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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야기

문제유발동화 Parody 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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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3.07 21:39
최근연재일 :
2020.05.25 09:00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104,100
추천수 :
4,112
글자수 :
761,861

작성
18.12.07 23:48
조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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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1-03. 빨간 꿈의 소녀 (6)

DUMMY

“왜 우는 거니?”


크라셴은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어떤 남자가 그 앞에 서 있었다.

크라셴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 남자를 올려 보았다.

그는 키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올려 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시선의 높이가 많이 내려간 것 같았다. 마치 어린 꼬마가 된 것 같았다.

크라셴은 제 눈을 비볐다.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외로워요, 괴로워요.”


그 남자는 온통 새하얀 색이었다. 머리카락도 피부도 옷도 새하얀 색이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는 울며 그 남자에게 모든 걸 털어 놓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왜 다들 저를 보고 잘못되었다고 하는 거죠? 전 춤추는 것이 즐거울 뿐이에요.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게 뭐가 잘못된 거에요?”


하얀 남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그를 내려 보았다.

그는, 아니 소녀는 무언가 떠올랐다.

케이크 위의 촛불처럼 빛나는 도시에서 작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엄마는 소녀의 손을 꽉 잡고 억지로 이사를 결정했다.

엄마는 무서운 얼굴로 소녀를 데리고 어떤 방으로 데려왔다.

소녀도 이곳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엄마는 소녀에게 세계를 알려주려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곤 했다.

어느새 소녀는 재판소의 죄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높은 곳에는 판사로 보이는 새하얀 남자만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소녀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심원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소녀는 뒤로 돌아 증인석 쪽을 보았다.

여자는 검은 옷을 입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콕콕 닦으면서 말했다.


“네가 이렇게 허영심이 강한 아이가 되다니. 우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우리 분수에 맞아야지. 아가야. 이제 엄마가 도와줄게. 넌 다시 정숙하고 천사 같은 아이가 될 거야.”


“판결을 내린다!”


하얀 남자가 재판봉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이 소녀는 빨간 구두를 계속 생각하며, 어머니의 눈을 속이고 무도회를 돌아다녔다. 어울리지 않은 드레스를 입으면서,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세상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소녀를 손가락질했다.


“죄인 카렌에게는 허영죄를 내린다.”


“제가 뭘 잘못했어요?”


소녀는 소리쳤다.


“제가 춤을 추는 게 잘못된 거라면 그건 세상이 잘못된 거야! 그냥 여기를 무도회장으로 만들어버리면 되잖아요?”


소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감히 판결을 받고도 그런 죄가 깊은 말을 하다니.

그들의 차가운 시선에 소녀는 팔을 움츠렸다.


“죄인에게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할 기회를 주겠다. 죄인은 ‘허영의 춤’을 추며 영원히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


“헉, 꿈이었나.”


크라셴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렌, 사제님 앞에 왔는데 한눈을 팔다니 버릇이 없잖니!”


크라셴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어디선가 본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사제를 보았다.

사제는 빙긋 웃으면서 두 손을 모으더니 여자에게 말했다.


“부인, 일단 아이와 단 둘이 남겨 주세요. 제가 신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 네.”


여자는 서둘러 방을 떠났다.

그 순간 방은 어두워졌다. 크라셴은 불안하게 주변을 보았다.

상자처럼 어두운 방에 남겨진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여자애를 남자와 단 둘이 남겨두다니.’


크라셴은 금방 그가 소녀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도 꿈이었겠지. 이번에도 꿈이고.’


크라셴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상태가 되었다.

인간은 하룻밤동안 꿈을 여러 개나 꾼다고 하지 않던가.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몇 개 밖에 없다고 한다.

부글거리는 바닥에 가라앉는 것이나, 말도 안 되는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꿈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었다.

문제는 자꾸 이 소녀가 나오는 꿈을 왜 꾸는가였다.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소녀의 입에서 항변이 나왔다.


“저는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사람들은 제가 붉은 구두를 신은 것만으로도 인상을 찌푸렸어요. 공주님이 붉은 구두를 신은 건 아무런 말도 없는데요.”


“그 공주님도 교회에서는 붉은 구두를 신지 않았을 거야.”


“어째서 교회에서는 붉은 구두를 신으면 안 되죠? 겸손하지 않아서요? 신이라면 붉은 구두를 신은 신자도 사랑할 거에요. 신은 모두를 사랑하다고 하셨으니까요.”


“네 머릿속에는 네 화려한 자신 생각뿐이었잖니. 그건 이기적이고, 허영심이고, 죄악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게 왜 죄이죠? 저 빼고는 그 누구도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교회의 사제님은 인간은 자기가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담을 수 있다고 했어요. 신만이 그런 인간들을 다 사랑한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하잖니.”


“제 모습이, 제 춤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았잖아요?”


소녀의 질문에 사제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럴 법도 했다. 소녀는 사제의 말에 한 마디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속에는 악마가 들어차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사제는 자리를 박차고 방을 떠나 버렸다.

크라셴은 그 순간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소녀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혼란스럽고 화가 난 것 같았다.

