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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Jason 님의 서재입니다.

예술천재 탑배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박천상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3.19 17:17
최근연재일 :
2024.04.15 08:0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46,423
추천수 :
1,856
글자수 :
215,706

작성
24.03.19 20:05
조회
2,921
추천
93
글자
16쪽

아버지의 이름으로

DUMMY


“그래서 알바에서 잘렸다고?”


해가 져서 어둑해진 골목 사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연한 곱창집에서 말 하나가 툭 던져졌다.


“잘린 게 아니라 내가 그만둔 거라고 몇 번을 말하냐.”

“아니 이보세요 최해문씨.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이제 돈 벌 곳이 없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는 친구의 말이 최해문의 폐부를 찔렀다.


그 상처를 소독하려는 듯 소주잔 끝이 그의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크. 오늘따라 술이 달다.”

“달긴 개뿔. 지금 감상적인 이야기할 때가 아니잖냐. 너 이제 모아둔 돈 진짜 다된 거 아니야?”

“어. 이제 다음 달 월세 내기도 빠듯하지.”

“그럼 왜 그만두는데. 힘들어도 버텼어야지 어쩌자고 뛰쳐나왔냐.”


무슨 알바 자리 하나에 이렇게까지 뭐라 하냐고 반문할 수 있었지만, 최해문은 그러지 않았다.


저 말 뒤에 있는 진짜 의미가 너무나 분명했기에.


“이제 더는 못하겠더라고. 배우 포기할 거야.”

“···뭐?”


집어 들었던 곱창 하나가 툭 하고 접시로 떨어졌다.


“정말로 연기를 접는다고? 네가?”


허윤승은 친구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썩 낯설었다.


그가 아는 최해문이라는 인간은 연기에 있어서 언제나 진심인 사람이었다.


오로지 연기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


그런 친구가 이제는 초췌한 얼굴로 포기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었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알바가 힘들면 그거만 그만두면 되지. 연기는 갑자기 왜.”

“그냥. 이제는 진짜 좀 지쳐서.”


지금까지 본 오디션을 몇 개고 시도해 본 배역이 몇 개던가.


연습한다고 사 모은 대본은 또 몇 개며 돈을 쥐어짜며 간신히 다녔던 연기학원도 얼마나 되나.


그렇게나 열심히 했는데도 그가 지금까지 해본 배역이라고는 대사 한 줄 없는 병풍 엑스트라가 전부.


자그마치 12년을 그렇게 살았다.


지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했다.


“그리고 그거 말고도 이유가 있어.”

“뭔데.”

“아버지랑 약속했었어. 32살. 딱 그만큼 해보고 안 되면 그냥 고향 내려가기로.”


허윤승은 친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한 8년 됐나.’


대학교 시절 새벽같이 택시를 타고 갔던 장례식장을 생각하면 그 약속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 말이 다 맞는 거 같다. 언제까지고 이러고 살 수는 없지. 꿈 하나 때문에 서울에 붙어있는 게 이제 너무 지친다 지쳐.”


32살.


이룬 건 없는데 해야 할 건 많은 나이.


누군가는 이맘때쯤 번듯한 직장에 집, 차까지 다 가지고 있는데 최해문에게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력서에 쓰기에는 너무 초라한 엑스트라 배역 기록 몇 개와 산더미 같은 대본, 그리고 상자 몇 개에 다 들어가는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그래.”


자신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본 적 있는 허윤승은 말없이 친구의 비어있는 잔을 채워주었다.


짠.


어쩐지 평소보다 둔탁한 건배 소리가 사람들의 고성 사이로 흩어졌다.


“크, 네 말 들으니까 진짜 달긴 달다.”

“거봐. 오늘따라 달다니까 그러네.”

“이제 어쩌게. 바로 고향으로?”

“아니. 이번 달까지는 남아 있게. 마침 집 계약도 그 정도 남았고.”

“그럼 연기는 아예 관둘 생각?”


혹여나 취미로라도 남길 생각이 있는 걸까.


일말의 희망을 담은 말에 최해문은 고개를 저었다.


“어. 아예 안 하게. 마음먹기 전에 받은 오디션 하나 있긴 한데···. 어차피 그것도 무조건 탈락일 거고. 이제 연기는 아예 쳐다도 안 볼 생각이다. 고향 가면 어머니 농사나 좀 도와드리면서 다른 먹고살 거 찾아봐야지.”


이미 끝난 일이다. 더는 누구도 물릴 수 없는 그런 일.


