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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Jason 님의 서재입니다.

예술천재 탑배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박천상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3.19 17:17
최근연재일 :
2024.04.15 08:0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46,489
추천수 :
1,856
글자수 :
215,706

작성
24.03.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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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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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19쪽

그게 나야

DUMMY


“3, 4화 OST는 최해문 배우 노래로 가는 거로 하자고.”


호현진 피디가 불쑥 던진 말. 그 말에 최해문은 당황스러웠다.


앞뒤 말을 이어보면 대강 직접 부른 노래를 그대로 OST로 실어버리자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한데.


‘아니 그 정도 수준까지 될지는 나도 모르는데.’


연기 속에 녹여내는 것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건 연기의 일부니까. 대본의 가이드라인 그 자체를 따르면 된다.


하지만 OST면 개별적으로 따로 녹음도 해야 하지 않나. 녹음실에서 프로듀서가 지시하는 대로 노래 부르기라니.


그거까지는 아직 실험하지 않아 자신이 없는 최해문이었다.


그런 배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묵을 유지하면 정영진 감독은 낀 팔짱을 풀지 않고 처음 입을 열었다.


“정말로 3, 4화 OST 작업이 가능하시겠습니까? 정말로?”


둥근 얼굴에 비해 한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최해문을 바라보았다.


“에헤이. 정 감독. 왜 그렇게 말해.”

“그냥 전 순전히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진짜로 가능해서 대답한 건지, 아니면 그냥 배역 때문에 대충 알겠다고 한 건지.”

“이번에 오디션 영상 보여줬잖아. 우리 최해문 배우가 보통이 아니라니까? 음악 감독이 보기에도 노래 좋다며.”

“글쎄요. 그 영상에 나오는 노래가 좋은 것과 OST 작업은 명백히 다른 분야라서.”


까칠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해문은 몇 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일단 저 남자가 음악 감독이네.’


이미 어느 정도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되는 것을 보니 이 이야기가 여기서 처음 나온 것도 아님이 분명했다.


왜 꺼냈을까.


이유야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때 그 노래 때문인가.’


지금 당장 손에 들린 대본에 새롭게 추가된 공연 장면.


아마도 호현진 피디는 그 장면을 구상하면서 최해문이 오디션 때 보여줬던 연주가 생각났을 것이다.


‘기왕이면 그 음악을 그대로 OST로 쓰고 싶다는 건가.’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긴 했다.


OST라는 말 자체가 Original Sound Track, 특정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을 모은 음반이니까.


최해문의 노래 역시 작품을 위해 만든 것이니 분명 의미 자체는 맞았고, 넣는다고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OST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 피디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때는 OST가 단순히 수록곡 정도의 의미만 가지던 때도 있었다.


물론 현재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금의 OST는 드라마에 필수 불가결의 존재다.


단순히 작품과 장면의 분위기를 실리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히트곡이 되기도 하고, 유명 가수의 참가 덕에 드라마가 상승효과를 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어떨 때는 작품 자체를 상징하게 되어 노래만 들어도 모두가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드라마 OST는 해외에 리메이크될 때 상징성이 너무 커서 번안곡(飜案曲) 행태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정 감독의 거절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디님 제안에 대해서 제 생각은 아직도 똑같습니다. 아무런 증명된 것도 없는 무명배우를 위해 OST 한자리를 내기는 힘들다는 거요. 아무리 배우가 호언장담한다고 해도요.”


단호한 말투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살짝 굳었다.


그 덕에 최해문은 생각할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OST라. ’


뭐랄까. 솔직히 배역에 이미 합격한 현재 OST는 최해문에게 그저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원래도 연기만 바라보았다. 갑자기 OST라고 해도 딱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아직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실험도 못 한 이상 자신도 없었다.


다만 뭐랄까.


이미 배역에 붙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기는 자신감 덕일까. 아니면 능력의 힘 덕분일까.


최해문은 묘하게 음악 감독의 말이 거슬렸다.


단순히 OST는 가수에게 맡겨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 정도라면 그저 끄덕이고 넘어갔을 텐데.


