그때부터 내 세상이 될 수 있다!’
조진은 조휴에 딱 맞춰 창술을 겨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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