친구의 말투에서 그걸 느낀 허윤승은 다시 한번 잔을 들어 보였다.


짠.


“에이. 그만하자. 어차피 끝나고 내려갈 건데 뭘 이런 안 좋은 이야기를 하냐. 네 이야기나 좀 해줘. 너 걸그룹 매니저 됐다며.”

“어 그랬지.”

“어때. 할만해?”

“말도 마라. 그 나이대 여자애들은 진짜 악마야 악마. 그리고 이제 2년 넘었는데 여전히 듣보라 언제 해체될지도 몰라. 내 전 매니저도 3달 만에 도망쳤다더라.”

“오. 그럼 해체되면 전화해. 우리 엄마 밭 소개해 줌.”

“에이씨. 술맛 떨어지게 뭔 그런 개소리를. 난 농사 절대로 안 한다. 그리고 해체되면 뭐, 다른 그룹 담당할 수도 있지.”

“예예. 매니저를 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음악계에 붙어있겠다는 의지 잘 알겠습니다.”

“어이구. 똑같이 하다가 포기하고 내려가는 사람이 말이 많네.”

“어어. 지금 우리 아버지 건드리는 거냐?”

“와 이게 탈룰라로 간다고?”


오래된 친구답게 둘의 이야기는 금방 활력을 띄웠다.


다만 채 풀지 못한 찝찝한 감정은 가라앉을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감정의 바닥을 굴러다녔다.


**


다음 날 오후 6시.


어제 진득하게 만든 술 때문에 점심쯤 일어난 최해문은 집 안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정리라고 해도 무언가 대단한 것은 없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가구조차 없는 방이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책상과 낡은 노트북 정도. 나머지는 모두 다 두꺼운 대본들이었다.


어마어마한 대본의 산. 이마저도 몇 번 정리를 한 게 이 정도였다.


“이건 버리자. 이건···. 남기고.”


최해문은 그런 대본을 하나씩 꺼내서 고향까지 가지고 갈 것과 아닌 것을 구분했다.


“후. 하나씩 다 보니까 진짜 시간 오래 걸리네. 이걸 언제 다하냐.”


사실 방 정리가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다.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았고 고향이라는 것이 어디 도망가는 존재는 아니니까.


대략 한 달. 그 정도까지는 어차피 이곳에서 생활해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당장 내일 한 번의 오디션이 남아 있는 한 최해문은 여전히 이 방의 주인이자 배우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이미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보였다. 이 모든 것을 어서 끝내고 싶어 할 뿐인 것처럼.


“으아.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한참을 짐을 정리하던 최해문은 그래도 어느 정도 분류된 대본을 보며 털썩 침대에 앉았다.


일일이 대본을 보고 분류한 지도 벌써 5시간이 넘었다.


그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가만히 방을 둘러보았다.


“응?”


그러다 문득 둘러보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살림살이와 대본의 산 사이에 숨겨져 있던 곳. 어느 정도 대본을 치운 덕에 그곳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상자가 보였다.


“저건 무슨 상자지?”


다가가서 상자를 만져본 최해문은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주 오래된 상자였다. 얼마나 된 건지 붙여두었던 테이프가 바스락거릴 정도로.


“나한테 이런 짐이 있었나.”


있었다면 진즉에 처리했을 텐데. 의미를 잃은 테이프를 제거하고 상자를 열었다.


“···아.”


최해문의 입이 조그맣게 벌어졌다.


내부의 물건들을 보자마자 바로 상자의 의미가 생각났기에.


“그때 그 상자네.”


아버지의 장례를 모두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날.


혹시나 연기를 향한 마음이 약해져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질까 봐 몇몇 물건들을 모아서 봉인한 상자였다.


“와. 이게 아직도 남아 있었구나.”


그동안 짐 사이에 파묻혀있던 상자 안의 물건이 최해문의 손을 따라 하나씩 꺼내졌다.


정말 별별 물건이 다 있었다.


“와 이것도 여기 있었네. 이것도.”


어릴 때 부모님을 졸라서 샀던 낡은 게임기. 고등학교 졸업 앨범. 좋아하던 책까지.


만약 집에 풀려 있었다면 문득문득 고향을 생각나게 할만한 존재들이자 연기를 향한 열정을 흐트러트릴 듯한 것들이었다.


“마지막은-”


그러다 가장 마지막 바닥에 손이 닿았을 때. 최해문은 움찔했다.