굳이 무명배우라고 걸고 넘어간 점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그건 좀 듣기 그렇군요.”


그렇기에 말한다. 이제 자신도 어엿한 이 작품의 일원이니까.


최소한 같이 작업하는 식구끼리 무명이니 뭐니 하면서 깔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건 당신도 알지?


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그런 지적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굳이 어떤 부분이 불편했는지를 명시하지 않은 것에 있었다.


“맞아. 이건 정 감독이 말실수한 거야. 아무런 증명된 게 없다니. 오디션 영상만 봐도 사이즈 나오는 건 정 감독도 인정한 거잖아.”


응?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튀어.


“···그건 확실히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OST 문제는 양보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3, 4화에 맞춰서 작업한 곡도 있습니다.”

“그건 대본 바뀐 이상 쓰기 힘들잖아.”

“어차피 추리 스릴러인 건 똑같지 않습니까. OST면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래 부를 가수만 찾으면 되는 시점에 그렇게 바꾸면 저희 팀이 어떻게 됩니까.”


아니 나도 그 부분은 인정하니까 무명배우라고 무시한 거 사과하시라니까요. 이 사람들이 왜 이걸로 자기들끼리 실랑이 중이야.


중간에 무언가 말을 꺼내려 최해문의 입이 달싹거렸지만, 막상 둘 사이의 이야기가 너무 진중해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OST 관련해서 그쪽 팀이 양보하기 힘든 건 나도 알겠어. 그래도 솔직히 말해봐. 정 감독도 이 노래 아깝잖아.”

“흠···. 멜로디는 아깝긴 합니다. 그래도 완성된 곡은 모르는 거니까요.”

“완성이 안 돼서 그렇다라. 그럼 완성을 해오면?”


어느새 실랑이를 넘어 음악 감독과 협상하던 호현진 피디가 최해문을 바라보았다.


“최해문 배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완성된 곡이라면 OST로 싣는 것을 고려해본다는 의견이.”


어떻게 생각하긴. 별생각 없는데.


속마음은 그랬지만 최해문은 그걸 쉽사리 입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음악 감독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과 자신을 뽑아준 피디의 제안을 단박에 쳐내는 것은 명백히 다르니까.


뭐라고 해야 잘 돌려서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으로 최해문이 조심스럽게 턱을 쓰다듬자 그 모습을 본 호현진 피디가 작게 손뼉을 쳤다.


“아 참. 내가 중요한 걸 이야기 안 했네. 당연하지만 OST 참여에 따른 저작권료라던가 작곡비는 지급될 겁니다.”

“···작곡비?”

“원래라면 노래를 KBC 팀에서 만드니까 작곡비가 없는데 최해문 배우가 직접 보여준 그 노래로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저작권료. 작곡비.


즉, 돈.


“얼마나 됩니까?”

“음, 그 부분은 아직 외부 작곡비에 대한 예산이 안 잡혀 있어서 쉽게 확정은 어려운데. 대신 최대한 저작권 쪽으로 좋게 가져갈 수 있게 조절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당장 줄 돈은 많이 없지만 노래가 대박 터지면 조금 더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건가.


그다지 관심이 없던 최해문에게 날아든 돈이라는 단어는 그의 생각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매력적인 제안이긴 해.’


일단 곡을 완성해야 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다. 어차피 연기 때 써야 하니까.


그런데 그걸 하면 돈을 준단다. 안 그래도 서울에 계속 있게 되면 계속해서 부족할 돈을.


그럼 문제는 그걸 OST로 만들기 위해 녹음하는 과정을 할 수 있냐는 것.


‘어차피 실험도 한번 해야 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하나 있긴 한데.’


얼핏 음악에 미쳐 살았던 친구의 얼굴이 최해문의 머리를 스쳤다.


‘할만할지도.’


자신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할 일도 아니었다.


최소한 해보겠다고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최해문은 평탄한 어조로 호현진 피디의 의견에 동조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단 저는 곡을 만들라고 한다면 만들 자신은 있습니다. 당장 대본에 나오는 연기에도 필요하기도 하고요.”