소녀는 고개를 홱 들어 크라셴을 보았다.

다시 마주친 그녀의 눈빛이었다. 크라셴은 움찔했다.


“아저씨도 제가 못된 계집애라고 생각하죠?”


소녀의 말에 크라셴은 한숨을 쉬었다.

이 소녀가 춤에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네 말이 옳아. 남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야.”


크라셴의 말에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고요?”


“아, 진짜. 진심으로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야.”


그 때였단. 문이 열리자 한 새하얀 남자가 보였다.

그는 크라셴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소녀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남자를 보았다.

재판소에서 판결을 내렸던 남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소녀에게 다가왔다.


“사제님으로부터 네 이야기는 들었단다. 엄청 화를 내더구나. 네게 악마가 들어있다고 말이야.”


“사제님들은 툭하면 악마 이야기나 하니까요.”


소녀는 재판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크라셴은 왠지 소녀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막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사제들은 좀 딱딱하잖니.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단다.”


“네?”


“네 말대로 온 세상을 무도회장으로 만들면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 않잖니. 그리고 넌 영원히 사랑을 찾아다닐 수 있어.”


남자의 부드러운 미소에 크라셴은 인상을 썼다.

어째서인지 사기꾼의 미소를 보는 것 같았다.


“자, 이걸 가져가렴.”


남자는 새빨간 자루를 꺼냈다.

소녀는 의아해하면서 자루를 받았다. 남자는 비밀스럽게 손가락을 제 입술 위로 올렸다.


“이걸 안고 자면 행복한 꿈을 꿀 거야. 꿈속의 세상에서는 아무도 널 방해하지 않아.”


“자, 잠깐만!”


크라셴은 손을 뻗었지만 소녀도 남자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꿈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고요?”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준 남자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 넌 꿈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춤을 추고, 사랑의 박수를 받을 거야.”


“사랑의 박수···.”


“네가 다른 사람의 박수를 받으면 꿈을 더 꾸게 해줄게.”


소녀는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자루에서 붉은 가루가 확 일어나서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

그 순간 하얀 남자와 좁은 방은 사라졌다.

갑자기 바닥에서 커다란 오르간이 튀어 올라왔다. 천장에서는 붉은 샹들리에가 내려왔다.

그 방은 순식간에 무도회장이 되었다.

소녀는 어느새 아름다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엄마가 데려오는 이상한 선생님들과 의사들.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소녀에게 사랑에 빠졌다.

선생님들이 부럽다고 했다. 의사들도 박수를 쳐 주었다.

그들이 박수를 치면 칠수록 붉은 가루가 늘어났다.

춤을 추고 웃고, 새로운 사람의 박수가 필요했다.


“어째서 아저씨는 내게 박수를 치지 않지?”


소녀는 춤을 추면서 소리쳤다. 박수를 얻지 못하자 소녀에게 춤은 벌이 되었다.

소녀의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가 박수를 칠 때까지 춤을 춰야 했다. 춤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빨리 박수 쳐!”


소녀는 크라셴에게 달려 들었다.


“크래미! 깨어나게!”


“어?”


“당장 일어나게!”


그 순간 크라셴의 몸은 금색으로 빛나더니 먼지처럼 흩어졌다.

소녀는 크라셴에게 손을 뻗다가 멍하니 사라진 금색의 가루를 보았다.

멍해진 소녀의 머리와 달리 몸은 엉망진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춤을 멈출 수 없다. 영원히, 심장이 터질 때까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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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04. 개구리 연인 (3) 18.12.13 99 2 15쪽
17 1-04. 개구리 연인 (2) 18.12.12 110 3 13쪽
16 1-04. 개구리 연인 (1) 18.12.11 106 3 14쪽
15 1-03. Intermission. 마왕성의 정체 +1 18.12.10 119 4 10쪽
14 1-03. 빨간 꿈의 소녀 (9) +2 18.12.09 112 2 12쪽
13 1-03. 빨간 꿈의 소녀 (8) 18.12.09 100 4 12쪽
12 1-03. 빨간 꿈의 소녀 (7) 18.12.08 114 2 13쪽
» 1-03. 빨간 꿈의 소녀 (6) 18.12.07 124 4 9쪽
10 1-03. 빨간 꿈의 소녀 (5) 18.12.06 141 3 11쪽
9 1-03. 빨간 꿈의 소녀 (4) 18.12.05 132 4 12쪽
8 1-03. 빨간 꿈의 소녀 (3) 18.12.04 138 4 9쪽
7 1-03. 빨간 꿈의 소녀 (2) 18.12.03 141 5 12쪽
6 1-03. 빨간 꿈의 소녀 (1) 18.12.03 174 6 13쪽
5 1-02. 용사를 위한 여행안내서 18.12.02 211 5 15쪽
4 1-01. 납치범의 사정 (3) 18.12.01 244 5 13쪽
3 1-01. 납치범의 사정 (2) 18.12.01 333 4 17쪽
2 1-01. 납치범의 사정 (1) 18.12.01 449 8 11쪽
1 Prologue. 어느 왕국의 이야기 18.11.29 747 1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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