자그마한 액자.


뒤집힌 채로 꺼내진 액자를 돌리자, 그 안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흐릿한 사진 속의 미소 지은 남자.


“아버지.”


참 얄궂은 일이었다.


아버지의 약속을 떠올리며 짐을 정리하던 중에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하다니.


한참을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던 최해문이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래서 오늘쯤 됐다면 이렇게 불쑥 찾아오셨을까.


너 왜 약속한 32살이 되고도 안 오냐고. 아직도 그 빌어먹을 연기를 붙잡고 있을 거냐고 호통을 쳤을까.


“기분이 어떠세요. 아버지 말대로 배우 끝자락도 제대로 못 만져보다가 전부 실패하고 이렇게 돌아가게 생겼는데.”


여전한 숙취와 피곤한 몸으로 최해문이 넋두리를 시작했다.


“벌써 12년이나 됐네요. 제가 큰소리 치고 나간 게.”


이제 막 성인이 되던 해.


대학마저 포기한 최해문은 호언장담하고 집을 뛰쳐나왔었다.


‘아버지. 전 진짜 배우로 성공할 겁니다. 누구나 알만한 그런 배우가 되면 그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싫어했다.


풍파의 시기를 지낸 그에게 삶이란 결국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여정이었고, 예술이란 건 언제나 폭풍이 치는 배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배에 몸을 실은 아들이 달갑게 보일 리 없었다.


‘정말로 안 돌아올 셈이냐?’

‘예.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럼 영원히 나랑 연을 끊겠다는 게지?’

‘성공해서 돌아올 거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게 그거지. 쯧.’


연기 그게 뭐라고 고졸인 채로 대뜸 서울로 떴는지.


아버지의 혀 차는 소리가 지금도 최해문의 귀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후, 그래. 그럼 하나만 약속해라. 32살까지 그 잘난 꿈을 못 이루면 다 내려놓고 돌아오겠다고.’

‘32살이요?’

‘그쯤까지 아무것도 못 이룬 놈이 뭘 하겠다고. 다 포기하고 내려와라.’


그때는 아버지가 저주하는 것 같아 너무나 싫은 말이었다. 어째서 32살이라고 했는지도 의문이었고.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 말대로 됐네요. 마지막까지 배우 끝자락도 제대로 못 잡아봤으니까.”


아버지의 액자가 마치 아들을 바라보듯 반듯이 섰다.


“아니다. 아직 마지막은 아니네요. 오디션이 하나 남아 있긴 하네.”


물론 그저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기회일 뿐이었다.


KBC에서 준비 중인 신작 드라마 [탐정 형사 강현철]의 조연 오디션.


지상파라는 입지도 그렇지만 피디도 작가도 썩 괜찮은 라인업인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의 조연이라면 한 화만 등장해도 하고 싶은 사람이 줄을 선다.


당연히 그럴듯한 소속사를 가진 실력 있는 배우들 역시도.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탈락을 맛본 최해문에게는 그런 배역의 합격은 꿈에도 그리지 못하는 일이었다.


“아마 절대 안 될 거예요. 다음 달 이맘때쯤이면 고향에 있겠죠.”


허탈한 웃음이 최해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게 그저 참 멋없는 패배자의 변명이라는 걸.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열심히 하면, 죽을 듯이 노력해서 연기력만 갖춘다면 언젠가 자신도 위대한 배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안될 걸 알면서도 일단 박고 보는 패기 역시 있었다.


그게 시간이 지나 실패라는 글자로 쌓이자 어느새 이만큼이나 흐려졌다.


“배우가 연기만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열심히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해석하여 연기를 펼쳤을 때.


‘연기력은 괜찮은데···. 뭔가가 좀 부족하네. 그 딱하고 오는 느낌이 없어.’

‘배역이랑 이미지가 별로 안 맞네요.’

‘임팩트가 없는데? 스타 될 재목은 아니네.’

‘긴장도 좀 심하게 하는 것 같고. 이래서는···.’


저마다 사람들이 던졌던 말들.


그건 한마디로 줄여서 이런 뜻이었다.


‘넌 배우 할 상이 아니야.’


그저 감정 연기 좀 한다고, 분석 좀 할 줄 안다고 유명한 배우가 될 수는 없었다.


최해문에게 12년의 세월은 꿈을 쫓아온 시간이자 자신에게 배우가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확인해 온 시간이었다.