“역시!”

“하지만 저도 음악 감독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쪽 팀의 사정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직접 듣고 판단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말에 정 감독의 눈이 꿈틀했다.


“제가 아예 연기에 쓸 곡을 완성해서 가져오겠습니다. 이미 완성된 OST도 있다고 하셨으니 그 두 가지를 놓고 감독님께서 선택하시는 겁니다.”

“흠.”


누가 봐도 적당한 타협책이었다. 일단 두고 보자는 것이니까.


최해문으로서도 썩 괜찮은 선택지였다. 만약 곡을 망치더라도 쪽팔린 정도로 끝내고 작품에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니까.


당연히 호현진 피디 역시 만족스럽게 웃음을 띠었다.


“좋네. 좋은 아이디어야. 어때. 이 정도면 정 감독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좋습니다. 완성된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까지는 가능합니다.”

“그럼 그렇게 결정하는 거로 하고. 곡을 가져오는 기한은 어디 보자. 아, 이 이날까지 하면 어떤가 싶은데?”


옆에 놓인 달력을 넘겨보던 호 피디가 동그라미 쳐진 날짜 하나를 내밀었다.


“어차피 최해문 배우한테는 오늘 알려줄 거였는데. 마침 잘됐네. 이날 우리 대본 리딩 날이니까 이날까지 해오는 건 어떻습니까. 모두 앞에 최해문 배우 얼굴도 보여주면서 함께 하는 건.”

달력을 보자 남은 시간은 대략 2주 뒤.


그 정도 시간이면 뭐든 확정을 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조연인 줄 알았던 최해문의 역할은, 어느새 주조연 확정과 OST 참여 가수 후보자가 된 상태였다.


···


그로부터 1시간 후.


각종 일정 조율과 출연료 관련 이야기까지 마친 최해문이 사라진 회의실.


정영진 감독은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호현진 피디를 바라보았다.


“꼭 넣으셔야겠습니까? 솔직히 들어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오디션 영상에 나오는 노래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이라니.


분명 나쁘냐 좋냐고 묻는다면 괜찮은 노래긴 했지만 이게 이렇게 밀어붙이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연기하면서 피아노로 대충 쳐서 만든 노래이지 않나.


아무리 대단한 연기였다고 하지만 그저 연기의 일부. OST 감까지는 아니었는데.


“정 감독. 나 진심이야. 무조건 그거 실어야 해.”

“노래가 좋아서요?”

“아니. 노래 말고 배우가 좋아서.”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정 감독의 눈이 커졌다.


“아까는 노래 때문이라고 하셨으면서 그게 무슨 소립니까.”

“노래가 중요하긴 하지. 좋기도 하고. 근데 내가 보이는 각이 좀 있거든.”


호현진 피디는 자신의 앞에 놓인 대본을 바라보았다.


“이 바닥에 오래 구르다 보면 딱 보면 장면이 그려지거든? 정 감독도 그럴 때 있잖아. 대충 듣기만 해도 사이즈 나오는 거.”

“저도 있긴 하죠.”

“나도 그래. 저 배우가 작정하고 화면 앞에서 노래하면 그거 무조건 대박 날 거야. 작품은 몰라도 적어도 그 장면 하나는 계속 남을 느낌이 나.”


피디의 의도를 이해한 정 감독이 눈을 감았다.


노래가 남는 게 아니라 장면이 남을 거다. 그러니까 배우가 좋다고 한 건가.


“그거 대박 나고 난 다음에 그때 가서 부랴부랴 OST 이야기 꺼내도 늦을걸?”

“흠···.”

“뭐, 정 감독 생각도 이해가 가긴 해. 못 미덥지. 경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무명배우 볼 게 뭐가 있다고. 나도 저 배우 보기 전에는 비슷하게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저 배우는 뭐가 있어도 확실히 있는 사람 같으니까.”


한껏 기대감에 부푼 피디의 말.


그게 과연 뜻대로 되는지 확인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


최해문이 KBC를 빠져나온 뒤에는 제법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에 지는 노을.


시계를 일주일만 뒤로 돌려도 마치 인생의 황혼기처럼 느껴지던 노을이었는데.


지금의 최해문에게는 그 풍경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일 뿐이었다.


“조연에서 주·조연으로 올랐고. 출연료도 괜찮게 측정됐고. 행복하구먼.”


원래라면 경력이 거의 0이었기에 출연료 등급표상 제일 아랫급일 줄 알았는데.


확실히 주·조연으로 오른 비중이 도움이 됐는지, 그것도 몇 급이나 높여서 받은 상태여서 예정된 출연료가 제법 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고민이 없는 것 역시 아니었다.


‘돈도 없고. OST 문제도 있고.’


출연료는 당장 지급되는 것이 아니다. 급전이 필요하다.


거기에 OST 관련으로 일단 질러놓은 이상 대충해서 가져갈 수는 없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는 최선을 다한 다음에 할 수 있는 소리다.


아무리 선택이라고는 해도 영 이상한 것을 가져간다면 음악 감독과 피디를 쌍으로 화나게 할 수도 있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최해문에게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그럼 일단 연락부터 해볼까.”


고민이 있을 때는 미루기보다는 빨리 처리하는 게 상책. 거기에 마침 전달하고 싶은 좋은 소식도 있지 않나.


최해문은 얼른 휴대폰을 열어 회의실 때부터 생각나던 친구에게 연락을 걸었다.


통화음이 얼마나 갔을까. 2번 3번 반복되던 음이 이내 바뀌며 반대쪽과 연결되었다.


“어 윤승아.”

[···최해문이냐?]

“그럼 내 번호지 이 새끼야. 그새 번호 지웠냐.”

[너 오늘이 저번 연락 후에 며칠만인지 아냐?]

“어디 보자. 한 10일 됐나? 근데 그게 왜.”

[별 생각 없어? 너 나한테 전해줄 게 분명 몇 개 있을 텐데.]

“아 그거! 있지.”


최해문은 실실 웃으면서 제일 중요한 사실을 꺼냈다.


“나 합격했다.”

[···아, 진짜로?]

“어. 나 이제 KBC 배우임. 뭐 TV에 나오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와. 진짜로 됐네. 축하한다.]

“뭔가 축하가 약하다?”

[야. 원래 이런 건 만나서 제대로 하는 거야. 너 어디냐. 내가 간다. 저번에 합격하면 술 마시자며.]

“좋지. 나 여기 KBC 본관이니까 평소에 보던 거기서 보자.”

[오케이.]


그렇게 최해문은 친구를 만나 설득할 단어를 고르며 역으로 향했다.


반대쪽의 허윤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


짠.


술잔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곱창집에 울려 퍼진다.


며칠 전까지 최해문이 고향으로 내려갈 것을 털어놓던 곳이었던 장소가 이제는 축하의 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딱 붙었다. 나도 진짜 배역을 따는 날이 오는구나.”

“축하한다. 그래도 주·조연은 진짜 의외네.”

“나도 놀랐지. 덕분에 첫 데뷔가 지상파에 주·조연이 됐으니 진짜 작가님 만만세다.”

“뭐. 그것도 연기를 잘했으니까 되는 거지. 12년을 고생하더니 이제 빛을 보네.”

“고맙다.”


다시 한번 짠.


술이 부드럽게 입술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크. 근데 진짜 상태 따라서 술맛이 다른가. 오늘은 좀 많이 쓰네.”


저번에 고향 갈 생각일 때는 더럽게 달더니. 이제는 쓴맛이 계속 입안을 맴돌았다.


그런 말을 하는 최해문을 보면서 허윤승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넌 그러냐. 난 좀 많이 단데.”

“···왜. 무슨 일 있냐?”

“있긴 하지.”

“뭔데. 끙끙거리지 말고 말을 해.”


한숨 한번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허윤승이 입을 열었다.