그러니 더는 실력에 대한 자신도, 언젠가 연기로 성공하겠다는 객기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참 못난 아들이죠? 그렇게 큰소리치고는 이렇게 멍청한 소리나 하고.”


사실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내려가겠다는 것도 반쯤은 진실이고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마침 너무나 지쳤을 때 문득 아버지와의 약속이 떠올랐을 뿐.


아버지의 유훈을 방패 삼아 도망치고 싶었다.


“나 더는 이 꿈을 계속할 힘이 없어요.”


더 노력 많이 노력했다가 받을 상처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분명 그랬는데.


“아버지 그런데요. 나 너무 힘든데. 진짜 힘든데.”


최해문의 눈가에 서서히 물기가 맺혔다.


“아직도 연기가 너무 좋아요.”


연기가 좋다. 배우가 좋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에서 손짓과 눈빛만으로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토록 힘들었는데도 여전히 연기가 하고 싶었다.


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남은 오디션에 기대를 걸게 된다.


이 넋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서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과 스스로 꿈의 끝을 매듭짓고 있는 상황 사이에서 오는 괴리.


그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원룸 속 한 남자의 처연한 독백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내가 나온 영화표 들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손잡고 영화관에 가고 싶었는데.”


힘을 준 최해문의 손이 입술과 함께 떨렸다.


“정말···.”


결코, 이런 식으로는 뱉고 싶지 않았던 말.


그런 말이 그의 입에서 읊조리듯 흘러나왔다.


“정말 죄송-”


그러나 끝까지 그 말을 다 뱉을 수가 없었다.


“-어?”


숙인 고개에서 눈물이 떨어지려는 찰나.


그의 머리가 잠시 흔들렸다. 마치 어지러움이 머리를 덮친 것처럼.


아니 이걸 어지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휘청인 몸이 느끼는 감각은 단순히 감정의 격동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머리를 가볍게 민 것처럼 느껴졌다.


어딘지 익숙한 감각.


분명 그는 이런 비슷한 느낌을 어릴 때 겪어본 적이 있었다.


함께 산을 타다 더는 못 간다고 했을 때 장난스럽게 그의 머리를 밀었던 아버지의 기억이.


‘이놈아 그럴 시간에 한 발이라도 앞으로 가라.’

‘힝. 하지만 힘들단 말이에요.’

‘짜식이 벌써 요령이나 피우고. 네가 올라가고 싶다며. 그런데 여기서 포기할 거냐?’


그러고 아버지가 어떻게 했더라.


마지못해 한숨을 쉬시더니 업어 주셨던 기억이 났다.


‘치. 혼자 하라더니 왜 업어 주세요.’

‘그럼 아들내미가 힘들다는데 가만있으랴. 오래는 안 업어 준다. 떡 저기까지만 업어 주는 거야.’

‘히히. 감사합니다.’


분명 그렇게 업어 주신 덕에 정상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왜 그게 지금 생각나는 걸까.


최해문은 뒤를 돌아 흔들리는 눈동자로 읊조렸다.


“아버지?”


다시 한번 더.


“아버지예요?”


그러나 무언가 또 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세상에 귀신이 어딨단 말인가.


분명 지금도 그저 착각일 터였다. 너무 심하게 마음을 쓴 탓에 머리가 멋대로 한 착각.


하지만 설령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최해문이 하려던 말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맞아요. 아직은 죄송하다고 할 때가 아니죠.”


바늘 구멍같더라도 기회는 남아 있다.


만약 정말로 아버지가 여기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마지막까지는 해보고 말하라고.


사과는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 뒤에 해도 된다고.


아버지라면 분명 이렇게 애매한 마음으로 하는 사과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실 것이다.


“진짜 모든 게 다 끝나면 그때 후련하게 사과하러 갈게요. 아버지.”


여전히 꼿꼿한 아버지의 액자를 손에 든 최해문은 그것을 다시금 상자로 집어넣었다. 꺼내놓은 다른 물건들도 모두.


자신은 저 상자를 열지 않은 것이다. 저건 연기를 향한 자신의 약속이니까.


내일의 오디션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그리고 실패하면 그때 제대로 열자. 고향집에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일 오디션이니까 일찍 자자.”


시간도 이제 제법 늦었다. 저녁이나 먹고 빨리 잠을 자야 내일 멀쩡한 정신으로 오디션장으로 갈 수 있으리라.


최해문은 무거운 다리를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그 탓에 그는 방금까지 아버지의 액자가 서 있던 공간에 떠오른 흐릿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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