“너 합격했다고 해서 이야기를 바로 못 했는데. 너 혹시 나랑 한 약속 기억하냐?”

“약속? 뭐가 있었지···.”


최해문은 그 말에 최대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표정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뭔가 고민이 가득한 상태인데 첫 이야기가 자신과의 약속 이야기인 걸 보면 모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얼마나 고민했을까.


10초쯤 뒤 최해문의 머리에 무언가 스쳤다.


‘···맞다! 그 노래!’


친구가 그 노래 작곡가한테 연락해달라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렇게 말해두면 자연스럽게 잊힐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오디션 문제가 있어서 잠시 까먹고 있었다.


“어 미안하다. 오디션 때문에 이제 생각났다. 그때 그 노래 말하는 거지?”

“그래. 헤이븐이라는 작곡가한테 이야기 전해준다며.”


내가 헤이븐이라고 했구나.


그때 대충 둘러댔던 가명마저 이제 생각난 최해문은 조심스럽게 상대의 의중을 살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일단 상태로만 보면 잊기는커녕 뭔가 더 생긴 건 확실하고.


그렇다고 이렇게 땅이 꺼지라고 한숨만 쉬는 친구한테 ‘사실 전달했는데 안 됐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 일단 전달은 했는데 아직 답장은 없어.”

“···진짜로? 하. 조졌네.”


이제는 숫제 아예 머리를 테이블에 붙인 허윤승의 모습을 본 최해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 좀 해봐.”

“쓰읍. 사실 말이다.”


허윤승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풀어서 설명했다.


일단 허락 전까지는 회사에 감추려 했던 것부터 그걸 멤버 중 하나가 불안감에 풀어버린 것. 그리고 사장이 그 곡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까지 전부.


당연하지만 걸그룹에 가장 깊게 관여한 사람들이 모두 그 곡 하나에 폭 빠졌다는 이야기가 주된 골자였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지른 일이 너무나 커져 버린 것에 공포를 느끼던 최해문은, 마지막 사장의 제안 파트에 이르자 갑자기 감정이 확 변했다.


“···그래서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제시한 작곡비가 얼마라고?”

“500. 만약 그쪽에서 더 달라고 하면 최대 200 더.”

“만약, 만약에 말이야. 그쪽에서 제안을 수락한다면 어떻게 되냐? 돈은 언제 주는 거고?”

“그럼 뭐 최대한 깔끔한 곡 받고 바로 입금이지. 원래는 좀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 우리는 진짜 곡만 필요한 거니까.”


최대 700만 원.


최해문은 그 숫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몇 시간 전 OST 이야기 때문에 최해문은 친구인 허윤승이 필요하다.


그런데 허윤승은 최해문이 만든 노래가 필요하다고 한다.


‘거기에 돈도 준다네?’


OST와는 달리 이쪽은 구체적인 금액을 바로 한몫 때준단다.


그 돈의 1/3이면 당장 필요한 돈 걱정은 싹 사라진다. 그 후로는 출연료가 어떻게 해줄 거고.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최해문의 머릿속에서 각종 상황이 부드럽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나만 어떻게 하면 이거 단박에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에도 허윤승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지금 상황이 복잡하다. 곡은 꼭 필요한데 자금은 없고. 그래서 최대한 준비한 게 그거였거든. 근데 10일 전에 보낸 연락에 아직도 답장이 없다며. 그럼 지금 연락해서 그 작곡비 이야기 꺼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냐.”

“···”

“하. 차라리 눈앞에 있으면 진짜 바짓가랑이라도 잡겠는데. 너도 인터넷으로 만난 거라며. 진짜 어떻게 만날, 아니다 통화라도 할 방법 없냐? 직접 말만 할 수 있으면 내가 해볼 수 있거든? 그러니까-”

“야. 윤승아.”


불쑥 최해문이 말을 끊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허윤승이 고개를 들었다.


“왜?”

“그 있잖냐. 지금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응?”


잠깐의 정적 후.


고민 끝에 최해문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말을 불쑥 꺼내 들었다.


“사실 그 헤이븐이 나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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